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를 보고  

Are you trying to say you wanna kiss me? 

이 말이랑, 

You know what I want?
What?
To be kissed............ 

이말이 자꾸 머리 속을 뱅글뱅글 돌아서 나도 이 말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 뱅글뱅글 대며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났다. 

나도 이 말할 기회가 있긴 있었다는 걸!! 

산 꼭대기 인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방이 5개밖에 없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정전이 되었던 날, 그 어떤 다른 날보다 멀리 있는 별까지 다 보이던 날이었다. 방 앞의 마당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던 우린, 정전때문에 친구가 초를 가지러 방에 들어간 사이, 잠시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 옆자리의 그 사람이 날 흘낏 쳐다보는 걸 느끼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굿나잇-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가 나의 손목을 덥썩 잡더니... 자기 품안으로 나를 끌어당겨선..... 꺅 >.< 

아 이때 차라리 쥴리델피처럼 쿨하게 저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생각해도 나를 멋있게 여겼을 듯. 
부드럽고, 착하고, 따뜻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도 보들보들한 그의 솜털같은 머리카락이 손에 잡힐 듯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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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2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절대 비공개로 돌리지 말고 공개해 두시요~~
아주 사랑스런 글이요~~~ㅎㅎ
좋은 밤 되시길...

Forgettable. 2009-09-23 23:13   좋아요 0 | URL
아침되면 또 부끄러워져서 숨길지도^^;;
왜 잊고 있었을까요?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영화같은 소중한 추억을-

저도 자러갑니다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생각나버렸어 생각나버렸어 보들보들한 솜털같던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서 까맣고 반짝이던 그 피부도..

Forgettable. 2009-09-24 09:58   좋아요 0 | URL
가끔 딴사람 생각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9-25 13:20   좋아요 0 | URL
이걸 읽고 나서부터 계속 외로와~
몸도 간질간질하고 ㅎㅎㅎ

Forgettable. 2009-09-25 18:01   좋아요 0 | URL
이거 참.. 연애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오이지 오라버님은 뭘 하고 계신담...
저도에요 저도+_+ 들썩들썩 ㅎㅎ

다락방 2009-09-2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드럽고, 착하고, 따뜻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도 보들보들한 그의 솜털같은 머리카락이 손에 잡힐 듯 생각나는 밤이다.


아아, 술도 없고, 밤도 아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달콤하잖아요. 으윽.

Forgettable. 2009-09-24 10:00   좋아요 0 | URL
어제 밤에 읽었어야죠, 흐흐
고백하자면 이 글정도로 달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답니다. 제가 좀 오바했어요. ㅋㅋ

비로그인 2009-09-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한국영화 그 뭐였더라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주인공이 전화받는데 상대편이 "뭐해?" 하니까 "방 바닥 닦아 "라고 대답하는게 너무 인상적이라.
나도 언젠가 한번 누군가에게서 전화와서 밑도 끝도 없이 "뭐해?"라고 물어보면 내가 뭘하고 있던간에 "방 바닥 닦아"라고 한번 대답해보고 싶었다는...ㅋㅋㅋ

Forgettable. 2009-09-24 10: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떤 영화였을까요?
방 바닥 닦는다니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해보고 싶어요,
사실 방 바닥 닦는 행위를 하지 않은지 십년은 넘은 것 같네요, 어렸을 땐 걸레들고 매일매일 방을 닦았었는데..

저 말은 담에 연애할 때 까먹지 않고 꼭 써먹어야겠습니다. 잘생긴 외국인과의 낭만 로맨스를 꿈꾸며-

Arch 2009-09-24 11:18   좋아요 0 | URL
'질투는 나의 힘'에서 박해일이 한 말이에요.
저도 그 장면과 그 말이 기억에 남았었는데... 사람들이 맘에 남는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나저나, 뽀님~ 예쁘다^^

Forgettable. 2009-09-24 14:46   좋아요 0 | URL
ㅎㅎ 어느 한 장면만 얘기하면, 그거잖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알라디너님들-
이 공간은 참 재밌어요 ^^

제가 쫌.. 이쁘죠^^ ㅋㅋㅋㅋㅋ (부끄럽다) 얼마만에 듣는 이쁘단 말!!

