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디워를 보면서 느낀 자긍심은 영화적인 것은 아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서 만들어진 관객들의 숙연한 표정은 시놉시스를 보거나 매체에서 소개된 내용을 읽으며 내가 보였던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영화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지향해야 한다지만 나는 이 정의는 반쪽 짜리라고 생각한다.

즉 영화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지향함과 동시에 지양해야 한다.

거기에 영화적 모순성이 숨어 있다.

 

영화는 이미지로 말한다.

영화의 이미지는 텍스트의 기능도 하면서 텍스트를 뛰어넘기도 한다.
원작과 영화 이미지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는데, 영화가 우위를 보이는 경우는 텍스트의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디워의 이미지는 어떤가?


SF : 과학적 공상으로 상식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소설. 공상 과학 소설. [science fiction]
SFX : 영화의 특수효과. 원래 SFX는 음향효과(sound effects)의 약칭인데 한국과 일본에서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특수효과를 가리키게 됨.

디워는 SF영화라기보다는 SFX영화라고 해야 한다. 내가 감동한 지점은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도 저런 장면이 나오나?"일 것이다. 그것은 영화 "씨받이"가 문화적 독특함으로 베니스의 선택을 받은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심형래의 강요'이다. 영화에 대한 시끄러운 평판이 미치지 않도록 매우 이른 시점에 영화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형래의 역경'류의 비 영화적 요소에 나는 상당 부분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분명한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용가리'와 비교하며 스스로 작품에 대해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발견했다. '심형래의 강요'는 영화 관계자들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러니까 디워의 상당 부분은 영화적 요소가 아니라 마케팅 요소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심형래의 영화에 대해서 굳이 논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심형래 영화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는 '영구와 땡칠이'와 같은 선상에 놓고 싶다.
어릴 적 지방에서도 영화관 하나 없는 벽촌에 살았던 나는 메이커 신발을 사러 버스를 오래 타고 시내로 가야 했다. '신발 사기'는 당시 우리 또래에게는 매우 소중한 행사였는데, 영화를 한편 보기 때문이다. 그때 보려고 했던 영화가 영구와 땡칠이였다. 불행히도 영화는 매진되었고, 몇 달 뒤 비디오가 있는 친구네 집에 수십 명이 들어앉아 쥬스를 마시며 보아야 했다.

심형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디워 역시 12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유익한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동시에 12세를 거느리는 가족에게도 유익한 영화라는 의미이다.

내가 화려한 휴가를 보려고 했던 이유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나는 영화 관계자들에게 이 점이 매우 유력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영화는 유난히 부채의식을 강조하고, 민감한 부분에서는 과장된 연출을 서슴지 않았다.

함께 영화를 본 동료들이 '불편함'을 느낀 점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요원이 그렇게 울부짖고, 안성기가 희생하고, 김상경이 폭도가 아니라고 목숨을 걸고 항변해도 눈물샘이 자극되지 않았다. 눈물샘이 옹골찬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무의미'로 다가온다.

뜬금없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라디오 스타'와 '웰컴투 동막골'을 상상했다. 라디오 스타를 떠올린 것은 안성기에 대한 연이은 실망 때문인데, 묵공과 화려한 휴가에서 안성기는 매우 가식적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살가운 연기력과 진솔한 감정처리가 일품이었다. 피천득의 마사코처럼, 묵공과 화려한 휴가는 보지 않았어야 했다. 본 것은 화려한 휴가며 잃은 것은 안성기다.

웰컴투 동막골이 떠올린 이유는 화려한 휴가의 과장된 액션이 몹시나 거북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상경이 '나는 폭도가 아니다'고 오버액션한 부분에서 실망의 절정에 달했다.

웰컴투 동막골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가득 찬 영화다. 마지막 반전 역시 훌륭한 '종합'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 무리는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현대사나 실존인물 등을 그릴 때는 이와 같은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언론들이 연일 화려한 휴가에 대해서 극찬을 하는 것과 이 영화의 값이 같다.

이 영화는 사실이라는 편린으로 이루어진 저널리스틱한 영화가 아닐까?


두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시장에 관해서 드는 생각.

