쉘 위 키스 - Kiss Pleas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 것들: 

1. 키스는 당신에게 중요한가, 예스라면 그 이유를 대시오. 

2. 당신은 키스가, 섹스 혹은 사랑을 위한 첫 단추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별개의 독립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3. 당신은 관계에서 키스를 비롯한 스킨쉽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그것이 때로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스킨쉽 뿐 아니라 아주 단순한 하나의 행위 때문에 일생을 사랑한 사람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이 사람이 소울메이트였군 , 엿 바꾸듯이 바꿀 수 있다거나 그런 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성으로 감정을 꽉 잡고 그런 불가항력조차 외면하고 자신이 현재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 때 온전히, 가 정말 온전한 지는 논외로 하고) 지키려고 노력할 것인가.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충 저런 걸 지속적으로 묻는 느낌의 영화다. 당연히 백명의 사람이 본다면 백가지의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들. 그래서 극 중의 커플들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의 통념상 좀 급진적이긴 해도 흥미롭고 근원적이다. 감독은 구성애 여사처럼 수다하게 그것들을 심리적, 육체적, 철학적으로 요리조리 풀어버리는데서 영화의 차별성을 구가하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성이 아니라 프랑스 영화란 저래서 안돼라는 식의 지루함으로만 각인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모처럼 봄날 같은 날씨. 키스하고 싶은 날씨. :)


댓글(13) 먼댓글(1)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kiss kiss」 ♬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3-29 10:02 
                     I'm gonna believe in your eyes                So please don't say love is blind 
 
 
굿바이 2010-03-2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중요하다!!!! → 키스하자는 사람 있을 때는 몰랐다!!! 늙고 병드니까 막 중요해요^^
2. 독립적인 행위다!!!
3. 비밀이다!!!ㅋㅋㅋ

날씨가 풀리니까 정신도 풀리고 있어요ㅎㅎ

치니 2010-03-24 14:47   좋아요 0 | URL
^-^ 인생 뭐 있나요 가다가 살짝 풀리기도 하고 그러죠 뭐, 저도 오늘 그럴래요 ~

1,2,3번의 답으로 추정하건대, 굿바이님은 이 영화 재미나게 보실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

nada 2010-03-2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음, 중요하긴 한데 나이 드니까 깨끗한 사람하고만 하고 싶어요. -.-
어릴 때 술김에 해버린 그 드러운 키스들.. 어휴.
2. 오,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워요.
3. 인생은 아주 작은 구멍으로도 쉽게 찢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경험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더구나 스킨쉽은 말해 무엇하겠어요? 얼마 전에 본 [키친]도 이것과 비슷한 질문에서 시작한 영화였는데, 너무 피상적이어서 괜히 봤다 투덜거렸어요. 다 큰 애들이 어린애처럼 구는 모습을 늘어놓고는 그게 '순수'라고 주장하는 게 역겹고 한심하더라구요. 심지어 그 영화에선 신민아가 별로 이쁘지도 않더군요(다리만 이뻤어요). 어휴, 어떻게 저런 애를 심은하랑 비교하지?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까요.ㅋㅋ

치니 2010-03-24 15: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쵸그쵸 어렸을 때는 술 안 먹으면 키스가 안 될 지경이었죠. 저도 지금은 키스 보다는 산뜻한 뽀뽀가 좋은데 드..드러운 거 싫어서 그런가? ㅋㅋ

이 영화가 조금 특이했던게, 가볍게 볼려면 가벼울 수 있는데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도끝도 없겠다 싶은, 그런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호오가 갈리기도 하겠고.
아아, 3번은 정말 동감이에요. 아주 작은 구멍으로도 찢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끔 미치도록 두려워요, 지금 이 일상의 안온함을 지키려는 내 헛된 희망 때문에.
키친, 별로였구나. 어떤 영화일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 신민아 이뻐서 볼까 했는데 것도 아니라니, 엥.

