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 가자 -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최영철 지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원래 이 글은 3월 19일 이후에 공개해야 할 것이었다. '전국토론논술대회'의 필독 도서이기 때문이고, 내가 때아닌 '동화'를 읽은 것도 '일' 때문이다. 하지만, 베끼지만 않는다면, 여기까지 와서 이 글을 읽게 될 '참가자'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올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논술버전'으로 리뷰를 썼다. 제시문과 그에 대한 간단한 메모인데, '리뷰'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도록, 특히 '정떨어지지 않도록' 쓰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스포일러도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스토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 데서 그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는 '일반 버전'과 '논술 버전' 두 가지로 쓸 작정이었으나, 이 책이 무슨 '상전'이나 된다고 서평을 두 번이나 쓸까. 그 만한 정도의 책은 아니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고양이의 특징과 비유를 많이 땄으며, '어린왕자'의 이야기도 제대로 녹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가 유기적이지 않다. 왜 그렇게 '조력자'는 많이 나오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인가, 일부러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조력자들 등장시키는 것을 '무엇'이라고 했는데, 그 '무엇'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문학 이론'에 빈번이 등장하는 말인데. 특히 마지막 장면은 좀 실망이다. 에잇! 또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거 병 아닌가. 아무쪼록 '참가자'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길게 쓴 서두는 그냥 넘어가고 '좋은 의미', '좋은 글'로 된 본문을 많이 봐주기를 바란다. 그래도 처음으로 해보는 거라 재밌었다^^

우리도 한번 고양이가 되어 보자


논술의 시선으로 문학 바라보기


우리는 문학작품을 논술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논리적 전개에 의한 비문학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학이 비논리적 전개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도의 기법을 통해서 가려져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압축’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소한 방식으로 된 문학(소설)을 논술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모든 문제는 나를 향하며, 나로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이야기 안에 깊숙이 참여해서 갈등과 메시지를 양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극적 갈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비문학이 논거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듯, 문학 특히 소설은 이야기 안에 전개되는 ‘갈등’을 가지고 글쓴이의 주장을 전개한다. 따라서 소설의 핵심이 되는 주요 갈등을 분석하여 글쓴이가 보내는 메시지를 잘 해석해야 한다.

셋째, 이야기 안에서 사용되는 ‘상징’을 잘 해석해야 한다. 『나비야 청산가자』에서는 비교적 상징이 뚜렷이 명시돼 있다. 예컨대 ‘배불뚝이’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한다. 배불뚝이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유수의 기업에 입사하여 젊은 나이에 ‘대리’라는 위치에 올랐지만, 이야기 안에서는 ‘세속적이고 교양 없는 무식꾼’으로 묘사된다. 이 밖의 여러 가지 ‘상징’들을 찾아다니며 글쓴이가 감춰둔 메시지를 하나씩 들춰내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보물찾기와 같이 알쏭달쏭하고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넷째, 이야기를 이야기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현실에 자꾸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보았던 의미와 메시지는 현실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나의 현실과 작중 인물의 현실을 대조해보기도 하고, 나를 그 이야기 속에 넣어 보는 등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실의 목적과 길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름 없는 한 마리 고양이가 된다.(고양이는 ‘제석’이라는 의미 없고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 고양이가 되어서 본래의 야성(정체성)을 찾는 긴 여정을 함께 떠나 본다.


이상과 현실, 통념과 자각


#제시문 1

배불뚝이는 채리 아가씨네 식구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대체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철면피처럼 배불뚝이는 그런 환영이 당연하다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채리 아가씨는 잔뜩 얌전을 떨면서 배불뚝이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윽고 채리 아가씨가 헛기침을 한 다음 배불뚝이에게 물었다.

“직장이 어디라고 했지?”

그러자 배불뚝이가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채리 아가씨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이, 아빠두.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기업 대리예요, 대리.”

“으흠, 그렇다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 장인어른. 저는 채리 씨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배불뚝이는 자신감에 차서 거들먹거렸다. 장인어른이라니. 나는 기가 막혔지만 채리 아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배불뚝이를 내버려두었다. 배불뚝이의 태도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아빠. ○○기업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이고, 이 나이에 대리면 앞으로의 출세는 따 놓은 당상이예요.”

채리 아가씨가 한술 더 뜨자 배불뚝이는 불룩한 배를 한껏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채리 아가씨의 엄마가 무슨 신기한 보석이라도 보는 듯이 배불뚝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학도 그럼 거기를 나왔겠네? 거기, 거기 대학 말이야.”

이번에도 채리 아가씨가 낼름 대답했다.

“엄만. 그렇대두. 그 대학 안 나오고는 ○○기업에 들어갈 수가 없죠. 곧 일본이나 미국 지사로 나갈지도 모른대요.”

그래 놓고 채리 아가씨는 배불뚝이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에도 지사가 있다고 그랬죠?”

배불뚝이는 유치한 개그를 늘어놓던 그 교양 없는 말씨를 숨기려는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채리 아가씨는 황홀한 표정이 되어 있었고, 나는 비로소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망과 절망 속에 빠져버렸다. 배불뚝이가 일류 대학을 나오고 일류 회사의 대리라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바로 채리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요즘 우리들이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즉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는 죄를 지어도 벌을 안 받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죄가 없어도 죄인처럼 산다”는 말이다. 이야기 안에서 배불뚝이가 채리 아가씨의 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가족들은 마치 커다란 은혜를 베푼 사람을 대하듯 고분고분하다. 배불뚝이 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고양이는 배불뚝이와 종족이 달라 아무런 관습도 공유하지 않는다. 단지 배불뚝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일류 대학과 대기업이란 것이 고양이에게는 우습기만 하다.

우리는 미천한 고양이의 ‘눈’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서 있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본 적이 있을까.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와 전혀 다른 고양이의 눈, 우리와 전혀 다른 외국인의 입장,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비춰질까.

우리들이 ‘일류대’라 하며 떠받드는 대학들은 세계 대학 순위 100위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우물 안의 승자인 셈이다. 지식과 역량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학교의 서열은 종래에는 큰 의미가 없다. 

좋은 직장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정부 고위 공무원이 OECD에 파견갔다가 크게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기본적인 영어 회화와 작문이 되지 않아 함께 일하기 힘들다며 한국 정부에 불만 가득한 공문을 보낸 것이다. 배우지 못하고 못사는 사람들 앞에서는 떵떵거릴 수 있지만, 세계에서는 당당히 고개조차 들 수 없는 것이다.

제시문 1에서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여기서는 이상과 현실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류대, 일류 기업의 꿈은 나의 꿈인가 다른 사람의 꿈인가. 다른 사람의 무상한 꿈에 내가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꿈은 무엇일까. 배불뚝이가 가족에게 공언한 ‘채리 씨의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채리 씨는 과연 행복할까. 여러 가지 의문이 중첩되며 전달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리 씨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채리 씨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 채리 씨의 행복’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행복은 저당 잡혀 있는 셈이다. 별 볼 일 없는 통념 안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제시문 2

내 옆에는 늘 채리 아가씨가 있었고 나는 외롭다거나 불안하다는 등의 절박한 심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나는 내가 지키고 있어야 할 고양이로서의 야성을 많이 잃었다.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내 감각은 무디어졌고, 맛있고 부드러운 먹이에 내 이빨과 발톱은 녹이 슬었다.

내 어머니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야성이 내게 아직 남아 있을까?

나는 명상에 잠긴 채 몸을 뒤척이며 채리 아가씨의 식구들이 모여서 터뜨리는 요란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외로웠다. 온몸의 신경이 외로움으로 꽁꽁 얼어붙은 듯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나 혼자 이 넓은 우주에 내동댕이쳐질 날이 오리란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날이 밝자 식구들은 아침 일찍 찾아온 친척들과 어울려서 채리 아가씨를 데리고 모두 나가버렸다. 결혼식에 가는 모양이었다. 채리 아가씨의 결혼식에는 나도 꼭 참석해서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사람들이란 자기들 필요할 땐 뭐든 다 빼줄 것처럼 하지만, 일단 마음이 돌아서면 순식간에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쓸 만한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함부로 내버리는 걸 보면서,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버려지는 고양이나 개, 다른 애완동물들을 보면서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제야 스멀스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운명은 흐르는 물과 같고, 그 물은 험난한 고비와 울퉁불퉁한 기복을 만나면서 흐르게 되어 있듯이, 나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왜 진작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사람이란 고양이보다 더 변덕이 심해서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언젠가는 짜증을 내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고양이는 몇 십 년을 함께 살아도 결코 싫증나지 않을 존재라고 나는 너무 굳게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고양이는 개처럼 시종일관 충직하지도 않고 새나 열대어처럼 멍텅구리도 아니다. 우리는 감정의 표현에 충실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도 민감하다. 변화무쌍하고 시시각각 다른 기분을 연출해서 사람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그것이 고양이로서 내가 가진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고양이인 나 자신을 믿었고, 채리 아가씨에게는 내가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역시 나는 혼자 사는 아가씨의 심심한 시간을 채워 주던 존재에 불과했던 것일까.

가족들 모두 결혼식장으로 몰려간 텅 빈 집에서 그렇게 잊혀지고 버려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자 으스스 몸이 떨렸다. <본문 중에서>


제시문 2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우정, 사랑’,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채리 아가씨의 따스한 손길 안에서 고양이의 감각은 무뎌지고 이빨과 발톱은 녹이 슬어버렸다.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하나의 장난감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하듯 챙겨먹고 살이 뒤룩뒤룩 쪘다.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으로 비싼 게임 프로그램이나 사치스러운 장식품, 옷가지 등으로 몸을 감싼다. 운동량은 없고 공부 몇 시간 하면 나의 일과는 끝이 난다. 나도 장난감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내 스스로에 의해 하는 일은 몇 가지나 될까. 나는 나의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나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까.

사랑은 그 사람을 마냥 행복하게 한다거나, 쾌락만을 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곧게 세상에 설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주고,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고양이처럼 현실에 내던져질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따뜻하고 배불리 잘 지내오다 갑자기 현실의 벽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게 될 것이다.

“우정이란 두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던가. 채리 아가씨는 우리의 고양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적적하고 외로운 마음을 채우는 데 고양이를 이용하였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나타나면 더 이상 같이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정’이나 ‘사랑’은 아니다.

고양이도 몹시 후회한다. 아끼고 쓰다듬어주는 사람 앞에 너무 쉽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셈이다. 고양이가 고양이인 이유는 남다른 야성과 감각, 날카로운 발톱에 있다. 야성도 정체성도 매번 환기되지 않으면 낡고 녹슬게 된다. 자기 자신이 있고 나서 다른 사람과의 우정이 성립된다. 나의 영혼과 성격, 적성과 개성을 깡그리 버리고 그 사람을 좇겠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의 사랑까지도 포기하는 셈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장점을 북돋아주고, 커다란 단점이나 좋지 않은 습관이 있을지라도 시간을 두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스스로 설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이 아니라 ‘독’을 안겨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제시문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 ‘관계맺기’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과 자유, 그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제시문 3

하지만 나는 채리 아가씨를 생각하면서 갈색 고양이에게 말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어. 그것도 나쁘지 않아. 넌 누가 사랑해주니?”

“사랑? 난 혼자야.”

“혼자라고?”

“그럼.”

“누구를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하게 되면 자유를 잃어버려. 고양이는 자유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게 자유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뭐가?”

“사랑하지 않는 게 사랑하는 일이 된다니 말야.”

“그건 네가 사랑이란 걸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야. 사랑은 혼자 가지거나 누구로부터 얻어서 가지는 게 아니야.”

“가질 수 없다면 사랑이 무슨 소용이 있어?”

“지금은 내가 뭐라고 해도 이해가 잘 안 갈 거야. 네가 홀로 설 수 있을 때, 그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야.”

“난 그러고 싶지 않아. 홀로 서고 싶지 않아.”

나는 갈색 고양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홀로 선다니. 채리 아가씨가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떠나고 하던 때를 생각하면 두 번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잠이 잘 안 온다며?”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건…….”

“그래. 그건 밤이 되면 고양이의 야성이 발동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말야, 네가 지금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야.”

“난 만족하고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마.”

“어쨌든 지금부터 가끔 홀로서기 연습을 해 보는 것도 생각해 봐. 방랑자로 사는 재미가 어떤 건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갈색 고양이는 말을 마치더니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

어떻게 숲으로 간단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다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제는 혼자야.’

‘아무도 없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혼란한 생각들을 잠재우려고 되도록 한곳으로 생각을 집중시켰다. 방음벽 꼭대기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혼자라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것.’

‘홀로 서야 한다는 것.’

