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를 집었다. 이게 언제 산 책인데 이제야! 라는 낭패스러움이 생긴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라고 하면 무조건 사는 나다. 이런 사람들 알라딘에 여럿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사면 바로바로 읽어야 직성이 풀렸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사실은 추리소설이나 괴기소설이나 스릴러나 좀 덜 읽어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지금 보니 미리 읽었어야 했어..라는 마음이 들 뿐이다.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라. 나오키상 수상작 시리즈라 그런지 초입부터 아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처음에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이게 뭐야..라는 당혹감.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가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기묘묘함. 그리고 그 이후 이 사람의 이름만 발견하면 무작정 보관리스트도 아니고 바로 장바구니로 날라대는 나에 대한 놀라움. 아마 이 작가의 글이 계속해서 번역되어 나오는 걸 보면, 나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런 느낌에 동참하는 모양이다.



 

 

 

 

 




내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시리즈다. 교고쿠도 주젠지가 아니라 에노키즈가 주인공인 이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요괴스러움이 가득한 소설이라지만 사실은 인간 내면에 대한 이해와 유머러스함이 잘 조화된 보기 드문 수작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주인공인 에노키즈의 그 무모할 정도의 성격이나 말, 일반시민 모토시마의 수난 등은 읽는 내내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면이 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장편들과는 또 다른 맛을 주는 중단편집들이다.



 

 

 

 

 

 

 

장편들. <우부메의 여름>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처녀작이다. 10년에 걸쳐서 완성을 했다는 이 책은, 소재 자체가 충격적이고 그 세부 묘사의 유려함과 요괴 및 여러분야에 대한 깊고도 넓은 지식, 그 엄청난 전개와 결말까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어떻게 처녀작? 이런 느낌을 주는 멋진 소설이다. 교고쿠도 주젠지라는 해박하고 멋지고 인간사에 대한 이해도가 절정인 고서점 주인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책이다. (이거 읽고 감명받아 열심으로 리뷰를 썼더랬다, http://blog.aladin.co.kr/camus/837352) 그 이후 읽은 <망량의 상자>는..솔직히 교고쿠도의 엄청난 장광설과 너무나 세부적인 묘사들이 불편했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가 마음에 와닿았었기에. (리뷰도 썼었다. http://blog.aladin.co.kr/camus/891658). 그래도 사람을 상자에 집어넣는다는 이야기가 좀 그랬었던 기억이 진한 책. <광골의 꿈>은 역시나 작가의 엄청난 지식이 집대성된 책이었고 특별한 소재와 전개로 나를 사로잡았었다. 분위기 역시 대단히 음울했고. 갈수록 심해지는 장광설이 좀 지겨워졌던 소설이기도 했다.  

아직도 번역되어야 할 책들이 많다. 너무 감질나게 나와서 화가 날 지경이기는 해도 잊지 않고 나와주니 그것만으로 고맙다. 장편들은 '손안의책'에서 나왔고 백기도연대는 '솔', 이번 향설백물어는 '비채'에서 나오다니. 출판사들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책들을 번역하기에 힘쓰고 있지 않은가! ㅋㅋㅋㅋㅋ 이제 나와야 할 책들이 있다면..


 

 

 

 

 

 

 

항설백물어 시리즈는 다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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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경향신문에 교고쿠 나쓰히코에 대한 글이 이 작가가 수상하다 시리즈의 8편에 실렸었다.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는 공포라는 제목으로.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세계를 참 잘 드러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아저씨, 좀 괴기스럽게 생기긴 했구만? ㅋㅋㅋㅋ 


출처: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7281838301&code=900315 

 

ㆍ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는 공포






“이 세상에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네, 세키구치 군.”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의 주인공 교고쿠도의 입버릇이자 좌우명이다.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닮은 시니컬한 분위기의 이 ‘탐정’의 본업은 자기 이름과 똑같은 고서점의 주인이고 부업은 동네 신사의 신주 겸 음양사(주술사)다. 교고쿠도가 ‘홈스’라면 그의 곁에는 우울증을 앓는 ‘왓슨’인 침울한 삼류 소설가 세키구치가 있다. 세키구치가 어디선가 세상에 떠도는 풍문을 물어오면, 교고쿠도는 ‘안락의자형 탐정’의 모토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모든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시원스레 해결한다.

