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부는 산본시장의 채소가게 사장님. 여고시절부터 '아놀드 슈워제네거'(터미네이터)를 이상형으로 꼽았던 언니는 처음 형부를 내게 소개할 때 "정확히 내 이상형"이라 했다. 그럴 만하게 형부는 몸이 커서 내 친구들 사이엔 "네꼬 형부는 덩치가 산만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결혼식 때 우리 형부를 처음 본 친구들은 입을 모아 "강호동 같다"라고 했다. "형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전형적인 인상이라는 평도 있었다.) 요즘 배가 나와서 딸들의 엄청난 구박을 받고 있지만, 딸들을 거의 집어삼킬 듯 예뻐하는 형부는 웃기만 한다.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가락동에 가서 물건을 떼 오고, 온종일 가게에서 일하다 9시가 넘어야 집에 오는 형부. 우리가 놀러가면 엄청 좋아하면서 남편에게 자꾸만 고기를 먹이고 자꾸만 술을 먹이다가 11시만 되면 못 견디고 잠들어 버리는 형부. 그런 형부가 '전국노래자랑' 본선에 진출했을 때, 산본시장의 이모 삼촌 들은 일을 작파하고 쫓아가 플래카드를 흔들며 형부 이름을 외쳤다 했다. 결과는 땡. 송해 아저씨가 자꾸만 배치기를 시켜서 숨이 차서 노래를 잘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일 때문에 직접 가지 못하고 TV로 그 장면을 본 나도 격렬히 동의했더랬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배춧단이나 감자망을 옮기다 말고 "전국노래자랑" 참가자 모집 포스터를 보면서 '저기 나가야지' 하고 결심하는 형부 모습을 떠올리면서 웃곤 했다.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장면이다.

 

*

그 "땡!"의 설움(배치기만 아니었으면!) 때문인지 형부가 이번엔 "군포시민가요제"에 도전했다. 예선을 통과했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이번엔 나와 남편도 응원을 갔다. 지난 일요일 일이다. 아직 한참 더운 여름날 밤, 철쭉동산에서 형부는 "그대 떠난 빈 들에 서서"를 불렀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채로 형부가 등장하자, 무대 맨 앞에 조르륵 앉아 있던 가게 이모들과 옆 가게 이모들, 우리 언니와 조카들, 나와 남편이 마구 환호를 했고, 3학년 조카가 준비해온 플래카드를 가게 이모가 낚아채서는 형부가 노래 부르는 내내 관객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사회자 뽀식이 아저씨가 "어디서들 오셨냐"라고 묻자 이모 삼촌들이 입을 모아 "산본시장 충남상회"를 외쳤다. 노래보다는 사실 응원 덕이 아닌가 하고 나와 남편은 약간 의심하긴 했지만, 형부는 금상을 받았다. 형부 이름이 불리는 순간, 비교적 평정을 유지하던 우리 언니는 그만 무대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함께 출전한 형부네 가게 옆 정육점 사장님이 참가상에 준하는 '특별상'을 받고 누가 봐도 낙담한 표정을 지은 일, 칠십 다섯이라시지만 완전 정정한 할머니가 양장을 차려입고 나오셔서 가사를 한번도 안 틀리고 완창하신 일, 참가자 12명은 시간이 없다고 1절까지만 부르게 하면서 처음 보는 초대가수 네 명은 노래를 세 곡씩 부른 일, 그러나 군포시민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좋아하던 일, 심지어 "뽀식이도 한 곡 해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뽀식이 아저씨조차 노래를 두 곡이나 부른 일,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상을 챙겨 집에 온 형부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상장을 정독한 일 들에 대해 얘기하며 나와 남편은 늦은 밤 차를 몰아 집에 왔다.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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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28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최근에 읽은 여러권의 책보다 네꼬님의 이 페이퍼가 훨씬 더 재미있고 좋으네요. 대체 왜 다른 작가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답니까!!

노래자랑에 나가야지, 하고 결심하는 형부를 나도 잠깐 상상하고 웃었어요. 절로 웃게되는걸요. 나는 참 좋다, 네꼬님. 네꼬님 형부가 노래자랑에 나가서, 그런데 금상을 타서. 무엇보다 네꼬님이 형부를 응원가서, 그리고 자랑스러워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서로 잘 지내고 있어서. 그게 참 좋아요, 참.