위험한 고속도로를 자유롭게 건너다니는 갈색 고양이 방랑자의 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고양이는 자유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유를 잃게 돼.’

그랬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자유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잃어버렸던 자유, 채리 아가씨를 사랑하면서 잃었던 자유를 마침내 되돌려 받게 되었던 것이다.

채리 아가씨와의 이별로 얻게 된 외로움과 안타까움 사이로 자유라는 새로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외로움과 자유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던가 보다.

새로운 공기, 새로운 삶.

나는 방랑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갑자기 혼자가 되고, 갑자기 자유를 얻어낸 내게는 조언자가 필요했다. 방랑자를 만나면 물어봐야 할 게 많은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진정 자유를 원하지만, 사실 자유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톱을 다듬고 야성을 기르고,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괴롭고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안락함’에 빠져들곤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을 잃는다”는 건 무슨 말일까. 그리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은 또 뭘까. 자꾸 문제가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그것은 ‘자유’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감싸는 모든 환경들보다 그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둘러싼 주위의 모든 조건들에서 자유로울 때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

“자유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고양이는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사랑 아닌 사랑을 하다가 쓸쓸히 버려졌다. 하지만 버려짐으로써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 말하자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고양이가 ‘사랑’으로 착각한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었다. 때문에 앞의 말을 풀어서 쓰면 “사랑 아닌 사랑을 하게 되면 진정한 사랑을 잃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고양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사랑을 했더라면 사랑도 자유도 지킬 수 있었고, 쓸쓸히 버려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의미 없는 것’을 사랑하기 쉽고, ‘무상한 것’에 마음이 쏠리기 쉽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은 “그 동안 쓸데없는 곳에 공력을 들여 왔다”고 한탄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것이 의미 있고, 어떤 것이 무상한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것’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눈’으로 보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이나 통념을 통해 그것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처럼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한평생 살면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자유와 방종’, ‘자유와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자유와 비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를 잃어버리고, 자유를 버리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누군가를 위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라는 말은 온당하지 않다.

이렇게 ‘자유’라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고양이처럼 크게 혼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랑은 ‘노예상태’나 다름없다. 그것은 자신의 권리와 존재가 없는 사랑이므로, ‘장난감 사랑’이다. 나는 나인가 장난감인가. 나는 자유롭고 개성 넘치고 정체성을 확립한 자아인가, 타성에 젖어있고 끌려다기만 하는 ‘장난감’인가.

고양이가 방랑자를 찾는 이유는 명백하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친구가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방랑자에게 사랑과 자유에 대해서 다시 물어볼 것이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


#제시문 4

나비가 아직 그 사람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마 그럴 거야. 요즘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이민을 가기도 하니까. 이젠 안 기다릴 거야?”

“그럴 작정이야. 좀 더 기다릴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이사를 왔거든.”

“그 사람들이 널 내쫓았니?”

“쫓겨난 건 아니야. 내가 그냥 나왔어.”

나비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전에 함께 살았던 파마 아줌마처럼 몽둥이를 들고 나비를 밖으로 내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이제 자유를 찾은 거네.”

“그런 셈이지. 하지만 좀 혼란스러워.”

“첨엔 나도 그랬어. 곧 익숙해질 거야. 전에 살던 집 얘기나 좀 해봐.”

나비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 사람들이 아직 그립다는 듯이 말했다.

“동물을 아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이었어. 재롱둥이 푸들, 아침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하얀 문조, 열심히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열대어와 함께 살았지.”

“그 많은 동물들과 한 집에 살았다니, 야, 대단했겠구나.”

나는 나비의 기분을 돋우어 주려고 소리까지 질렀다. 그 많은 동물들이 한 집에서 산 건 분명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을 사랑해서 그랬을 거란 나비의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보다 남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 남을 사랑하거나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도 실은 자기 감정에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야. 채리 아가씨가 그랬고 배불뚝이가 그랬고 영은이가 그랬고 파마 아줌마가 그랬다.

……

“걱정하지 마.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어. 사람들 때문에 그걸 아직 잘 모르고 살았던 거야. 우리에게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능력들이 많이 있거든. 뭐가 걱정이야. 그리고 …… 내가 있잖아.”

내 가슴은 알 수 없는 무엇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햇볕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그늘이 되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앞으로 닥칠 시간들에 대해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 나비에게 햇볕이 되고 그늘이 되어줄 자신이 있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암컷은 자신 외에도 다른 생명을 키우는 본능이 있으니까. <본문 중에서>


하나의 촛불이 만 개의 촛불을 다 밝혀도 맨 처음의 촛불은 꺼지거나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다. 베풀면 베풀수록 커져만 가는 것이 사랑의 모습이다.

나비는 고양이의 남자친구이다. 고양이처럼 사랑 아닌 사랑을 하다가 방금 쫓겨났는데, 안타깝게도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부질없는 기다림과 배신감에 치를 떨고 나서는 차차 차가운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조언자를 만난 것이다. 고양이는 조언자를 찾았지만, 운명은 아리송하게도 고양이를 조언자로 만들어 버렸다.

고양이에게는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줄 친구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앞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물음에 대답할 시간이다.

“사랑 아닌 사랑을 하게 되면 진정한 사랑을 잃는다”

우리는 사랑 아닌 사랑은 알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알지는 못한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자유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도,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번째 물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앞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사랑 아닌 사랑’은 누군가의 개성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진정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배려하는 것을 ‘할애(割愛)’라고 한다. 자유에도 비용을 치르듯이, 사랑도 비용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올 만큼의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비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현실에서 ‘진정한 사랑’이 어려운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박애(博愛)’의 정신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배려하고 아끼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모든 사람을 연결할 때 비로소 ‘박애’가 실천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고양이의 몸을 빌려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처럼 자아를 상실하고 관습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양이가 자아를 찾고 자유를 찾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것은 비용만이 아니다. 다른 집에서 충분히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기회를 박차고 차가운 야생의 숲으로 돌아간 것은 커다란 ‘용기’였다. 나의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하고, 진정한 자유와 사랑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뛰쳐나온 것조차도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현실의 벽은 나를 감싸고, 안락함은 우리를 유혹한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온갖 옳지 않은 것들을 배척할 의무가 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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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이 2007-02-0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의 글쓰기 - 독서논술문 - 괜찮겠는데요. 특히, 제시문을 통한 독서논술문이 신선하네요. 담아갑니다. 감사~.

승주나무 2007-02-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롱이 님//안녕하세요. 예전에 썼던 원고입니다. 논술은 어디까지나 독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상하게 독서와 연계하려는 시도는 너무 더디네요. 한번 고민해 볼려구요^^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집 1 현대지성신서 21
플루타르크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의 : 이 리뷰는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토대로 쓰여질 '동서후기'의 기획으로 만들어졌으며, 분량이 장난이 아니므로, 긴 분량과 스크롤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읽지 마시압!!
 
 
동서열전후기-1
- 부목은 물에 젖는다 해도 침묵하지 않으리


영웅소론(英雄小論)

이 이야기는 그리스가 ‘신의 세계’에서 ‘영웅의 세계’로 넘어가는 접점부터 시작해서 역사의 시대까지 그 나라의 흥망을 결정지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을 되살린 열전이다.
우리들이 영웅에게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은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집중해서 철옹성 같은 현실을 움직이고, 그것을 좀더 근사한 모양으로 구획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영웅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당면한 난관을 다시 상대한다.
영웅도 나이를 먹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 보던 영웅은 적을 무찌르고 모험과 사랑을 쟁취한 ‘젊은 영웅’이다. 그러나 영웅은 우리 대신 신의 노여움을 혼자 감당해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리와 영웅이 대결하기도 하고, 역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영웅은 우리들에게 우상과 추종자들을 낳아 역사 발전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가 낳은 휴브리스(hubris․오만))1)는 생전에는 타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사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영웅의 전성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영웅의 저변에는 역사가 있다. 역사 안에는 인물과 국면과 구조라는 것이 있는데, 인물은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를 의미하며, 국면은 당대의 대세를 의미한다. 대세는 힘있는 자에게 집중되고 영웅은 그 힘을 이용해서 세상을 구획해 나간다. 그러나 힘의 균형은 깨지기 마련이어서 대세는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며 대세를 물려준 영웅의 최후는 인생의 무상함을 진하게 풍기기도 하고, 장렬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구조는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 ‘틀’이 있다. 예컨대 아무리 풍파가 많았던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통틀어 ‘살인’(혈육살인 포함)이나 ‘간통’ 같은 죄는 역사서에 언급될 정도로 흔하지 않다. 그것은 인간세계 면면히 이어지는 암묵적 계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의식하고 수백 년에 걸쳐 세계를 지배한 영웅들이 있다. 그들은 ‘대세’에 좌우되지 않는다.
편의상 전자의 영웅들을 ‘열정의 영웅’, 후자의 영웅들을 ‘교화의 영웅’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영웅 저변에는 반대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영웅이 반대세력을 대하는 방식과 이야기는 또 하나의 흥미거리다.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지기도 하고, 덕성으로 교화시키거나 인내를 통해 반대세력의 반감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혹은 반대세력들이 오히려 영웅들을 추대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영웅들과 반대세력 간의 ‘줄다리기’는 영웅전을 이해하는 또 다른 묘미이다.
영웅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와 비슷한 현실과 난관을 겪는다. 그리고 시기심과 애욕 등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순간을 보고 그 각각의 이유를 곱씹어보는 것도 영웅을 대하는 예의가 될 것이다.

영웅전 1권에 나오는 영웅들은 다음과 같다.



테세우스
-인생은 모험이다.


테세우스는 사생아였다. 대개의 개국 영웅들은 사생아이거나 난생영웅(卵生英雄), 아버지가 신이라는 등 범상치 않은 출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개국의 영웅들은 무엇보다 기득권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상적인 인간이거나 어떤 집안이라면 그 집안을 뒤엎고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대륜(大倫)’에 어긋나는 일이다. 춘추시대에도 周나라를 끼고 각국이 패자(覇者)가 된 이유도 대륜 때문이다. 영웅들을 대륜에서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출생부터 범상치 않게 설정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꾼들의 습성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언급도 눈 여겨 볼만하다.

어떤 사람은 이 이야기가 너무나 극적이고 허구적으로 보이므로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명이란 얼마나 기구한 것이며, 강대한 로마가 어떤 신성한 기원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엄청난 영광을 누리거나 이토록 위대하고 예외적인 위치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전혀 믿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유년기와 청년기는 모험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그의 성격과 운명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테세우스의 할아버지는 트로이젠이라는 조그만 도시의 통치자였는데, 테세우스의 친부인 아이게우스가 받은 신탁을 지혜롭게 해석해 그의 딸과 동침시켜 테세우스를 낳게 했다. 테세우스의 영혼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피테우스의 지혜와 아이게우스의 강인한 체력,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업적이 그것이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숭배했으며 그를 모방했다.
아버지를 찾으러 아테네를 가는 도중에 만난 악당들은 힘세고 지칠 줄 모르는 뛰어난 전사들이었으나 자신들의 뛰어난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선한 일에 사용할 줄 모르고, 약탈이나 악행에 이용했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처럼 그들을 피하지 않고 하나씩 꺾어 힘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악당들을 소탕하고 도찰한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통치자인 아이게우스 집안은 수많은 당파의 표적이 되어 있었고, 수많은 암투와 의심 속에 도시 분위기는 흉흉했다.
때마침 크레타 섬에서 아테네에 공물을 거두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크레타의 왕자가 아테네 땅에서 살해된 것이 발단이 되어 양국은 끊임없는 전쟁 속에 고통받았으며, 아테네에는 심각한 기근과 가뭄으로 짓눌려 있었고 강물도 말라버렸다. 신탁이 전하는 바에 따라 9년마다 소년 소녀 각각 7명씩 크레타 섬에 바치는 것으로 종전협상을 했고, 아테네를 괴롭히던 재앙도 사라졌다. 테세우스는 명분상으로 아테네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반대 세력의 암술과 9년마다 귀한 자식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테네인의 역경을 풀어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영웅들에게는 조력자가 있게 마련이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사랑하여, 테세우스가 공물제를 멈추고 이제까지 바쳐왔던 젊은이들까지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왔다.
테세우스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열정적인 모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테네의 ‘문제’를 해결하여 진정한 통치자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전혀 다른 도시를 세움으로써 헬라스 인들에게 ‘전제’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테세우스가 꿈꾼 국가는 왕도 없는 민주주의 국가, 혹은 민중에 의해 통치되는 공산국가이다. 자신의 왕위를 내놓고, 오로지 군대의 지휘권과 법의 수호권만 가지며 모든 자유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것이 공화국이다. 귀족과 평민, 직공이라는 신분을 나누었지만, 귀족은 명예를, 농민은 이익을, 직공은 숫자에 있어서 우세하며 각 신분마다 맡은 바 임무가 정해져 있었을 뿐 상하의 구분은 없었다. 테세우스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여 왕위를 직접 내놓은 최초의 왕족이 되었으며, 헬라스 모든 국가 중에 아테네의 인민들이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인생에 있어서 도전과 전진은 ‘중독’과 같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존경하여 그를 따라 모험을 시작했으며, 사람들의 칭찬을 좋아해 어려운 일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의 재료가 없으면, 개인적인 성향이 ‘도전’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테세우스에 있어서는 수많은 연애담이 그것이다. 그의 연애는 ‘유괴’를 통해 이루어진다. 트로이의 아낙소라는 여자를 유괴하였으며, 펠리보이아라는 여자와 결혼하였고, 이피클레스의 딸인 이오페와 결혼했다.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서 악당 시니스를 죽이고 그의 딸들을 강탈하였으며, 아리아드네를 버렸고, 파노페우스의 딸 아이글레를 사랑하였다. 결국 50세의 나이에 어린 소녀에 지나지 않았던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의 헬레네를 납치해 민족을 전쟁의 수렁에 빠지게 했다.
인간의 열정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만한 힘을 만들어내지만 식은 열정처럼 추한 것도 없다. 그는 결국 반대파들에 의해서 제거되고 만다. 하지만 사후에 그를 찾은 사람들에 의해 고향에 안장되어 국조(國祖)로 숭앙받는다.