이런 식으로 한국영화가 살아나는 것이라면 한국영화는 좀더 길게 엎드려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영화에도 영혼이란 게 있다면 한국영화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리스에게 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워는 가족영화이므로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현대사에서 몹시 중요한 시점을 다루는 화려한 휴가가 이처럼 비겁한 방법으로

관객을 모으려 한다면 나는 차라리 조폭 영화나 선택하려 한다.

아주 진지하게 속은 느낌이다.

 

사실 내가 화려한 휴가에 이런 혹평을 할 이유는 없다. 안성기를 잃은 슬픔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화려한 휴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한국영화의 입장에서도, 한국현대사의 입장에서도 이 영화는 진전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것은 조폭물 수준은 아닐지라도, 다른 의미의 '소재주의'이다.

영화의 문법을 뛰어넘을 수는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잃어버린 한국영화의 영혼을 어디서 위로받아야 하는 걸까?

 

화려한 영화에게 민중가요 한 꼭지를 전한다.

"두부처럼 금남로에 베어진 너의 젖가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루은 2007-08-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으, 글 좋습니다.

승주나무 2007-08-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루은 씨 등장 ㅋㅋ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현재 한국정부로서는 탈레반과 협상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협상에 관한 온갖 악재가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1. 우선 한국이 이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탈레반-아프간 정부" 사이에서 협상의 제3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협상의 한계를 보여준다.
2. 아프간 정부 역시 포로를 풀어줄 입장에 있지 못하다. 미국에 의해 세워진 정부이기 때문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지지를 하지 않는다면 아프간 정부는 결코 포로를 풀어줄 수 없으며, 청와대의 성명처럼 "한국정부가 할 수 없는 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난번 이탈리아 기자 석방 때 덴 것을 생각한다면 아프간 정부로서는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
3. 미국은 이 사태에 개입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의 동맹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를 잃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이 탈레반 포로를 풀어주는 데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승인한다면 탈레반으로서는 협상의 채널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물론, 당장 미국과 교섭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것이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4. 만약 이번에도 '인질-포로' 교환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탈레반이 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이 됨과 동시에 아프간 정부로서는 그만큼 영향력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희생을 치러 잡은 아프간 포로를 다른 나라의 인질과 바꾼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보아 좋지 않기 때문이다.
5. 고질적인 한국의 협상력 부재를 들 수 있다. 아마 모든 이유들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이것은 FTA나 한일어업협정 같은 데서도 공식적으로 드러난 협상력인데, 우선 한국은 이슬람이나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접촉할 수 있는 채널 또한 제한돼 있다. 탈레반이 무엇을 제시하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국민들 또한 텔라반의 장난에 오랜 시간 동안 농락당한 기분이어서 분노는 매우 클 것이다.
6.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언론 자본주의' 또한 사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통화 한 건당 1~2만달러, 동영상 촬영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 탈레반에게 직접적인 부수입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레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전세계에 전달함으로써 탈레반의 브랜드 가치를 현격하게 높여주고 있다. 어떤 정치인보다 탈레반은 '언론'을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은 보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므로, 탈레반은 매우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며 이를 전략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한국이나 관련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제한돼 있으며, 탈레반만이 모든 유리한 카드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 국면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끝까지 탈레반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프레임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한국 정부 사이에서 나타나는 '논리싸움'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이 여성 인질을 가두고 살해 위협을 한 데 대해서 반인도적이며 반이슬람적이라고 비난했다. 탈레반은 이에 대해 기독교 국가들도 이슬람 여성 전사를 억류하고 있으므로 그들도 역시 반기독교적이지 않느냐 하며 항변을 했다. 인질 살해 및 억류에 대한 교황의 비판에 대해서도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했다. 그들은 박애정신으로 봉사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온 것이므로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탈레반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것은 탈레반이 단순히 테러 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아프가니스탄을 운영하였던 전 정부의 위상을 지키고 이를 통해 민심을 흩뜨리지 않기 위한 반응이다. 때문에 이 점을 파고든다면 탈레반의 논리의 벽과 위상의 벽을 허무는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제안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프레임 전환의 전략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탈레반이 한국 인질을 한 명씩 살해할 때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죄수들을 한 명 또는 비례적으로 처형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밝히는 것이다. 그의 일환으로 2명의 한국인 인질을 살해한 데 대해서 심판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복수'가 아니다. 탈레반이 한 행동을 '엄단'함으로써 탈레반을 '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으며, 탈레반의 행동의 모든 정당성을 거둬들일 수 있다. 그리고 공을 탈레반에게 넘길 수 있다. 탈레반은 결국 인질들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동료를 살해한다는 점을 인지하게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리라 본다. 자칫 탈레반이 극단적인 조치를 할 수도 있으나, 모든 상황을 악용하며 이익을 누리고 있는 탈레반의 상황을 반전시키고 그들의 의지를 좌절시키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단순히 포로 살해가 아니다.
탈레반이 처한 상황이나 말과 행동들을 잘 분석해 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 이용할 수 없는 카드를 얼른 포기하고, 가능한 카드만으로 조합을 해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한국정부는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언제까지 부당한 테러 조직에게 끌려다니려 하는가. 참 비통한 마음이 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oni 2007-08-0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방법이냐 나쁜 방법이냐를 따지기 전에, 아마도 정상적인 '정부'가 사용할 수 없는,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이 한계이겠습니다. 합법적인 정부라면 포로나 범죄자를 정상적인 재판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처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승주나무 2007-08-0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냐오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정도의 길은 길고도 험난한 것이지요. 프레임의 장막에서 빠져나오지 않고서는 협상의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을지 답답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점점 테러범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ㅜㅜ