다락방 2010-03-2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중요하다 -> 좋으니까.
2. 아 이건 저도 어렵네요. 독립적인것 같기도 했다가 첫단추 같기도 했다가. 패쓰.
3. 상대에 따라서 스킨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거나 많아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느 하나의 행위 때문에 일생을 사랑한 사람을 뒤로 하는것 역시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이를테면 이런거죠. 일생을 사랑한 사람을 정말 사랑했고 그렇게 쭉 살아왔어요. 만약 내가 이 영화에서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서 다른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늙어 죽을때까지 갔을수도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경험을 했다는거고, 그 다른사람과의 다른 경험이 결코 잊을 수 없고 강렬했다면, 일생동안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은 좀 어렵지 않을까..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내가 몰랐던 신세계가 열리는데, 계속 그렇지만 저기에 깊이 빠지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는게 과연 실행가능할 것인가..아, 역시 어려워요. 이것이 남녀관계일때 정말이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건 별도의 질문.

치니님은 치니님 본인에게 플라토닉 러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이건 사적인 질문이어요.)

치니 2010-03-24 16:36   좋아요 0 | URL
응응, 그렇죠, 좋으면 중요한 거에요. 1번 동감. ㅎㅎ

저는 머리로는 키스가 독립적일 수 있다 생각해도, 실제 경험에서는 늘 첫단추 역할을 해왔던;;; 거 같아서 아무래도 키스는 그런 역할이 큰가봐 그러고 있어요. ㅋㅋ
네, 상대에 따라 비율은 정말 다르겠죠, 위 양배추님이 드러우면 안하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스킨쉽도 상대가 자꾸 만지고 싶은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좀 다를 거에요. 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엉뚱하게도, 저런 신세계가 내게 절대로 안왔으면 하고 바랬어요. 그냥 지금 이 상태, 이 사람 그대로 영원히, 앙드레 고르처럼 80세 넘어서까지 한 여자만, 그랬음 좋겠다 싶었어요.

별도의 질문에 대한 답: 오오오 그럴 리가요. 하하. 저는 스킨쉽을 아주 좋아해요. 부비부비, 발가락이라도 닿고 자야 해요. 만약 아주 마음에 꼭 드는 상대가 저더러 플라토닉러브 하자고 하면 기필코 자빠뜨려 버릴 걸요. ㅋㅋㅋ

다락방 2010-03-24 17:34   좋아요 0 | URL
치니님은 참...

여러모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분이세요!
:)

네꼬 2010-03-30 12:54   좋아요 0 | URL
다락님, 내 말이.

chaire 2010-03-2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프랑스 영화 식의~ 지루함이라 함은,
혹, 제목과 달리 제대로 된 '키스신'이 하나도 안 나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한결 덜해지겠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치니 님이 던지신 세 가지 질문, 영화에서 저런 질문을 던졌든 말든,
치니 님이 던지신 그 질문들은 무척 예리하군요.
하여, 저로선 도저히 답을 못 찾겠어요. 끙.
(지문: 그러면서 남들 답은 열심히 딜다본다)


다락방 2010-03-25 08:30   좋아요 0 | URL
예리하시군요! 네, 제 마음에 드는 키스는 한번도 나오질 않더라구요. orz

치니 2010-03-25 09:01   좋아요 0 | URL
뭔가 19금스러운 걸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겠지만, 그렇다고 키스신이 없지는 않아요, 제목을 저렇게 해놓고 키스신도 없다면! 진짜 변태 감독이라고 해야죠. ㅎㅎ

카이레님, 답을 달아보아요, 재밌잖아요. 헤헤.
다락방님, 없었어요? 그래도 마지막 그건 괜찮지 않았어요? ㅎㅎ

네꼬 2010-03-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태그 OTL.

치니 2010-03-30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참, 징한 인간이죠 잉. ㅋㅋ
 

어떤 기회에 (아마 알라딘이었을 거다) 신청하지도 않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1년 치를 꼬박꼬박 매월 받아보게 되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압도적으로 어려운 기사들에 매몰 되면서도 다 읽어야 착한 학생일 것 같은 마음에 몇 주에 걸쳐 다 읽기는 했다. (짐작하시는대로) 그 다음 달부터는 읽고 싶은 꼭지만 골라 읽고, 그 다음 달부터는 포장도 몇 주간 안 뜯은 채 처박아두기도 했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집에서는 생각도 나지 않는 이 신문이, 길에 나서면, 혹은 인터넷을 보다 보면 자꾸 생각나고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더라는 것. 아니 요상하기는, 뭐, 방구석 탁상공론보다 길에서 배우는 게 많으니 당연히 궁금한 게 생기고, 그럼 남들은 어찌 생각할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팩트가 있는가 생각하게 되는 거겠지.   