로물루스
- 쟁취하는 인생


로마라는 나라의 재치와 호전적인 기질 등은 모두 로물루스의 유산이다.
로마라는 이름은 그 땅을 발견하게 해준 ‘로마’라는 여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한 나라의 탄생은 좀더 신성하고 극적인 기원을 갖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러한 기원을 선택한다. 로물루스는 ‘아프락사스)2)의 영웅이다. 자신들을 감싼 역경을 극복하고 그들의 조국을 떠나 전혀 새로운 국가를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조인 알바 왕가는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형제의 대에 이르렀는데, 두 형제는 트로이에서 가져온 황금과 보물을 두고 왕국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기로 합의를 봤다. 누미토르가 왕국을 선택하자 아물리우스는 수많은 재물을 이용해서 누미토르의 왕국을 빼앗고 그의 딸을 평생 결혼할 수 없는 사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누미토르의 딸은 이미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종신토록 감금되는 형벌을 받았다. 태어난 아이들은 아물리우스의 명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놓였으나 그의 신하들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강물 위에 떨어뜨렸으며 아물리우스의 돼지치기인 파우스툴루스가 몰래 그들을 길렀다.
그러던 어느날 아물리우스와 누미토르의 양치기들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에 연루돼 동생 레무스는 누미토르의 처분을 기다리는 운명에 놓여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양부인 파우스툴루스는 로물루스에게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누미토르는 레무스의 늠름한 체격과 충천하는 기상,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요됨 없는 기개에 감탄하였고, 그의 나이를 짐작해 보니 가슴속에 떠오르는 희망을 지울 수 없어서 붙잡아두고 있었다.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구하기 위해 누미토르의 요새로 맨몸으로 들어갔고, 누미토르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의 정체를 밝히라고 하지만, 전령 역시 정직한 사람으로 그들 형제를 도왔다. 즉 안에서는 내분을 일으키고, 아물리우스를 증오하는 시민들의 군대는 밖에서 공격하여 결국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두 형제는 알바에 머무르기보다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들이 자랐던 장소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로 하였다. 그것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요구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실 노예이거나 범죄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시를 세운 로물루스는 군대를 조직하는데, 역사상 최초의 정형화된 군대의 모습이 여기서 갖추어졌다. 한 부대 소속의 소부대는 다른 부대와 호환이 가능하여 필요한 부대를 양도해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페트론과 크리엔트의 신분을 나누었는데, 페트론은 후견인이라는 의미로 항상 크리엔트들을 돌보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크리엔트들도 페트론들에 대해 반감을 품지 말고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게끔 하였다. 페트론은 곧 원로 혹은 귀족이 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거부감이 없고, 크리엔트와 긴밀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신분이기 때문에 이 국가의 시민들은 정의와 존경이 넘쳐흘렀고 계급 투쟁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국가의 한 가지 고민은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으며, 고립돼 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에 로물루스는 하나의 이벤트를 만들어 이것을 해결하였다. 즉 신의 어떤 오래된 제단을 발견했다고 소문을 내 많은 도시의 사람들을 모이게 한 다음 신호를 기점으로 그들을 습격하여 처녀들을 약탈해 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처녀들만 납치해 갔으며 이러한 강력하고 확실한 결합(혼인이라는 방식)을 이용해서 이웃 부족들과의 동맹을 공고히 한다고 변명했다.
때문에 이곳의 풍습은 아내를 존경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비니 족은 라케다이몬의 후예로 강인한 민족이었으므로 로마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 여자들을 돌려주고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
로물루스는 여자를 돌려보내는 것은 거부하면서 동맹관계만 받아들이겠다고 답변하였다.
이웃 부족 중의 하나인 케니넨시아 족의 왕 아크론은 줄곧 로물루스의 업적에 질투심을 가져오던 터에 이 일을 계기로 전쟁을 일으켰다. 로물루스는 이들을 맞아 전열을 펼치고, 대장끼리 일대 일로 맞붙어서 승부를 정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로물루스는 이웃 부족들을 지배하였으나 지배한 부족들의 자치권을 빼앗지 않고 로마로 이주해 평등한 시민이 되도록 끌어들이는 정책을 이용해 점점 로마를 크게 만들었다.
드디어 사비니 족과 로마의 전쟁이 벌어졌으나, 전세는 난투극의 형세로 이어졌다. 두 부족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냈으며 끝날 줄 몰랐다. 적들의 수적 기세는 맹렬했고, 로마 병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하며 로마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다. 이 때 로물루스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유피테르 신께 기도하며, 달아나는 군사들을 멈추고 위험에 빠진 로마를 구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기도에 의해 달아나던 군병들은 왕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에 대한 수치감으로 달아나기를 멈추었고, 용기를 얻어 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격전이 재개될 즈음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전투는 끝났고 종전협상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처녀 때 납치돼 이제는 어머니, 아내가 된 여자들의 시위였다. 로물루스의 아내 헤르실리아는 호소한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나요? 왜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심한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는 억울하게 폭력에 의해 붙잡혀 왔어요. 또한 형제나 부모, 친척들로부터도 그렇게 오랫동안 버림받아 왔지요. 그런데 한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그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얽매어 있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죽는 것을 보며 울부짖어야 하나요? 우리가 처녀로 있을 때에는 구출하러 오시지도 않더니, 지금에 와서야 아내와 어머니가 된 우리를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떼어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이것은 그 옛날에 우리를 버리고 돌보시지 않은 것보다 더 심한 일이에요. 저들의 사랑과 당신들의 열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해야 할까요? 만일 다른 어떤 이유로 전쟁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보아서라도 사위와 손자가 된 사람들에게만은 손을 대지 마세요. 만약 우리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데려가세요. 하지만 우리와 함께 당신의 사위와 손자까지 도 데리고 가세요. 우리를 부모와 형제 품으로 돌려보내셔도 좋지만 우리 남편과 자식들을 빼앗아 가진 마세요. 제발 애원하느니 이제 또다시 우리를 납치해 가지는 마세요.”


사비니 인들이 납치된 여인들의 집에 가보니 이들이 남편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국 남편과 함께 머물고 싶은 여자는 그대로 살되, 실을 잣는 일 이외의 집안 일은 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휴전협정이 매듭지어졌다.
로물루스는 신앙심이 깊고 지혜로운 자로 모든 살인죄를 ‘형제 살해죄’라고 부르고 있고, 남편은 아내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서로를 버릴 수 없다는 법을 제정하였다. 무엇보다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여성의 가치를 알고 존경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 전쟁의 승리는 그에게 오만과 자부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계기다 되어 그의 지위는 위태롭게 된다. 결정적으로 그가 전쟁으로 얻은 토지를 군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베이엔테스에서 잡혀온 볼모를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보낸 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행방불명되었다. 그것이 정치적 불안을 초래하였고, 원로원들도 로물루스를 제거했다는 의혹을 씻지 못하였다.


테세우스-로물루스


테세우스는 왕족이라는 호화로운 자리를 박차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물리쳤고, 국가의 불행을 제거해주었다. 로물루스 역시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족적은 많은 이들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거센 외압에 도전한 업적의 전유물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이들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에는 법령을 많은 이들에 이롭게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정치적으로 ‘축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실패한 데에는 상반된 이유가 있었다. 테세우스는 너무 민주적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로물루스는 독재자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공포와 증오심이 불타올라 왕을 제거하였다. 그 두 정치형태를 보완하는 새로운 정치제도는 이 국가들에게 숙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로물루스는 테세우스에 비해 ‘국가’라는 의미를 잘 이해했다. 국가가 어떻게 형성하고 이웃 부족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를 크게 만들었고, 이웃 부족들을 제압하거나 회유하는 방식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관계’ 속의 로마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자신의 욕정과 ‘도전’에 이끌려 여자들을 강탈한 데 비해, 로물루스는 오로지 국가를 형성할 필요에 의해서 여자들을 납치하여 온전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두 영웅은 ‘의도’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테세우스는 용맹스러운 영웅이었고 로물루스는 지혜로운 영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개국 영웅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이다. 개국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거기에는 원시적 습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국가의 문물을 정비하는 일은 다음 세대에 맡겨져야 한다.


리쿠르고스
- 인내가 보여줄 수 있는 힘


리쿠르고스는 권력의 의미를 깊게 이해한 사람이다. 진정한 권력은 곧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세력을 잡아서 권좌에 오르지만 반대파는 언제나 서슬 퍼런 눈을 치켜 뜨기 마련이다. 반대파를 이해시키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영웅도 감당하기 힘들다. 앞의 영웅들도 정적들에게 제거되지 않았던가.
리쿠르고스는 권력이 정당하게 자신에게 모아질 때까지 참아냈다. 그리고 막상 돌아온 권력으로 세상을 구획해 나갔다. 스파르타가 스파르타가 된 이유는 바로 리쿠르고스 덕분이다.
리쿠르고스는 왕족으로 장성했을 때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의 선왕들은 무력이나 회유를 통해 백성들의 원망을 사거나 경멸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이 서야 한다. 국민들의 요구에 휘둘리거나, 통제하기 용이하게 압박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이것이 당시 스파르트의 커다란 숙제였다. 이 때 스파르타의 왕인 형이 죽는다.

폴리데크테스 왕도 오래지 않아 죽고 말았으므로, 왕위 계승권은 당연히 리쿠르고스의 것이었다. 실제로 리쿠르고스는 얼마 동안 통치를 하였다. 그러나 왕비인 형수가 잉태중임을 알게 된 리쿠르고스는 즉시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만약 태어날 아기가 남자아이라면 왕비의 소생이 왕국을 계승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자신은 오직 후견인으로서 장차 출생할 아기를 대신하여 정무를 도와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섭정을 스파르타 인들은 프로디쿠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왕비로부터 리쿠르고스에게 비밀스런 제안이 전해졌다. 자신과 결혼을 하고 리쿠르고스가 왕위에 오른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아기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리쿠르고스는 왕비의 사악함에 몸서리를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거절의 뜻을 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왕비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뜻을 전하는 사신을 보내었다. 그러나 아기를 강제로 유산한다면 왕비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차라리 아기가 출생하는 대로 자신이 직접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교를 통하여 마침내 왕비는 아기를 분만하기에 이르렀다. 왕비가 진통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리쿠르고스는 사람을 보내어 옆에서 모든 일을 지켜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여자아기를 낳거든 여인들에게 맡기고, 남자아기를 낳거든 자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상관하지 말고 즉시 자기에게로 데려오라고 일렀다.
때마침 리쿠르고스가 여러 원로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을 때 왕비가 남자아기를 낳았다. 아이는 곧 식사하고 있는 리쿠르고스에게 전달되었다. 리쿠르고스는 아기를 받아 안고 둘레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스파르타 인들이여, 그대들의 왕이 나셨소.”
말을 마친 리쿠르고스는 아기를 왕좌에 눕히고 카릴라우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만백성의 기쁨’이라는 뜻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리쿠르고스의 고귀하고 올바른 성품에 감탄하고 기뻐하였다.


