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국가보안법 사수, 한미동맹..
군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유니폼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군복인데,
군복은 적군과 아군을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적어도' 2년 동안 군복을 입어야 하는데
군복이 정치적인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사수해온 나이든 군복

2004년 5월 24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3명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던 날 오후 서울 남부지법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재향군인회의 집회였다. 그들은 "국가안보 위태롭게 하는 법원의 판결에 650만 향군 통곡한다"라든지 "사이비판사 각성하라"같은 과격한 피켓을 들고 규탄집회를 벌였다.


재향군인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사진)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으로 벼랑까지 몰리고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였지만, 한켠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탄핵 가결일로부터 보름 후인 27일 탄핵안 가결에 찬성하는 80여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바른선택 국민행동’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나라사랑 문화 한마당’을 열어  ‘아, 대한민국’ 을 부르며 탄핵을 지지했다.  그들은 “북한 동포도 우리 국민이고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을 포기한 노무현은 김정일의 똘마니”라며 “노무현은 하야하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던 2004년 3월 재향군인 등 보수단체들은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다. 재향군인회는 2004년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뜨거웠을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시청앞 광장은 인공기로 뒤덮이고 친북·좌경 세력에게 이 나라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며 국보법을 적극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등 사회 여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왔다. 평택시민들이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면서 폭력시위를 벌인다는 이유로 이들을 강경진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향군회법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3조)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군복이 우리 사회에 드러낸 이미지는 고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군복의 새로운 이미지가 2008년 대한민국에 찾아왔다.


2004년 10월 재향군인회는 국가보안법 사수와 의문사위 해체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집회를 했다. (사진 : 한겨레)


2008년, 군복과 애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이어폰을 끼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군복이 2008년 광화문의 촛불문화제를 주도했다. 이들은 촛불문화제와 거리행렬에 참여한 시민들을 전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거나 스크럼을 짰다. 이로서 예비군들은 유모차 부대와 함께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들은 왜 군복을 입었을까? 먼저 군복을 입은 장정들은 같은 장정인 전경에 대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유니폼은 전경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끌 수 있다. 전경은 정부의 명령을 받기 때문에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압은 강경진압으로 오해되기 쉽고, 여성에게는 성희롱, 학생에게는 폭력이라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이에 비해 예비군들은 시민들이기 때문에 호감을 얻을 수 있고, 폭력시위 근절이라는 전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즉 예비군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의 역할과 시민과 전경을 함께 보호하는 중재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인이란 전역을 해서도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여주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3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에 나서자 예비군복을 입고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행진 대열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차로에 늘어서 있다 (사진 : 한겨레)

내가 군복에 감명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군복이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적인 편견을 시민적 에너지로 치환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인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이라는 당연한 상식도 환기해 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군복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인 적은 난생 처음이다.


30일 밤 美쇠고기 시장 개방 장관고시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군복과 함께 해방된 것은 태극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이다. 태극기가 국가주의에서 진정 해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반공사상을 국시로 여겨 국가주의를 세뇌당했던 오랜 기억들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나도 어릴 때 반공글짓기에 열성이었던 어린이였으며, 꿈에서도 김일성을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나의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은 국가주의에 깊이 감염된 상태였다.



5월 8일 밤 여의도에서 펼쳐졌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의 행렬 위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이 한창일 때 태극기로 투피스와 한복을 만들어 입은 커플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 : OSEN)

빨-병 (-甁)
먹는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그릇. 병같이 생겼으며 끈이 달려 있어 메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등산이나 소풍을 갈 때에 흔히 사용한다. (국립국어원)

순우리말인 빨병은 최근까지 금지어였다. 빨아먹는 병이라는 의미의 빨병에서 '빨간색'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레드 컴플렉스라고 하는데, 2002년에 와서야 우리는 이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태극기는 2002년 월드컵에서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필통이나 책가방에 걸어놓는가 하면 아예 몸에 두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08년 청계천, 여의도, 광화문, 시청에서 드디어 '애국'이라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국가주의가 개입되지 않았으며, 시민적 에너지가 충만한 '애국'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얻은 것이다. 여의도에서 만난 한 학생의 한마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정책에 반대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애국이다."