오늘도 그러다가 아래 기사를 읽었다. 

이십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 

과연, 다 맞는 말이다. 엄기호 기자님, 분석력이 '탁월'하다. 그런데, 20대가, 분석을 탁월하게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닐 게다. 기자님이 말씀하신 그 압도적인 탁월함은 어디서 나올까, 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게 분명하고 내 주변에도 잘 안 보인다. 바짓 가랑이 붙들면서 제발 한나라당은 안된다, 이명박은 안된다, 설득하고 조르고 그럴 필요 없이, 딱 한 방에 '압도적으로', '탁월하게' 제압하는 그런 영웅, 없고, 그런 분위기가 되기엔 이미 다들 너무 주눅 들어보인다. 좌파들 제대로 하라고 그러지만, 좌파(연 하는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살리에르더러 모짜르트 되라고 하면 되어지겠나. 그럼 어쩌면 좋을까. 아유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야. 너를 열심히 읽으면 혹시 답이 살짝 나올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ada 2010-03-2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어 잡지인가 보다 했는데 링크로 가보니 한글이네요!
이 기사 읽기도 너무 힘겨운 저는 정말이지 점점 심해지는 무지에 충격을 받았어요.ㅠ.ㅠ
다른 건 몰라도 좌파나 우파나 거기서 거기라는 데는 저도 20대들과 비슷한 심정임다.
정치판 자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 같기도 하고요.

치니 2010-03-24 15:34   좋아요 0 | URL
우어어어, 저를 뭘로 보시고, 감히 불어 잡지 씩이나 그것도 르몽드를?! 말도 안돼요. ㅋㅋㅋ 르몽드는 그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꽤 유식한 사람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인문학 서적 같은 책들을 늘 읽고 비평까지 하는,그런 사람들이나 읽는 신문이던 걸요.
가독성이 떨어져요 확실히. 관심 분야가 아니어서 일 때도 있고, 불어를 한글로 번역한 기사라 그럴 때도 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지를 누르고 몇 꼭지 읽고나면 그게 또 오래 뇌리에 남기는 하더라고요.

그쵸 거기서 거기, 휴. 손석희는 장담한대로 절대 정치하지 말길(뭐래, ㅋㅋ)
 
그가 힌트를 주는 방식
무슈 린의 아기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눈이 온다. 3월22일인데 눈이라니, 라고 중얼대다가도, 눈에게 그건 부당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눈이라면, 까짓 거 내리고 싶은데 3월이고 4월이고 무슨 상관이냐, 난 내가 내려가고 싶을 때 내려갈란다, 어차피 너희들도 자연을 따르지 않고 너희 멋대로 겨울에도 여름처럼 여름에도 겨울처럼 지내지 않느냐, 그런 심뽀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거다. 정상 / 비정상이라는 것도 아마.  눈이 3월에 내린다고 비정상이라고 투덜대는 많은 인간들이 다 정상인지, 그 눈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몇몇이 여전히 지독히도 감상적인 비정상인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인간들 중 몇은 서로가 극단에 있다가도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우연히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생은,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 희망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용이 암시적으로 들어간 소설에 늘 맥을 못 춘다.  

이 책에서처럼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언어조차 통하지 않고 살아온 인생의 배경도 아예 다른 두 사람이, 아무런 논리적 근거 없이, 그냥 좋아하고 그냥 친구가 되고 그냥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게 되는 단순한 내용이, 내 가슴을 사뭇 두근대게 하고 읽는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하고,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서 바스라질 것 같게 하니까. 그리고 다 읽고나면 슬프지만 약간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니까. 이런 슬픔은, 밀어내지 않고 품에 안아도 좋을, 오히려 사람을 맑게 해 줄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뭔지 모를 안도감까지 드니까, 말이다.  

결국, 이런 책을 읽고 이토록 흔들리는 나는 또 다시 다칠 것도 모르고 불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어 보는 어린아이 같이, 나에게 친절한 모두에게 '치니'가 되려고 하는 바보짓을 할 지도 모르겠다. 소통,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단어 속 의미를 아직도 부질없이 찾아 헤매면서. 

