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부르지 못하는 언론사들. 언론사들이 간만에 '큰웃음'을 선사한다. 지난 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리스트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안다. 보고 못 받았나?"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오마이뉴스>와 <민중의 소리> <프레시안>만이 언론사와 언론사 대표를 직접 언급했다. <헤럴드 경제> <뉴시스> <이데일리> <아이뉴스24> <CBS> 등은 해당 언론을 ○○일보, XX일보 등으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없는지 뉴스 검색창에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봤다.
일간지는 하나도 없고 미디어오늘이나, PD저널, 미디어스 같은 미디어 전문매체나 인터넷 매체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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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 뉴스검색창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우리가 알 만한 일간지는 하나도 안 나오고, 미디어전문매체나 온라인매체의 기사만 나온다.
이번에는 XX일보를 쳐봤다. 우리가 잘 아는 언론사들이 이제야 얼굴을 드러낸다.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술자리에 만들어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에 <스포츠XX> X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 세계일보, 노컷뉴스
가장 일반적으로 보도한 유형이다. 그밖에 경향신문과 서울경제, 이데일리, 해럴드생생뉴스 등은 OO일보도 보도했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언론사에게 배포한 참고자료 때문이다. 국회 출입기자 등을 대상으로 작성된 '보도에 참고 바랍니다'라는 자료에는 "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되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 드린다"고 적시돼 있었다.
조선일보가 돌린 자료의 내용이 사실일까. 조선일보를 적시하면 정말 감옥에 가게 될까. 프레시안은 그것이 궁금했는지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고 기사를 내보냈다. 한 변호사는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다퉈 볼 여지 자체는 없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본회의장 발언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법에 걸린다는 식의 '입막음'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도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을 하고 대정부질의를 한 셈인데, 그는 <프레시안>과 대화에서 "그 분 정도면 공적 인물이기 때문에 사생활 부분에 대한 것이라도 프라이버시권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면서 "특히 내 발언을 보도한 언론 매체는, 형법에 의해 면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촘스키의 '선전모델'로 본 주류언론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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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엄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서는 현대사회의 언론이 점점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보다 사기업화되고 있는 모습을 '선전모델'이라는 용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선전모델(Propaganda Model)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추앙받는 노엄 촘스키다. 선전모델이란 언론의 ‘사회적 목적’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특권 집단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의제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언론은 사회의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기능을 소명으로 아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할 때의 일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언론이지만, 병든 언론은 병든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언론의 주된 책무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언론은 절대로 전위적일 수 없다. 전위적인 행위가 일반으로부터, 특히 권력자로부터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 언론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언론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언론이 삼성으로부터 광고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삼성' 두 글자를 무겁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커지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모든 언론들이 동시에 '삼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도 삼성 두 글자를 두려워해 한줄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파다하다.
'조선일보 사장 발언 사건' 역시 이렇게 풀릴 가능성이 많다. 조선일보가 협박성 공문을 각 언론사에 전달했지만 모든 언론사가 조선일보를 거론한다면 일일이 대응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묘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조선일보의 위치에 있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촘스키가 예로 든 사례 중 인도차이나 전쟁이 인상적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끔찍한 양의 화학무기를 사용했는데 케네디 정부는 1961년과 1962년에 화학물질을 이용해 남베트남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미국이 한 국가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 흔해서 의아해할 일도 아니다.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지만 미국에게 그런 것이 통할리 만무하다.
1961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 공군은 600만 에이커의 농경지와 숲에 2000만 갤런의 비소계 다이옥신이 첨가된 농축 건조제, 즉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했다. 뿐만 아니라 고성능 최루가스인 CS, 네이팜탄, 인화폭탄도 사용했다. 남베트남 땅의 약 13퍼센트가 화학 공격에 노출됐다. 뿐만 아니라 고무공장 30%, 맹그로브 숲 36% 등이 파괴됐다. 1967년 일본학술위원회 농업경제분과에서 작성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작전으로 인해 남베트남의 농경지 중 380만에이커 이상이 파괴되고, 농민 1,000명과 가축 1만3,000여두가 희생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다. 1990년대에 에이젠트 오렌지와 베트남과 관련한 기사가 많았는데,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로스앤젤레스타임스><뉴스위크><타임>이 내놓은 기사 총 522개 중 농작물을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사는 단 9건에 불과했다.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포함된 아메리카를 보면 그 노골성이 더 짙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는 언론인 탄압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한 나라다. 언론인을 대낮에 광장에서 살해하거나 시체를 불태우기도 한다. 그 나라에서 언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거나 '어용언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미국의 소중한 우방이었다. 이에 비해 니카라과는 어느 정도 언론자유가 부여된 나라였는데 미국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타임>은 선전모델을 충실히 적용했다. 미국이 싫어했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는 비밀투표의 원칙을 지켰으며 투표행위의 증거로 신분증에 도장을 받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야당을 투표할 뿐만 아니라 기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임>은 니카라과가 '호전적인' 산디니스타 정부가 "무시무시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자유선거의 경합을 위해" 그들이 "손아귀의 힘을 풀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 참여를 강요하는 정도가 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배급표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보도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니카라과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기자와 국민들을 학살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부나 재벌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다루는 장치가 무려 수백 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광고로, 정부는 정책으로 탄압할 수 있다. 제도언론이 점점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가는 것은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점점 오웰리즘(Orwellism :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비인간적인 권위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선전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체제를 가리킨다)의 신봉자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