2009-09-2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런게 염장이군요 ㄷㄷ;;
그러고보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나네요.
중딩 때였나, 고딩 때였나, 완전 몰입해서 읽었는데, 나중에 자습서 보고 빨간 밑줄 죽죽 그으면서 분석하려니 마치 해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던 기억도 나구요.
그건 그렇고 잘생긴 외국인들이 요즘 거리에 너무 많아서 기가 죽어요 ㅠ
친구랑 둘이서 술 마시고, 과연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뭐가 나을까 토론을 했었는데,
키는 작고, 얼굴은 크고, 허리는 길고... 좌절했어요 ㅠ

Forgettable. 2009-09-25 18:06   좋아요 0 | URL
음하하하하하하
그래봤자 벌써 2년이 다되가는 오래전 추억인데요. ^^

잘생긴 외국인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신촌으로 가야 해요? 강남쪽에는 아저씨들밖에 없어요. 실제로 실속은 이 비지니스땜에 한국온 이런 외국인이 실속이야 있겠지만서도.. (엄청 진지하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긴 게 아름답다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에요, 키가 작고 얼굴이 크고 요롱이어도 ㅋㅋ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겠죠, 라고 행복컴플렉스병자마냥 써봅니다. ㅋㅋ 아무튼 결론은 자신감이라능;; 좌절하지 말아요 코님!

브리브리 2009-10-0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읽는데 손끝이 저릿저릿-_- 주책이라능;
믿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키스를 못해봤어요. 뽀뽀도-_-
이젠 너무 오래 내버려두어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굳게 닫혀버린 느낌이에요.
이런 글을 보면 저릿저릿하다가도 막상 누군가가 덮쳐온다면; 몸이 먼저 거부반응한다던지.
키스든 연애든 환상만 품고 살아서 정작 현실에서는 부적응자가 되어버렸어요. 겁만 많아지고.
정말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일 없을까요? 그런 사람을 만날 수나 있을까요?
중1때 짝사랑했던 남자아이 이후로는 콩깍지가 잘 안씌인다능;

Forgettable. 2009-10-01 18:44   좋아요 0 | URL
브리님, 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제 친구중에도 님이랑 비슷한 친구 있어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너무 좋은데, 솔로생활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다가오는 남자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지경.. ㅠㅠ 심지어 좋아하던 남자라도 다가오면 싫어진대요. 아 정말정말 안타까운데, 이건 자기만의 문제이고, 어떻게 풀고싶어도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제가 뭐라고 해드릴 말씀이..ㅠㅠ 그래, 운명의 남자를 만나야 한다- 란 말은 해주고 싶지 않아요. 운명의 남자는 없거든요. 실상은 위의 댓글같은 '방바닥 닦아'와 비슷한거죠. ㅎㅎ

암튼 그 미모에.. 천연기념물이시로군요 ;0;


 

내가 비오는 날, 밖에 나가길 싫어하는 이유는 바지 밑단이 젖어서,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와서, 요즘 우산들이 다 허술해서 비가 새서도 아닌 지렁이를 밟을까봐- 이다. 

나는 왜인지 지렁이를 매우 두려워하고, 그를 밟는 것은 더 두려워하는데 생각만 해도 몸이 움츠러든다. 거의 phobia 수준이다.

타조에게는 빠른 다리를, 사자에게는 용맹한 이빨을, 고양이에게는 높은데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 법을, 개에게는 애교를, 바퀴벌레에게는 번식능력을, 뱀에게는 독을 주었으면서 도대체 왜! 지렁이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까? 

그저 비가 오면 좋다고 스물스물 땅 위로 기어나와서는 밟혀 죽거나,
너무 많이 기어나와버려서 햇빛이 나왔을 때 미처 다시 기어들어갈 흙구덩이를 발견하지 못해 말라죽어 개미의 먹이가 되는.
이런 최후밖에 없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도대체 그들에게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지렁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동물이기때문에 공부해보기엔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  

심지어 기생충조차 숙주를 조종하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는데. -_- 


** 

 

 

 

 

 

 

  [비포 선셋]
 

예기치 않게 추천을 받아서 보게 된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속편인데, 이 영화도 같이 받아두었는데, [비포선라이즈]는 95년도, 내가 초딩일 때 나온 영화라 제목이 익숙치 않아서였던건지, 뭐 아주 당연스레 [비포선셋]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 익숙한 걸 먼저 보기위한 당위성으로 sunrise가 sunset보다 먼저 아닌가? 아니지, sunset이 먼저일 수도. 라는 생각을 0.0000000001초 정도 한 것 같다.