비로그인 2007-08-0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요 이글 승주나무님 :)

갈등이많아 2007-08-0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정부도 노력을 많이 하는것 같은데 실질적인 힘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탈레반 포로를 죽이겠다는 것도 현재로서는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웬 자회사가 이리도 많아~~

이랜드의 회사들입니다.

이랜드 회장은 골수에서부터 노동자를 파리만도 못하게 보더군요.

이렇게 해서 '가치주' 되겠습니까.

목록 올립니다. 혹시 자주 가시는 곳이면, 재검토 바랍니다. 오늘 여직원들 경찰에 한 쪽 팔, 한 쪽 다리씩 잡혀서 나오는 장면 보고 울지 않을 수 없더군요.

요즘 시사저널 사태에 집중하느라 관심 갖지 못해 미안합니다. KTX는 벌써 수백일째인데...

조합원들 팔짱 끼고 눈물저항… 경찰 순식간에 작전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는 A급 전범이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였다. 그러면서 내세운 논리는 “직무로서 참배한 것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 전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었다. 이를 토대로 살펴봤을 때 '개인' 자격으로 '공약'을 지킬 수는 없었으므로 '총리 자격'인 것은 당연하다. 논리가 워낙 옹졸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 '자격' 논란이 한창 뜨거웠다.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모습(사진 : 연합뉴스)>


그리고 나서 1년도 되지 않아, 이 논리가 다시 부활했다. 청와대는 어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서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 또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의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 즉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깃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인 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국가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은 사인(私人)성과 국가기관성을 구분할 수 없는 최고통치자이므로 자연인으로서 헌법소원 자격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헌법소원이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 : 문화일보)>


그렇다면 청와대에게 묻고 싶다. 당시 고이즈미의 참배가 '개인 자격'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당시 청와대에서 수없이 발언했던 담화나 보도자료에는 '정치 지도자의 야스쿠니 참배'를 공식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만약 고이즈미의 참배를 '개인 자격'으로 받아들인다면, 공식 석상에서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사석에서 말한 것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임기 중인 정치 지도자를 '개인 자격'으로 한정시킬 수 있는가? 퇴근 시간이 지나면 '대통령' 책임이 없어지게 되나?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근 시간에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니 '탄핵' 운운하는 것은 헛소리인가? 권력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넘치는 권력을 주체하지도 못하면서, 국민이 가지고 있는 헌법소원권까지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오만한 처사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개인 자격' 운운하기 전에 고이즈미나 클린턴에 대한 입장부터 밝히라! 클린턴을 탄핵의 위기에 몰아넣은 사람들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비판 성명을 발표하라.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나, 앞으로 일본 지도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려면 청와대 브리핑 말고 이메일 같은 사적 통로로만 발언하라.

헌법이 그렇게 싫다면 헌법이 주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b 2007-07-14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의 발언과 고이즈미, 클린턴의 행동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신사 참배나 부적절한(?) 관계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이지만, 대선에서 지지정당을 밝히는 문제는 '정치인의 정치활동' 문제이니까요. 노무현이 말하는 '개인자격'이란, 정치인으로서의 개인자격을 뜻하는 것이구요.