리쿠르고스는 어린 왕을 보좌하여 정사를 돌봤지만, 정적들의 질투는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음모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권력이 분열되면 개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나 어린 왕이 장성하여 왕자를 둘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떠난다.
현자는 어디에 가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법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다. 여러 국가를 떠돌아다니면서 리쿠르고스는 국가가 취해야 할 점과 취하지 말아야 할 점을 정리했으며, 정계의 인사들과 현명한 탈레스 등과 교유하며 법률의 기초를 닦고 있었다.
그 무렵 답보상태인 고국의 정치상에 국민들은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리쿠르고스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왕까지도 리쿠르고스의 정계복귀를 간절히 바랬다. 서로 원하는 바는 달랐지만, 그들은 리쿠르고스라는 공통의제에 협의를 한 것이다. 거기가 권력의 시작이었다. 리쿠르고스는 국민 전원의 지지를 받으며 전면적인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리쿠르고스가 첫번째로 실시한 일은 권력의 균형을 적절히 분화시키는 것이다. 당시 스파르타를 비롯한 헬라스의 도시들은 전제라는 정치형태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권력이 한 쪽으로 너무 몰려 있기 때문에 소모적이었으며 부담도 많았다. 특히 권력의 이양시에는 분열과 암투 속에 공론이 서기까지 오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리쿠르고스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기관인 원로원을 두었다. 원로원은 왕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었다. 그것은 전제를 완화하고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이는 전제와 민주의 맹점을 잘 극복한 정치제도로 평가받는다. [33번 참조]
그리스는 중용의 덕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Golden Middle(金中), 조화, 중용의 이름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특히 정치의 균형과 중용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리스 전체 역사의 한 주제였다.
30인의 원로원을 구성한 리쿠르고스의 다음 개혁은 토지를 분배하는 것이다. 그는 치부(致富)가 모든 악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모든 부자들을 설득하여 국가의 토지를 모두 거둬들였다. 당시에는 무서운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리쿠르고스는 토지를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 가구에 일정하게 나누어주었다. 추수철 들판에 나란히 쌓인 곡식단을 보고 이웃나라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라코니아의 땅이 마치 형제들끼리 똑같이 나누어 가진 한 가족의 재산과 같이 보이는군.”

국민 모두 토지를 알맞게 나누어갖게 해준 뒤, 리쿠르고스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즉 화폐를 대량으로 유통시킬 수 없도록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이 결과 국민들은 무거운 화폐를 점유하는 일이 없었고, 도둑질이나 뇌물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결국 이 나라 안에는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모든 사치스러운 예술까지 금지하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뛰어난 예술가가 되었다. 침상, 의자, 책상, 못 같은 용품들에는 하나같이 에술적 혼이 깃들여 있었고, 국민들은 점점 실용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리쿠르고스의 세번째 개혁은 공동 식사라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었다. 집에서 즐기는 사치스러운 식사를 통해 짐승처럼 구석구석 살이 찌고, 마음까지 나태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일정한 약의 식사는 불평등과 탐욕을 없애버렸다. 결국 리쿠르고스는 부자들에게서 재산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부(富)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제는 재물이 있어도 쓸 데가 없으며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을 시행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부자들은 리쿠르고스를 반대하는 일당을 모아 욕을 하며 돌을 던졌다. 리쿠르고스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신전으로 도망치지만 알칸데르라는 청년에게 얼굴을 찔려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리쿠르고스가 이룬 업적은 대단한 것이지만, 이 때의 시련을 극복한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었나 한다. 그는 자신을 해한 젊은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살면서 자신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 그는 리쿠르고스의 열렬한 추앙자가 되어 온몸으로 리쿠르고스에게 돌아오는 모함을 항변했다.
한 난폭한 젊은이를 신중한 스파르타의 시민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그의 반대파로 대표되는 자의 영혼을 덕으로서 감화시키고 반발력을 무력화시킨 것임과 동시에 한 인간에 대해 이처럼 축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신에 가까운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스파르타의 국민적 성향도 그러려니와 리쿠르고스가 만든 국가는 마치 ‘군부대’를 연상케 한다. 그가 세운 공동 식사에서 아이들은 경험 많은 국가 원로들에게 국정에 관해 배웠고, 예절에 관한 가르침을 들었다.
아이들이 일곱이 되면 나라에서 만든 단체에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마련된 규율 속에서 함께 살며, 놀고, 배웠다. 그들 중 우두머리를 세워 어른들이 없을 때 아이들을 통솔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거친 식사와 의복으로 오랜 기간을 살아야 했으며 각자의 임무가 있었다.
우두머리는 아이들에게 노래도 시켰으며, 심사숙고해야만 하는 질문도 전져서 자연스러운 토론의 장이 마련되게 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정치에 관한 관심을 매우 일찍부터 가질 수 있었으며 덕이나 명예 같은 개념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누가 정의로운 사람이며, 그의 정책은 옳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소신이 없으면 우둔하고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노인이 크게 공경을 받았으며, 노인에게 대항하거나 무례하게 굴면 법으로 처벌을 받았다. 노인은 어떤 젊은이든 참견하여 자신의 경험에 의해 얻은 지혜를 어떤 방법으로든 가르칠 권리가 있었다.
스파르타의 국민들은 실용적이며 단아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대화를 봐도 알 수 있다. 리쿠르고스는 사람들에게 짧은 몇 마디로 유용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담지 못한 대화는 주고받지 못하도록 명령했으며 짧은 경구에 깊은 뜻을 담아내는 재치는 그들의 국민성이기도 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36번을 참조할 것]
스파르타의 모든 것은 ‘애국심’ 안에 다 들어 있다. 모든 행위는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자기 자신과 상충될 때는 머뭇거리지 않고 국가에 헌신하도록 가르쳤다. 우리 군인들의 생활 안에는 이 시절 스파르타의 습성이 뛰어놀고 있다. 고대 국가의 현명한 제도는 이 책을 통해 전승이 되었으며, 역사상 고매한 지휘관이나 국가경영자들은 여기서 영감을 얻고 자신이 맡은 곳에 적용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며 규율과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군인은 리쿠르고스의 후예이다.
그러나 리쿠르고스의 이 정책을 현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그의 정책은 봉쇄를 전제로 한다. 현대는 세계적 스탠다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국가에는 불행하다. 리쿠르고스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최고의 국가를 몇 가지의 정책 안에 담아내었으니 단연 최고의 정책이었다. 그러므로 타국의 사람들이 사유 없이 국내에 체류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할 정도로 자긍심이 뛰어났다. 그것은 스파르타 국민의 자긍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는 뛰어나고 열악한 것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관계와 개방을 통해서 그것을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리쿠르고스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개인이나 일정한 조직 안에서는 훨씬 고귀한 가치를 발할 수 있다. 실제로 군 안에서는 리쿠르고스의 정신이 고스란히 광채를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리쿠르고스에게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성문법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서로 규정된 법은 법률 전문가에 의해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강인한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법조문을 새겨넣었다. 그것이 훨씬 오래 유지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물루스에게 법과 교육은 같은 개념이었다. 스파르타의 독특한 국민성 덕에 그들의 법은 양자의 이해관계를 염두한 것이 아니라 참신한 스파르타인으로 태어나기 위한 법률이었다.

‘하느님이 보기 좋았더라’

위 구절처럼 리쿠르고스의 법은 스파르타에 완전히 정착하여 자생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는 리쿠르고스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는 국민들이 자신이 세운 법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도록 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실제로 리쿠르고스의 법률을 500년 동안 지켜지며 조국을 그리스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라산데르가 국민들에게 사치를 가르쳐 전복되기까지 오랜 시가 동안 스파르타에 축복을 내려주었다.
[40번을 참고할 것]
그의 성공은 후세의 철학자, 법률가들이 모범이 되었으며 이상국가의 표본이 되었다. 플라톤이 ‘국가’를 저술하며 리쿠르고스의 스파르타를 염두해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누마 폼필리우스리우스
- 경건하고 숭고함 가르침


누마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사비니 족이었다. 당시 헬라스 전역의 지배력을 형성한 도시는 로마였는데, 사비니족은 로마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때문에 그들도 로마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강력하게 요구하던 차였다. 게다가 태조인 로물루스가 행방불명되고 귀족들에게 의혹이 집중되어 있었다. 정략과 음모로 혼탁한 정계에 사람들은 환멸을 느꼈으며, 당시 누마는 조용히 경건한 생활을 하며 덕성을 쌓아 널리 알려졌다. [누마의 지론과 생활에 대해서는 42번을 참고할 것] 다잇 로물루스와 함께 왕위에 올랐던 타티우스는 그의 덕성에 반하여 그를 사위로 삼으니 누마는 졸지에 왕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의 생활을 버리지 않고 연로한 부친과 조용히 사색을 즐겼고, 부인인 타이아 공주 또한 이전에 누리던 화려한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의 조용한 삶을 따랐다.
타티우스가 사망하자 그의 계승이 논쟁이 되었다. 로마인들과 사비니족은 고심 끝에 교대로 통치권자의 임무를 수행하였지만, 왕의 선출을 거부하고 귀족정치로 몰아가고 있다는 국민들의 의혹과 비난으로 정계는 술렁였다. 결국 선택한 제도는 두 도시가 서로의 왕을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로마인이 사비니족 중에서 왕으로 지명한 사람이 바로 누마 폼필리우스였다. 이 제안은 양측을 다 만족시키는 결정이었다.
그들은 사절을 누마에게 보내 왕위를 부탁하였다. 사절단은 누마가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군을 필요로 하는 도시에서 저 같은 사람이 왕이 된다면 정말 웃음거리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신을 경배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며, 정의를 사랑하고 폭력과 전쟁을 미워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누마 역시 정계의 무상한 암투에 신물을 느끼고 정치에 입문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논리적이고 간절한 부탁과 사절단의 호소를 이기지 못해 왕위를 수락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만일 그가 왕위를 거부한다면 로마의 정치가 다시 대혼란속에 빠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 도시의 만장일치로 왕위에 올랐다. 누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호전적인 로마인들의 기질을 보다 부드럽고 온순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누마는 로물루스 시절부터 지켜오던 호위병 제도를 없앰으로써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보여줬고, 자신을 불신하는 국민이라면 더더욱 다스릴 마음이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분노로 일관된’ 로마인들을 경건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국가적인 종교행사를 만들어 직접 사제가 되어 거행하였다. 엄숙한 종교행사에 세련되고 재미있는 여흥을 담아 로마인들이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초자연적인 신의 현현과 영혼을 직접 목격했거나 이야기도 나누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종교적인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로물루스가 정한 로마의 수호신인 전쟁신 마르스를 침묵의 신 타기타로 정한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44번을 참고할 것]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초월적인 감각과 감성, 이성의 지고한 수련을 통해 신의 존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 천한 사물을 숭배하는 경향을 제거하였다. 덕분에 170년 동안 로마의 신전에는 우상이 세워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로마인들을 ‘숭고’나 ‘경외’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
누마의 정책 가운데 가장 칭송을 받는 것은 사람들을 직업에 따라 길드와 조합으로 나눈 것이었다. 당시 부족과 부족간에는 엄청난 대립과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누마는 이것을 세밀하게 분화시키면 이러한 대결의 국면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누마는 사람들을 직업별로 나누어 음악가, 금은공, 목수, 상인 등이 국가를 초월해 모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것은 현대적인 개념으로 국가연합이 아닌 경제인 연합이나, 학술회 등으로 세계인이 만나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오로지 순수하고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비교하고 추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분쟁이 크게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국가이기주의 같은 폐단을 크게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로 국가간의 분쟁이 일어나면 중재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달력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누마 이전의 사람들은 달의 움직임과 해의 움직임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율력을 제정하였다가 들쑥날쑥하게 생겨나는 오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달은 354년 만에 1년을 채우는데 태양은 365일에 채우므로, 누마는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를 11일로 산출하였다. 이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2년마다 2월달 다음에 22일을 가진 한 달을 더 두었다.
그리고 달의 이름을 제정하였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한해의 첫머리를 장식한 전쟁신 마르스를 기념한 ‘March'를 세번째로 옮겼고, 두 굴의 신인 ’야누아리누스‘를 해의 첫머리에 올렸다. 그 달은 두 해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유로 첫달을 상정한 것이다. 페브루아리우스는 ‘페브루아’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정화의 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달에는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수확한 산물을 바치며 루페르칼리아라고 하는 행사를 벌였다. 이 행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화의식과 유사하였다. 이리하여 저쟁신은 세번째로 밀리게 되었다. 그 다음은 베누스 혹은 아프로디테의 이름에서 유래된 ‘아프릴’이었다. . 베누스에게 바쳐진 이 달의 초하룻날에 여자들은 목욕을 했다. 그리고 머리에는 화환을 둘렀다. 하지만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아프릴의 ‘p'가 ’ph'가 아닌 까닭에 이 달의 이름이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나왔다는 설을 부인하기도 한다. 아프릴은 ‘아페리오’라는 라틴 어에서 온 이름이며, 꽃봉오리가 열리고 피어나는 봄철의 달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아프릴 다음 달의 이름은 ‘마이아’에서 비롯된 메이다. 마이아는 메르쿠리우스의 어머니로 오월은 그녀에게 바쳐진 달이다. 그 다음 달은 유노(Juno)에서 이름을 따온 ‘준’이다. 그 다음 달은 퀸틸리스, 섹스틸리스였으나 후에 퀸틸리스는 율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폼페이를 패배시킨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섹스틸리스도 마찬가지로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리고 셉템베르와 옥토베르, 노벰베르 그리고 데켐베르다. 데켐베르는 ‘10’이라는 숫자를 상징하며 로마의 마지막 달로 되었는데, 로마인들이 한해를 열 달로 상정했다는 것은 이 이름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누마 왕이 재위하는 동안에는 어떠한 전쟁이나 혁명 또는 정치적 동요도 생기지 않았으며, 왕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여 왕위를 빼앗으려고 한 사람도 없었다. 왕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신이 두려워서였는지 그 덕을 앙모하여서였는지, 또는 순결한 사람을 보호하는 성스러운 은총 때문인지 로마는 경건함에 완전히 세례를 받았으며, 이웃나라들도 마찬가지로 감화되어 누마 통치기간에는 분쟁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전쟁이 없이도 모든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전쟁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와 위화감보다는 우호와 협력을 통한 공동체가 더욱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체계임을 누마는 잘 말해주고 있다.
로마에 있는 야누스 신전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로마 사람들은 그 문을 전쟁의 문이라고 부른다. 전쟁시에는 열어두고 평화시에는 닫아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로마 제국이 강대해지고 점점 커지면서, 이웃의 민족들과 적들이 끊임없는 도전을 해왔기 때문에 평화로운 때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마가 왕위에 앉아 있는 동안은, 그 문은 단 하루도 열린 적이 없이 43년 동안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 다만 누마 재위 이후에도 닫혀지게 만들지는 못하였으며, 그의 사후 지금까지 그 문은 닫힐 줄을 모르고 전사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되고 있다.