한달 내내 게속된 거리의 학교에서 내가 얻은 소중한 가치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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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1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6-02 18:57   좋아요 0 | URL
의견 잘 보았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주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

글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지만, 저는 군복을 아름답다거나 찬양하는 의미로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군복 안에는 패러디의 의미도 감지됩니다.
군복을 입은 시민이 요점이며, 애국도 그런 관점에서 표현했습니다.
영화 <굿나잇앤굿럭>은 매카시즘이 극심한 시대에 미국의 CBS 스튜디오팀이 언론을 지키기 위한 분투가 담겨 있는데 주인공이 매카시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볼떼르도 비슷한 말을 남겼는데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
이런 의미가 글에 잘 안 담겼나 봅니다. 애국과 군복이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겠지만, 환기된 것만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말씀하신 내용은 비밀댓글을 하지 않아도 좋을 거 같은데요..^^;


마늘빵 2008-05-3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 군과 군복에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던 제게 다른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군이 한 순간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군부대의 온갖 비리와 꼴통스러운 면모들을 감싸줄 수도 없지만, 적어도 예비군이 시민의 한 부류로 작용한다는 점에 강한 지지를 보냅니다.

승주나무 2008-05-31 10:25   좋아요 0 | URL
군복과 애국에 대한 환기.. 이것이 참 신선했습니다. 저도 아프 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순오기 2008-05-3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감동이었어요~~~ 이것이 나에게는 애국이다!

승주나무 2008-05-31 10:25   좋아요 0 | URL
네~ 순오기 님.. 애국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시민적 차원, 개인적 차원으로 옮겨가야죠^^

바람돌이 2008-05-3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인도 군인이기 이전에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이라는 것. - 참 어려워요. 어디 군인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왜 국민, 시민이라는 입장과 권리가 우선이 아니고 군인, 공무원 뭐 이런게 앞서는지... 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이런 조그만 구멍들이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한몫을 하겠죠? 그래야 하구요.

승주나무 2008-05-31 12:22   좋아요 0 | URL
어떤 분이 제 글에서 '군인'과 '예비군'을 구분하지 않고 쓴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군인의 임무는 상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지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군대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집단이지 민주주의를 실행하기 위한 집단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여 주었습니다. 바람돌이 님 댓글을 보니 이 생각이 났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효과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글샘 2008-05-3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엊그제 군복이 얼른거려서... 계엄령 떨어진 줄 알고 가슴이 쾅, 내려앉았다는,...ㅠㅜ

승주나무 2008-06-02 01:15   좋아요 0 | URL
계엄령은 아닙니다.^^
저는 패러디로 읽었습니다^^

마노아 2008-05-3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지나가다가 너무 예쁘게 생긴 예비군을 보고 여잔가? 했어요. 저 사진의 분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다시 봐도 인물이 너무 곱네요^^;;;

승주나무 2008-06-02 01:15   좋아요 0 | URL
모두다 얼굴도 마음도 예쁜 예비군이지요~
예비군에게 예쁘다고 하니 좀 징그럽기는 하지만 ㅋ
 





인상적이다 싶은 언론사들은 특징이 있다. 독자에 대해서 독특한 입장이 있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은
'독자'라는 든든한 자원군이 있어서 가능하다.
이 시점에서 독자와 언론사 간의 소통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오마이뉴스나 미디어다음의 블로거기자와 같이 독자들을 직접 기자로 만드는 방식
이 경우 전문성은 다소 부족할 수 있으나 현장성과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다음은 기자가 독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매주 목요일마다 오피니언 면에 <블로그 속으로>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의 칼럼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독자가 언론사에 의해서 채택되는 방식은 오래 전부터 언론사가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이밖에 언론사는 자사의 며체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모니터링이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한겨레21 독자위원회)

