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체류 할 때나 여행 할 때 가장 이해 하기 힘들고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바로 팁(tip)문화다.

사람의 노동과 일 손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 했을 때 소비자가 내는  팁이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감사 표시 정도가 아니라 음식점이나 카페와 같은 서비스 매장에서 직접 접객 서비스를 받는 경우 소비자가 원하지 않아도 팁을 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식당 서버나 호텔 근무자들에게 팁을 주는 것이 관례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도 있는데 가령 외식업이나 숙박업 일부 직종은 팁을 받는다는 가정하에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주 마다 다르지만 일반 직종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인 주 일 경우에 이른바 ‘팁 근로자’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2.13달러로 일반 직종에 비해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렇게 팁 근로자의 팁을 포함한 총수입이 일반 직종 최저임금보다 낮아질 경우  고용주가 이를 보전해줘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최저 임금 구조 때문에 미국인들은 대체로 식당 서비스를  받을 때 면 팁을 적게 주는 것은 무례하다고 본다.

하지만 매일 무언가 사 먹거나 서비스 업종을 이용할 때마다 야금 야금 세어나가는 비용 지출의 압박도 만만치 않아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팁을 주지 않아도 되는 푸드 트럭이나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 그리고 드라이브 인 스루나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곳에서 음식을 사 먹는다.

하지만 코로나가 급속하게 확산 하던 시기에  가장 먼저 미국 식당과 서비스 업종이  큰 피해를 입어서 매출이 급락하자 많은 직원들을 해고 하고  키오스크를 매장에 들여 놓게 되었고 배달 앱을 통해 음식 주문 하는  서비스가 보편화 되었다.

이 시기 부터 사업체 업주들이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과거엔 식사를 마치면 테이블에 지폐 몇 장을 남기거나 결제할 때 ‘Tips’이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으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는 총 인원수 마다 10퍼센트 정도 팁을 내어서 테이블로 서빙해 준 직원에게 한 꺼번에 건네기도 했다. 

신용카드로 결제 할 때는 팁을 몇 달러로 할 지를 볼펜으로 따로 써넣었다.

보통 현금으로 팁을 줬지만 서비스가 좋지 않아도 암묵적인 압박에 마지 못해 팁을 줘야 해서 식당을 나온 후에는 기분이 찜찜했다. 특히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 할 때 마다 서빙 직원이 수시로 다가와 필요 한 건 없는지 묻는 것 조차 부담이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불편한 미국의 팁 문화는 코로나 이후로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전에는 마트에서 직접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결제 할 때도 팁을 내지 않아도 되었고 편의점,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포장(to go) 전문 매장에서도 팁은 적용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상업 지구에 자리한 가게 마다  태블릿PC 등을 이용한 디지털 지급 결제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 버젓이 18%, 20%, 22%, 25%까지  금액별로 팁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건에 적힌 가격은 전과 같지만 모든 물건을 계산 할 때 마다 꼬리표 처럼 팁이 따라 다녀서 소비자가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 가격은 몇 배로 폭등하고 있다.

 미국에서 팁이 왜 강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팁문화의 시작은 신분제 계급 사회였던 영국에서 시작했다.

 귀족들이 다른  귀족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서비스가 좋았던 귀족의 하인에게 돈을 주기 시작했고  이러한 문화는 영국의 티(tea)하우스나 커피하우스와 같은 서비스 업종으로 확산이 되었다.

세계 전쟁을 겪고 난 후 전쟁터에서 전사한 귀족들과 봉건 지배적인  계급 사회의 붕괴로 인해 조상대대로 물려 받았던 대 저택이 매물로 나오면서  일자리를 잃은 하인들이 도시 중심가의 식당과 숙박업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주인 귀족 가족에게 했던 서비스가 영국 전 상업 시설로 확산 되면서 ‘빠른 서비스 보장’(TIP :To Insure Promptitude)을 해주는  대가로  별도의 돈을 병이나 상자에 넣는   귀족의 팁문화가  보편화 되었다.

미대륙의 산업 부흥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 부자들이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유럽 귀족의 팁 문화를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이 팁문화는 남북 전쟁 이후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에게 주는 문화로 변질 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흑인들에게 최저 임금까지 책정 하기 싫었던 미국은  고정된 임금이 아닌 불규칙한 팁을 노동의 대가로 지불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백인 가정의 입주 도우미로 들어간 흑인이나 운전사들 모두 고정 월급이나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했다.

주인이 기분이 내키는 데로 동전을 던져 주었고 상점이나 공장의 일용직 흑인 노동자들이 성실하게 일할 때만  팁을 줬다.

영국의  귀족과 하인이라는 신분제를 잔혹한 흑인 노예제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미국에서 팁 문화에는 ‘인종 차별’의 문제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역사적으로 팁 문화가 뿌리 깊은 영국에서는  서비스 근로자에게 주는  팁 문화가  ‘비민주적이라’는  사회적 반감으로  현재 팁에 대한 강제성은 거의 없고 다른  유럽에서는 국가 마다 팁 문화가 사라진 곳이 많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주 마다 최저 임금 보장법이 다르고 사업체 마다 고용 기준이 달라서 고정된 임금이 아닌 불규칙한 팁을 노동의 대가로 받는 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현재 미국 51개 주 중 8개를 제외한 43개 주에서 팁 받는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주는 기본급을 법정최저임금 미만으로 정하는  팁 크레딧(tip credit)가 있다.