리쿠르고스 - 누마 폼필리우스리우스


누마와 리쿠르고스는 교화의 영웅이다. 그들은 믿고 따르는 사람만이 법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만족할 만한 법을 제정하였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던 스타일을 버리면 허무해지고 반발심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생각은 최고로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에게 친절히 더 옳은 것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교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점을 두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제정한 ‘법’은 우리가 쓰는 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우리들의 ‘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결합된 ‘타협’의 의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국가는 우리에게 약간의 ‘강제’를 요구함으로써 그보다 더 큰 자유를 주는 식이다. 그러나 이들의 법은 교육이나 교화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더욱이 이 시대의 구성원들은 수가 별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의 복잡한 구조를 가질 리 만무한 것이었고, 지성의 성숙도 면에서 법률가와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에 법률가들은 교육가이기도 하고 통치가이기도 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저작에서 ‘나는 당신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추상적인 사고를 마치 삼각형이나 도형을 계산하는 것처럼 구획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들이 마련한 법은 국민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질을 더욱 세밀하게 순화시킨 것에 불과하겠지만, 반듯한 밭뙈기처럼 사고와 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하나씩 서서히 변화시켰다.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기회를 기다리며 정치적 과제를 어떤 절차에 의해서 완수해 나가는지 많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성품으로 먼저 사람들을 압도하고 무한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정치가는 깨끗해야 하며, 누군가 반론을 제기했을 때 묵살하면 안된다. 그리고 법률의 소비자들이 스스로 법률의 정당성을 알고 즐겁게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에 대한 결과도 역시 좋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도 성인은 어떤 상황에 따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 지고한 정의는 같다고 말한다. 누마는 덕이 커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리쿠르고스는 덕이 커서 왕의 자리를 내놓았다. 이에 플루타르코스는 한마디로 이 두 사람의 인물됨을 묘사하고 있다.

정의로써 왕이 되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다. 그러나 왕위를 버리고 정의를 택함도 또한 명예로운 일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리쿠르고스를 약간 우위에 놓은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리쿠르고스의 법이 더욱 깊고 치밀한 지배력을 형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리쿠르고스의 법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교육의 덕이다. 리쿠르고스의 법은 출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에 모두 닿아 있으며, 이들의 행동방식까지 관심이 미치고 있었다. 이에 비해 누마는 그의 생전에만 지배력을 형성했으며, 호전적인 로마인의 기질을 잠시 눌러놓았을 뿐이었다. 뿌리부터 의도된 교육과 법률, 행동, 생활방식의 교화는 건전한 시민을 만들고, 그것이 국가력을 형성한다.
그것은 스파르타인과 로마인의 기질 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출산 문제로 예를 든다면, 리쿠르고스는 보다 양질의 종자 결합을 통해 건강하고 강력한 국가의 ‘원소’가 되기를 바랬다. 한 개인은 ‘국가’라는 지상 과제 안에 평생 헌신해야 하며, 그것이 그의 긍지가 되어야 한다. 때문에 아내를 좋은 친구와 사귀게 하여 아내는 친구가 원하는 건강한 자식을 낳아주었고, 그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는 시작부터 여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부부’라는 도덕적 개념이 더욱 강조되었다. 자식의 교육 역시 아버지의 재량으로 통제가 가능했지만, 스파르타는 언제나 ‘공동식탁’ 안에서만 교육할 수 있었을 뿐 그 외의 사교육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우리들이 이 두 도시의 스타일을 보면서 취해야 할 것은 한 도시의 정치스타일이 아니라 적시적소에 두 스타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개인의 생활방식이나 국가보다 작은 공동체 안, 혹은 국가나 국가공동체 안에 두 사람의 정책은 활용의 폭이 적지 않다.
누마에게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일개 이방인(식민지인)으로서 왕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더욱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나라의 모든 틀을 바꾸어놓으면서도 오직 설득과 타협으로만 개혁을 실행하였다. 또한 한번도 화합을 이루어보지 못한 도시를,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지혜와 정의의 힘으로만 다스려 마침내 화합과 조화를 이루어놓았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누마가 리쿠르고스에 비해 세력의 후광이 전혀 없는 황무지에서 이룬 성과 치고는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을 비롯한 현대인에게는 누마가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보다 인간적이란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누마에게 더욱 애정이 간다.

솔론
-철학적 법률가, 인간적 철학자


솔론은 상인 출신이다. 때문에 그는 사유재산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며, 상인이 얻는 이득은 위험을 담보로 한 보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와 같은 성향 덕분에 그리스 사회가 극도의 빈익빈 부익부로 양분되었을 때에도 양쪽을 중재하여 귀중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었다.

이보다 그가 정책의 일선에서 노련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게 된 데는 친구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 정책의 입안자인 직업 때문에 자문을 구할 지지층이 항상 필요했던 그는 현명한 친구를 여럿 알고 있었으나 개중에는 그를 이용하는 악덕 상인들도 있었다.

아나카르시스는 법률가 솔론의 초창기에 교유하기 시작한 친구로 그에게 법률의 맹점을 지적해준 친구다. 즉, 법이란 마치 거미줄과 같아, 사소한 범죄난 힘없는 사람은 걸려들지만 권세 있는 부자들은 오히려 그 그물을 찢어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솔론은 양쪽 모두를 감안해 만든 법률이니 깨뜨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친구를 설득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나카르시스가 생각한 대로 되었다. [54번을 참조할 것]
솔론은 독신주의자 탈레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탈레스는 그에 대해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으나, 후에 솔론이 여행하는 중에 자식이 죽은 것처럼 꾸밈으로써, 결혼이나 가족은 그 사람의 순수한 사유 활동을 결정적으로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실 철학자를 비롯해서 여러 저자들 중에 독신주의가 많은 까닭은 ‘지적 활동에 대한 욕구’가 ‘번식의 욕구’보다 월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솔론은 철학가이면서 현실정치에 깊숙이 참여하였는데, 그러한 경력이 그의 정책 입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시의 중대 사안이었던 외교적 문제와 국내 정계의 투쟁을 현명하게 처리한 후 솔론은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본격적인 정책 작업을 수행했다. [56번 참조]
당시의 아테네 정체는 여러 지방의 파벌 형성으로 국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민주주의와 과두정치, 혹은 중간 형태의 정체가 각 부족의 이해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극단적 전제로 기울어질 위기도 잠재해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실업문제처럼 당시에도 채권자들에게 몸을 저당잡혀 노예가 되거나 자식을 팔거나 해외도피하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그들이 단결하며 아테네는 혁명의 정국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 양쪽의 분쟁을 해결할 사람으로 솔론이 적극 추천되었으며 그 결과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집정관으로 선출되기 전 한 말은 양편의 이해와 염원에 부합해 환영을 받았다.

“모든 일이 공평할 때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사람들은 솔론을 왕으로 추대하기까지 하였으나, 스스로의 소신을 접고 전제로 일변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솔론은 왕위 대신 법전만을 선택하였다.
솔론이 정계에서 발휘한 능력중 하나는 나쁜 말도 부드럽게 완화하여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처럼 양극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양쪽 모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에는 불리하기 마련인 정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솔론의 이 능력은 빛나는 힘을 발휘했다. [이에 관해서는 57번 참조]
솔론이 처음으로 시행한 법률은 남아 있는 부채를 탕감 또는 경감해주고 앞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몸을 담보로 거래할 수 없도록 법률을 정한 것이다. 이 때 솔론은 내가 아는 한 최초로 ‘환율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다. 이전에는 73드라크마로 통용ㅇ되던 1파운드를 100드라크마로 바꿈으로써, 지불하는 돈의 액수는 같은 것이지만 채무자에게는 이익을 주고, 채권자들도 크게 손해를 입히지 않음으로써 민감한 사안을 유유히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었으며 본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솔론의 친구 중에는 현명한 조언자도 있지만 그의 정치 인생의 사망까지 위협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가 위의 정책을 입안할 때 조언을 구했던 친구들은 그가 이 법률을 시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많은 돈을 차용하여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했다. 이러한 파렴치한 농단 행위로 솔론은 크게 신임을 잃었으나 곧 오해를 풀었으며 친구들은 대대로 ‘크레오코피다이(사기꾼)’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다.
정치의 중요 부문에 ‘시민’들을 참여시킨 점은 후에 호민관 제도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솔론은 수입을 가진 사람들을 4등급으로 나눠 각 등급에 맞게 정책 권리를 할당하였으며, 그리스 정치와 법률의 기본적 토대가 된 배심원 제도는 현대까지 유용하게 빚을 지고 있다.
역사에도 해석자가 있듯이 법률도 시대에 따라 변천해야 하며 해석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법률을 현실에 맞게 유동화시킨다. 이러한 의도로 솔론은 고의로 법조문을 애매하게 만들어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말은 만들고 사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뜻을 생산할 수 있으나 커다란 틀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법조문’도 ‘해석자’들도 위협의 위험에서 자유롭게 된다. 현대에 이를 강력히 이용한 사람은 ‘링컨’이다. 단순명료한 법률을 강력한 정치의지로 해석하여 여러 사람을 설득시킨 끝에 링컨은 ‘강한 미국’을 만들어냈다.
이 외에도 솔론은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법률을 제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방관한 사람에게 정치의 자격을 박탈한 법이 그러하고, 고인이 된 사람에게 비난을 금지한 것도 고매한 그의 인격을 드러내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이제껏 모은 사유재산을 자신의 권리에 맞게 양도할 수 있는 상속권도 솔론이 만들었으나 질병이나 아내의 요청, 혹은 위협에 의해 작성된 유서는 무효가 된다는 조항도 재미있다. 또한 사생아는 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없다는 법률은 건강한 가정의 적이며 쾌락만을 위한 삶의 단면을 꾸짖은 법률이다. 그에게서 태어난 자식의 출생 자체가 자식에게는 수치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인 저자의 설명도 재미있다.
법률의 제정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인의 긴밀한 이해관계를 꿰뚫어야 하며 오랜 인내를 통한 설득 작업 끝에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이해 조직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법률이 일단 서고 난 후에 법률가들이 많은 의뢰인을 뿌리치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진나라의 토대를 마련한 상앙은 법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을 무겁게 벌함으로써 법률의 권위를 신장시켜 부국강병을 이루었으며, 솔론은 그들을 피해 달아남으로써 그들 스스로 법률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달아나면서 솔론이 남긴 말이 있다.

큰일을 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솔론은 법률가이기 이전에 철학가이다. 때문에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현명한 삶인가는 일생 일대의 물음이다. 말년에 크로이소스를 방문한 이야기는 인생과 운명의 묘한 의미를 깨달은 말년 철학자의 완숙미가 깊이 담겼으므로 전문을 인용함으로써 솔론의 이야기를 접고자 한다.