어쩌면, 아직도 다락방님 역시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내 이런 덧없는 희망도 엿보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리라는 걸 그렇게 잘 알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벌써 다락방님에게 내 안에 꽁꽁 숨겨놓은 무슈 린의 아기와 같은 존재를 들켜 버린 걸까. 책을 덮고 오래오래, 생각해보았습니다.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3-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정말. :)

치니 2010-03-22 20:34   좋아요 0 | URL
아흐, 부끄러워요. :)

nada 2010-03-2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럴 땐 다락방님께 땡스투를 해야 해요, 치니님께 해야 해요? @.@

치니 2010-03-22 20: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락방님에게 과감히 양보합니다!

다락방 2010-03-22 21:09   좋아요 0 | URL
아이쿠, 리뷰는 치니님이 쓰셨는걸요. 저는 치니님께 양보합니다! ㅎㅎ

토니 2010-06-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짠하네요.. (마지막 장에서는 좀 "섬뜩"했다고나 할까..) 처음 읽었을 때는 두 남자 주인공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두번째 읽었을 때는 무슈린의 "아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아기"가 등장하지 않았어도 글의 전개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작가의 의도에 대해 한참 고민했어요. (요즘 시간이 하도 많아서 ㅋㅋ) 조만간 뵐께요. 그때 밥도 사고 술도사고 책도 사드릴게요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치니 2010-06-01 15:1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사실 섬뜩한 기분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 다음에 곱씹다 보니 슬픔 비슷한 감정이 서서히 왔어요.
음, 아기는, 노인이 (삶을 유지할 유일한 이유로써) 가장 애착을 가질 대상으로서 어린 아기 만한 존재가 드물기 때문에 선택한 거 아닐까요?
 
원더풀 라이프 - After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2. 외로운 가요 당신은 외로운 가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 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 작사: 조동진 / 출처 : 가사집 http://gasazip.com/1232 )

중학교 때 골백번 듣고 또 들었던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어제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온 뒤, 보는 내내 철학적인 주제 때문에 묵직했던 머리는 하루가 지나자 제껴지고 오늘 오전에는 내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니, 이건 또 웬 조화인가 싶지만, 기실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기가 또한 이런 것. 슬플 만 하면, 어둡게 가라앉을 만 하면, 깊은 생각에 빠질 만 하면, 툭 하고 뭔가를 끊고 가볍고 건조한 일상으로 슬쩍 되돌리거나 비장한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인생 뭐 별 거 있니 또 이런다. 이런 감독의 말투(영화 속에서 하는 거지만)는 상당히 내 취향이다. 그래서 아마 다들 조금쯤은 지루하다고 할 만한 부분에서도 나 혼자 좋아라 하는 지도 모르겠고, 생뚱맞게 저런 옛날 노래를 떠올리는 지도. 

영화는 꽤 자극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은 주제 - 우리가 죽고나면 죽기 전에 일주일 동안 자신이 일생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 기억 외의 다른 모든 기억은 사라진 채 행복하게 저승으로 간다는 설정 - 를 선택했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내용은 기억에 관한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상상력의 발화점이 높지도 않다. 그저, 관객들도 거기 나오는 22인과 비슷한 추억, 비슷한 생각, 비슷한 꼴통스러움, 비슷한 망설임을 가지고 저 중에 나는 몇번 타입일까 유추해 볼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처럼 일주일을 유예기간으로 삼는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인간은 어쩌면 세 가지 부류로 나뉠 지 모르겠다. 

1. 행복한 기억 따위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사람  

2. 행복한 기억이 소중한 사람 

3. 불행한 일들만 기억하는 사람 

그런데, 나, 오늘 아침에 내가 2번 부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고,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사람은 아닐지언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나, 계속 행복해도 되는 사람 아닐까? 기분 좋은 목요일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rnleft 2010-03-1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우연이. 요즘 [순례자의 책] 읽으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는데 말이죠.
저는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요 :) 일본 영화답게 사건보다는 잔잔한 감정선의 흔들림을 예민하게 잡아내던걸로 기억되네요.

치니 2010-03-19 09:00   좋아요 0 | URL
[순례자의 책]은 또 뭔가, 검색해보고 왔어요. :) 흠흠, 흥미롭네요. 다 읽고 재미있었나 알려주시기.

아, 저도 이 영화 극장에서 봤답니다. 요새 다시 개봉했던 건지, 아니면 알라딘에서 이벤트 성으로만 한 건지, 아무튼. ^_^ 왠만해선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게 젤 좋드라구요 ~ 그죠?

