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남아있던 마지막 아사히 한 캔을 꺼내 안주 없이 먹고 있다. 역시 나에겐 비올 땐 아사히야. 하이네켄도 아니고 바로 아사히. 이상하게 비오면 아사히가 땡긴다.

하늘에 구멍난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다. 좌락좌락. 정말 이런 의성어가 딱 들어맞는 날이 흔하지 않는데 말이다. 좌락좌락. 안에서 듣고 있는 나는 괜한 감성에 젖어 맥주 한캔에 슬슬 분위기 타고 있지만, 아마도 이 벼락같은 비에 고생하고 계실 분들도 있을터. 좀 자중.

방금 <영원의 아이>를 다 읽었다. 텐도 아라타의 글은 처음 읽는다. <애도하는 사람>도 사다 둔지 오래지만, 왠지 넘 무거울 것 같아 감히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영원의 아이>부터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좋은 책인데. 두껍기 그지없는 (800페이지 분량이 두권이라니 헉) 책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나열되는 주인공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심리묘사도 탁월하고. 그래서 아 이 작가 정말 노력하면서 썼겠다. 자신도 아파하면서 썼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근데 이런 류의 책. 넘 힘들다. 사실 며칠간 내리 읽으면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만 읽을까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가정내에서 자행되는 아동에 대한 폭력, 물리적이든 성적이든 심리적이든, 에 의해 상처받은 세 아이가 있다. 그 아이들이 한 병원에서 만났고 서로 통했고 그래서 셋이 있었을 때 치유받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헤어졌고 십칠년 뒤 다시 만났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세월의 무게만큼의 죄책감들이 자리잡아 정상적인 궤도를 달리기 힘든 상태였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 그들이지만, 그 과정이,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아픔이 그들의 가슴깊은 곳에 내재한 복잡한 심정들이 너무나 고스란히 다가와 읽는 사람에게도 전이되어 정말 힘들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말이지 눈물이 주루룩.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라 쥐어짜는 듯한 눈물. 소리낼 수 없는 눈물. 그런 것이 나를 압도한다.

한동안, 이런 우울한 책은 안 읽으려고 한다. 이 책만으로도 올해의 우울은 다 짊어진 기분이다. 바깥엔 하염없이 비가 오고 그래서 더 그런 것 같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책이고 오래도록 멍에처럼 느껴질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애도하는 사람>은 더더욱 나중에 읽어야지. 아 이 작가 무섭다. 넘 가슴을 후빈다. 조금 멀리하려고 한다.

비는 왜 이리 오나. 내일은 좀 멈추어줘야 할텐데. 아사히 한 캔만 딱 마시고 나도 자야겠다. 마음이 힘들어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빗소리도 우렁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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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09-1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와 '아사히'가 잘 어울리는 맛인가봐요?
먹어본 적이 없는 저는 어떤 맛일까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빗소리라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밤이네요.

비연 2010-09-12 21:11   좋아요 0 | URL
한번 드셔보세요...잘 어울립니다^^

비로그인 2010-09-1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께는 좌락좌락 이었군요.

저한테는 추적추적 이었는데.

비연 2010-09-12 21:15   좋아요 0 | URL
^^;;

ryck 2010-09-12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가 오면 다음날 아침에는 해가 반짝 뜨는 맑은 날씨가 되길 빌면서 아사(아침)히(해) 맥주를 먹는거 아녀? 일본어 공부 좀 하는가보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맥주도 고르고 말이지... ㅋㅋ

비연 2010-09-12 21:16   좋아요 0 | URL
일본어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선택이라네, 애석하게도..ㅋㅋㅋㅋㅋㅋㅋㅋ

G.Ego 2010-09-17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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