하지만 두 가지 소통 모델은 한계가 분명하다.
공통적으로 협력 플레이가 잘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독자가 직접 기사를 쓴다고 하더라도 기사의 내용에 대해서 언론사 편집부에 피드백을 받는 것은 가능하지만(오마이뉴스 생나무클리닉 등) 이 경우에는 독자와 기자가 별개이다.
'독자 채택'의 경우 역시 기자가 주체라는 점에서 두 주체 간의 긴밀함이 별로 없다.

독자와 언론사의 소통 모델이 나와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류 언론은 국민들의 여론을 완전히 비켜 가고 있고,
독자들이 스스로 언론이 되어 의제를 설정하고 있다.
독자들이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단기적인 상황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장기적인 실천과제로 삼거나 성찰할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언론사의 경우 지식인들과 협력관계가 있기 때문에
언론사와 독자가 적절하게 협력할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의제와 실천, 그리고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1인미디어의 시대라고 하면서 독자의 위상을 한껏 치켜올렸지만,
블로거로서의 독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이를 극복하는 모델이 나와야 한다.
나는 그것을 독자와 언론사(기자) 간의 협력 모델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사in의 경우 협력모델의 징후가 일찍부터 발견됐는데,
시사저널 편집권 투쟁부터 새매체 창간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기자들과 대등하게 행동했다.
예컨대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이라든지, 자발적 구독운동은 독자들의 전매특허다.
그리고 기자들의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 거의 모든 상황에서 독자들이 함께 했다.
이것은 독자와 기자가 동등한 상대로서 각자 동반자의 입지를 다진 셈이다.
이것을 시사in에서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한 당장의 대안은 좀 시시할 수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독자가 해오던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필수 전제 조건이다.
매주 발간되는 매체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뷰가 제시돼야 한다.
제보나 공동취재 등 기사작업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조금 더 진전된 모습이다.
책 관련 기사의 경우는 독자가 단독으로 기사를 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웹2.0이라는 기반을 이용해 기사에 대한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주에 실을 기사에 대해서 편집국에서 논의를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독자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기사에 대해서는
홈페이지에 미리 공지를 하고 요청 내용을 올릴 수 있다.
독자들은 공지 내용을 보고 제보나 의견을 달 수 있고,
기사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만약 공지의 내용과 긴밀히 관련돼 있거나 당사자라면 좀더 긴밀한 취재가 가능하다.
이때 독자는 취재원이자 공동 취재기자이자 설문조사의 대상자이자 편집국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
지면에는 <독자와 함께 실은 기사>라는 표시를 어딘가에 해둔다면,
그 기사에 기여한 독자들은 자긍심을 얻을 것이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보면 4단계가 존경 욕구(Esteem Nddes)인데,
이는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타인에게도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자존심, 자부심, 성취감은 매우 고차원적인 욕구로 이것이 충족돼면 독자는 행복하다.
사실 이것은 독자들이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던 욕망인데,
언론사는 이 점에 대해서 너무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기사에 대해서 독자들과 함께 취재할 수는 없겠지만,
매주 1개 정도는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거나 해도 괜찮은 기획이 있기 마련이다.
독자를 독자로만 머무르게 하는 언론사는 곧 망하겠지만,
'독자의 가능성'에 영감을 주는 언론사는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나는 이것이 언론사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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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는 두 번째 취재입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리 시민기자, 블로거 기자이지만
21차례의 집회 동안 몇 번 찾아가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정도 있고 해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가족, 세대, 이명박만 빼고 다 있었다.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맨 처음 만난 분은 종이를 머리에 둥글에 두른 할아버지였습니다.
머리에 두른 종이는 건(巾)을 연상합니다.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할아버지는 침묵을 지켰으나,
기자의 질문에 울화가 터졌는지,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말씀은 멈출줄을 몰랐습니다.