네꼬 2012-08-28 21:58   좋아요 0 | URL
흐하하하하. 그건 다락님이 내 친구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재밌겠지 ㅋㅋㅋ 형부 귀엽죠? 그리고 형부네 가게 이모 삼촌 들도 다 귀여웠어요. 심지어 사회 본 뽀식이 아저씨조차 귀엽게 느껴지더라고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일이었어요.

퇴근길 괜찮았어요? 나는 조그만 차를 타고 벌벌벌 떨면서 아주 천천히 왔어요. 집에 오니까 바람도 더 불고... 지금 창이 다 왕왕거려요. 그런데 태풍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면서, 우리같이 북한 근처(?) 사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대해선 뉴스에서 다뤄주지 않아서 괘씸.. ㅠㅠ

굿바이 2012-08-2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보면 형부 포스가 거의 송창식 수준인데요~!
저도 계속 웃었어요. 그나저나 군포시민가요제,는 한 편의 단편소설인데요.
네꼬님 글 참 좋아요^^

네꼬 2012-08-28 22:03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저희 형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날 나온 초대가수를 두고 "잘 부르긴 하는데 휠이 부족하다"고 논평하셨을 정도예요. ㅋㅋ 그날 참가자 중에 가죽 조끼를 입고 나온 청년도 인상적이었어요. 아마도 예선 때 찍었을 팸플릿 사진과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파마를 하고-- 썬글라스를 끼고--밤인데-- 나와 '하늘을 달리다'를 불렀는데, 역시 특별상. (남편은 그를 제일 안타까워했지요.) 굿바이님과 같이 웃으니까 좋아요!

프레이야 2012-08-2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유쾌한 소식이에요. 축하합니당 윤영춘 형부 충남상회 사장님! 이런 건 전국적으로 널리 전해야되는데 말이에요, 네꼬님.

네꼬 2012-08-29 22:13   좋아요 0 | URL
조카가 쓴 "고고 충남상회"가 저는 너무 좋아요. 엄마 아빠도 모르게 저걸 만들었다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요! 조카를 꼭 안아주었어요. (^^) 충남상회 파이팅!

비로그인 2012-08-2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운데요...한없이 행복해지는 느낌이에요 너무 귀엽구요!!사랑스러워요^^

네꼬 2012-08-29 22:14   좋아요 0 | URL
아른님 반갑습니다! 아이코, 함께 좋아해주시니 감사해요. 저도 우연히 아른님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댓글에 묻어있는 아른님 마음, 저도 잘 간수하겠습니다. : )

웽스북스 2012-08-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저는 범계에서 학교를 나와서 옆옆동네였던 산본에 자주가서 그런지 경기도 산본의 '충남'상회 사장님인 형부가 막 정감이 가고 그래요. 아까 일하다가 네꼬님 글 보면서 어찌나 즐겁던지, 잘쉬었음. 으헤헷.

그나저나 형부가 강호동 닮았다고요? 아아, 우리 이모부는 싸이닮았어요..... 아아아....

네꼬 2012-08-29 22:16   좋아요 0 | URL
오오 범계범계. 가요제 가기 전에 조카들 데리고 햄버거 먹으러 갔어요. 검색을 해봤더니 글쎄 버거킹은 지하철로 한 정거장 더 가 안양에나 있더라고요. 군포는 작은 동네구나 생각했어요. (범계랑 무슨 상관? 근데 왜 상관 있는 것 같냐...) 야근쟁이 웬디님 ㅠㅠ 몸 축날라. ㅠㅠ

싸이닮았어요, 보다 아아아.... 가 더 아....

LAYLA 2012-08-2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가족 같은 분들이 실재한다니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고 저도 새로 만날 가족들에 대한 기대를 잃으면 안되는 것이군요 ㅠㅠ

네꼬 2012-08-29 22:18   좋아요 0 | URL
LAYLA님 울지 마세요. ㅠㅠ 이런 가족이 되기까지 얼마나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다고요. 가족은 서로 갖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생기는 관계인 것 같아요. 저랑 언니도, 저랑 형부도요. : )

paviana 2012-08-2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레의 그 노래가 바로 음성지원되네요. 많이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직딩 십년만에 태풍와서 쉬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네꼬 2012-08-29 22:19   좋아요 0 | URL
으왓 파비님. 어디 갔었어요? 나 막 파비님 서재 가서 혼자 놀다 오고 그랬잖아요! 태풍은 밉지만 파비님 쉬셨다니 그건 다행이에요. (전 그런 날씨에도 종일 일해서 불만 폭발했어요.)

