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하는 말 아침에도 블랙커피를 마실 수만 있다면 잠시는 생명체로서 느끼는 아늑함에 잠길 수 있지 않을까. 엄격한 경계조건을 조금은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카와 교수는 커피의 이런 기능을 한자 한 글자로 '魔(마)' 라고 표현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오염된 밤 공기로 얼얼하던 목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p247)
몸이 꽤 좋지 않아서, 커피마저 조금 자제하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이 이 구절이었다니. 이건 말이다. 진정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모리 히로시는 분명, 커피 애호가(혹은 중독자?) 일 것이다. 모리 히로시의 S&M 시리즈에서 주인공 격인 사이카와 교수와 니시노소노 모에는 커피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담배를 또한 무지하게 좋아한다. 이게 다 작가가 투영하는 이미지 아닐까... 라고 잠시 생각.
어쨌든, 커피라는 건, 그렇게 잠시 주변과 내게 다가온 많은 문제들과 생각거리에서 떨어져 나 혼자에게 침잠하게 하는 정말 좋은 '음식'이다. 이것까지 자제한다는 건, 내가 몸이 좀 많이 좋지 않다는 거고 (덕분에 병원 순례 예정ㅜㅜ) 그래서 맘이 좋지 않다. 좀만 참으면 커피를 예전처럼 먹을 수 있겠지... 라며 위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겉치장을 신경 쓰지 않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굳게 믿음으로써 겉치장을 한다. 멋 부리기를 싫어하는 인간은 멋을 내지 않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며 멋을 부린다.
문제는 같다.
타인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인간은 그런 식으로 타인에게 간섭하고 있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의식이란 원래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은 솔직한 사고에 의해 비가역적으로 연약해져간다.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생각하지 않는 것.
(p363-364)
커피 얘기만 인상에 남은 건 아니다. 모리 히로시의 작품 4개를 다 보았는데, 이 책이 제일 맘에 들었다. 좀더 일반적이고 좀더 사유적이며 좀더 로맨틱(?)하다. 자세한 것은 직접 책을 보고 느껴보시도록...(흐흐)
일요일이 가고 있다. 주말 내내 침대를 내몸처럼 하고 누워만 있었더니 찌뿌뚱하기도 하지만 개운한 감도 가지게 된다. 워낙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일까. 정말이지 천장만 바라보고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다가 자고 깼다가 다시 자고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런 시간이 아깝다 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그저 그렇게 반복적인 멍때리기 상태에 있어 본 지도 꽤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덕분에 기력이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 또 조심.... 한동안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겠다 싶다... 그러자니 커피도 잘 못 먹는다. 으. 급슬퍼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