솔론은 크라이소스의 초대에 응하여 사르디스를 방문하였다. 그 당시에 솔론의 처지는 산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처음으로 바다를 구경하게 되면, 강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바다인가 하면서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솔론은 호화로운 궁중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은 모두 값진 옷을 입고 시종과 호위병을 거느리고 으스대면서 배회를 하고 있었다. 솔론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모두 왕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드디어 솔론은 정중한 안내를 받으면서 왕을 만나게 되었다. 보석과 값진 채색의 옷, 금, 패물 등으로 치장을 한 모양이 실로 황홀하였다. 그러나 솔론은 왕을 만나면서도 아무런 느낌을 나타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그 광경에 대해서도 솔론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솔론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드시 크게 놀랄 것이라고 짐작하였던 왕은 몹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솔론은 이러한 속된 허식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자 왕은 궁중의 모든 보물들을 솔론에게 구경시켜 주라고 명령하였다. 솔론은 왕의 모습을 보면서 왕이 어떤 위인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궁중의 진귀한 보물은 솔론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든 보물을 보여준 다음에 왕은 다시 솔론을 불렀다. 솔로닝 들어왔을 때 크로이소스 왕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이나 행복한 사람을 보았던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솔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이소스 왕보다 아테네에서 살고 있는 텔루스라는 사람이 더욱 행복하게 보인다. 텔루스는 어진 사람으로 좋은 아들들을 남겼으며 나라를 위하여 영광스럽게 전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의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행복을 금과 은으로 측정하지 않고 한낱 사사로운 사람의 생애와 죽음을 자기의 커다란 권세와 왕국보다 낫다고 하는 것을 보니, 솔론은 마음이 이상하게 비틀린 사람이구나.’
그러나 크로이소스 왕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텔루스를 제외한다면 자기보다 더욱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솔론은 두 사람이 있다고 대답하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렇다. 클레비오스와 비톤이 있다. 그들은 형제로서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대단하였다. 어머니가 타고 있던 수레를 끄는 소들이 너무 느리게 걸었으므로, 클레오비스와 비톤은 직접 멍에를 메고 끌어서 어머니를 헤라 신전으로 모셨다. 모든 시민들이 칭송을 하면서 그들을 자랑으로 삼고 제물을 바치면서 축배를 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영광을 누리면서 오래도록 살다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크로이소스 왕은 화를 내면서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 가운데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아첨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왕의 노여움을 사고 싶지 않았던 솔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님, 그리스 사람들은 하늘의 은총을 그렇게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도 작고 웅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중용을 지키면서 운명의 변천이 기구함을 보고, 현재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으로 삼거나 다른 사람의 행운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미리 알 수 없는 앞날은 많은 괴상한 일을 감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만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살아 있어서 신의 계시와 운명의 장난을 모면하지 못하는 사람의 행복을 축하하는 것은, 경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선수의 머리에 승리의 관을 얹어주고 승리자라고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고 있으므로 언제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솔론은 이러한 말을 남기면서 그곳을 떠났다. 솔론의 좋은 충고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크로이소스 왕은 대로하였다.
유명한 우화 작가였던 이솝도 크로이소스 왕의 초대를 받아서 사르디스로 찾아왔던 적이 있었다. 이솝은 사르디스에서 머무는 동안 크로이소스 왕의 은총을 받았다. 이솝은 푸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이렇게 조언하였다.
“솔론, 크로이소스 왕을 대할 때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거나, 왕이 듣고자 하는 말만 듣도록 하십시오.”
솔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하지 않거나 이로운 말만 해야 합니다.”
그 당시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 왕이 키루스에서 패전하여 수도를 빼앗기게 되었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마침내 페르시아 군대와 키루스가 입석한 자리에서 크로이소스 왕은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세 번이나 소리를 높여서 솔론의 이름을 간절하게 불렀다. 크루스는 그 일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키루스는 크로이소스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과연 솔론이 어떤 사람이기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궁지에 몰린 사람이 간절하게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다. 크로이소스 왕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솔론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나는 솔론을 일부러 초대해서 만났던 일이 있습니다. 솔론의 현명한 말을 듣고 내가 모르는 바를 배우기 위하여 초대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재산을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재산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동안의 행복보다는 잃어버렸을 때의 불행이 더욱 큽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하면, 재산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내가 즐긴 것이라고는 실속 없는 소문뿐이었습니다. 지금 그것을 잃어버린 나는 이러한 고생과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저 후회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솔론은 나의 이러한 운명을 미리 알고, 올바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면서 일시의 부귀로 오만하지 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었던 키루스는 크로이소스 왕보다 현명한 사람이었으므로, 솔론의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로이소스 왕은 어쩌면 자신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키루스는 크로이소스 왕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일생 동안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므로 솔론은 한 마디의 현명한 말로 크로이소스 왕의 생명을 구해주고, 키루스 왕에게는 커다란 교훈을 안겨주었다.



포플리콜라
-전제에서 지켜낸 평화로운 민주정과 시민의 권리


포플리콜라는 발레리우스의 명예로운 별명이다. 곧 ‘백성을 사랑하는 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여기서 발레리우스와 포플리콜라는 동의어가 되므로 상황에 맞게 표현할 것이다.
난항하던 당시의 정체에 타르퀴니우스 스페르부스라는 악당이 부당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했다. 백성들과 정치가들도 그를 미워했지만 이웃 강대국의 힘을 업고 있는 터라 아직 손을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루크레티아의 자살이 계기가 돼, 브루투스는 발레리우스와 시민들의 전적인 호응에 힘입어 전체를 공화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시민들은 힘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정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터라, 두 명의 집정관을 선출했는데, 한 명은 혁명의 지도자 브르투스였으나, 다른 한 명은 안타깝게도 폭군에게 직접 피해를 입은 루크레티아의 남편 콜라티누스가 선정되었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패배한 발레리우스가 절망한 나머지 로마의 정국을 점복할 유력한 인물로 의심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제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로마에서 추방된 전왕은 복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며 우군을 은밀히 확보하였다. 불행히도 그의 우군의 선봉에는 집정관 브루투스의 두 아들도 있었다.
다행히 이들의 음모를 지켜보단 빈디키우스라는 시종에 의해 단서가 포착돼 이 일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는데, 이 때 발레리우스의 일처리는 놀라울 정도로 재빨랐다. 그리고 이 사건의 처리를 두고 행동한 브루투스의 의연하면서도 냉정한 선택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두 집정관이 소란을 가라앉힌 다음, 발레리우스의 명령으로 반디키우스가 끌려 나와서 고소 내용을 반복하고 편지 내용이 밝혀지자, 피의자들은 변명 한 마디 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몇 명이 브루투스를 편하게 해줄 요량으로 국외 추방을 언급했고 콜라티누스가 눈물을 흘리고 발레리우스가 침묵을 지키자 자비가 베풀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두 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말했다.
“그래, 티투스, 그래, 티베리웃,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다는 말이냐?”
그는 이렇게 세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형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내 직분은 끝났으니 너희들의 몫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형리들은 곧장 두 청년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고 손을 뒤로 묶은 뒤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때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했으나, 브루투스느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불쌍하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엄격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형리들이 아들들을 땅에 쓰러뜨린 다음 도끼로 목을 잘랐다. 브루투스는 다른 죄인들에 대한 문제는 동료 집정관인 콜라티누스더러 처리하라고 일임하고서 포룸을 나왔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저자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말을 한다.

우리는 이 행동을 높이 칭송할 수도 있고 강력히 비난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위대한 성품이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으나, 설움이 너무 커서 마음이 목석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신속한 조치로 발레리우스는 집정관에 선출되었으며,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다. 이 때 폐왕과 브루투스의 반감이 폭발해 무서운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집권한 발레리우스는 왕과 대등한 권력을 갖고 있던 집정관의 권위를 많은 부분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때 솔론의 배심원 제도 등 많은 정치적 권리를 분배함으로써 세력의 균형을 가져왔다. 이에 따른 상징적인 조치로, 호위병들이 가지고 다니는 장대 끝의 도끼를 없애게 하였으며, 장대 또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숙이게 함으로써 시민들이 바로 공화국의 근본임을 명백히 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상위의 정치적 농간’을 방지하는 여러 가지 법률을 제정했다. 첫째, 집정관의 판결에 불복하는 자는 누구든지 국민들에게 상소할 수 있게 했고, 둘째, 국민의 동의 없이 공직을 강탈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했고 셋째, 빈궁한 자들의 세금을 감면하여 그들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평상시에 집정관에게 불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에 대한 법령도 만들었는데, 이 법령은 귀족보다는 일반 국민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편 국가를 위협하는 극악한 범죄에 한해서는 선조치 후 평가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살해자는 나중에 그 사람의 국가 위협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만 보이면 무죄가 되었는데, 음모자들이 선수를 쳐서 법을 전복하고 법률의 제어를 받을 수 없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 법률을 시행하고 대외정책이나 국가사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세금 부과가 불가피하였는데, 발레리우스는 세금을 관리할 관료를 선발하여 위탁하였고, 신성한 신전을 국고로 지정함으로써 공정한 세금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였고, 재산 정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사람들은 불만 없이 납부하였다.
포플리콜라의 정치 인생에서 포르센나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라틴 인과 사비니 인의 연합군과의 대결 국면을 전쟁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것은 그의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포르센나에는 현명한 암살자를 파견함으로써 그 나라 군주 앞에 로마의 기개를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연합군의 내부적 갈등을 이용해 중요 인사를 포섭함으로써 전쟁을 지연시켰으며 분쟁의 대부분을 해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은 적국과 대결할 때는 다양한 정보와 치밀한 작전을 구사함으로써 많은 피해를 겪지 않고서도 어려운 국면들을 모두 해결하였고, 대외 관계에서 로마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의 임종시에는 모든 시민이 만장일치로 일정금의 조의금을 내기도 하였으며, 그의 죽음이 측근이 아닌 온국민의 슬픔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포플리콜라와 솔론의 비교


이 세상 내 떠나는 날,
친구들의 한숨과 설움을 받기가 나의 소원이니,


위의 시구와 앞에 소개한 솔론의 소박한 소망은 바로 포플리콜라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솔론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포플리콜라였다고 술회하였다. 솔론의 평생 소원이 포플리콜라의 일생을 두고 실현되었으며, 포플리콜라의 빛나는 정치적 업적은 솔론의 법률을 채택함으로써 가능했다.

솔론의 평판은 포플리콜라를 능가해 왕으로까지 추대받을 정도였으나, 포플리콜라는 어렵게 얻은 권위를 유용하게 활용한 데 더욱 빛이 난다. 전제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정을 온전히 지켜냈으며 시민들의 권위를 신장한 것은 권력을 현명한 분화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포플리콜라는 ‘기반’을 마련한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으며, 솔론은 ‘가능성을 제공한’ 정치가이자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포플리콜라는 자신의 의지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직접적으로 대중을 설득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공론을 위협하는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내고 그 동조자들을 색출하는 힘겨운 작업 끝에 민주정은 마침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는 용기와 끈기와 박력을 요구하는 일에 있어서 그는 과감하게 행동했으며 평화적인 협상과 설득과 양보가 필요한 경우 역시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 조화로운 사람이었다. 현명한 정치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행동을 취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솔론이 고심하며 가다듬은 법률을 힘있게 실천함으로써 포플리콜라는 솔론과 함께 승리자가 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
-영광스런 아테네의 복권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애독한 사람이라면 아래의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초반, 아테에 인들이 페르시아 인들과 맞서 싸운 끔찍한 전쟁이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이라고들 하지. 기원전 480년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륵세스가 아테네를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의 옛 목조 건축물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 이듬해에 페르시아 병사들을 무찌르고, 아테네의 황금 시대를 열었지.그리고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축조하였다.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고 아름답게 말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곳은 오직 신전만이 있는 성역이 되었지. 바로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거리와 장터를 두루 돌아다니며 아테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일생에 행운이 따라 그 시절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기반 안에서 플라톤의 정신이 온전히 깨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아테네의 찬란한 역사는 테미스토클레스-페리클레스-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까지 연결돼 능력을 뽐낸다. 우리는 위의 구절에서 잠시 속도를 멈추고 아테네가 어떻게 페르시아라는 대국의 침략으로부터 강토를 지켜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대단한 야심가이다. 그를 대단한 야심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개인의 야심을 넘어서 도시 전체의 시민들에게 야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분위기는 전쟁에 익숙해서 이웃나라의 강대국이 침입을 하면 헬라스 내의 도시들이 모여서 연합군을 결성한다. 아테네나 로마, 라케다이몬(스파르타) 같은 강대국이 주도적인 지위를 갖고 합심하여 적을 몰아내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이방민족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연합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는 않았으나 조국을 설득하고 연합군을 결합시켜 마침내 페르시아 왕 크세륵세스의 야심을 꺾어놓기에 이른다.
여기서 철학사를 잠시 상기시킨다면 이 시대에 번성했던 사조는 우주가 아니라 인간이었고, 삶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좀더 실무적이고 변호에 능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절차에 맞게’ 정적을 추방하는 능력은 그의 정신 깊숙이 소피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정치와 국제관계에 정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설득술의 달인이자, 뇌물이나 속임수와 음모를 주로 사용했으나,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이러한 방책이 그의 개인적인 영광과 국가의 번영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명쾌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정적 아리스티데스를 추방한 것은 획득한 정권으로 국가를 더욱 부강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지명도가 있는 인물에게 뇌물을 주어 정계를 떠나게 한 것도 그 인물됨이 국가를 기울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덕망이 없었기 때문이며, 연합군 사령관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도 사령관의 소인적 기질을 독려하고 전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군량미가 떨어졌을 때 담당장교를 참살해 원성을 무마한 조조처럼 테미스토클레스도 중요한 의식물품이 분실되었다는 핑계로 전군의 소지품을 뒤져 충분한 군비를 확충한 것은 그가 카멜레온처럼 국면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한낱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은 그가 이뤄낸 결과가 증명해주며, 그와 겨뤘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륵세스가 증명해준다.

