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Mil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숀펜은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영화 '밀크'에서 숀펜은 하비밀크이지만 하비밀크는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숀펜은 이전에 영화 '아이엠샘'에서 장애인이었지만 그 장애인은 역시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즉, 숀펜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 숀펜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숀펜을 보지 않고 밀크를, 샘을, 그냥 그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연기자라면 무조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과서적인 바람을 충족시켜(실제로 그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기해보면)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숀펜이 택한 이번 영화는 마침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일찍부터 소문이 난데다가 작년에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거머쥔 바, 모두의 기대가 2년이나 지속되어 이제야 개봉한 지라, 극장 안은 숨소리조차 신중한 듯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보고싶은 영화는 조그만치의 스포일러도 접근하지 않고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정도만 알아둔 상태에서 거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고집하는 터에,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 혹은 인권운동을 다루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구스반산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그 중에 나를 실망시킨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궁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고, 과연, 나무랄데 없는 전기 영화였다.  

그 위대하고도 안타까운 실화가 이미 내포한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을 부러 가벼이 하지도 않았고, 인간 밀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좀 봐라 이사람들아 라는 식의 강요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객관적인 리얼리티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이 천재 감독이, 광기나 극단 혹은 기이함 등을 내세우지 않고 극도로 차분한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하비밀크는 이미 영웅인데,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동성애 영화를 접해도 유명한 정치인은 커녕 연예인 홍석천은 여전히 가끔씩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참 갈 길이 멀겠구나 싶어서, 내 앞 줄에 중간중간 박수를 치던 어떤 분(아마도 밀크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헤아려지고 이것이 비단 동성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토록 잘 만든 영화를 보고도 가슴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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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간 숀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 남우주연상을 타야 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구스 반 산트는 아,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영화 감독을 잘 모르고 감독 취향이라는 것도 없는데, 구스 반 산트만은 예외에요. 포스터의 느낌과 그 밑에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만 보고 [엘리펀트]와 [파라노이드 파크]를 조건없이 봤어요.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채로 말이죠. 아 정말 구스 반 산트 사랑해요. 최고에요. 구스 반 산트 만세 ㅠㅠ

치니 2010-03-02 15:07   좋아요 0 | URL
영화를 같이 본 친구와 저는, 숀펜도 숀펜이지만 그런 숀펜과 결혼까지 했던 마돈나가 더 대단하다! 고 수다를 떨었드랬죠. 뭐랄까 좋아한다 싫어한다 호불호로 말하기 이전에 그냥 대단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스반산트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감독 취향이라는게 있고 ^-^ 이 감독이 저에겐 딱이에요. 사랑해요. 최고에요. 만세 ~ 히.

라로 2010-03-0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추천이 왜 두개 뿐이야!!!!!!!버럭
저 영화 정말 좋았지!!!!
이 리뷰도 너무 좋고!!!!!!
숀팬은 천의 얼굴,,,또는 유리가면을 쓰고 있는거 아니야???저 영화보고 소름끼쳤다는ㅎㅎ
자야하는데 이러고 있다,,ㅠㅠ
이 댓글을 마지막으로 정말 자러간다!!!!!

치니 2010-03-04 09:35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렸다 본 보람이 있었어요.
숀펜 같은 남자는 보통 때, 그러니까 연기를 안 할 때는 어떨까요. 영화 속의 인물로 완벽히 변신하니까 원래 그의 모습이 더 짐작이 안되어서 그런지, 자꾸 궁금해져요.

웽스북스 2010-03-0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비슷한 느낌을. ㅎㅎㅎ 저도 전혀 그런 영화인줄 모르고 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잘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적으로 이봐라, 대단하다, 편들어라, 동성애자도 알고보면 똑같은 인간이다, 뭐 이런 진부한 말 하려고 우격다짐하지 않고, 그냥 흐르듯 연출한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숀펜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던 건 몰랐어요. 정말 연기라는 느낌 안들게 연기하는 대단한 아저씨.

치니 2010-03-08 09:38   좋아요 0 | URL
웬디님도 봤구나 ~ 제 주변에 보신 분들이 꽤 많아서 왠지 므흣합니다. :)
구스반산트의 그 겉으로는 무심하고 흐르듯이 보이는 연출이 지독하게 세밀한 관찰과 계산 하에 이루어졌으리라, 막연히 짐작해요. 그래서 늘 감탄하고.

