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힌트를 주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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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린의 아기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눈이 온다. 3월22일인데 눈이라니, 라고 중얼대다가도, 눈에게 그건 부당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눈이라면, 까짓 거 내리고 싶은데 3월이고 4월이고 무슨 상관이냐, 난 내가 내려가고 싶을 때 내려갈란다, 어차피 너희들도 자연을 따르지 않고 너희 멋대로 겨울에도 여름처럼 여름에도 겨울처럼 지내지 않느냐, 그런 심뽀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거다. 정상 / 비정상이라는 것도 아마. 눈이 3월에 내린다고 비정상이라고 투덜대는 많은 인간들이 다 정상인지, 그 눈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몇몇이 여전히 지독히도 감상적인 비정상인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인간들 중 몇은 서로가 극단에 있다가도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우연히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생은, 적어도 그런 의미에서 희망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용이 암시적으로 들어간 소설에 늘 맥을 못 춘다.
이 책에서처럼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언어조차 통하지 않고 살아온 인생의 배경도 아예 다른 두 사람이, 아무런 논리적 근거 없이, 그냥 좋아하고 그냥 친구가 되고 그냥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게 되는 단순한 내용이, 내 가슴을 사뭇 두근대게 하고 읽는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하고,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서 바스라질 것 같게 하니까. 그리고 다 읽고나면 슬프지만 약간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니까. 이런 슬픔은, 밀어내지 않고 품에 안아도 좋을, 오히려 사람을 맑게 해 줄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뭔지 모를 안도감까지 드니까, 말이다.
결국, 이런 책을 읽고 이토록 흔들리는 나는 또 다시 다칠 것도 모르고 불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어 보는 어린아이 같이, 나에게 친절한 모두에게 '치니'가 되려고 하는 바보짓을 할 지도 모르겠다. 소통,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단어 속 의미를 아직도 부질없이 찾아 헤매면서.
어쩌면, 아직도 다락방님 역시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내 이런 덧없는 희망도 엿보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리라는 걸 그렇게 잘 알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벌써 다락방님에게 내 안에 꽁꽁 숨겨놓은 무슈 린의 아기와 같은 존재를 들켜 버린 걸까. 책을 덮고 오래오래, 생각해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