당시 페르시아와 연합군 전력은 다윗과 골리앗보다 못한 것이었다. 대군으로 이뤄진 전열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사령관과 병사들이 달아날 생각부터 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전장에서나 상대도 안되는 전세를 대등하게 만들어 놓고, 지는 게임을 이기는 게임으로 만드는 장군들이 있었다. 제갈량이 그러했고, 나폴레옹이 그러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러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대군과 싸울 때 적은 우군의 장점인 게릴라 공격과 측면이나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작전은 효과가 있고, 대군의 불리한 점, 즉 이동의 불편함이나, 국지전, 군량의 보급 등을 끊임없이 공략한다면 어떤 전쟁이든지 대등한 입장에서 전선을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치밀한 심리 전술로 달아나는 우군을 잡아두었으며 적군을 울타리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평정심을 갖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크세륵세스는 월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허겁지겁 후퇴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저자도 ‘용기로 적을 누르고 지혜로 우군을 누르도록 설득함으로써 아테네 사람들에게 큰 영광을 안겨주었다’고 술회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아테네 군이 페르시아군과 대치하고 있는 동안 약속된 연합군의 원군은 오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아테네를 보면 테미스토클레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즉 아테네의 모든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적군과 담판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잃은 영광을 되찾기는 어려운 법이다. 시민들은 당연히 그의 결정을 꺼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혜주머니에서 한 가지 꾀가 튀어나온 것은 이때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신탁을 끌어들였다. 아테네 신의 신탁은 살라미스 섬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무로 만든 성에 의지해 오래된 영광에 또 하나의 영광을 덧붙일 수 있다고 했다. 나무로 만든 성은 곧 배를 뜻한다. 누마 폼필리우스의 축복에 의해서인지 신탁의 힘에 이끌려서인지 사람들은 그의 결정에 동조했고, 비장한 대이동이 전개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도시를 비워둔 채 배를 타고 떠나는 광경은 처량하면서도 칭찬할 만했다. 노부모와 어린 자식들이 울부짖는 걸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전에 미리 가족들을 타국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움직일 기력조차 없어서 아테네에 남겨진 늙은이들의 신세는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기르던 짐승들조차도 바닷가까지 달려나와 주인을 따라가고 싶어하며 짖어대었는데 그 모습 역시 애처로웠다. 페리클레스의 부친 크산티포스가 기르던 개는 도저히 주인과 떨어질 수 없었던지 바다에 뛰어들어 주인이 탄 배를 따라 헤엄쳐서 살라미스 섬까지 도착한 순간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그 곳에는 지금도 ‘개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이 영운전에서도 중요한) 대목에 이르는데, 그것은 추방된 정적 아리스티데스가 돌아온 일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해 돌아왔으며 거기에는 테미스토클레스의 교섭도 일조했다. 아리스티데스는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결정적인 조언을 함으로써 승리의 조언자가 된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연합군 사령관을 설득하는 장면도 백미의 하나이다.

에우리비아데스는 그의 본국 스파르타의 위신에 힘입어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이 되었으나, 위험이 닥치면 지레 겁을 먹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상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스트무스로 후퇴하기를 원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제안에 반대하였다. 그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은 바로 이때였다.
“올림픽 경기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출발하는 사람은 채찍질을 당합니다.”
에우리비아데스가 위와 같은 말을 하였을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뒤에서 아물거리는 사람에게 승리의 관을 씌워주지도 않더군요.”
에우리비아데스가 지휘봉을 치켜들고 내리칠 기세를 보이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때리시오. 그러나 이 말만은 들어주시오.”
에우리비아데스는 그의 온유한 성격에 놀라며 한 번 말해보라고 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더욱 간곡히 그를 설득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나서서 말하기를, 잃어버릴 집도 고향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더러 고향을 버리라고 하느냐고 말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답답한 사람아,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집도 성도 모두 버렸소. 생명도 영혼도 없는 한갓 재산을 지키려다 노예가 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그리스에 있는 그 어느 도시보다 더 훌륭하오. 그것은 우리의 배 200척으로 이루어진 도시오. 당신이 원한다면 그 배는 당신 나라를 지켜줄 것이오.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전과 같이 우리를 배반하고 줄행랑을 놓는다면 그리스 사람들 중 오로지 아테네 사람들만이 소중한 영토와 자유가 넘치는 도시를 차지할 수 있을 뿐, 당신네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오.”

이렇게 연합군을 설득시켜 전선을 유지하고, 적왕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아테네 군을 전면 포위하도록 하였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아테네 막사에 알려온 것은 아리스티데스로 그의 조언으로 아테네군은 도주를 단념하고 필사적으로 대항하였다. 지형과 기후, 국면과 속임수 등으로 적군을 제압하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능력은 앞에서도 보였다.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아테네 군은 대등한 위치에서 교묘히 적을 압박해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 여기서 적군의 퇴로를 끊고 압살하느냐 퇴군을 부추기느냐를 놓고 테미스토클레스는 고심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리스티데스에게 적군을 압살하리라는 의견을 슬쩍 떠보았으나 아리스티데스의 판단은 달랐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전쟁을 값비싼 여가선용 정도로 생각하는 페르시아 왕과 싸웠소. 그러나 만일 그를 그리스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면, 그는 곧 황금양산 밑에서 뛰쳐나와 지략을 다하여 몸소 작전을 지휘할 것이오. 그는 단호한 자세로 자신의 과오를 수정해나갈 것이며 모든 현명한 충고를 받아들일 것이오. 테미스토클레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조금도 이로울 것이 없소. 그러므로 이미 만들어놓은 다리를 끊을 것이 아니라 되도록 그와 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들어 그들이 가능한 한 빨리 유럽에서 빠져나가도록 해야 하오.”


이에 아테네 군은 전력을 다해 페르시아의 대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는데, 거기에는 테미스토클레스의 거짓 밀서도 일조를 하였다.

“그리스 군은 해전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헬레스폰트로 배를 몰고 가서 거기 있는 부교를 끊어버릴 계획이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대왕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리는 바이니 대왕께서는 속히 그 다리를 건너 대왕의 영토로 돌아가시라고 하오. 그 동안 이 사람은 그리스 군 연합함대가 지체하도록 시간을 벌어드리겠소.”


이렇게 해서 아테네는 옛 영광을 되찾음과 동시에 국제적인 질서에서도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후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견제와 시기심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위기가 지난 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렸으며 결국 퇴각투표를 통해 추방되고 만다. 질투의 경제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sup>3)</sup> 테미스토클레스의 체념 섞인 독백은 인생의 무상함을 깨우쳐 준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그저 쥐방울나무 취급을 할 뿐이라, 날씨가 사나울 때는 그 그늘 밑에서 피신하지만 날씨가 좋아지면 곧 잎을 따고 가지를 쳐버린다

이는 동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영웅이 전성기 시절에는 집안에 수천면의 문객이 모여들지만 그가 영락한 후에는 마당 앞에 새그물을 놓아도 될 정도라고 불평하였다. 이것은 동서양 영웅들의 공통된 불만사항인 것 같다. 하지만 대세가 이러한데 어떠하랴. 인간성을 탓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처지에서 빛과 함께 일어난 것처럼 빛을 거두는 운명을 탓하는 꼴 아니겠는가.
추방된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로 가게 되는데, 페르시아 왕은 호걸한 사람이어서 자신을 좌절시킨 이 영웅을 영웅답게 대접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조국을 침략하도록 책동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죽음의 화답’을 그에게 전할 뿐이었다. 후세에 이보다 더 젊은 나이에 추방된 사람들은 정말로 창을 거꾸로 쥐어 조국을 절망으로 빠뜨리기도 하지만, 이 영웅 1세대들은 힘겹게 일으킨 영광을 다시 전복시킬 수는 결코 없었다. 차라리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끝내는 편을 택했다. 이러한 특성이 영웅 1세대의 공통적인 특성이며 이들 중에는 조금만 손쓰면 나라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던 상황이 많았을 테지만, 이러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들이 내린 결정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국가라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일으키는 것은 긍지를 갖게 하는 일이지만,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며 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이들의 선택 이면에 풍기는 향취가 너무도 애절하여 코끝이 찡해 온다.



주)
1) 휴브리스
그리스어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오만'을 뜻하며,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기 능력과 방법론을 우상화하여 과하는 오류.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교만해지고, 지적․도덕적 균형을 상실하며 판단력까지 잃게 되어 역사의 역동성을 저해한다는 의미로 역사학자 토인비가 채택한 용어.
2) 아프락사스
헤르만 헤세가 고안한 용어로,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타나듯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과감히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
3) 질투의 경제학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분배의 정의'는 사실 '질투'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본의 경제학자 다케우치 야스오 교수의 지적. 여기서는 정당한 정치적 제도를 통해 영웅을 추방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광에 대한 질투와 좌절된 영광에 대한 질투와 좌절된 영웅을 보는 쾌감이 추잡하게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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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세우스까지만 읽고 일단 물러납니다.^^

승주나무 2006-02-1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7권까지 끝내려 하는데.. 써내기도 참 힘들군요..사기열전도 봐야 하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작은글씨)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주요한 모랄리스트> 못마땅한 인생사, 풍자, 불만, 그리고 시 - 라로슈푸코

 

흔히 모랄리스트를 이야기할 때는 '파스칼'과 '라로슈푸코'를 지목한다. 라로슈푸코는 국내에서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세계의 수많은 저술가들이 '라로슈푸코'가 남긴 구절을 애용한다.

파스칼과 라로슈푸코는 똑같이 인간성을 탐구했으나,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 파스칼은 사상의 근원을 영성에서 찾고 있는 반면 라로슈푸코는 허무하지만 생동감 있는 현장의 삶에서 찾고 있다. 자연히 파스칼의 어조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세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귀하고 벅찬 '원천'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라로슈푸코는 정치하다가 숙청된 인물로 세상에 대한 강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으로 염세적 풍자를 드러내기 때문에 당대에도 많은 비판과 비난을 피할 수 없었으나, 그가 인생의 리얼리티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찬사를 받는 점이다. 다만 파스칼은 '실존'을, 라로슈푸코는 '염세'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생각하는 인생이란 '녹록치' 않거나 '탐탁치' 않은 둘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두 사람이 만나는 '최소한의 지점'이다.

 

 자연은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두었다. 우리는 그들 중에 일자를 타자에게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각자는 그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 파스칼, '팡세'

 

라로슈푸코에게서 위와 같은 언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자기가 자기를 깎아내는 것은 다만 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이다. - 라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위의 언어는 부분에 불과하지만, 진정 '라로슈푸코적'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성의 허위를 이토록 적나라하며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려내는 것은 '라'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러나 라로슈푸코의 사상은 삶과 현실, 생활과 허위 등 인간의 '드러나 있는 면모'를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글의 '문학성' 측면으로 본다면 '라로슈푸코'가 파스칼보다 더욱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라로슈푸코의 언어는 '시'에 가깝거나, 그 자체로 '시'인 경우가 많았다.

 

운명과 운명 사이에 얼마만한 차별이 보이게 될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길흉화복의 어떤 상쇄가 있어서 운명과 운명을 평등하게 한다.

 

운명은 이성도 교정할 수 없는 많은 결점을 교정하여 준다.