전 대통령의 특정 정당 지지는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무현이 말했듯이, 한 정당의 공천을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 소속 정당의 당파성을 떠나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가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것은 '절차적 중립'이지 '정치적 중립'은 아니거든요.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목동에 위치한 시사기자단 사무소는 하루 종일 시끌벅적하다. 저마다 일에 열중하다가 갑자기 '회의'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켠에서는 봉투접기 같은 예상치 못한 잔작업이 눈깜짝 할 사이에 벌어졌다가 끝난다.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방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선 예비주자들일 것이다. 최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천정배 의원이 다녀갔고, 어제(7월 10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등이 방문했다. 손학규 의원은 영리하게도 포스트 잇을 한 봉지 남기고 갔는데, 다들 그것을 쓰면서 손학규 전 지사를 생각할지는 미지수이다. 정동영 의원도 세심하게 준비를 했다. 커다란 수박 세 덩이를 사온 데다 역시 기자 출신이라 취재용 수첩을 한 봉지 사들고 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강렬한 인상은 전혀 엉뚱한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사진 기자가 정동영 전 의장의 수박 한 덩이를 데코레이션 하듯 썰어낸 것이다. 다이아몬드 형으로 먹기 좋게 썰어낸 모습에 동료 기자들은 '총각이 이렇게 수박을 잘 썰어도 되느냐'며 타박을 놨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집에 가서 그 모양으로 수박 써는 연습들을 할 것이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유명하지 않을 뿐더러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 여기서 문제. 생전 얼굴 한번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매일같이 보게 된 사람이다. 기자들이 월급 때문에 투쟁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역시 돈을 원해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게 누굴까? 바로 '독자'이다. 임태빈 씨(26세, 건국대 국어국문학/행정학 4학년)는 독자 서포터스를 자청해서 4학년 1학기의 귀중한 방학을 '헌납(?)'한 시사모 회원이면서 열혈청년이다. 한마디로 시사기자단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다. 그와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할 일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뷰 하는 것에 대해서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기자는 머리를 짜내어 '메신저 인터뷰'까지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조르고 졸라 딱 30분간 인터뷰가 허락되었다. 그에게 서포터스 활동 중 생각나는 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캐물었다.

<목동 오목교역(5호선) 옆 방송회관 9층에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시사기자단)이 위채해 있다. 그림은 시사기자단 명패.



서포터스 활동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 왈 "그거 빨갱이 아냐?"

- 기자들과 참 친한 것 같다. 혹시 여기서 아는 사람 있는 거 아닌가?
"생면부지이다. 다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알게 된' 사람들이다.

- 취업준비로 한창 바쁠 텐데 감히(?) 서포터스를 자청한 이유는 무엇인가?(웃음)
"졸업을 앞둔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한 시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취업'으로 한정짓는 것은 좀 곤란하다. 넓은 의미로 '사회'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싶다. 친구들은 저마다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토익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학원 다니는 친구도 있고, 학과 공부를 더 하는 친구도 있다. 나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고, 그 형식이 '시사기자단 서포터스'가 되었을 뿐이다.

- 집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다. 하루는 서포터스하러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께서 '어디가냐?'고 묻길래, '시사기자단 서포터스'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거 삼성기사 삭제 때문에 파업하는 기자들 아니냐?'하고 또 물으시는 거다. 그래서 '맞아요'하고 대답했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그 사람들 빨갱이 아니냐?'라고 언성을 높이시는 게 아닌가. 황당했지만 짧게 답변을 드렸다. '나 빨갱이 맞아요!'."(웃음)

- 친구들은 어떤가?
"다들 '잘 해보라'고 했다."
- 알고 잘 해보라는 것과 모르고 잘 해보라는 것은 다른 거 아닌가?
"월급도 주지 않는데, 그런 거 해서 뭐하냐 하는 친구들은 분명 모르고 하는 말일 거다. 그런데, '알고' 잘해보라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시사기자단 서포터스를 지원해 지난 주 금요일(7월 6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임태빈 씨. 전화 받는 일이나 워드 치는 일, 봉투 접는 일 등 온갖 잡무에 능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심정적 도움과 실질적 도움

