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절경 속을 지나는 줄도 모르고, 같이 걷는 동료들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행자들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 둘러싸여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란 건 그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길동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10쪽
... 이 영화는 가출한 열네 살짜리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시골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이야기다.
돈 한푼 없이 폐가에 숨어사는 그들은 사랑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길게 갈 리가 없다. 남자아이가 시장에서 훔쳐온 생선 한 마리를 둘이서 나누어 먹는 식의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남자아이가 마을 투우장에서 청소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꽉 들어찬 관중 속에 소녀의 모습이 있다. 막 시작된 소싸움에 자릴 박차고 일어나 열광하는 관중 속에서 소녀만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다. 경기의 피날레에 소가 죽임을 당하고 투우사가 퇴장한 다음, 다음번 시합을 위해 경기장 청소가 시작된다. 흥분이 사그라지면서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그 속에서 소녀가 용감하게도 혼자 일어난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소년을 향해 소녀는 환호하며 자랑스럽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리면 갑자기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시라도 내가 경기장을 청소한다고 하면, 누가 그 많은 관중들 속에서 날 위해 일어나 줄까? 그리고 날 위해 일어서 준 사람을 나는 과연 그 소년처럼 소중해 생각해 줄 수 있을까? -168-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