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화자인 '나'는 일 평생 세 번 결혼 한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최고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였지만 겉과 속이 다른 <속물俗物>적인 인간이였다.

‘그는 겁쟁이이고,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였다. 순 엉터리였다. 그의 본심은 돈과 명예에 기갈이 들려 있었고 T시와 T대학 강사 자리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곳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억울해했고, 서울의 일류대학에서 자기의 명성을 흠모하고 모시러 오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대한 자신이란 것이 또 사람을 웃겼다. 자기의 전공 공부에는 게으르고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잡문 나부랭이나 써가지고 지방 신문을 통해 매명을 부지런히 해쌓는 것으로 그런 엉뚱한 자만을 갖는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는 그의 글을 통해 결코 도시 돈 명예에 대한 그의 절실한 연정을 눈곱만큼도 내비치는 일이 없이 늘 신랄한 매도를 일삼는다는 거였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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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俗物]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 되어 있다.

-교양이 없으며 식견이 좁고, 세속(世俗)적 이익이나 명예에만 마음이 급급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순 우리말에는 원래 '속물'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영어에서 '속물'을 의미 하는 단어는 snob이다.

영국인들이 처음 만난 이들에 대한 뒷담화 같은 걸 할 때 '저 사람은 속물(snob)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들먹거리나 거만스러운 이들에게 snob이라고 한다.

snob이라는 단어는 잉글랜드 지역에서 널리 통용되었던 단어가 아닌 뜻밖에도 스코틀랜드어로 처음 의미는 속물이 아닌 하인(servant)이나 상대의 지위가 낮을 경우 남성(boy)을 얕잡아 볼 때 쓰는 단어였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자 독일 작센 공국의 알버트 공(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은 상공업으로 부를 일으켜서 영국 산업 전반에 큰 투자로 기술 혁명을 이끈 신흥 부르주아들의 자녀들에게도 캠브리지 대학 입학 기회를 열어 주었다.

이 시기 부터 영국 귀족들은 캠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졸업 특혜를 받은 평민 출신들이 자신들의 특권 영역에 침범 하자 그들의 행태를 얕잡아 보면서 평민을 의미 하는 단어인 'sinenobilitate'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길게 내뱉지 않고 축약해서 snob이라고 내뱉으면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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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사용하는 snob에는 여러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로지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쓰는데만 몰두 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모두가 좋다고 하는 걸 무조건 선망하는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인간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쓰는 snob과는 의미가 상당히 멀고 이민자들이나 외국인들 그리고 십대들은 '저 인간 **없다'라는 의미로 아주 많이 쓰고 있지만 영국 본토인들이 쓰는 이런 은어적 의미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국에서 속물俗物이라는 단어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영어 snob에 한자어를 조합해 속물俗物이라 명명했는데 속인(俗人)스러운 인간의 의미로 6세기에 일본에 전파된 불교에서 널리 통용되었던 단어였다.

박완서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의 두 번째 남편은 지방신문사에서 유명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인물로 돈이나 명예 같은 건 초월하고 오로지 취재와 글쓰기에 몰두 해 보이는 남자였다.

두 번째 남편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속물>이라는 걸 깨닫고 세 번 결혼하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세 번째 남편은 어떤 부류의 남자였을까?

'과연 그는 그의 철저한 배금주의를 조금도 위장하러 들지 않았다. 한 밑천 잘살아보자 그의 동분 서주는 이 한마디에 요약 됐다.'

세 번의 결혼 모두 이혼 도장을 찍어버리는 주인공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자신이 선택한 세 명의 남자와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주인공은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동생들과 피난을 다니는 동안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게 되자 어머니의 등에 떠밀려서 미군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된다.

태생적으로 조그만 실수에도 부끄러워 하고 자잘한 칭찬에도 창피함을 느꼈던 주인공은 전쟁-가난 그리고 세 번의 이혼으로 어느 덧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성격이 된다.

세 번의 결혼에서 이혼 도장을 찍고 다시 혼자가 된 주인공은 어느 날 종로 한 복판에서 일본 관광객을 이끌고 다니던 한 가이드가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일본어를 듣게 되자 그녀의 가슴에 '부끄러움'이란 등불이 켜진다.

그녀의 속물스러운 세 명의 남편들 모두 태생부터 속물적인 인간은 아니였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부끄러움으로 무장 했지만 전쟁이 터지고 악착 같이 살아남아 잿더미와 폐허 속에서 삶을 일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속물>적인 인간이 되었다.