앞쪽에 앉은 할머니도 표정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촛불문화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으나,
나이 드신 분들은 다소 무겁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집회에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가 모둠으로 많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내용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어른들은 서로 시국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외국인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외국인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AP뉴스에 한국인들의 촛불문화제를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폄하하는 기사를 올렸던데,
한국어를 힘겹게 구사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간 외국인이 AP 기자와는 참 다르게 보였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2. 난 이렇게 주장했다


많은 인파들 속에서 재미있는 분을 포착했습니다.
여러 개의 특이한 표현 용품을 직접 만들고 와서
분위기에 따라 모양을 달리 했습니다.
갈길 바쁜 관계로 두 개만 찍었습니다.



역시 집회에는 피켓 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최측에서 만들어진 피켓을 나누어 주기는 했지만,
참가자들은 집에서 손수 만든 피켓을 많이 들고 왔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인 마음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시간 축내면서 이렇게 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특이한 복장을 입고 집회장소를 찾으신 분들이 많았지만, 단연 돋보이는 분은 바로



한 스님이었습니다. 스님들도 청계천에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가 목탁을 이렇게 두드리나 했습니다.
꽹과리는 많이 봤지만,
박수 대신 목탁을 두드리는 것은 또 다른 맛입니다.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다양한 기자들

기자란 신문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청계천에서만큼은 기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자란 현장에서 듣고 보고 묻고 적고 찍고 하면서 분위기를 남기는 모든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할아버지 기자, 아줌마 기자, 청소년 기자.. 기자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이들은 각자 다양한 입장에서 청계천을 그려낼 것이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것이 다 모여야 온전한 청계천의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4. MB의 수난 시대



얼굴이 많이 상했습니다. 누가 우리 대통령에게 이런 해코지를 한 것일까요?
아, 잘못 말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현직 대통령이 거리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몰골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 학생이 창의력을 발휘했군요.
MB를 히틀러와 한 자리에 두니
누가 밥이고 누가 나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포스트잇 악플러 보신 적 있습니까?
어떤 포스트잇은 도대체 몇 글자를 처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악플은 인터넷에만 있는 게 아닌데,
나는 웬일인지 그것이 악플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된 것일까요?
이렇게 하면 댓글을 쓴 사람을 찾기도 참 힘들겠네요. ip주소도 없으니^^;;


"내가 요새 가장 자랑하고 다니는 게 대선 때 이명박 안 찍은 거다!"
재기발랄한 댓글도 보입니다.
세상으로 나온 네티즌을 저는 여과 없이 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잔 생각이 났는데,
이 간판 보고 그 생각이 달아났습니다.
MB맥주는 어떤 맛일까요?
참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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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5-2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

승주나무 2008-05-30 10:5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8-05-3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새겨진 이들은 기록을 남겼기에 가능했겠죠?
우린 이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 믿습니다.
 

삼성, 중국 지진피해 기부기업 '거꾸로' 1위


<중국의 네티즌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짠돌이기부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심상치 않다>(블로거 '바로바로의 중얼중얼'의 화면)

삼성이 또 1위를 기록했다. 위의 내용은 중국 네티즌이 이번 지진 사태에 성금 모금을 거의 하지 않은 기업을 순위별로 고발한 내용이다. 중국기업들은 모두가 거액을 모금하는데, 외국기업들은 기부하지 않는다면서 다소 민족주의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 기업이라면 국민에 준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불행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는 것이 서로 떳떳할 것이다.