오, 이런 거구나- 하면서 빠져서 보다가 중반쯤에, 이거 설마 속편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는데, 아니겠지(도대체 왜?!) 하곤, 영화가 끝나고 찾아보니 이것이 속편이었다. Rs님의 서재에서 알고, 혹은 모르고 2권부터 본다는 이야기와 그에 달린 하이드님의 댓글을 읽으며, 후후 바보입니까? 하며 속으로 웃던 바로 며칠전 내모습이 오버랩되며 슬퍼졌다.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비포선셋]을 보기 전에 [비포선라이즈]를 보고싶다.  

영화는 1시간 반가량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실시간의 대화와 실시간의 산책. 실시간의 물 끓이는 시간까지- 지루할 법도 한데, 점차 솔직해져가는 그들의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전혀 지루하지는 않다. 이 여자, 꽤나 많은 여성관객의 공감을 받았을 듯. 대부분의 여자들이 연애할 때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순차적으로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다 보여준다. 그러고보니 대단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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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로맨틱한 영화들을 볼때...
어느순간 내가 나이를 참 많이 먹어버렸구나 하는 자괴감이...ㅋ
보고싶었던 영환데...전편보고 보자구 미루다 미루다 결국 못 보고만...ㅠㅠ(?)

Forgettable. 2009-09-22 11:55   좋아요 0 | URL
나이는 자기가 안먹었다고만 생각하면 안먹는거에요 ㅎㅎ
로맨틱한 영화 보면서 나도나도- 하면서 보시길 ㅋ

2009-09-22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9-22 12:00   좋아요 0 | URL
아, 전 또 너무 농밀한 댓글인가 싶어 살짝 걱정했지 뭐에요. 이런 댓글 사랑하시는 구나 ㅎㅎ

Arch 2009-09-22 12:43   좋아요 0 | URL
공개하라! 공개하라!

뽀님, 살짝 귓속말로 알려주세요. 너무 간지럽겐 말고^^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3:02   좋아요 0 | URL
헉 궁금해라..

다락방 2009-09-22 13:11   좋아요 0 | URL
포게터블님, 쉿, 비밀이어요, 비밀!! ㅎㅎ

Forgettable. 2009-09-22 14:14   좋아요 0 | URL
ㅋㅋ 뜬금없지만 4명 이미지 컬러 톤이 어째 다 비슷하네요.
아 근데 나라도 정말 궁금하겠다. ㅋㅋ

다락방 2009-09-22 14:20   좋아요 0 | URL
아, 어떡해. 알라딘에서 노는거 완전 재밌어요 ㅠ.ㅠ

Forgettable. 2009-09-22 14:23   좋아요 0 | URL
회사생활의 낙이에요. ㅋㅋ

Arch 2009-09-22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볼때 뽀님은 맘 약해서 나한테 살짝 알려줄거에요.(막 강요한다.)
아아, 뭐~ 내가 막 상상해도 되고^^ 그런데 농밀까진 안 되고, 좀 추접스러운 이미지가 막 떠올라요.

머큐리 2009-09-22 16:27   좋아요 0 | URL
그냥 그런가 했는데...급 궁금증 증폭되네..요
공개하라...공개하라...ㅎㅎ

Forgettable. 2009-09-22 17:12   좋아요 0 | URL
음, 그건 아치님 마음에 추접스러운 것만 들어있어서가 아닐까요,
사실 이 댓글은 농밀하다기 보단 농염하단 말이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라고 도발)

근데, 다락방님은 수십개의 댓글을 몰고다니네요. 댓글 많이 달리려면 다락방님 마음에 드는 글 쓰면 되겠다고 다짐^^

다락방 2009-09-22 17:19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그렇게 급 궁금해할 만한 댓글은 아닌데 말이죠. 하하하핫.

Arch님. 제가 볼때 포게터블님은 그런(?)댓글 또 받고 싶어서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ㅎㅎ

Forgettable. 2009-09-22 17:25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그런(?) 댓글 또 받고싶어요. ㅎㅎ

Arch 2009-09-22 17:30   좋아요 0 | URL
치이~ 내 맘 속에 추접있다. 흑, 뽀님 도발 미워!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도 비포선라이즈도 참좋았어요.

"대부분의 여자들이 연애할 때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순차적으로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다 보여준다."