 

위선이란 악덕이 미덕에게 바치는 찬사인 것이다.

 

늙음의 고개를 오를 무렵이 되면, 육신이 쇠퇴하는 소식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지만 아름답지 않고, 또 아름답지만 젊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도 없다. - 이상, '잠언과 성찰' 본문

 

위의 문구를 접하며 우리는 달관한 인생관이 묻어나는 시 구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로슈푸코를 '염세와 불만'의 사상가로만 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글귀 안에는 '정의'와 '섭리', 세상사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글 속에 풍자와 애정을 골고루 섞어 놓았다. 가끔 번뜩이는 심리학자의 면모 또한 곳곳에서 포착된다.

 

아무리 화려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위대한 계획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닌 한 위대하다고 간과할 것은 못된다.

 

군자의 무리에게 끊임없이 주목을 끌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군자의 몸가짐이다.

 

너무 성급하게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얻어진 명예는 얻어야 할 명예의 담보물이다.

 

우리들은 왕왕 우리들을 괴롭히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쪽에서 짓궂게 구는 상대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인간 전반을 안다는 것은 개개의 인간을 아는 것보다 쉽다.(히틀러 : 군중을 속이는 것이 개인을 속이는 것보다 쉽다.) - 이상, '잠언과 성찰' 본문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문학자의 첫째 덕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스칼은 철학자에 가깝고, 라로슈푸코는 문학자에 가깝다. 인생을 함께 할 든든한 벗 하나 없고, 허위와 기만에 가득 찬 사람들을 쳐다보아야 하는 고통을 우리는 라로슈푸코에게서 더 많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모랄리스트들은 도덕과 가치를 위해서 '인간성'을 탐구하는 사명을 가지지만, '도덕과 가치'보다는 '인간성 반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각자가 '모랄리스트'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며, 나와 당신의 생각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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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0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모랄에 관심은 있는데 깊이 생각해 보는 건 싫네요.
그래도 이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
아침에 읽고 답글은 지금.

승주나무 2006-02-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엔 깊이 생각하는 것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자꾸 우려내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한적한 생각'이 좋습니다. 요즘은^^
 
김유정 전집 2 - 소설, 문학
김유정 지음 / 가람기획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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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유정'이라고 부르는 나의 오만불손함에 대해 항변코자 한다. 내게 있어서 유정은 '점순이'나 '이쁜이'처럼, '암팡스럽'거나 '숭글숭글한' 인물이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 언뜻언뜻 비추는 그를 자주 접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유정을 접하게 된 계기는 어느 계간지에서 이문구(李文求)의 고백을 접하고 나서이다.

'언어는 유정에게 배우고, 정신은 동리에게 배웠지.'

이 말이 내게는 새삼 큼직하게 다가왔다. 일전에 유정의 소설 몇 편을 선배의 권유로 읽어본 일이 있어서 사뭇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결심이 유정의 전작품을 읽고 입말공부도 하고, 작품세계도 탐구해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소설을 쓰고 싶은 문학도로서 임하는 탐구였다. 때문에 이 글은, 유정의 특정한 작품을 읽고 나서 쓰는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유정의 작품들과 알려진 유정에 대한 사실을 토대로 쓰는 '김유정 감상'의 특징을 가짐을 미리 부언하는 바이다. 아직은 그의 전작품 중에 반 정도밖에 소화해내지 못했지만, 그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국어사전은 물론, 대사전에다 별도로 김유정어휘사전도 참고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생소한 토속어 한자 한자를 찾아 읽으면서 얻은 것은 어휘뿐만이 아니었다. 4년 동안에 발표한 소설 치고 그의 소설에는 8천여 개의 어휘와 그 중에서도 83%이 토박이 말임을 알 수 있다.그것은 유정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토박이말을 담아냈다는 점을 말해준다. 여기서 유정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작가마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지한 대중을 계도하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최고 지성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고매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글쓰기,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글쓰기도 있을 것이다. 유정의 경우는―썩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세 번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시대와 공간을 되도록 진솔하게 담아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거기에 들어가는 요소로서 토박이말이 있다. 그렇다고 유정이 우리말만을 숭상한 것은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쓰는 말이라면 일본어, 다른 외래어라도 가리지 않고 써넣었다. 그러나 유정에게서 언어만을 배워간다면 그것은 반도 못 배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가 쓰는 언어는 그가 만들어낸―정확히 표현하자면 묘사해낸―인물들에 의해서―개성과 운명 등에 의해서―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김유정의 농촌은 그것이 가진 사회역사적 본질에 의해 매개되지 못한 채 묘사됨으로써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등 여타의 비판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지역사회의 이해라는 것은 그 안의 구성원이 관찰하고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자료를 토대로, 그 안에서 특징들을 추려내어 이론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회역사적 본질이라는 말뜻도 이해키 어려운 척도로 가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된 지역사회의 본질이라면 그만큼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유정은 인물들의 행위와 성격을 직접 평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행위를 관찰하고 꼼꼼하게 묘사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그들을 평가한 어떠한 말보다 더욱 가깝게 그들의 사회역사적 현실을 보며, 더불어 함께 웃을 수도, 가슴아파할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유정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입심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그의 세계에 함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정은 우리를 함몰할 세계를 가질 만큼 독단가는 아니다. 오히려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한 걸음 물러난 숙연한 기록자로서 유정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춘호'나 그 밖의 여러 이름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안정감에 있다. 그들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이웃이며, 그 시대에 엄밀히 존재했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정의 소설에서는 창조적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인물들을 누르는 운명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인물들의 발버둥질이 더욱 애절하게 와 닿을 뿐이다.

우리는 유정이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왔을 적에 자신이 시대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 고민을 했던 사실을 접할 수 있는데, 그 후에 야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그림을 연상할 수 있었다. 야학을 하며 문맹인 이웃들을 가르치는 유정의 가슴속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도 글자를 가르치며 아름다운 우리말에 충분히 세례를 받았을 줄로 안다. 여기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이나 시대적 조건, 주위 환경 등을 그려보는 것은 예비작가로서 나에게 하나의 큰 가르침이 된다. 즉, 자신의 힘과 시대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했던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하면서도 유정다운 가르침은 바로 그의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유정의 '사람됨'이다. 유정이 단순히 지식인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쁜이가 그에게 속맘을 비춰줄 수 있었을까? 그야말로 촌스럽게 '점순이'가 '봄감자'로 사랑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유정의 사람됨과 닮게 유정의 인물들 중에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 '뚝건달 뭉태'도 악인은 아니다. 유일한 악인이라면 인물들을 기형적으로 변질시키고, 위에서 내리누르는 사회이며, 시대이며, 지겨운 운명이다. 때문에 유정의 모든 인물들은 운명의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개중에 몇몇 불쌍한 사람들은 피해자들의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유정은 악인을 따로 상정하지 않고서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얼마 안 되는 소설가이다. 이 점은 내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갈등과 긴장은 언제나 선악의 대립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대립해야 할 필요도 없다. 유정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방향에 서서 '드러나지 않은 악'을 쳐다보고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이 글의 서두에 왜 이문구의 고백을 집어놨는지 눈치를 챘을 줄 안다. 요컨대 내가 유정에게 배운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이지만, 그 한 단어 한 단어에 풍성한 생명과 가치를 부여하는 유정의 정신을 배웠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불순물을 남겨놓지 않고 제 몸을 녹여서 만들어낸 순수 결정체의 정신이며, 그 이면에, 숙연하지만 자신이 할 말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소설의 그릇에 온전히 담아내는 작가로서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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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서양문학 4
B.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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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설을 전후로 '미래'와 '현재'에 치중하던 나의 '읽고 쓰기'가 '과거'로 약간 이동했다. 지나간 글을 돌이켜 보고, 정리를 하자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속도에 대한 반성'이다.

동양철학은 허투루로 배운 줄 아느냐! '느림의 미학'보다 중요한 미학은 '일시정지' 즉, '엑스캔버스하다(XCANVAS-hada)'이며, '돌아감'이다. '돌아감'이라는 말은 참으로 풍부하게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용어이다. '빙 돌아감'과 '회귀'와 '돌아가심'이라는 뜻이 모두 담겨 있다. 옛말에 '게으른 선비가 책장을 헤아린다'는 속담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권수'와 '페이지수'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텍스트와의 진정한 독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뒤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도 하고, 아예 베껴써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과거 읽기'가 천박한 '쪽수 헤아리기'의 못된 병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에잇!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철학자가 가장 철학자다워 보일 때는 '모순'이나 '역설'을 이용해서 사상을 전개할 때이다. "쾌락과 고통은 우리들의 욕망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에 그 사물을 욕망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사물을 욕망하기 때문에 사물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다"라고 한 스피노자의 명쾌한 주장도 유쾌하며, "의미는 말에 품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에서 품위를 얻는다"는 파스칼의 주장도 시원스러워서 좋다.

자타가 공인하는 파스칼의 미덕은 '간명한 문장'이다. 다른 말로는 '금언', '격언', '아포리즘', '잠언' 등 여러 가지 말로 불리기도 하는데, 파스칼 자신이 '늘어지는 문장'을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정신이 번뜩 하는 것은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시가 영원히 살아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랄리스트'는 '인간성' 자체를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도덕적 사상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담백한 각성이 필요하다. 때문에 '도덕'으로 가기 위한 '자기 반성'이 모랄리스트들이 주로 한 일이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고르게 묻혀야 그 의미가 드러나므로 한쪽의 의미에만 너무 경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파스칼의 모랄리스트적 면모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처세'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보다 '근원적인 것'에 있다. 이 역시 서로를 염두에 둔 철학이기 때문에 양분하기 힘들다. 팡세의 구절 중에

남을 효과적으로 훈계하고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려 한다면, 그가 사물을 어떤 측면에서 보고 있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보통 그 측면에서는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올바른 점을 인정하면서 그의 잘못된 다른 측면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라는 내용을 보자. 이것은 '처세'와 더욱 연관이 있겠지만, '근원적인 것'을 무시하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파스칼의 철학은 근원적인 것이 처세적인 것을 향하며, 처세적인 것은 근원적인 것을 줄기차게 향하는 구도로 정리돼 있다.

파스칼의 '근원적인 사유'를 이야기할 때 가장 어울리는 말은 '모순'이다. 철학자든 문학자든 모두 이 동굴에서 태어났다. 파스칼은 철학, 문학, 과학에 두루 걸쳐 있기 때문에 그의 '모순'은 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의 비참함을 아는데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기도 하다. - 본문 중에서

위대성과 비참함은 묘하게 중첩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안정된 '의미'를 이룬다. 모순과 역설이 '강력한 철학'의 동력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들의 타성에게는 '경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학자는 간단히 앞과 뒤의 말을 바꿈으로써 놀랄 만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습관과 본성은 어떠한가.

습관은 제2의 본성이며, 이 제1의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성이란 무엇인가? 습관은 본성적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될까? 습관이 제2의 본성인 것처럼 이 본성 자체가 제1의 습관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이것뿐만 아니다. 방정식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좌변과 우변을 거꾸로 두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예 중요 지수를 빠뜨리는 일도 많다. '잃어버린 지수, 언어'를 되돌리는 일도 철학자의 역할이다. 문학자와 철학자가 자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창조자'가 아니다.

나의 저작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의 저작에는 이미 많은 사람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저작'이라고 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파스칼은 그의 학문 영역 만큼이나 사유의 스펙트럼이 넓다. 단순히 한 문구씩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유익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요즘도 많은 문필가들에게 인용되는 단골 문구인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말과 같이 파스칼은 '실존 철학'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종교' 이야기이다. 우리는 '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를 부정하지만, 파스칼은 '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를 긍정한다. 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신이 아니라 인간과 다름 없는 어리석고 미천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그의 화법이 어김없이 드러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신이나 종교에게 무리한 '인간적 강요'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팡세의 상투적인 수식어로 빠지지 않는 것이 '미완성'이라는 꼬리표이다. 물론 파스칼이 '필생의 역작'을 의도로 작업을 하다가 요절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너무 '무책임한 독자'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것을 '완결'짓는 것은 파스칼이 아니라 '나'가 아닐까. 모든 '완결'된 저작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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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02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어진 서두가 재밌습니다.
저도 <팡세> 읽어보고 싶어서 한 권 사두고는 못 읽고 있네요.
이상하단 말예요.
어떤 책은 그 책 속의 몇 줄을 아는 것만으로 전부 읽은 것처럼 생각돼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6-02-0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몇 줄을 하고 싶어서 그 사람은 그 '두꺼운' 책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다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학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서도, 15분간 더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본문>

가넷 2006-07-26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국내에 나온 <팡세> 중에 이 책이 가장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