쎈연필 2010-03-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 평들이 참 좋더라구요. 못을 박으시는군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봐야겠습니다.
^-^

치니 2010-03-08 12:33   좋아요 0 | URL
제랄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지랄이란 말을 차마 못할 때 제랄이라고 했었던 기억 때문에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닉네임 ㅋㅋ)
꼭 보시길.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쎈연필 2010-03-08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지랄과 제랄의 어감을 생각하면서 고민 좀 했었죠. 결론은 그것도 매력이라는... ㅎㅎ
 

고독으로부터 찾은 해답 

당신에게는 단 한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의 맨처음 사람처럼 말해보십시오. 사랑 시는 쓰지 마십시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것들은 우선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다루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무진장한 곳에서 당신의 개성을 보여주려면 크고도 완전히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에 아름다운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모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나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는 영상들과 당신의 기억 속의 대상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 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 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하는 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짊어지십시오. 그 운명의 짐과 그 위대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바깥 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당신이 당신의 내면과 당신의 깊은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온 후 시인이 되겠다는 당신의 소망을 포기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합니다. 그러면 글 쓰는 일을 절대 시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당신한테 요구한 이 같은 자기 내면에의 탐구가 전혀 헛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어쨌든 당신의 삶은 가야할 나름의 길을 찾아 나설테니까요. 

(토끼피터님 블로그에서 베낌: http://blog.naver.com/sengdal/2009992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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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반복 또 반복하는 릴케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편지. 살아오면서 나는 뭘 제대로 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에효, 머리를 벽에 찧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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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2-1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하는 글이라 여러번 베껴쓰고,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그랬던 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거... 헤헤...

치니 2010-02-10 19:26   좋아요 0 | URL
역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글이었군요! ^-^ 하린군에게 보내줬더니 이미 국어시간에배워서 암송하고 있다더라구요.

라로 2010-02-10 23:50   좋아요 0 | URL
하린군은 암송,,,까지 하고 있다고!!!!!!!!!와~~~. 대단!!!

치니 2010-02-11 09:08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말이 암송이지, 몇 군데 읽어본 것 뿐일 수도 있어요.

chaire 2010-02-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나오면 캐묻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제 경우 답이 나왔다고 하면 그게 답이 맞느냐 하고 자꾸 캐묻는 고질병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에효.

치니 2010-02-11 13: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건가 싶으면 저건가 싶고. 우리 범인들은 그래서 뭐 하나 끝장나게 못해내는가봐요. 흑.

rainy 2010-02-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게 너무도 시의적절하여라..
(모든 진실. 진리들은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시의적절하겠지.. ^^)

치니 2010-02-11 16:03   좋아요 0 | URL
흐흐, 눈치 챘지? 베낀 이유 중 50%는 레이니님을 위하여.
 

일요일 오후, 반쯤은 설레이는 마음, 반쯤은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연극을 보러 가지 않은 지가 몇 년째인 지 세어 볼 수 없을 정도인 지라, 좋은 연극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는 만큼 열심히 보러 가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너무 멀리 하고 살았다 싶어 뜨끔하기도 했더랍니다. 

우선은 여기 알라딘에서 알게 된 '깜찍하고 귀엽고 발랄하고, 때로는 심각하고 진지하고 성숙한, 알고보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연극까지 하는 욕심쟁이 우후훗 니나님'이 공연에 출연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래저래 낡고 지친 정신에 환기를 불어 넣어줄, 그러니까 저처럼 딩가딩가 현실에 안주하고 일 벌리는 거 번거로워 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신기하기만 한,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현장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그 에너지와 열기 속에 흠뻑 빠져서 대리만족을 할 셈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대리만족은 충분히 실현되었고, 아 글쎄 우리의 니나님, 솔까말,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라고 점수를 더 주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인 눈으로 보아도 '가장 빛나고 열정적이며 몰입한 연기'였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짝짝짝! 이 자리를 빌어 다시 축하드려요.  더불어 이 좋은 기회를 놓치신 다른 알라디너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다음 기회를 꼭, 놓치지 마시길 부탁 드리면서, 제목에 말씀드린대로 알라딘의 음모가 있는지 아니면 버림을 받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즐겨찾는 서재의 브리핑에 죽어도 안 뜨는 니나님 서재의 페이퍼 트랙백 합니다. 이런 기사도 났다고 하더라구요 ~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13164 



(이미지는 예매했던 인터파크 싸이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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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0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은 치니양의 글??????
니나님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정말 멋진분이시닷!!!!!열정이 부럽다는~.^^;;;;(추천 했다는~.헤헤)

치니 2010-02-08 10:14   좋아요 0 | URL
네, 이 글은 광고성 글로써 제가 쓴 것이고요, ^-^ 니나님 서재는 트랙백 걸어둔 곳으로 가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흐, 추천 감사.