참참, 만드신 어플 잘 쓰고 있어요. 저는 밑줄긋기는 타이핑의 구찮음 때문에 못하겠고 ㅋㅋ 메모 기능 잘 쓰고 있어요.

rainy 2010-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영화를 보았건만.
이렇게 똑떨어지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여 풀어내는 솜씨라니.
나는 영화의 여운이 생각보다도(각오했건만) 더 묵직해서
마음속에 잡생각만 뭉게뭉게 ^^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제프^^
낼 봐아~

치니 2010-03-19 13:42   좋아요 0 | URL
그 뭉게뭉게 잡생각 좀 풀어보시구려. 흐, 궁금한데.

오늘은 지붕킥 마지막회를 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제프백의 음악을 들으며 자야겠어. 오예 ~ 즐거운 금요일.

Tomek 2010-03-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 보질 못했어요...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데뷔작은 한동안 만나기는 힘이 들 듯... 치니님의 글로 그 아쉬움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

치니 2010-03-22 14:30   좋아요 0 | URL
앗, 많이 아프세요? 요즘 날씨도 궂고 황사에...감기 조심하셔야 될텐데.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군요! 전 그것도 몰랐어요. ^-^

stillyours 2010-04-0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았던 기억 하나만을 붙들고, 그 행복한 시간만을 기억하고,
천천히 흐르던
이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치니 2010-04-05 19:53   좋아요 0 | URL
아앗, moon님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요?!
그렇담 제가 뒤늦게라도 챙겨보길 참 잘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아프긴 했지만 이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가 가장 좋았어요)
 

점심을 먹고 여기저기 블로그들을 기웃거리는데, 유인촌 장관이 이번에는 트위터 때문에 말썽인 모양이다. 대체 뭐라고 썼길래 문제가 되었나 했더니, 아이고야, 논쟁이 붙을 이슈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맞춤범과 띄어쓰기 때문에 욕 먹는 중. 배우 시절에 대본만 해도 무수하게 봤을텐데, 더구나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면서, 어떻게 이 따위냐...그런 반응들이 많은 듯.  아닌게 아니라, 단순한 오타라고 하기엔 좀 심하달 정도. 아이폰은 앞의 몇 글자를 쓰면 단어를 바로 보여주는 기능이 있어서 그냥 그걸 쓰면 되는데 아마 유장관 전화기는 아이폰이 아닌가부다.

비 오고, 월요일이고, 점심 후 졸리고, 일 하기 싫은 분들, 한번 웃기나 하시라고 그가 썼다는 트위터 몇 줄 옮겨봅니다. 

하얀 눈을 포오옥 뒤짚어쓴 외수 작가님의 거처를 사진을 보고...  

지금 대전에 도착했읍니다  

오늘은 대학로와 국립극장을 다녔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쎈연필 2010-03-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9년도에 '습니다'로 개정된 '읍'니다. 아직도 더러 연로하신 분들은 '읍'을 애용하시더군요. ㅎㅎ 유인촌 장관 잼있는 분이시네요.

치니 2010-03-15 17:53   좋아요 0 | URL
유장관님은 전원일기에서 둘째 아들로 나온 이미지가 너무 강했어서인지, 그렇게까지 연로한 줄 몰랐지 뭐에요. ㅋㅋ

푸하 2010-03-1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진짜 재밌어요.ㅎㅎ~
'뒤짚어쓴'을 발음(뒤지퍼슨)해 보니 진짜 웃기네요.^^;

글을 보니 맞춤법 문제에 대해서 참 부끄러웠던 경험이 기억나요.

어떤 분이 어떤 글에 단 댓글에서 맞춤법이 틀린 내용이 눈에 들어와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교정했는데... 제 글도 틀렸더라구요. '에구~ 부끄러워라...ㅠㅠ'했죠.



치니 2010-03-17 11:5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맞춤법 뿐 아니라 띄어쓰기 틀리기 일쑤이지만, 장관님이니까 아무래도 좀 더 조심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맞춤법은 고사하고, 이외수 작가의 집을 왜 '거처'라고 하는지, 거처의 사진이 아니라 왜 거처를 이라고 쓰시는 지 그건 좀 이상하기도 하고요. 다녀왔습니다 라고 해야 할 것을 다녔습니다로 한 것은 오타라면 완전 센스쟁이지만 진짜 그렇게 쓴 거라면 장관님, 아무래도 초등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