가령, 팁 근로자의 연방최저임금이 시간당 $ 2.13일 경우 식당을 경영하는 사업주들은 직원 한 명당 $ 2.13만 지불 하고 나머지 일반 연방최저임금에 해당되는  $7.25에서 부족한 부분은 손님이 주는 팁으로 채우면 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음식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법안이 없고 직원들은 식당 내 테이블을 하나씩 맡아서 손님 머릿 수에 맞춰 팁을 영리하게 받아 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팁 폐지 법안’이 제기될 때 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한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음식점을 찾는 손님이 줄면서 종업원과 고용주 모두 경제적 손실이 커졌다는 이유로 매대에서 빵을 꺼내 주는 직원에게나 물건을 비닐 봉지에 담아 주는 직원이나 테이크 아웃을 할 때도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으로 결제를 유도 해서 강제적으로 팁을 악착같이 손님에게 받아내고 있다.

몇 년 전 미국 시카고의 어느 유명 요리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의  햄버거를 먹어 보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추가할 부속 재료들 전부 넣지 않고 머스터드, 케찹, 그리고 감튀도 선택하지 않았고 심지어 밀크셰이크나 콜라도 주문 하지 않았다.

포장 비용 금액 1달러가 추가 되어서 합산 가격을 확인하니 총 20불을 결제 버튼 창이 열리기 전 15퍼센트-20퍼센트-노 팁을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노 팁을 누르고 결제를 시도 하자 결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15퍼센트를 누르니 결제 창이 떴다.

그 날 달랑 햄버거 한 개를 먹는데 35불을 지불 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 폭등으로 인한 고물가 시대에 한국에 한 끼 식사로 포만감과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 햄버거의 인기는 치솟고 있고  햄버거에 서비스 포장 팁까지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대도시 뉴욕 맨해튼에서는 노란 소스와 하얀 설탕이 뿌려진 한국식 핫도그를 줄을 서서 먹고 있다.

https://youtube.com/shorts/4xyxakBSmVA?si=tFuSuJOAdn-jv8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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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공업 중심의 2차 산업에서  1990년 서비스업 중심의 3차 산업으로 전환 하던 영국 사회를 뒤흔드는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업 했던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과 다른 행보를 펼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평론가들은 YBA(Young British Artist)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습니다.

 YBA(Young British Artist)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예술가들은  영국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진행되었던 세계화 정책에 걸 맞는 광고계의 큰 손 찰스 사치의 후원을 받아 1997년 <센세이션> 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 다음 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팔리면서  전 세계 미술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 돌풍의 중심에 선 예술가 데미언 허스트는 20대 초반 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 부합하는 오브제를 찾아 다녔는데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친구를 따라 리즈의 시체 안치소에 들어가  잘린  시체의 머리 옆에서 활짝 웃는 얼굴을 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서 예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다녔습니다.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죽은 사체와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작품으로 제작한 데미언 허스트는 초파리들이 일순간에 때 죽음을 맞는 작품을 전시장에 설치 해 놓아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안기면서 이런 것이 과연 예술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후 그는 죽은 상어를 방부액에 담가 놓은 작품<살아 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육체적 불가능성>을 시작으로  갖가지 철학적 사유를 담은 제목을 붙인 동물의 사체를 미술관에 끌어다 놓아서 동물 애호가 단체로 부터 집단 공격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금방이라도 관객을 덮칠 듯 생생한 모습으로 보존된 상어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유리 수조 안에서 부패하지 않는 살덩이를 가진 생명체가 되어 관객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도 나와 같이 영원히 영생 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가?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경고를 담은 바니타스 화풍의 후계자라고 자처한 데미언 허스트는 2007년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을 공개하면서 전 세계 문화 예술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던 18세기 30대 중반에 죽은 남자의 진짜 해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10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이 작품은 영원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해골로 둔갑 시켜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제목<For the Love of God>는 데미언 허스트의 어머니가 아들의 새로운 작품 계획을 들을 때마다  내뱉던 감탄사 " 세상에(For the Love of God), 다음엔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니?"라는 말에서 차용한 제목입니다.

독실한 카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데미언 허스트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다고 전해지는  열 두명 사도 중 한 명인 성 바르톨로메오를  벗겨진 피부 가족을 한 팔에 걸치고 양 손에는 해부용 도구인 가위와 메스를 들고 서 있는 성인의 모습으로 조각 해서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종교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잘린 소머리 파리 유충, 살충기로 구성된 설치 작품을 삶과 죽음의 순환으로  시각화 하는 작업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함께 찾아 오는 죽음의 공포, 생존을 향한 본능 그리고 허망한 죽음에 이르는 생의 주기가 얼마나 냉정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전시장에 펼쳐 보였던 데미언 허스트는 2019년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 넣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대형 캔버스에 일정한 시기에만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지는 벚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듯이 영원히 피어 있지 않기에  짧지만 찬란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벚꽃은  데미언 허스트가 평생 추구했던 아름다움, 삶,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습니다.