라니 한줄로 완벽하게 영화를 정리해 버렸네요 ^^


Forgettable. 2009-09-22 14:16   좋아요 0 | URL
오늘은 일출을 보려구요, ㅋㅋ 궁금해요. 비포선셋 볼 때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중요하니까 과거따위 찬란해봤자, 라고 생각했는데 ㅎㅎ 암튼 오늘 봐야겠어요. 이 영화들 좋아하시는 분이 많네요 :)

2009-09-2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2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09-2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쐐기를 박고 갑니다.
전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9년후에 비포 선셋을 봤어요. 영화와 배우와 함께 나이를 먹고, 그 세월을 고스란히 가지고 영화를 본거죠.

그리고, 지렁이.
지렁이의 빨간 부드러운 속..아니, 겉살. 나는 어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이번에 새로 산 우비를 입고 나가면서, 우비 아래로는 완전히 젖으며, 보도를 밟으며 '왜 요즘은 지렁이가 없을까' 슬퍼했는데. 흐

Forgettable. 2009-09-22 17:18   좋아요 0 | URL
전 그 시대에 초딩이었단 사실이 너무 짜증나요. 전 그때 빠삐코(아 이건 너무 옛날인가), 천사소녀 네티같은걸 봤나봐요. ㅠㅠ 부럽다, 부럽다..!!!
지렁이 저희 동네엔 많습니다. 시골이에요 시골 -_- 비만 왔다하면 하루평균 열마리는 족히 넘게 봐요.
근데 우비 장만하셨구나, 다음에 비오는 날 보여주세요! 장화도 장만하셔야할듯.. 아래로 완전히 젖으셨다니 ㅎㅎ

전 제가 터져서 죽어있는 지렁이만 무서워하는 줄 알았더니 새빨갛게 빛나며 유유히 도로를 휩쓸고다니는 지렁이도 무서워하더군요, 으악 생각만해도 =ㅁ=
 



*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가끔씩 누군가 심장을 꽈아악 움켜쥐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행하는 도중, (이루어질 수 없는)사랑에 빠졌을 때, 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겠는데,
오래 전, 이젠 잊혀져가는 수행평가 보기 직전의 기분이나, 
요즘처럼, (잔소리 들을)일이 많을 때. 는 견디기가 힘이 든다. 
이따위 것들 때문에 내가 집떠나서나 생기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어야 하나 싶어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모니터와 일일업무보고서를 가득가득 채워놓고 있는데, 나는 이 기분에 사로잡혀 길 위에서의 나를 상상하며 저 멀리 캐나다로, 인도로, 콜롬비아로 날아가 있다. 몹쓸 회사원같으니라고- 

오후엔 제대로 일하자. 

**
[펭귄의 우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보드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싸늘하고 쓴 열기를 내뿜는 것만 같은 그의 글을 여름 내내 그리워했다. 사폰이 여름의 작가라면, 쿠르코프는 겨울의 작가랄까. 다시 읽어도 좋다. 러시아의 추위와 뜨거운 술과 우울하고 무심한 주인공과 그의 펭귄이 요즘의 내 공상과 맞물려 들뜬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준다. (정말?)

매년 가을은 참 설레는 계절이다. 더불어 씁쓸하고 두려운 계절이기도. 이러한 계절이길 오히려 바랬던가.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힘겹게 마쳤다. 

꽤나 오래 전에 받은 선물이었는데, 띄엄띄엄 읽다가 이제서야... 
긍정행복컴플렉스책 같아서 잘 못넘기가다가 몽테뉴와 쇼펜하우어 부분에선 꽤나 재미있어져서 후르륵 읽어버리고 말았다.
장르소설의 유혹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자신감 충만!! 

몽테뉴의 [수상록]이 많이 궁금하다. 작가 스스로 오류투성이라고 인정한 책.(ㅋㅋ 유쾌한 사람)
내가 그와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을지도 궁금했다. 표면적으론 매우 공감이 되던데, 여튼 읽어봐야지. 

쇼펜하우어는........ 말 할 것도 없다. 날 위로해주는 코믹한 단 한사람을 꼽으라면 난 그를 뽑을테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적어도 키에르케고르 처럼 같이 우울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진 않을 거 아닌가. 무튼 의외로 즐거웠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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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읽어볼까 했는데 '힘겹게 마쳤다'니 또 망설여지네요..
한때 고교때는 키에르키고르같은 순결한 정신세계를 동경했었는데 말이죠~

Forgettable. 2009-09-17 17:00   좋아요 0 | URL
고교때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읽으셨다니...-ㅁ- 정말 대단해요! ㅎㅎ
이게 긍정행복컴플렉스같아서 그랬던건데, 읽다보니 나쁘지 않아요. 특히나 몽테뉴 같은 철학자의 발견은 득템이랄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2 11:44   좋아요 0 | URL
펭귄의 실종 주문했는데 벌써 5일째 못오네요. 재고가 없나봐요.