살기 위해 부끄러움을 버린 남자들 그 남자들을 세상에서 독하게 살아남게 만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세파에 시달리면서 서로 다른 인생의 갈림길에서 실타래처럼 엮여져 있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툭하면 '이 웬수 같은 놈의 새끼들' 하며 아이들을 불문곡직하고 흠뻑 두들겨 패주는 버릇이 생겼다. '이 웬수야 뒈져라 뒈져, 칵 뒈져' 하며 정말 전생의 원수라도 노려보듯이 아이들을 노려보며 삿대질을 하던 무서운 어머니와 아이들의 악머리 끓듯 하던 울음소리를 나는 지금도 끔찍스러운 지옥도의 한 폭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영미권 국가와 달린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 문화와 관습에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울타리 속에서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이 철저했다.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했고 역사 앞에서 후대인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기도 했다.

'부끄러움'은 사회에서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모든 것들과 연결 되어 있다.

가족끼리 '부끄러움'을 모르면 드러나지 않게 상처를 입게 되고 학교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면 폭력, 왕따등의 험하고 위험한 행위로 이어지고 직장에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거나 속해 있는 팀원 전체에게 큰 불이익을 주게 된다.

이 '부끄러움'이 가정과 학교, 사회로 확장해 나가게 되면 우리 사회 곳곳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얼마 만큼의 피해를 입고 있는지 각종 사건, 사고를 통해 훤히 드러나고 있다.

애초에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면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살게 된다.

죄를 지어도 그 죗값에 맞는 형벌을 받지 않게 되니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부끄러움 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상식보다는 음모, 이성보다는 분노,탐욕, 기회주의, 불안감이 얽히고 설켜서 ‘내편’과 ‘네편’을 가르고, 네편을 비판할 때는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내편 비판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사회에 중심이 되어야 할 정치인과 지식인층은 자기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이 나오면 불복과 인신공격으로 대응하고, 반대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에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낯 뜨거운 언행이 일상화 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뻔뻔한 모습을 전 국민에게 자랑하듯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언론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전통 미디어 매체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더 지피고 있다.

부끄러움은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부끄러움을 알면 개과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면 금수와 다를 바 없다

앞으로 이 사회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만 살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

'부끄러움은 학습할 수 없다.

어디서 배워 얻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혹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나을꺼다.'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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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9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한국은 체면과 남의눈을 많이 의식했다면 현대는 빠른 도시화와 개인주의 확산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나에게 이득이된다면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실리적 사고가 고착되어 부끄러움이나 수치는 개나 줘버린 세상이 된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누가 뭐래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입을 똑바로 보면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이나 뺨으로 시선을 옮기면 입꼬리가 올라가 보이는 모나리자는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볼 때와 곁눈으로 보는 시선이 관람자를 따라오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신비한 초상화로  전 세계에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섬세한 붓놀림으로 영혼을 표현 할 뿐 아니라 보는 이의 시선까지 빼앗는 신비한 초상화 모나리자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시칠리아 동북쪽 항구 도시 메시나에서 태어난 천재 화가가 남긴 작품이 있습니다.

인간이 진짜로 바라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인간이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지 그 의미를 되돌아 보게 만든  <수태고지의 마리아>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과 도판 그리고 정성껏 쓴 에세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Scott Bonnard - YouTube 채널에서 감동의 깊이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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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국제 스포츠 경기 운영을 보여주고 있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국가 대표팀의 값진 메달 사냥으로 어수선한 시국의 추석 연휴 동안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 웃음을 안겨 주고 있다.

심판의 편파 판정과 피 말리는 1점 차 한일전에서 얻어낸 극적인 금메달은 물론이고 비인기 종목 스포츠에서 메달을 목에 건 한국 국가 대표팀은 일본 측 경기 운영 미숙과 악조건인 환경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과다.

중국과 일본의 인구 수 대비 올림픽 종목 스포츠를 훈련하는 인재풀이 가장 얕고 적은 한국엔 타고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성실함과 영민함,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천재적 선수들이 있다.

 젊은 스포츠 인재들의 피, 땀, 눈물을 왕창 뽑아 먹는 협회 어르신들이 대를 이어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대한민국의 인재다.

추석 당일, 서울은 비가 내려서 보름달을 찾아 볼 수가 없었지만 다음 날 구름이 걷힌 늦은 저녁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음력 8월 15일 추석에 당연히 보름달이 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지 못한 해도 적지 않게 많다.

영상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처럼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으면 보름달이 되고 

달은 태양이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모양이 달라진다.

9월의 황금  연휴가 끝나간다.

