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발다치의 데커 시리즈는... 나오면 찾게 되는 시리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찾다가 버린 시리즈들도 숱해서 꼭 끝까지 함께 하겠어요 하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암튼 이번에 나온 <진실에 갇힌 남자>도 나쁘지 않았다. 에이머스 데커가 딸의 생일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얘기는 시작되고, 거기에서 신참 형사일 때 맡았던 사건에서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을 만난다. 일가족 세 명과 한 사람을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구금중이었던 그 사람은, 말기 암으로 석방이 된 상태였고 일부러 데커를 찾아와 난 무고하니 내가 무죄임을 밝혀달라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한다. 이상하다 생각한 데커가 그 사람과 약속을 잡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 사람은 죽어 있었고. 아주 비참하게.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그러니까 진실을 알면 안 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데커가 눈치채고 다시 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얘기는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그래서 결국 실체가 파악되긴 했지만 그 무성한 이야기들로 말미암아 다음에 나올 책은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이겠구나 떡밥 가득 뿌리며 끝난다. 사실 이번 책은, 범인을 잡고 어쩌고 하는 것보다 데커의 변화가.. 좋았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지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는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하고 자연스러운 감정교류도 어려워진 데커. 자신의 그런 점을 포용해주고 사랑해주던 부인과 딸은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 그래서 더욱 사는 것이 팍팍해진 데커였지만, 처음 책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제미슨과 이번에 만난 옛 동료 랭카스터, 그리고 자신이 혐의를 벗겨주어 인생의 극적인 반전을 이룬 마스.. 와 같은 좋은 주변 사람들 덕분인지, 아니면 그 과잉기억증후군을 일으킨 뇌의 변화가 나이가 들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아뭏든 이제 조금씩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위로를 하고 공감을 하고 접촉을 해도 꺼려지지 않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번 책에서는. 나는 생물학적 변화뿐 아니라 사람들의 따뜻함이 그를 열리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살면서 제일 좋은 건, 우정이지. 라고 생각한다. 사랑도 좋지만 더 오래 가고 더 끈질기게 힘이 되어 주는 건 우정이지. 라고 생각하고. 그건 나이나 성별이나 인종이나 국적이나 경제적 상황이나 어쩌고저쩌고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교감이다. 그냥 만나서 밥먹고 술먹고 수다떨고 그런 사람들은 '아는 사람'인 거고, 우정을 맺는 사람은 좀 다르지 않나 라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난 '친구'라는 말을 아무한테나 쓰지 않고 사실 친구 이외에는 다 비슷한 관계다 라고 여기고 있고. 친구가 주는 우정은 날 많이 변화시켜왔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데커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속에 자리하게 된 것 같아, 소설 속의 인물인데도 반가와하는 마음이 불쑥 일었다. 좋은 일이야. 데커. 잘 된 일이야... 토닥토닥.
그런데 그런데... 나는 이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를 나오는 족족 다 사서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6년부터 한 해에 한 편씩 나왔길래 흠? 2019년은 안 나왔었나? 하고 봤더니만.... 내가 안 읽고 건너뛴 게 있었다! ㅜ
여기까진 읽었는데. 이렇게 사람 얼굴 대문짝만한 표지들은 다 읽었는데...
이걸 건너뛰었다. 어쩐지 뭔가 이번 책을 읽으면서 데커의 변화가 좀 점핑하는 기분이네, 작가가 기분이 업되었나 뭐 이런 생각을 잠깐씩 했었는데 사실은 중간 단계가 있었던 거다. 으악. 이럴 수가. 12월이 가기 전 이 책을 사야 하나.
일단 지금 이 다음에 든 책은 이것.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하고도 하순에 읽기에 적합한 책제목 아닌가. 이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이라니... 그리고 여전히 푸코. 흠?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