Forgettable. 2009-09-23 10:18   좋아요 0 | URL
5일째?? 책이 안팔리긴 안팔리나 보군요, 안갖다 놓나보네..
실종은 우울에 비해 좀 별로였던 것 같아요. 그때 정신건강도 별로 좋지 않아서,,
암튼 우울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볼려구요 저도.

2009-09-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갑자기 이 글을 보니, 벅스 한 달 이용권 기한이 다 되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군가 제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기분이 들었네요;
그런데 이런 기분이 사랑에 빠졌을 때 기분인가요?
사랑은 한 번도, 하물며 짝사랑마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고,
혹시 예쁜 외모에 순간 혹한게 사랑이었나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펭귄의 우울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밑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제가 전혀 기쁜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요즘 난독증이라 글을 도저히 집중력있게 못 읽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도서관에서 공부 10 분 하고, 머리 식힐 겸 50 분 쉴 때 읽으니 잘 읽히더군요 ㅎㅎ
아 이건 좋아할 일이 아닌데 ㅡㅡ;

Forgettable. 2009-09-17 21:3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맞아요, 바로 그 기분.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이 기분만이 다인 건 아닌 그런 기분이요. 나도 멜론 기한 다되가는구나, 덜컥
사랑 한 번 못해보고 뭐해보셨수, 남자대학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_- 요즘은 남중-남고-공대-군대-제대-공대도 연애는 한번씩 다 해보던데요(도발) 얼른 분발하세요! 만일이 되어도 광명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혹시 말로만 듣던 초식남인가여?+_+)

펭귄의 우울은 제가 꽤나 추천해주고다니는 책인데요, 재미도 있고 분위기도 괜찮아요. 될대로 되란 주인공이지만 코믹하면서도 영리한 캐릭터인 것이 코님이랑 비슷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머큐리 2009-09-1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심장을 움켜잡는 기분....

Forgettable. 2009-09-19 17:36   좋아요 0 | URL
아시나요?ㅎㅎ

2009-09-19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emian 2009-09-2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흐음...뭔가 표현하긴 힘들지만 구구절절 와닿는 기분입니다.
저도 요즘 뭐랄까, 여행쪽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일이라, 일을 다 떠나놓고 한 며칠간 아무생각도 안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휙 도망가버리는 상상을 하곤 하거든요. 옆에 좋아하는 책들 실컷 쌓아놓고, 맛있는거 잔뜩 늘어놓고 말이지요.
에휴, 여하튼, 나중에 콜롬비아 오시면 꼭 커피 한잔 대접할께요. 그때를 위해 거짓말같은 달콤한 꿈 같이 꾸고 있자구요. 화이팅!^^

Forgettable. 2009-09-20 21:53   좋아요 0 | URL
아, 데미안님 ㅠㅠㅠㅠㅠㅠ
오랜만에 뵙네요! 요즘 일때문에 많이 힘드신가봐요, 한국 떠나있은지 오래되서 그러실까요? 전 주말 내내 아무 생각 안하고 놀고 책보고 그랬네요. 맛있는 건 못먹었지만. ㅋㅋ

저 가면 커피 한잔만 말고 같이 주말에 놀러다니고 그래요~! ^^ 제가 가면 달콤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드릴게요, 으흐흐
 
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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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가,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 보통이 설명해주는 몽테뉴의 이론 中 -

기시 유스케는 분명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은 아닐지언정, 똑똑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사람의 작품을 2번째로 읽었는데, 이 작가의 노력에 매번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작품에 담긴 노력에 감탄을 하는데 어느정도로 감탄을 하느냐면 중고샵에 이 작가의 책을 파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소장할 정도로 탄성해 마지않는다. 

첫번째로, 그의 정보 수집능력.
기생충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어려움 없이 들을 정도로 초등학생에게 설명해주듯 쉽게 설명해주지만, 그와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쉽게 다루지도 않는다.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정보를 바탕으로 실재로 만들고 독자들은 reality와 fiction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부터 그만의 독자적인 공포가 탄생한다.  

다양하고 깊은 지식이 모여 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놀라울만큼 간결하고 깔끔하다. 공포/호러/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과장도 없고 그저 fact의 나열인 것마냥 작가 특유의 분위기도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때문에 [천사의 속삭임]이 더 무섭다. 평범한 도로를 걷고 있는데 절벽으로 가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은근슬쩍 든달까, 안에 담긴 작가의 무심함이 두렵다. 