두 발로 페달을 밟고 양 손을 쉼 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풀칠 하기 힘든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휴일 동안 스마트 폰을 내려 놓고 달님에게 로또 당첨 소원을 빌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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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10월 황금연휴가 오니 기대해 봐야지요^^
 

한 때 매장마다 오픈런을 해도 순식간에 동나 ‘없어서 못 먹는’ 디저트 였던 두바이 쫀뜩 쿠키 열풍이 지나고 나니  오랫 동안 ‘어른들이 먹는 간식’ '명절과 생일날에 먹는 간식' 정도로 여겨졌던 떡이  sns를 뒤덮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 지하 1층에 자리한 떡집은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화려한 디저트로 빼곡하게 진열대를 채운 유명 빵집과 케이크 전문점을 밀어 내고 그 자리에 앙버터절편, 과일찹쌀떡, 요거트찹쌀떡에 이어 피자설기 같은 새로운 비주얼과 맛을 유혹하는 떡들이 차지 하고 있다.

전통적인 찹쌀떡 안에 딸기·키위·귤 복숭아·블루베리·샤인머스캣이  요거트 크림으로 채워진 떡 속에 큼직하게 박혀 있어서 크고 선명한 생과일 단면, 얇고 말랑한 찹쌀피, 크림을 층층이 보이게 만든 비주얼로 케이크나 고급 디저트 따위에 시선을 뺏기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유행한 디저트들은  뚱뚱했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마카롱은 코크(껍질) 안에 필링(크림)이 은은하게 들어간 디저트인데 한국에 와선 필링이 몇 배는 커진 ‘뚱카롱’으로 재탄생했고. 와플도 크림·과일 등 속재료를 가득 채운 ‘뚱와플’로 변종되었다.

전문 베이커리 샵 뿐 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판매 되었던 두바이 쫀득 쿠키는  초콜릿 안에 카다이프를 얇게 펴 발라 넣는  ‘두바이 초콜릿’과 달리 한국에서는  달달한 피스타치오 크림에 버무린 바삭한 카다이프(중동식 국수면)를  꽉꽉 채워 넣고 쫀득한 마시멜로로 감싼 뒤 코코아 가루를 묻힌 두바이 쫀득 쿠키로 재 탄생 했다.

출시 즉시 완판과 줄서기 대란을 일으키며 대전을 빵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게 만든 성심당의 과일 시루 케이크 시리즈는 한국의 전통 잔치상에서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을 ‘고임상(또는 고배상)의 비주얼과 흡사하다.


왕실이나 회갑(환갑), 희수 등의 장수 축하 잔치에서는 권위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약 30~50cm(1자 3치~1자 9치) 높이로 음식을 높게 고였던 한국의 음식 전통 식문화는 재료와 맛의 균형·조화 대신 시각적 압도감이 중요해서 지난 시절 우리 조상 어머님들은 정성 들여 잘 만든 3첩 반상보다 맛없어도 상다리 휘어지는 10첩 반상을 차려야 했다.

그동안 한국은 국민의 쌀 소비량이 매년 1~2%씩 감소할 뿐만 아니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 쌀 관세화를 20년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해서 쌀이 남아도는 나라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인기 몰이를 하는 디저트를 밀어내고 ‘쫀득’, ‘쫄깃’, ‘부드러운 떡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져서 명절 때나 잔치 때 돌리는 떡이 아닌 새로운 디저트로 거듭 변신하고 있다.

​ 맛이 강하지 않은 쌀과 변화무쌍한 덧재료가 합쳐지면 무슨 떡이든 ‘꿀떡’ 먹게 되는  한국 떡의 인기가 전 세계로 무한 확장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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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윤복의 '월야밀회',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휘영청한 둥근 달빛 아래   담장 너머로 여인을 끌어안고 있는 남자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옷차림새를 자세히 살펴 보면   남색 전대를 맨 자주색 전복을 입은 남자는  검은 바탕에 붉은 테를 두른 전립을 쓰고, 왼손에  철편(鐵鞭)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신분은 경계 근무를 서는 포교나 군관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남자에게 밀착된 여인은 자주색 깃을 단 회장저고리에  접어 올린 푸른색 치마를 흰색 띠로 묶고 녹색의 장옷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얹은 머리에 꽂혀 있는  머리 장식은 조선 시대에 왕비를 비롯한 상류 계층 여자들이 특별한 날에  꽂았던 떨잠이다.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담장 너머의 보름달의 위치만으로 볼 때는 보름달이 낮게 뜬 저녁이나 새벽 쯤으로 추정된다.

 야간 통행 시간이 있었던  조선 시대는  도둑ㆍ화재 따위를 경계하기 위하여 2경(更)에서 5경(새벽 두시에서 5시 사이) 사이에 궁중과 장안 안팎을 순시 했다.