수천 마리의 실제 나비 날개를 사용하여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현한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라는 작품은 멀리서 바라 보면 나비의 죽은 사체로 만든 날개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이 모든 아름다움의 빛은 수 많은 생명체의 죽음에 의해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경고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데미언 허스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술은 약과 같다. 사람을 치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데미언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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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양장)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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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데미언 허스트는  <프리즈(Freeze)> 전시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 yBA) 상을 수상한 이래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For the Love of God), , 포름알데히드용액에 박제한 상어(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등 파격적인 개념미술로 세상을  끊임없이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6년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의 컬러를 원형으로 표현한 회화 '스팟 페인팅 시리즈(Spot Painting)’를 시작으로 데미언 허스트는    ‘비주얼 캔디(Visual Candy)’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 작품을 연이어 펼쳐 보이며 본격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등장한 예술사조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러 전시 일정이 취소되자 데미언 허스트는 두툼한 브러쉬 스트로크를 들고 높이 5.5미터, 너비 7.3미터(18피트 x 24피트)에 물감을 찍어 나갔습니다.

자극적인 오브제로 섬뜩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지” 라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만드는 데미언 허스트는   대중과 평단의  비판과 찬사를 몰고 다녔지만   체리 블러썸 시리즈에서  전통 풍경화 양식을 차용해 동시대 화풍으로 재 해석  했습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일정한 시기에만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지는 벚꽃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회화적 실험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가장 먼저, 작은 점들을 찍어 형태와 빛을 만드는 점묘법(Pointillism)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계산된 질서와 구조를 중시 했던 조르주 쇠라의 기법을 탐구한 데미언 허스트는 후기 인상파의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피에르 보나르의 화풍도 참고해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 대비를 시키며 작가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물감을 흘리거나 튀기는 기법을 사용한 액션 페이팅 요소를 체리 브러썸 작품에 결합 시켰습니다.

영원히 피어 있지 않기에  짧지만 찬란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벚꽃은  데미언 허스트가 평생 추구했던 아름다움, 삶,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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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5-1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시 보고 왔는데요, 새삼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 이전에 눈물부터 차오르더라고요.
Scott님은,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무거나, 무엇이나‘. 저는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단,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 것 같아요. 참 허접한 생각이지요?

scott 2026-05-17 14:59   좋아요 0 | URL
나인님 댓글을 읽고 나서 새삼 예술이 무엇인지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는데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은 이미 앞선 창작물을 시대에 맞게 재 해석하고 편집하고 변주 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시대와 후원자 그리고 이런 저런 조건에 맞물리면 이름을 날리고 부를 축적 할 수 있는 셀럽이 될 수 있죠. ^^
 

현재 이륙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

안내 방송을 들으며 안전 밸트를 매고 좌석에 몸을 바짝 붙이는 동안 바로 옆에 앉은 승객이 극도로 불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거대한 동체가 움직이면서 서서히 지상에서 날아 오르는 순간 행여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팔걸이를 꼭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영혼들이 때때로 하늘로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후에 하늘에서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영혼의 상태가 좋으면 좋은 데로 나쁘면 나쁜데로  끝없이 추락과 상승을 반복하며 440년의 주기로 영혼들이 각자의 크기에 맞는 인간의 몸을 찾아 들어가 무한한 변천을 거듭해 살아 가는 동안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 , 행복과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라 믿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순간도 정지되어 있지 않고 이리저리 요동치며 불길처럼 치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하루에도 여러 번 영혼이 이탈할 정도로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며 퇴근 시간만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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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은 오늘 무엇을 먹을까? 일 것이다.

아침의 눈을 뜨자 마자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컵을 넘기고 나면 몸 속에서 무언가 먹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도 주 중에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고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점심은 편의점 그리고 저녁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우리는 하루 중 최소 한 끼를 외식으로 해결 한다.

멋지고 근사한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대야크기 만한 그릇에 딱 한 줌 크기의 파스타와 몇 스푼만 떠먹으면 사라지는 리조또를 먹어도 한끼 식사 잘했다는 감정의 포만감으로 채워진다.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마음만 있는 음식’과 ‘마음도 없는 음식’으로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언가 먹고 싶을 때면  스마트 폰을 터치 해서 앱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마트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른 재료들을 손질 해서 한 끼 식사로 차려 먹는 맛은 유명 호텔 셰프의 손 맛과 비교 할 수 없다.

냉장고 문을 열어 손에 잡히는 재료들을 꺼내 두 손을 움직여 요리 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꿈에 그리던 런던, 뉴욕, 나폴리의 그 맛이 내 식탁 위에 차려 진다.

먹는 법을 아는 건 무엇보다 인간의 영혼-육체적 존재의 속성을 아는 것이다. 식사는 다른 모든 행위와 더불어 정신, 육체, 마음, 영혼이 한데 모일 때 가장 만족스럽다.

-줄리언 바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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