두번째로, 그의 스토리텔링.
그의 공포는 철저한 인간탐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부적응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 옆집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독자의 공포심을 건드린다. 독자는 대중이기도 하면서 개인이라, 쉽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에 의표를 찔려 소스라친다, 예를 들어 거미나 황산, 오염된 물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그가 어떻게 이용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지를 확인하려면 마음을 열고 책을 봐야 할 것이다. 흔한 소재라고 다 같은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흔한 헐리우드 소재라는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말것. 

세번째로, 그의 철학.
철학이 무엇인고 하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앞으로 누군가 철학 어쩌고 운운하며 잘난체 한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 생각하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면 될 것이다.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를 읽으며 놀란 것은 그 어느 스승보다도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 외에 프란츠 파농의 저작을 읽을 때와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을 때가 가장 최근의 경험이었는데 한 문장, 혹은 한 문단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날개를 달고 지구 한바퀴를 돌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 이런 대가들에 감히 어떻게 기시 유스케를 갖다대냐고 한다면 난 왜안되냐고 싸울 자신도 있다.  

이 사람이 던지는 화두는 여느 윤리학 서적의 이론적인 질문들보다 더 날카롭고 실제적이다. 뒷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데도 순간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상들은 뇌를 자극하고,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해보는 재미에 책을 잠시 떨구고 '딴생각'을 하게 만든다. 텍스트에 질질 끌려가는 보통의 경험과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천사의 속삭임]이 매우 무섭고 공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고, 그의 새작품을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일단 손에 들면 무서워서 놓고 싶어도 감성보단 이성을 자극하는 묘미가 즐겁고, 그때문에 읽고 싶어도 손이 잘 안가는 호러물과는 달리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 든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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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별다섯개짜리다..ㅎㅎ '천사'들어가는 책에 살짝 질려있는 내게 '천사'가 들어가는 별 다섯개짜리 책을 소개하다니 넘해요...ㅠㅠ

Forgettable. 2009-09-16 21:51   좋아요 0 | URL
음- 그 천사랑은 좀 달라요. ㅋㅋ 비슷할려나? 다시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_+
이거 괜찮아요. 난 천사의 게임보다 나았던 것 같아요. 천사의 게임은 다 끝내셨어요?ㅋ

뷰리풀말미잘 2009-09-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과 뽀님의 뽐뿌페이퍼를 보고 최근에 질렀는데 아직 몇장 넘기지는 못했습니다. ㅎㅎ 기대되는 리뷰네요.

Forgettable. 2009-09-16 21:53   좋아요 0 | URL
미잘님.
저 겁도 많고요, 벌레공포증도 있어서 더 무서워했는데; 너무 기대하며 읽진 말아주세요.
어떤 책이라도 기대감에 부풀어 읽기 시작하면 실망해요^^

하이드 2009-09-1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셨네요. 추천!

사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중 가장 재미있는 <신세계에서>와 <천사의 속삭임>을 읽으셨으니, 다음 작품을 읽으라고 권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체적인 작품성과 호러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검은집>이나 <유리망치> <푸른불꽃>(이 작품은 의외로 매니아가 있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나온 데뷔작 <13번째 인격>까지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흔해진 소재들을 가지고도 말대로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요.

Forgettable. 2009-09-16 21:57   좋아요 0 | URL
네, 꾸준히 보려고요. 사실 이 리뷰는 우리 대화 덕분에 계속 맴돌던 생각들이 자리를 잡아서 쓰게 된거지, 아니었음 그냥 맴돌다 말았을 거에요. ㅎㅎ
검은집은 잘 모르겠고, 일단 [푸른 불꽃]을 다음 타겟으로 정했어요 :) 교고쿠 나쓰히코의 전작들도 읽어야 하는데 ㅋㅋ

암튼 언제나 좋은작품 소개 고맙습니다♡ ^^
 

아 정말.. 매력적인 커플. 

Jane Birkin - Yesterday Yes a Day

요즘. 아마도 내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을 음악을 듣고, 내 평생 해보지도 못했을 대화를 하느라, 많이 설렌다.
내게 합당한 인생은 무엇이며, 내가 가져보지도 못했을 인생은 어떤 것일까.  
감기열에 들떴는지 가을바람에 들떴는지 내 침대는 부웅 부웅 온 우주를 날아다닌다.
즐거운 시간. 비참한 시간. 위기의 시간의 한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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