<카트리나 재해 당시 초등학생들은 1천만달러라는 거액을 모금했는데, 이 금액과 비슷한 기부금을 낸 다국적 기업은 단 5개밖에 없었다.>(경향신문 일러스트)

2006년 카트리나 재해 당시 미국의 기부현황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추악한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훈훈한 화제를 모은 기부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초등학생들이었다. 카트리나 재난 소식을 들은 시골의 한 초등학생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핼러윈놀이를 벌이자고 제안하게 된다. 핼러윈놀이란 매년 10월 말 핼러윈데이가 되면 귀신복장을 한 채 이웃집을 다니며 ‘사탕을 안주면 놀려줄 거야’(Trick or Treat)라고 하며 사탕을 서로 나누는 놀이문화인데, 초등학생은 사탕 대신 '성금'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를 만들어 이 같은 계획을 올린 뒤 e메일을 통해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보냈는데 2주 만에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됐다. 어린이들의 이웃돕기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랜덤키즈(RandomKids.org)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모금액이 1천만달러(당시 환율로 95억원)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코카콜라나 GE, 쉐브론, 버라이즌, AT&T보다 많은 것일 뿐만 아니라 1천만 달러 이상을 모금한 다국적 기업은 월마트, 엑손, BP아모코, 프레디 맥 등 5개 회사뿐 없었다. 기부에 대해서 이보다 더 명백한 차이가 또 있을까?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세계 각국의 공동체를 자신들의 지갑에 담을 화폐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기업의 현지화 전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에 지배를 받는 소비자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기 위해 행하는 모든 노력들이 바로 현지화 전략이라면, 현지인들의 슬픔에 대해서는 왜 현지화 전략을 펼치지 못하는 걸까?


일상적인 짠돌이 기부문화 고수하면 현지화도 백전백패


얼마 전 한국에 진출해 연일 고매출을 올리고 있는 구찌그룹의 기부금이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구찌그룹의 2007년도 영업이익은 106억6998만원인데, 기부금은 0.012%에 불과한 13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년도 50만원에 비해서 80만원 오른 돈이다. 루이비통코리아는 더 가관이다. 241억2745만원으로 전년(2006년)보다 113%나 영업이익이 증가했으나 기부금은 한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탈리아산 남성복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네질도제냐는 51만7520원(영업이익 30억6400만원의 0.017%), 펜디코리아는 38만4455원(영업이익 3억9378만원의 0.1%)이다. 자동차 업체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수입자동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46.4% 감소했지만 기부금은 5229만원을 내 전년보다 250% 이상 늘었다. BMW코리아도 지난해 영업이익 적자를 냈지만 기부금으로 1억1936만원을 내놨다.





<한국에 진출한 유명 외국 명품업체의 2007년 기부금 현황>(경향신문 이미지)



노력하여 재물을 거두는 것은 정당한 기업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기부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지탄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상품을 팔아 영위하는 구성원으로서 현지 사람들과 나눔을 함께 하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리는 만무하다. 특히 동양의 문화에서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고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을 갑부의 사명으로 여겼고 이런 행동을 아름답게 여겼다. 중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신뢰하고 있는 경전인 중용(中庸)에서도 "성품이 아름다운 자는 재화를 나눔으로써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이름을 드날리고), 성품이 탁한 자는 자신의 이름을 팔아서 재산을 일으킨다"(仁者 以財發身 不仁者 以身發財)라고 하는 등 재화에 대한 나눔을 역설하는 철학이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중국의 문화를 알고 있다면 기업은 어떻게 행동해야 중국 현지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당국의 규제로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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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5-2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뷔똥 참 싼데요? ^^ 이참에 평생가도 못살거 하나 구입해야겠는데요? 0원이라.

승주나무 2008-05-22 10:50   좋아요 0 | URL
ㅋㅋ 글쵸.. 저게 가격표였다면 루이뷔똥 망했을 거요 ㅋ

마노아 2008-05-2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 여러모로 일등하는군요. 그나저나 루이뷔똥 놀라워요!

