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 After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2. 외로운 가요 당신은 외로운 가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 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 작사: 조동진 / 출처 : 가사집 http://gasazip.com/1232 )

중학교 때 골백번 듣고 또 들었던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어제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온 뒤, 보는 내내 철학적인 주제 때문에 묵직했던 머리는 하루가 지나자 제껴지고 오늘 오전에는 내내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드니, 이건 또 웬 조화인가 싶지만, 기실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기가 또한 이런 것. 슬플 만 하면, 어둡게 가라앉을 만 하면, 깊은 생각에 빠질 만 하면, 툭 하고 뭔가를 끊고 가볍고 건조한 일상으로 슬쩍 되돌리거나 비장한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인생 뭐 별 거 있니 또 이런다. 이런 감독의 말투(영화 속에서 하는 거지만)는 상당히 내 취향이다. 그래서 아마 다들 조금쯤은 지루하다고 할 만한 부분에서도 나 혼자 좋아라 하는 지도 모르겠고, 생뚱맞게 저런 옛날 노래를 떠올리는 지도. 

영화는 꽤 자극적이고 흥미로울 것 같은 주제 - 우리가 죽고나면 죽기 전에 일주일 동안 자신이 일생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 기억 외의 다른 모든 기억은 사라진 채 행복하게 저승으로 간다는 설정 - 를 선택했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내용은 기억에 관한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상상력의 발화점이 높지도 않다. 그저, 관객들도 거기 나오는 22인과 비슷한 추억, 비슷한 생각, 비슷한 꼴통스러움, 비슷한 망설임을 가지고 저 중에 나는 몇번 타입일까 유추해 볼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간다.  

이 영화에서처럼 일주일을 유예기간으로 삼는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인간은 어쩌면 세 가지 부류로 나뉠 지 모르겠다. 

1. 행복한 기억 따위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사람  

2. 행복한 기억이 소중한 사람 

3. 불행한 일들만 기억하는 사람 

그런데, 나, 오늘 아침에 내가 2번 부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고,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사람은 아닐지언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나, 계속 행복해도 되는 사람 아닐까? 기분 좋은 목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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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0-03-1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우연이. 요즘 [순례자의 책] 읽으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는데 말이죠.
저는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요 :) 일본 영화답게 사건보다는 잔잔한 감정선의 흔들림을 예민하게 잡아내던걸로 기억되네요.

치니 2010-03-19 09:00   좋아요 0 | URL
[순례자의 책]은 또 뭔가, 검색해보고 왔어요. :) 흠흠, 흥미롭네요. 다 읽고 재미있었나 알려주시기.

아, 저도 이 영화 극장에서 봤답니다. 요새 다시 개봉했던 건지, 아니면 알라딘에서 이벤트 성으로만 한 건지, 아무튼. ^_^ 왠만해선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게 젤 좋드라구요 ~ 그죠?

참참, 만드신 어플 잘 쓰고 있어요. 저는 밑줄긋기는 타이핑의 구찮음 때문에 못하겠고 ㅋㅋ 메모 기능 잘 쓰고 있어요.

rainy 2010-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영화를 보았건만.
이렇게 똑떨어지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여 풀어내는 솜씨라니.
나는 영화의 여운이 생각보다도(각오했건만) 더 묵직해서
마음속에 잡생각만 뭉게뭉게 ^^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제프^^
낼 봐아~

치니 2010-03-19 13:42   좋아요 0 | URL
그 뭉게뭉게 잡생각 좀 풀어보시구려. 흐, 궁금한데.

오늘은 지붕킥 마지막회를 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제프백의 음악을 들으며 자야겠어. 오예 ~ 즐거운 금요일.

Tomek 2010-03-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 보질 못했어요... 고레다 히로카츠 감독의 데뷔작은 한동안 만나기는 힘이 들 듯... 치니님의 글로 그 아쉬움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

치니 2010-03-22 14:30   좋아요 0 | URL
앗, 많이 아프세요? 요즘 날씨도 궂고 황사에...감기 조심하셔야 될텐데.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군요! 전 그것도 몰랐어요. ^-^

stillyours 2010-04-0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았던 기억 하나만을 붙들고, 그 행복한 시간만을 기억하고,
천천히 흐르던
이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치니 2010-04-05 19:53   좋아요 0 | URL
아앗, moon님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요?!
그렇담 제가 뒤늦게라도 챙겨보길 참 잘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아프긴 했지만 이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가 가장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