- 어떻게 해서 서포터스를 하게 되었나?
"시사저널 사태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었다. 하지만 대학생 신분이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오프라인 모임 때 처음 갔는데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스스로 부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포터스 모집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말인가?
"상황도 상황이지만, 기자들이 투쟁을 할 때는 마땅히 도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기자들처럼 머리띠를 메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심정적으로 도움을 줄 뿐이었다. 하지만 창간 이후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도 실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생겼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하게 됐다."
-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독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아 보고 사이트 방문자의 반응도 살펴보았을, 어떤가? 독자들 중에는 '심정적'으로 돕는 사람이 많은가,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이 많은가?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나? 다만 그들이 전에는 도울 방법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후원금도 낼 수 있고, 정기구독도 신청할 수 있고, 소액투자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안 되면 격려 전화도 할 수 있다. 이것을 보았을 때 '새매체 창간'은 잘한 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시사모'가 아닐까 한다. 시사모는 매체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매체를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진 매체는 행복하다. 시사기자단이 행복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7월 10일 인쇄된 참언론실천기자단 특보1호를 여러 방면으로 보내기 위해 봉투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희태 전 시사저널 기자, 임태빈 씨>

<전화를 받는 일은 임태빈 씨의 주된 업무이다. 시사기자단의 중요한 창구인 셈이다.>

 
<서포터스에게 지원하기 위해 새로 구입한 따끈따근한 노트북을 차지한 임태빈 씨. 때문에 일은 더 늘었다.>


언론은 '구조'에 갇혀 있어


- 독자로서 요즘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인쇄량 기준으로 등수 안에 드는 언론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론사 역시 직장 아닌가. 조직과 개인 간의 갈등이 있을 거다. 언론사의 논조가 있듯이 기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분위기나 구조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운 기자들이 얼마나 되겠나? 그것이 조금 넓혀지면 '자기검열'이 되는 거고, '카르텔'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 그러면 언론사는 '제조업'이나 다름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언론'이 아닌가."

(인터뷰 와중에 정동영 전 의장과 김원웅 의원 등 유명인사가 다녀갔다. 그래서 인터뷰 내용도 '정치인' 이야기로 급선회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정치인 등 유명인사를 자주 보게 된 점은 생소한 경험이다."
- 정치인들이 시사기자단에 연이어 방문을 오는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기자는 '악의'를 가지고 질문했다.)
"세상사 계산 없는 '액션'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직함'이나 주위의 '시선'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 뿐, 거기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정치인들 중에 이곳에 방문하기는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여기에 방문하는 정치인들은 분명히 '의식'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그런가. 한나라 당 대권후보들은 잘 안 보이고, 범여권 인사들만 찾아오는 것 같다.(웃음)
"......"

- 마지막으로 앞으로 새 매체 어떤 모습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임태빈 씨가 보았던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
"(전) 시사저널의 미덕은 뭐니뭐니 해도 팩트 중심의 객관성과 탐사보도, 전문보도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살려내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언론도 시장이라면 '수준 높은 매체'가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나?"


<큰 수박 세 덩이를 들고 와서 일하는 사람들을 '해갈'시켜준 정동영 전 의원이 시사기자단 기자들과 함께 '화이팅' 포즈를 하고 있다.>


다시 전화가 울려 인터뷰는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방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몇 개의 포즈를 남기고 돌아갔다. 얼마 후 약속이나 한 듯 김원웅 의원이 방문하고 또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국회의원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일개 시민기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그보다 기자가 '뉴스'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이름 없는 독자'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뇌리속에 서성거렸던 광고의 문구를 떠올린다. 약자들을 친히 방문해준 정치인들, 정말 고맙다. 이 광고문구만 같았으면 더욱 고맙겠다.

"한 번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믿음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7-1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시는 승주나무님이야말로 진정한 독자군요. 저도 오늘 사이트 들러서 정기구독 후원 약정했어요. 돈은 내일 넣겠지만요. :)

그나저나 이곳에 들르는 유명정치인들이 삼성과 매체가 싸울 때 어디를 편들어줄지 기대됩니다. 그저 얼굴 도장이나 찍으러 온게 아니었음 좋겠습니다.

승주나무 2007-07-1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감사합니다. 저도 얼굴도장 찍으러 온 게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