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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9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난 관람차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느려터지고 그저 높기만 해서,
딱 한 번 타보고는 질려버렸다.
제트 코스터에 루프 슬라이더.
가슴이 콩닥거리는 놀이기구 외엔
눈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관람차라는 이 놀이기구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가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조금 무섭다" 라느니 하면서...
자신을 봐주지 않는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그는
그 사람이 바라보는 사람과, 그 사람과, 셋이서 관람차에 오른다.
또 다른 엇갈린 사랑을 하는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는 그와 관람차에 오른다.
그때
관람차가 밑으로 다 내려가기 전에,
세상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 석양은,
아름다웠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에 뜨끔, 하는 감각이 사랑인지도 모르는, 사랑인 줄 깨닫고는 당혹스러움에 줄행랑을 치는, 감당하기 힘든 알 수 없는 감정에 눈앞에서 밥도 못 넘기는, 아,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예감하고, 서글퍼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추스리고, 다독거리는, 체념하고, 바라보고, 체념하고, 바라보는, 어린 그들은 몹시도 사랑스러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아.. 하고 한번 큰숨을 내쉬게 된다. 그래, <허니와 클로버>는 섬세한 눈과 손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담아 내는, 어리숙하고 섬세하고 몹시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제 결말을 향해 가고 있어 못내 서운하고 안타깝다.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를 곁에 쌓아 두고 보며 한권 한권 줄어들 때 느낀 아쉬웠던 감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참 동안 다음권이 나오지 않을 때 맘속으로 이렇게 빌었었다. '우미노 치카님, 열심히 열심히 사서 읽을 테니 작가님은 그저 힘을 내서 그려 주세요!'하고 말이다. 그 바람이 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이 끝나가는 이제는 또 이렇게 빌고 있으니 중증이 맞겠지만 그래도 빌고 싶다. '이 어리숙하고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에게 조금만 상처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라는 바람은 두리뭉실 안일해 보인다. <맘보걸 키쿠>의 토키와 엄마의 말처럼 '젊음이라서 섬세하고 결벽할' 수 있으니까. '섬세하고 결벽하면서' 행복하다 느끼기는 쉽지 않으니까. 고약한 취미가 분명하지만 숨막혀 어쩔 줄 모르는 하구미를, 얼굴 붉히는 마야마를, 야마다를 보고 있으면 내가 행복해지니까, 그러니 너무 많이 아파하지 않게만 해주길. 눈물 흘리는 야마다에게는 손잡아주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모리다가 항상 옆에 있기를.
<허니와 클로버>를 첫 번째 읽었을 때는 그 복작복작함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간히 재밌고 독특했고, 드문드문 싸한 아픔을 느꼈던 정도였다. 다시 읽었을 때 처음보다 사람들 사이의 엮여진 끈이 선명해지자 조바심 때문에 놓쳤던 다른 부분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노다메왕국의 백성이 되어야 비로소 <노다메 칸타빌레>의 참맛을 알 수 있듯이 <허니와 클로버>는 그 아이들이 사는 작은 공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때서야 그 섬세한 디테일들을 느낄 수 있다. 기린을 통째로 빨아들이는 눈을 가진 자그마한 콜로보클 하구미가 사는 마을, 훌쩍거리며 밤길을 걷는 야마다 뒤에 리더를 데리고 슬그머니 나타나는 노미야씨가 있는, 자아를 찾아 떠난 다케모토와 그를 기다리는 교수님이 있는 마을. 끝없이 하늘로 하늘로 향하는 탑을 쌓는 다케모토와 거대한 캔버스를 앞에 두고 앉은 요정처럼 작은 하구미의 작업실이 있는, 초콜릿과 민트와 산딸기향이 나는 도시락을 싸서 벚꽃놀이를 가는 하구미와 야마다가 있는 마을.
그리고 마을 어귀에는 석양을 등지고 천천히 돌고 있는 낡은 관람차가 있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