니나 2010-02-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 영광이예요
가장 빛나고 열정적이며 몰입한 ... 이라니,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ㅁ'
비좁은 극장에서 재밌게 잘 봐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

치니 2010-02-08 13:29   좋아요 0 | URL
오홋, 실시간 댓글. 안 그래도 이 글을 제 맘대로 막 이렇게 올리고 정작 본인인 니나님에게 허락도 안 받아서 어쩌지 약간 소심해진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댓글 달아주셔서 안심. ^-^

다락방 2010-02-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니나님 서재는 왜 즐찾브리핑에 안뜨는거야요 ㅜㅡ

치니 2010-02-08 17:04   좋아요 0 | URL
사람이 편한 데 익숙해지는 건 참, 끝이 없다 싶어요.
오래전 알라딘에서 즐찾했던 서재들을 하나 하나 클릭하여 보던 기억이 떠오르네요(브리핑은 없었으니 그냥 내가 알아서 찾아가던).
니나님 서재는 그렇게 정성껏 찾아오시는 분들을 위한 서재로 남겨지는 것일까요.ㅋ

라로 2010-02-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해 봤는데 니나님이 서재관리에서 즐찾등록에 체크를 안하셔서 그런거 아닐까요????(왜 안될까 생각해 봤다는,,,;;; 오지랖이 너무 넓은 나비,,ㅠㅠ)

치니 2010-02-09 12: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게 있구나, ㅋㅋ 저도 몰랐어요.
근데 첨부터 안 뜬 게 아니라 잘 뜨다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안 되었던 걸 보면, 니나님이 뭔가 서재관리를 해보다가 체크를 지우셨;;; 저야말로 오지랖 상상의 나래 ~

니나 2010-02-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런 거루 오지랖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게 하다니;;
음... 체크하고 새로 써봤는데. 나오나요?

치니 2010-02-10 13:39   좋아요 0 | URL
올레! 집요한 우리들이 해냈습니다 ~ ㅋㅋ 이제 잘 나오네요.
(근데 한 가지만 더, 대체 왜 체크를 지우신 거야욧!)

니나 2010-02-10 16:32   좋아요 0 | URL
몰랐..어요. 으키키키키키키키킥

치니 2010-02-10 19:27   좋아요 0 | URL
서재지기에게 항의했으면 쪽;; 팔릴 뻔. ㅋㅋ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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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진부한 책장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사어(死語)처럼 받아들이게 된 사람은 비단 나 뿐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과 교육을 위해, 나아가서는 더 좋은 직업을 구해 돈 잘 벌게 하기 위하여 뼈 빠지게 일한 부모님들을 보고 자란 우리 세대가, 남들보다 특별히 잘난 직업을 갖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고용’되어 ‘노동’하고 있으면서 제 입에 풀칠을 할 뿐 아니라 ‘나만의 특별한’ 상품을 내 것으로 하는 ‘소비’에서 희열을 느끼고 다시 그 욕망의 사슬에서 쳇바퀴 돌면서도 이 욕망이 우리 본연의 욕망과는 다른 ‘강요된’ 욕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더욱 더 가열찬 경쟁의 필요성을 아무렇지 않게 들이대놓고 미친듯이 공부하고 일하게 하면서도 정작 그들에 대한 ‘정상적인 고용’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놓은 이 상황을, 모두 ‘체계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 왠지 꺼림직했던 사람 역시 나 외에도 많을 것.

자, 그런데 너무 자책하지 말아라. 아무리 따져보아도 네 탓 내 탓이라기보다는 이놈의 자본주의 탓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고 머리를 맞대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조금만 이기심을 버리면, 자본주의의 퇴조에서 나아갈 출구가 조금은 덜 막연하게, 완전한 붕괴 위에 새로운 희망으로,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예의 유토피아를 목표로 하는 이상주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상주의가 이상적이기는 해도, 굳이 안 될 건 또 뭐람.