궁 밖은 지휘가 높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에서 파견한 군관들이 순시 했고 궁성 주변은  오위장과 부장이 군사 다섯 명씩 거느리고 순시했다.

고위 관직에 있는 양반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사는 사대문 안 구역은 좌·우포도청에 소속된 하급 직위의 군관들이 관리 했는데 이들은 사냥에 능한 비천한 계급 출신인 포졸을  뽑아서  일반 구역의  치안을 맡겼다.

신윤복이 살던 시절인 18세기 조선 후기의 기생들의 단골 손님들 중에서 포교 출신들이 가장 많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기생들이 낳은 아이들의 양아버지 노릇을 해주거나 호위무사 같은 기부(妓夫)가 되어 주었다.

 남자는 순시를 도는 새벽녘 인적이 드문 담 벼락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을 만나고 있고 그림의 오른 쪽에는  두 남녀의 은밀한 행동을 엿보고 있는  여인이 옆 담장에 바짝 붙어 서있다.

쓰개치마를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친 두 남녀의 만남을 질투 하고 있는 건지 재회를 주선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의 제목이 <월야밀회(月夜密會)>인 것으로 보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밀회를 즐기는 남녀와 제 3의 여인을   화공 신윤복이 건너편 담벼락 아래 낮은 자세로 몰래 숨어서 이 스케치 했을 것이라 짐작 된다.

신윤복이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사물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시대여서 그가  그린 그림 속 달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을 후대인들이 천문학적으로 분석해서 그린 날짜와 시각까지 유추 할 수 있다.

풍속화 30점을 묶은 화첩인 《혜원전신첩》에 포함된 <월야밀회(月夜密會)>는 달이 뜬 높이와 크기 형태와 색을 분석한 천문학적 현상을 토대로 추정 해 본다면 19세기 초 음력 8월 15일에서 17일 전후에 완성한 그림이다.

2026년 9월 추석 연휴 첫 시작 날 부터  구름에 가려져서 보름달을 볼 수 없었다.

매번 같은 자리에 떠 있을 것 같은 둥근 달은  추석 당일이 아니여도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는 날을 포착하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달은 태양이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에 따라 매번 모양이 달라지고 있고  눈으로 감지 할 수 없을 정도로 해마다 평균 3.8㎝씩 달은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달은 태양의 주기에 따라 회전을 할 때 마다  약 38만㎞ 떨어져 있는 지구에서 가까울 때는 약 36만㎞, 멀어질 때는 40만㎞ 이상 떨어진다. 

이 거리 변화로 인간의 눈에 달은 

 크게 보이는 ‘슈퍼문’이 되기도 하고, 작게 보이는 ‘미니문’이 되기도 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남긴 레이저 반사경과 아폴로 14·15호가 추가한 반사경을 통해 50년 넘게 관측한 결과 달은 매년 평균 3.8㎝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구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 분포가 달라지고, 이에 따른 조석 마찰로  지구의 회전 에너지는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잃은 에너지는 달 궤도로 전달돼 달의 후퇴를 앞당기고 있다.

이러한 천문학적인 달과 지구의 관계를 알지 못하더라도  태양 - 지구 - 달 순서로 자리를 잡으면 보름달이 되고 1년 중 음력 8월에 뜨는 추석 보름달은 오랜 세월 풍요와 화합의 상징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떠오르는  둥근달은 늘 변치 않는 존재 같지만 달은  시대마다 궤도 변화 속도가 달라져 왔다.

달이 탄생한 시각이 약 43억5000만 년 전이니  달이 이끄는 조석력에 따라   자전 하고 있는 지구는  수십억년의 시간 동안  해양과 대륙의 이동이  일어났고 수 많은 생명들이 태어났다가 멸종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 하지 않는 지구 상에서 인간 종(種)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태어나, 찰나의  시간 속에 살다, 영원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따라서  지구 상에서 시 공간을 초월해서 영생하는 생명체가 없다.

 해마다 평균 3.8㎝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달은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를 지나 알 수 없는 미래로 끝없이 나아가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의 화살’과 같다.

오늘 25일을 기준으로 2026년의 한 해의 시간이 정확히 97일 남겨 두고 있다.

달이 지금 속도로 계속 멀어져서  언젠가 지구로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해도 아직까지 지구는 돌고 있고 오늘 밤 1년 중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

오늘 떠오르는 보름달에게 남은  2026년 무탈하게 보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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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9-26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달구경을 못해 너무 아쉽네요. 정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