승주나무 2008-05-22 10:50   좋아요 0 | URL
삼성이 하면 다르다지 않소 ㅋㅋ
 

중국 대지진에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을 성토하는 하재근 씨의 칼럼 " 한국누리꾼 괴물이 돼버렸다"

주소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192690





<최근 한국의 헛발질로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 격상이라는 어부지리를 얻었다. 쓰촨성 사태 때 한국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는 일본이 대부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5월 7일 중국 후진타오 주석(왼쪽)과 일본 후쿠다 총리가 기자회견 후 악수하는 모습>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관련한 일부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이 한국 정부나 많은 사회단체, 개인들의 지원 노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들리고 있다. 이 내용을 소개한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심한 댓글은 너무 모욕적이어서 차마 번역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정부는 발빠르게 구조지원에 나서고 있고 언론은 일본 구조대가 여성 시신을 놓고 애도를 표하는 모습이 보도하여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

하재근 씨는 "한국누리꾼 괴물이 돼버렸다"라는 제하의 칼럼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고, 조회수가 7만여 건, 추천이 450여 건이 되는 등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중국 지진을 고소해할 뿐만 아니라 저주까지 퍼붓는 일부 네티즌과 이에 추천으로 호응한 네티즌들의 행태에 대한 성토가 칼럼의 주된 내용이다. 하재근 씨는 일부 네티즌의 이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 크게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부각되었는지에 대한 분석보다는 다소 감정적인 수준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사태를 조명하면 악성 댓글 문제에 함의된 한중 간의 깊은 앙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세 가지 방향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1. 그 동안 한국 생활에 억눌려 있던 유학생들 마음이 이번 성화 봉송을 계기로 분출한 것일 수도 있다. 배달이나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 유학생 친구들이 한국인에게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사실 이번 충돌은 전부터 잠복했던 문제가 드러난 거다. (시사IN34호, 특집 "중국은 분노한다")

2.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특사에게 한중 간의 전략적 관계로 격상을 제의할 만큼 양국 관계에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친미 일변도로 치닫는 한국 정부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이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 다음에 일본을 택함으로써, 후 주석의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들었다. 후진타오 주석은 "“한국이 지금, 미국·일본만 있고 중국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이 자리 있는 동안 한국은 나한테는 없는 거야. 두고 봐라.” 라는 요지의 극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35호, "광우병 파동 다음엔 후진타오의 복수?")

3. 한국 미디어는 중국 사회, 문화 실상에 대한 심층적이고 진지한 보도가 없어서 양 국민은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최근 벌어졌던 성화봉송 폭력 사태는 한국 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잠재된 불만의 폭발과 양국 간의 얕은 이해에서 오는 사태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과 3은 한국과 중국 양국민 간의 얕은 이해도가 갈등과 오해를 부추기는 구조다. 결국 당국의 정책은 국민의 여론을 따라가고, 국민은 역시 당국 정책에 호응한다는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악순환의 늪에 빠진 상태다. 원래 한중일의 최근 관계에서 일본과 한중 간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지만, 최근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의 일련의 행보로 인해 이 구도가 바뀌고 있다. 시사IN 남문희 기자에 의하면 중국은 원래 일본과 현상유지에 머무른다는 입장이었으나, 한국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일본을 우호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한국 네티즌의 악플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여 일을 크게 키울 개연성이 중국 측에 있는 것이다. 양국의 악플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11명의 추천이나 악플이 새삼 문제될 것이 어디 있으며, 새삼 괴물(악플러)를 대한민국 괴물로 확대해석할 당위가 있는지 궁금하다.


악플 현상은 우려할 만한 문제이지만, 새로울 것도 없는 주장으로 자조하기보다는 현안에 대해서 밝게 파악하려는 입장이 절실하다. 중국 유학생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한국의 은행 이름을 보면, '우리은행''국민은행''하나은행'이다. '우리 국민은 하나다'라는 뜻처럼 보인다(웃음). 한국인도 세계에 대한 고민이 적고 자기 민족 중심이다. (시사IN34호, 특집 "중국은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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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5-2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국민은 하나다" 라니 ㅋㅋ

승주나무 2008-05-22 10:50   좋아요 0 | URL
나도 거기에서 쓰러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