세실 2012-08-29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글을 어쩜 이리도 사랑스럽게, 맛깔스럽게 쓰실까요^*^
가족, 이웃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네요.
형부 금상 받으신거 하늘 땅만큼 축하드려요!

네꼬 2012-08-29 22:21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 (쥐구멍)
거기 오신 분들이 모두 보기 좋았어요. 보는 것만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형부한테 그 축하 꼭 전해 드릴게요! 히히.

레와 2012-08-2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네꼬님 짱!

네꼬 2012-08-29 22:21   좋아요 0 | URL
레와님이 짱이지. 호호. 레와님 좋다, 난.

mira 2012-08-2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함이 한가득 묻어나오네요. 노래잘부르는 분이 제일 부러워요

네꼬 2012-08-29 22:22   좋아요 0 | URL
mira-da님 안녕하세요? 형부 덕분에 이렇게 새 이웃도 알게 되네요! 가요제 만세! (응?)

moonnight 2012-08-2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예요. 막 웃으면서 읽었는데 왜 이렇게 찡한지 모르겠어요. ㅠ_ㅠ 네꼬님과 가족분들, 그리고 이웃분들 모두 너무 다정하고 따뜻하셔서 감동이에요. 정말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로군요!!! 산본시장 충남상회에 사장님이랑 이모님 구경가고 싶어욧!!! (막 사인받고;;;)

네꼬 2012-08-29 22:25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문나잇님. 저도 형부가 노래자랑 참가를 마음먹었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너무너무 웃음이 나고 너무너무 찡해요. 덩치 큰 채소 가게 사장님의 그 어떤 순간. 그런 아저씨를 위한 시장 친구들의 응원. 들어보면 좋을 떄도 있고 나쁠 떄도 있는 사이라지만, 그럴 때 한마음이 되는 게 진짜 식구 아니겠어요? 같이 갑시다, 충남상회! 크크.

순오기 2012-08-30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남상회라면 형부 고향이 충남인가요?
난 충남사람~~~ 이러면서 괜히 친한 척하고 싶어요.ㅋㅋ
네꼬님 형부는 마치 우리모두의 형부 같아요~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오랜만의 심야 방문에 행복한 밤이 됐어요. 냐용~~~~ ^^

네꼬 2012-09-06 10:19   좋아요 0 | URL
ㅎㅎ 여기서 핵심은 형부는 충남 사람이 아니라는 거. ㅋㅋㅋ (가게이름이 원래 그랬대요.) 우리 모두의 형부라니 순오기님 그거 참 즐거운 이야기네요!

무스탕 2012-09-0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결국 로긴했어..)
이것바요. 네꼬님!!!
이거 있잖아 월권이야요, 월권!
내가 산본 사는거 알아요, 몰라요?
것도 철쭉동산에서 10분 거리에 사는거 알아요, 몰라요?
우와~~~ 도대체 나도 모른 우리동네 노래자랑을 여기 알라딘 페이퍼에서 알다니..;;;
내가요, 반드시 산본시장에 가서 충남상회를 찾아서 '저 사장님 처제님 친구님(?)이에요. 그러니 당근 하나 더 주세요' 라고 말할거에요.
정말 울 동네에 오셨는데 네꼬님 냄새도 맞지 못한 난 뭐야.. 막 화나려하네..

건, 그렇고, 정말 좋아요. 네꼬님 :)


네꼬 2012-09-06 10:21   좋아요 0 | URL
헤헤헤 그랬구나 무스탕님, 산본이었구나! (^^) 제가 무스탕님 지역구에 허락 없이 다녀와서 죄송합니다아. (꾸벅) 알았으면 미리 얘기해서 번개라도 하고 올 걸 그랬어요! 제가 좋아하는 무스탕님! (그나저나 군포시민들 멋짐!)

바람난개구리 2013-01-03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쩜 좋아 ^^
은서가 찾아내서 큰소리로 다시 웃는 일... 참 좋다.
은서는 요새 날 놀라게해.

바람난개구리 2013-01-0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오시면 암호처럼 "무스탕~" 말하기. 당근 두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