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을 보면 무지하게 피곤함이 느껴진다. 사실 아침에 느즈막히 눈을 뜨며 생각했다. '가지 말까?' ... '그냥 월요일에 하면 안될까?'...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니, 자료를 월요일에 보내줘야 한다는 것, 그런데 월요일에 회의가 내내 잡혀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머리 속에 꼬리를 물며 출몰했고... 결국, 끙. 하면서 일어나 씻고 출근하니 12시. 많이 잤구나 하면서도 아 이 오후에 집에서 그냥 커피 한잔에 책이나 읽으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면서 출근.
지금 내 앞에는 오면서 사온 스타벅스 커피가 얌전히 놓여 있다. 내가 요즘 나가고 있는 프로젝트 사이트는 근처에 스타벅스가 없다. 커피집은 많은데 스타벅스는 차를 몰고 10분은 가야 있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고, 그 분위기를 사랑하는데.. 주중에는 도저히 누릴 수가 없고 주말에는... 또 집 주변에 스타벅스 가려면 15분은 가야 하니 그냥 집순이로 지내거나 집에서 먹고 치우고. 그렇게 해서 스타벅스 간 지 백만년은 된 느낌의 오늘이 되었는데... 다행히 회사 본사 주변엔 스타벅스가 여러 군데 있어서 나는 출근하면서, 스타벅스에 냉큼 들러 아메리카노를 그득히 담아오는 데 성공하였다는 이야기. 참으로 소소하지만 내게는 눈물나게 고마운 이야기.. 나이 드니 별 거에 다 눈물이 나느냐..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패스.
그래서 일한다고 앉아서 커피 홀짝이다 보니, 흠 이것도 나쁘지는 않네 라는 일중독 환자 같은 자세가 되었고 그래서 일을 하려고 다 내놓다가 문득 알라딘에 들어왔다. 요즘 나가는 프로젝트 사이트의 또 하나 단점은, 알라딘에서 글을 쓰면 저장이 안 된다는 것. 점심시간이나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게 소소한 재미였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덕분에 요즘 알라딘에 들어와 글 끼적거리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이거다. 이눔의 프로젝트는 내년 11월까지이고..(으악) 그 전에 회사를 떄려치던가 해야지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고 있는 중이다.
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나는 회사를 몇 번이나 옮긴 전력이 있다. 이직일 때도 있었고 다니기 싫어서일 때도 있었지. 이직일 때는 못 느꼈지만 다니기 싫어서 나와 무직상태로 있었을 때는.. 흠. 뭔가 많은 괴로움과 번민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때는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인데 그냥 그렇게 즐기면 되었을 것을,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던 시기였다. 학교를 들어가, 그 때까지 한번도 아침에 그냥 일어나본 적이 없었던 내가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좀 당황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도 내 마음 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는 것, 그래서 괜한 피해의식이나 자학감이 슬며시 스며들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무직의 30대 비혼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아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 뭐 그러했다. 일년 반 정도 내 맘대로(?) 지냈지만 사실 완전히 내 맘대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데도 작은 돈에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사람이 작아지게 되기도 하는 게 참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암튼간에, 지금은 나이도 더 들었고, 그래서 회사를 그냥 확 때려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거입니다.. 라고 괜히 변명하는 거다. (흑) 밖은 시베리아를 넘어서 밀림이고, 그 속에서 나를 잘 지킬 수 있는 멘탈이나 계획이 있지 않으면 일단 여기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말 준비라는 건 필요하구나.. 뭐 이런 생각 중. 주말에 회사에 나와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하는 비연. (크크)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려.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지쳐서 책을 못 읽는다는 데에 있다. 아침 저녁 잠깐 전철을 탈 때 읽는 책은 그래서 꿀맛이고. 금방 읽어낼 것 같던 어슐러 르 귄의 에세이는, 읽을수록 좋아서 한줄한줄 음미하며 읽고 있다.
뛰어난 성취 혹은 독자적인 성취라는 견지에서 말할 때 위대함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특정 젠더를 내포한다. 일반적인 용법과 통상의 이해에 따르면 '위대한 미국인'은 위대한 미국 남성을 뜻하고,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남성 작가'를 의미한다. 그 단어의 젠더를 바꾸려면 '위대한 미국 여성', '위대한 여성 작가' 라는 여성 명사로 수정해야 한다. 젠더를 없애려면 '위대한 미국인들/작가들, 남여 모두...' 같은 표현을 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대함이라는 관념 속에는 위대함이 여전히 남성의 영역이라는 사고가 남아 있다. (p113)
이 책은 어슐러 르 귄이 80대에 쓴, 그러니까 2017년에 쓴 책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생각이 미국 사회에는 아직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간파하고 냉엄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뒤쪽에도 계속 읽으면, 이 책이 표지처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고양이 파두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페미니스트의 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라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차별적 요소를, 이 '위대한 작가'인 어슐러 르 귄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어디나 언제나 이런 일들이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임을 나타내고 있다... 전철 속에서 이런 글을 읽을 때의, 그것도 시간이 없어서 3~4페이지를 읽어나갈 때의 그 쾌감.. 짜릿함. 이 피곤한 와중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그 무엇이다.
자 이제 일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