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구판절판


어느 날 저녁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일할 때는 말 걸지 마슈! 뚝 부러질 것 같으니까.
-부러지다니, 조르바, 그게 무슨 말이오?
-또, <무슨 뜻이냐, 왜 그러냐> 하시는군. 꼭 애들 같이! 그걸 내가 무슨 수로 설명해요? 나는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가 잔뜩 긴장하여 이게 돌이 되고 석탄이 되고 산투리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두목이 갑자기 내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돌아봐야죠? 그럼 꼭 부러져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173쪽

사면을 내려가면서 조르바가 돌멩이를 걷어차자 돌멩이는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에서 가벼운 놀라움을 읽을 수 있었다.
-두목, 봤어요?
-......
-사면에서 돌멩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212쪽

과오란 고백으로 반쯤은 용서가 된다고 합니다. -234쪽

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지에 도달했답시고 한번 과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조르바는 그 긴 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385쪽

조르바가 한바탕 웃고는 말을 이었다.
-... 인간이란 참 묘한 기계지요.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홍당무 같은 걸 채워 주면 그게 한숨이니 웃음이니 꿈이 되어 나오거든요. 무슨 공장 같지 않소. 우리 대가리 속에 발성 영화기 같은 거라도 들어 있나 봐요.-393쪽

꺼져 가는 불 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432쪽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至高)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450쪽

-교장 선생,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 성사를 하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 한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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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450 페이지!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superfrog 2005-07-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 저 단락에 얽힌 이야기 쓰려다가 스포일러라서 지웠어요..
아무튼 읽으며 계속 님이 생각났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래서 어쩌란거냐..-.- 저도 몰라요..;;)

비로그인 2005-07-2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어억! 여름 휴가 때 계획해 둔, '도서초토화대작전' 목록에 당장 끼우겠슴돠!! 두근두근~

superfrog 2005-07-2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도서초토화대작전! 저도 당장 세우겠슴돠!!
(일년 열두달 세우고 있긴 해요..;;;)

어룸 2005-07-2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하루만 더 빨리 써주셨더라면 어제 장바구니에 요것도 넣는거인디!!! 안타깝슴당...쿠폰이 8월1일까지이니 그 전에 또 지르겠구만요...어흑!!! 똑 부러지는 거부터 다, 무척 맘에 듭니다!! ^^

icaru 2005-07-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93,,,, 432... 저도 이 부분은 밑줄 쫙 그었다는~*

superfrog 2005-07-2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ofool님, 또 지르세요!!^^ 뚝 부러지자구요!ㅋㅋ
icaru님, 복순이언니님으로 언제 돌아오실건가요?^^ 조르바 읽기 전에 '아, 귀여운 조르바'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는데요, 다 읽고 나니 저도 똑같이 귀여운 조르바,라고 하게 되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