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부는 산본시장의 채소가게 사장님. 여고시절부터 '아놀드 슈워제네거'(터미네이터)를 이상형으로 꼽았던 언니는 처음 형부를 내게 소개할 때 "정확히 내 이상형"이라 했다. 그럴 만하게 형부는 몸이 커서 내 친구들 사이엔 "네꼬 형부는 덩치가 산만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결혼식 때 우리 형부를 처음 본 친구들은 입을 모아 "강호동 같다"라고 했다. "형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어떤 전형적인 인상이라는 평도 있었다.) 요즘 배가 나와서 딸들의 엄청난 구박을 받고 있지만, 딸들을 거의 집어삼킬 듯 예뻐하는 형부는 웃기만 한다.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가락동에 가서 물건을 떼 오고, 온종일 가게에서 일하다 9시가 넘어야 집에 오는 형부. 우리가 놀러가면 엄청 좋아하면서 남편에게 자꾸만 고기를 먹이고 자꾸만 술을 먹이다가 11시만 되면 못 견디고 잠들어 버리는 형부. 그런 형부가 '전국노래자랑' 본선에 진출했을 때, 산본시장의 이모 삼촌 들은 일을 작파하고 쫓아가 플래카드를 흔들며 형부 이름을 외쳤다 했다. 결과는 땡. 송해 아저씨가 자꾸만 배치기를 시켜서 숨이 차서 노래를 잘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일 때문에 직접 가지 못하고 TV로 그 장면을 본 나도 격렬히 동의했더랬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배춧단이나 감자망을 옮기다 말고 "전국노래자랑" 참가자 모집 포스터를 보면서 '저기 나가야지' 하고 결심하는 형부 모습을 떠올리면서 웃곤 했다.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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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땡!"의 설움(배치기만 아니었으면!) 때문인지 형부가 이번엔 "군포시민가요제"에 도전했다. 예선을 통과했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고 이번엔 나와 남편도 응원을 갔다. 지난 일요일 일이다. 아직 한참 더운 여름날 밤, 철쭉동산에서 형부는 "그대 떠난 빈 들에 서서"를 불렀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채로 형부가 등장하자, 무대 맨 앞에 조르륵 앉아 있던 가게 이모들과 옆 가게 이모들, 우리 언니와 조카들, 나와 남편이 마구 환호를 했고, 3학년 조카가 준비해온 플래카드를 가게 이모가 낚아채서는 형부가 노래 부르는 내내 관객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사회자 뽀식이 아저씨가 "어디서들 오셨냐"라고 묻자 이모 삼촌들이 입을 모아 "산본시장 충남상회"를 외쳤다. 노래보다는 사실 응원 덕이 아닌가 하고 나와 남편은 약간 의심하긴 했지만, 형부는 금상을 받았다. 형부 이름이 불리는 순간, 비교적 평정을 유지하던 우리 언니는 그만 무대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함께 출전한 형부네 가게 옆 정육점 사장님이 참가상에 준하는 '특별상'을 받고 누가 봐도 낙담한 표정을 지은 일, 칠십 다섯이라시지만 완전 정정한 할머니가 양장을 차려입고 나오셔서 가사를 한번도 안 틀리고 완창하신 일, 참가자 12명은 시간이 없다고 1절까지만 부르게 하면서 처음 보는 초대가수 네 명은 노래를 세 곡씩 부른 일, 그러나 군포시민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좋아하던 일, 심지어 "뽀식이도 한 곡 해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뽀식이 아저씨조차 노래를 두 곡이나 부른 일,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상을 챙겨 집에 온 형부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상장을 정독한 일 들에 대해 얘기하며 나와 남편은 늦은 밤 차를 몰아 집에 왔다.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