지금 자본주의를 욕하는 사람들 역시 인간이고 자본주의를 만들었던 사람들도 당연히 인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가 말 그대로 공범이다. 이 인간들이 자신들이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시도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해봐야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예단하는 패배주의로 전락하거나 이런 책들이 주는 자극을 예민하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나이브 하다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저자의 유토피아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다는 점을 뚜렷이 인식하기만 하면 말이다.

저자 앙드레 고르는 살아생전 특유의 통찰력과 예리함으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미리 꿰뚫고 대안을 가열차게 세웠지만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 도린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갔다. 하지만 이 책 안에서 그와 생각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있고 분명히 어딘가에는 계승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가 2007년에 예언한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의 거품 붕괴와 위기는 정확히 맞아 들었다. (책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산업주의에 대한 설명이 예를 들기 위해 반 페이지 가량 나오는데, 솔직히 장하준이 길게 쓴 ‘나쁜 사마리아인’의 예들이 굳이 필요했나 싶게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아래는 절벽일 것이 예상된다. 뛰어내린다면 이왕이면 더 좋은 자리로 폭신하고 우아하게, 고르의 정치적 생태주의를 받아들여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어떤 이에게는) 무지몽매하게 좌파의 선동에 쥐락펴락되는 대중의 하나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가 펼쳐보이는 이상적인 사회의 청사진은 일반적인 의미의 유토피아라고 하기엔 무척 구체적인 반면, 실현 가능하거나 예측 가능한 체제라고 하기에는 이상적일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될 수만 있다면, 스스로 노동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누군가의 지시로 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한 뒤 자유롭게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며 모두에게 생계수당이 주어지는 사회, 그 사회에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라고 자문했을 때 예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면 까짓 한 번 해볼 만 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 책은, 흥분되거나 격앙된 어조 하나 없이 단정하게 논리적으로 씌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선동적’이다. 
 

덧.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탈성장'이니, '정치적 생태주의'니, ...이런 단어들을 이런 저런 기사와 책들 속에서 아무리 읽어봐도 점점 더 혼란스럽기만 하더니만 이 얇은 책 한 권 읽고 나서 머릿 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입니다. 이미 알찬 내용을 떠나서도 문장력 역시 최고인 앙드레고르와, 그것을 정갈하고 자연스럽게 번역해주신 두 분 번역가들의 진지한 자세와 노고 덕분이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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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10-02-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그런 느낌을 간혹 받아요. '선동'된다는 것, 굉장히 '흥분'되는 거구나... 하고요. 내가 어리석어 행동에 잘 나서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선동이 보여주는 어떤 세상을 생각하는 순간 엑스터시 비슷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은...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자주 급진적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싶기도 했어요. 말해놓고 보니 좀 딴소리를 한 듯싶은데, 계속해서 딴소리를 하자면, 대문에 걸린 저 남자는 누구예요?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치니 2010-02-01 13:35   좋아요 0 | URL
딴소리 아니에요, 카이레님. 제가 하려던 말이 그 말이었던 듯 (문장이 딸려서 저 모양이 되었는데 ^-^;;).

저 남자는, '급진적인 사람'에 의해 선동되는 흥분감과는 다른, 훨씬 책임감이 덜한 그런 설렘과 흥분을 주는 - 팬심만 가지면 되는 - 남자, ^_^; 임주환이라고 제가 꽂힌 배우에요.

무해한모리군 2010-02-0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건 나눠봐야지요.
이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쉽게 잘 선동을 하게되었는지 ㅎㅎㅎ

치니 2010-02-01 17:4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은 참 부지런하고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읽으면서.
전 밑줄긋기로 여기다 적기는 커녕 책에다 긋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귀만 접어두었거든요. 하긴 그 귀 접는 것도 하도 많아지니 나중엔 그냥 읽었고. ^-^;

토니 2010-02-0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드뎌 올리셨네요. 궁금했는데...

