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를 村上春樹라는 한자로 보면서, 우리나라 말로 읽으면 하루키가 '춘수'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김춘수 시인이 있지만, 그러니까 이름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아님!) 하루키라는 이름과 춘수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데에서 오는 재미다.

요즘 읽고 있는 '춘수'씨의 에세이이다. 나는 몇 번이나 얘기했던 것 같은데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사랑한다. 사실 소설보다 열 배는 더 사랑한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들은 나오면 꼭꼭 사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읽곤 한다. (일본에 한달여 있을 때도 서점 가서 산 것은 하루키의 에세이였다)

그의 에세이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휘젓는 아니 그런 과격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매력이 있다. <먼 북소리>나 <우천염천>이나 등등등. 여행이면 여행, 일상생활이면 일상생활.. 모두 그의 손에서 뭔가 하나의 작품이 되어 나온다. 최근에 하루키의 에세이가 한 권 나왔길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안 읽은 게 있나 하고.. 쫘악 째리니 (뭐 째릴 것 까지는 없지만,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이 얇은 책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닌지라..ㅎ) 이게 보였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몸 움직이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로서는, 제목이 그닥 호감스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왜 달려..ㅜㅜ 그냥 걷지..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하루키는 달리기 마니아로 유명하고, 아마도 그가 달리기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그냥 달리자라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어렵사리 책을 펼쳤다. 달리자! 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덮어버려야지.

 

그러나,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다. 읽으면서 참, 이 사람 책 잘 샀어..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은 속일 수 없다. 마라톤과 소설쓰기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남에게 돋보이기 위해 하는 '짓'들은 다 무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나 자신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러너가 아이팟을 들으며 달리고 있지만, 나는 손때가 묻은 MD 쪽을 좋아한다. 아이팟에 비하면 다소 기계가 크고 정보 용량은 확연히 적지만 내게는 그만하면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현재로선 아직 나는 음악과 컴퓨터를 혼동하고 싶지 않다. 우정이나 일과 섹스를 혼동하지 않는 것처럼.

 

오. 하루키상. 참 멋진 비유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니, 나의 아이팟이 내가 아이팟이 좋아서 아이팟을 들고 다니는가, 음악이 좋아서 들고 다니는가 헷갈려지네. 흠...

달리고 있을 때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가지 형태의 여러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단락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불현듯 달리고 싶어졌다. 하루키는 이런 것 때문에 달리는 것일까.

인간이란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리는 것은 근사한 것이니까 모두 함께 달립시다" 같은 말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멋진 하루키상. 내 주위에도 마라톤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꾸만 이게 최고라고 강권한다. 자꾸 달리자고, 자꾸 이게 좋다고. 짜증난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맘이 동하지 않는데 왜 자기들이 하는 것이 최고라며 그걸 안 하는 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하루키상의 글을 읽으니, 그렇지!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좋으면 하게 되어 있고 싫으면 안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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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아직 절반 정도 읽었는데, 야금야금 맛난 과자 아껴가며 조금씩 먹듯이 읽고 있다. 아침 나절에 이 글들을 읽으면 왠지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책들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찾아보니 문학동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모아서 내놓은 게 있었네! 이런..몰랐다. 사야할 책들이 또 늘어나는구나....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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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6-3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우연히 들어왔는데 비연님 서재네요. 저번에도 그랬는데... 자꾸 비연님 서재 들어오면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팍팍 늘어나요. '소설보다 열 배 사랑하는' 하루키의 에세이라니,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읽고나서, 감상을 나눠봐요! :)

비연 2012-07-01 09: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수다쟁이님~ 하루키 에세이 좋아요. 읽고 감상 나누어요!!

icaru 2012-07-0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첨에 전 원서인줄 알고 거들떠도 안 봤으요! 근데 문학동네에서 모아 나왔다는 하루키 에세이라니... 참 이국적으로 보여요

비연 2012-07-05 17:22   좋아요 0 | URL
ㅋㅋ 한글입니다.. 재밌어요^^ 문학동네의 하루키 에세이는 지금 너무나 탐을 내고 있는 책들입니다. 곧...곧...구입의 버튼을 누르게 될 듯한 비연..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