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짤릴 각오를 하고, 5월 연휴를 포함해서 11박 12일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가기 일주일 전까지 못 갈 것 같은 분위기에 계속 노심초사했었는데, 여차저차하여 그냥 감행하게 된 것. 일행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준비 하나도 못하고 그냥 갈 뻔 했다. 가기 전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다 읽어보려 했으나... 1권 겨우 반 정도 읽고 갔다는.. 슬픈 이야기.

 

이탈리아는 내 인생에 세 번째였다. 대학 때 배낭여행 가서 로마-바티칸-피렌체-베네치아-폼페이-제노바 등을 일주한 게 첫 번째였는데, 그 때는 한여름에 간 거라 정말 너무 더웠고 그래서 허덕거리며 다닌 기억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 길바닥이 거의 한증막이었고 20kg이 넘는 큰 짐을 등에 진 채 온종일 헤매는 것이 정말 힘들었었다. 두 번째는 학회 발표 때문에 로마로 간 거였는데 로마-바티칸-티볼리를 다녀왔었다. 나는 그 때, 9월의 이탈리아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 처음 느꼈었다. 푸르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 등 옛 유적들이 보이는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왔다. 아 이탈리아가 이런 나라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였구나... 싶었고.

 

그래서 이번이 세 번째인데도 갔던 거다. 일행들은 이탈리아를 패키지로 다녀와서 제대로 못 누렸다고 했고 나는 봄날의 이탈아가 보고 싶었다. 긴 일정동안 많은 곳을 다녔다. 로마, 바티칸과 피렌체를 기본으로, 시에나, 아씨시, 나폴리, 폼페이를 갔고 친퀘데레를 갔고 토스카나의 와이너리도 들렀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비가 추적거려서 날씨가 이러면 안되는데 라며 걱정이 많았지만 갈수록 점점 봄날이 무르익고 그렇게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보고야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 높고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겼다. 매일 피곤한 줄 모르고 봄날의 이탈리아를 누리며 다니느라 이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탈리아는, 와인이 맛있고 그래서 거의 매일 먹어 주었고, 커피가 맛있고 그래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를 먹어 주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보기에 좋았고 하나하나 역사가 살아 있어 좋았으며 미술관에 전시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그림들이 너무나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카라바조의 그림들이 보게레제 미술관에 잘 전시되어 있어서 감격에 겨워 보았더랬고. 여느 유럽의 나라들처럼 길가에는 담배피는 사람들이 즐비해서 담배냄새가 늘 자욱했지만 왠지 참을 만했다. 음식에 자부심이 커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피자와 파스타, 각종 해산물 요리 등이 하나 지겹지 않을 정도로 맛났다. 올리브오일과 트러플오일/소금 등의 풍미가 남달라서 덩달아 몸이 좋아지는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직설적이지만 유쾌했고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지만 과하게 붙지도 않았다. 물이 안 좋아서인지 맥주는 그다지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참 열심히 매일 먹어대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나라였다. 물론 소매치기가 많아서 짐 조심을 해야 하긴 했지만, 바르셀로나와 파리도 다녀온 나인 만큼 그 정도야 하고 대범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같이 간 일행은 다이소에서 열쇠와 복대까지 들고 왔었다. 허허)

 

 

 

 

 

 

 

 

 

 

 

 

 

 

 

 

아마도 가기 전에 이탈리아에 대한 스가 아쓰코의 글들을 읽어서 더 그랬는 지 모르겠다. 물론 그녀가 주로 있었던 밀라노와 베네치아는 가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간직한 채 여행을 떠났던 게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더 좋게 받아들이는 데 일조를 한 건 분명한 듯 하다. 가능하면 다음엔 밀라노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여행이 좋은 건, 멀리 떠나서 나의 일상에서 조금 거리를 유지한 채로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이국적인 풍광 앞에서 무장해제를 자연스럽게 하여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거 같다. 다시 돌아와 출근을 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니, 언제 여행을 갔나 싶게 그렇게 빨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산다는 게 다 그런 거겠지. 여행의 감상은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으로 남겨지는 것이고. 일상은 또 일상대로 영위해야 하는 것이겠고.

 

일년에 한번씩은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 이런 곳에 가겠다 마음 먹어본다. 더 나이들어 다니기 힘들어지기 전에 갈 수 있는 곳을 다 가보자... 그렇게 나를 좀 자유롭게 놓아두어 보자... 우선 올해는 이탈리아 다녀왔으니.. 다음 여행 계획은 내년으로 하고 어디로 갈 지 미리 구상하는 즐거움을 내내 누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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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4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일단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이고요, 무척 좋으셨다니 더 다행입니다.
처음 가서 별로 였던 곳에 다시 가서 좋은 느낌을 남기는 거 너무 소중한 것 같아요.

몸이 허락하는 한, 우리 계속 다녀봅시다, 비연님.
가서 이렇게 또 즐거운 경험 잔뜩 하고 마음도 충전해서 돌아오자고요.
그런게 필요한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비연 2019-05-14 19:55   좋아요 1 | URL
정말,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다니고 그 좋은 느낌을 나누는 생활 오래도록 하여요!^^

고양이라디오 2019-05-1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멋지십니다. 여행도 잘 다녀오시고 무사히 일상복귀하셨다니 다행입니다^^b

비연 2019-05-14 19:56   좋아요 1 | URL
감사함다 ㅎㅎ 돌아올 일상이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제일 큰 행운인 거 같아요^^

희선 2019-05-18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간 보내고 오셨겠네요 돌아오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다니... 그래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겠습니다 새로운 곳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다른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비연 2019-05-18 05:10   좋아요 1 | URL
참 좋았슴다~^^ 여행이라는 건 그런 거 같아요. 새로운 곳에서 나를 바라보기.

봄누리 2019-05-20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탈리아 여행 후기를 마치 제가 쓴 듯 느낌이 비슷하군요 ㅎ 잘 읽었습니다

비연 2019-05-20 09:34   좋아요 0 | URL
앗. 비슷하다니 넘 반갑습니다. 이탈리아.. 그리워요~ 다시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