이 콤비가 일본 장르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94년. 작가가 직접 출판사에 들고 찾아간 원고 <우부메의 여름>은 출간하자마자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처녀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 덕분이기도 했지만, ‘800만 신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 민담과 민속신앙, 요괴에 대한 엄청난 해박함이 괴담을 사랑하는 일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 역시 그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러 직업을 지니고 있는데, 광고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인 동시에 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일본 괴담문화를 연구하고 ‘세계요괴협회’ 회원인 ‘요괴연구가’이고, 때로는 성우나 배우로 활약하기도 한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은 대개 분류상 ‘호러 소설’에 속하겠지만, 그의 소설 대부분은 이야기의 전개상 미스터리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초자연의 존재가 인간에게 주는 공포와 그 확산을 그리는 것이 공포 소설이라면, 그의 소설은 민담이나 풍문 속의 초자연적 존재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존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것을 낳은 인간 마음의 어두움과 오해, 사회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추적해나간다. 패전의 상처를 짊어진 전후 일본 사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사이비 종교가 날뛰고, 죽음은 일상화되었으며, 인간의 마음은 더없이 나약했다. 참혹한 전장을 목격하고 돌아온 이들의 마음은 황폐했고, 서양의 신기술과 과학 역시 꿈과 희망만을 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프랑켄슈타인이나 인간복제 같은 괴소문의 진원이 되었다.

‘세상에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하는 교고쿠도는 초자연적 세계와 현상을 과학과 철학, 역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하고, 화해 불가능한 두 세계관 사이에서 실종된 인간 본연의 모습과 그 억울함을 수복하고 매개한다. 그의 부업이 음양사인 것은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교고쿠도가 활약하는 ‘교고쿠도 시리즈’가 이런 어두운 세상을 그리고 있다면,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또다른 탐정 에노키즈의 ‘백기도연대’ 시리즈는 이보다 좀더 경쾌한 톤을 띠고 있다. 일본 화족(귀족) 출신에 장신의 미남자인 에노키즈는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의 동창으로, ‘장미십자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진짜 탐정이다. 교고쿠도의 왓슨인 세키구치가 우울한 음지식물이라면, 에노키즈는 그야말로 100퍼센트 ‘조증’에 세상 모든 걸 발 아래 두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사건을 종횡무진 파헤쳐간다(기보다는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교고쿠도가 홈스류의 미스터리 캐릭터라면 에노키즈는 악당과 선인의 경계가 뒤죽박죽 섞인 ‘피카레스크’ 소설의 캐릭터인 셈이다. 전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방황하는 인간 군상들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들은 현재 두 편이나 영화화되었으며 국내에도 속속 더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현재 미스터리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 하드보일드 소설가 오사와 아리마사와 함께 세 사람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쿄쿠구(大極官)’에서 왕성하게 집필 중이다. 

▶국내출간작 :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이상 손안의 책), <백기도연대 風> <백기도연대 雨>(솔 출판사), <백귀야행>(초록배 매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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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아빠 2010-01-2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비연님의 이 소개로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을것 같네요.
감사드립니다.

비연 2010-01-27 20:16   좋아요 0 | URL
준이아빠님, 처음 뵙네요^^
교고쿠 나쓰히코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니 더욱 반갑구요~

다락방 2010-01-2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연님. 저는 반드시 읽겠어, 라고 다짐하고서는 아직 [항설백물어] 사지도 못했는걸요!! 저도 읽고 싶단 말입니다. ㅜㅡ

그런데 저랑 살짝 다르신게 말이죠, 저는 [망량의 상자]에서 교코구도의 장광설에 가장 흠뻑 빠졌었어요. 어엇, 이사람은 정말 뭐야~ 장광설에 넋을 잃었던 기억이 나요. ♡

비연 2010-01-28 11:2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항설백물어> 지금 읽고 있는데 아주 구우우우웃~! 입니다^^
<망량의상자>는..ㅋㅋ 그래도 넘 길지 않았나요, 말이?^^;;;;
교코구도의 박식함에 살짝 기죽었던 기억도 있구요..ㅎㅎ

머큐리 2010-01-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기대하는 작가지요... '우무베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밖에 진도가 못나갔는데...

비연 2010-01-28 22:42   좋아요 0 | URL
<항설백물어> 추천이구요. <백기도연대> 시리즈 강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