치니 2010-02-02 11:20   좋아요 0 | URL
네, 좀 미루다 읽었어요. 덕분에 좋은 책, 다시 한번 감사 ~

라로 2010-02-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선동질이라니!!!ㅠㅠ

치니 2010-02-02 13:42   좋아요 0 | URL
하핫, 언니 걱정 말아요, 제가 책 보내드릴게요 ~

또치 2010-02-0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저자 이름 보고, 나는 이미 선동되었음;;

치니 2010-02-02 14:08   좋아요 0 | URL
또치님, 요즘 저는 글 좀 잘 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이게 다 앙드레 탓인 듯. -_-;

2010-02-02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꼴랑 독서 기록 수준인 리뷰를 알라딘에 올리려고 해도 가끔은 며칠씩 머릿 속에서 이 궁리 저 궁리 할 때가 있는데, 시인이 11년 동안 문단에서 잠적하며 지낸 세월의 궁리들은 (혹은 모색들은, 혹은 좌절들은, 혹은 희망들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 지 그 침잠의 깊이나 다시 떠오를 수 있었던 용기(라고 말해도 될 런지 모르겠지만)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녀가 이제 어둡고 긴 죽음의 터널 안에서 웅크리는 치열함 대신 조금은 채플린처럼, 삶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낄낄 댈 수 있는 여유를 갖추어 가고 있는가, 시를 한 편씩 읽으면서 문득 그런 느낌을 받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쓸쓸하고 머나먼 여정을 홀로 걷는 시인에게 모쪼록 건강이라는 선물이 함께 하였으면. 

 

세상에 장담할 것은 하나 없다는 말이야 말로 장담해도 될 만큼 옳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려서도 젊어서도 아이를 갖고나서도, 한 시도 살림살이에 재미를 붙인 적 없이 빨빨거리며 쾌락의 잔 가지들을 좇던 내가 이제는 뭉근하게 오래 끓여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소위, 살림 사는 재미에 속하는 것들에 자꾸 시선이 간다. 비록 시선만 갔지 몸이 안 따라갔지만 우선 책으로 그것들을 섭렵하는 재미야 당연히 쏠쏠하다.  

요리책이라고 생각하면 시시하고 음식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역시 조금 모자란 느낌이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중 유독 카페를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얼추 맞지만, 이 세 가지를 두루두루 엮은 설기가 엉성하지도 요란하지도 않게, 차분하게 잘 짜여 있어서 읽기에 좋았다.  

 

 아마 이런 걸 두고 허세라고 하는 걸텐데, 허세임에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는 솔직히 (고등학교 시절에 우리 학교에서 문예반을 하고 문예지를 냈던 경험 때문인지) 이런 청소년 잡지의 수준에 대해서 무조건 엄지를 주기 힘들다. <고래가 그랬어>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거기는 창비 성격, 이 잡지는 문학동네 자체의 성격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구성이 산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만, 아무려나 우리 때 보다는 훨씬 더 책과 관련된 것을 고루하게 생각할 요즘의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만한 잡지임에는 틀림없으니 응원은 기본이다. 문학 잡지라고는 하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소개가 너무 빈약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뮤지컬, 연극 등의 소개가 안 하느니만 못하게 옹색했다. 차라리 인디밴드들이나 투웨니원을 소개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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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1-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책이라고 생각하면 시시하고 음식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역시 조금 모자란 느낌,,,ㅎㅎㅎ난 그런 모자라고 시시한 느낌들이 좋은가봐~.ㅎㅎ
이 책 내가 선물할껄 그랬다,,,,요즘 통 머리가 안돌아 간다는,,,ㅠㅠ

치니 2010-01-25 17:10   좋아요 0 | URL
언니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책을 대해야 좋을텐데, 전 왜 이리 야박하게 구는 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저런 책을 나더러 쓰라면 절대 저 정도 못 쓸거면서 말이죠. ㅋㅋ 해먹고 싶은 거 중간중간 접어두었으니 제가 사길 잘했어요. 두고 두고 참고하고 보다가 이것저것 음식 묻히고 그럴텐데. ㅎㅎ

라로 2010-01-2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린인줄 알고 왔네~~~.ㅎㅎㅎ작게 보니 하린이로 보였다는,,^^;;;

치니 2010-01-29 11:02   좋아요 0 | URL
오오오오 언니 짱! 무려 임주환님을 하린이랑 닮았다고 해주시다니! 이건 가문의 영광입니다. ㅋㅋㅋ

라로 2010-01-29 14:43   좋아요 0 | URL
내가 볼 땐 (진심으로,,, 아부 아니고) 하린군이 훨 낫다는!!!!!!!!!!!!!!!!!!!!!!!!!!!!!!!!!!!!

치니 2010-01-29 16:36   좋아요 0 | URL
아이 참, 언니, 제가 아무리 고슴도치 에미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 ㅋㅋ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아 ~

2010-01-3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31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