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한 무장군의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 하에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1968년, 자료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2009년의 여성 향토예비군 창설 현장. 위의 사진과는 41년 차이가 있지만 여성향토예비군이 창설될 때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의 상황과 권력의 위기감이 그것이다. 여성 예비군은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4조 “예비군 대원에 지원할 수 있는 자는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녀”라고 명시된 조항에 근거해 편성되고 있다. (1968년, 자료 : 연합뉴스)
최근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여성예비군 부대를 창설한 것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여성예비군이 탄생하는 데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는 북한의 도발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예비군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창설된다. 1968년은 북한의 도발 행위로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긴장된 해였다. 강경파가 온건파를 숙청한 북한은 남한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응수로 대남도발을 집중적으로 벌였는데 1월 21일 북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휴전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까지 나타난 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틀 후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가 북에 의해 나포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 해 11월에는 또 울진과 삼척 일대에 무장 게릴라들이 침투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9년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면서 북한은 핵과 함께 최근 대포동2동호로 미사일
로 추정되는 미사일 발사 준비를 끝내며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금강산 관광은 물론 개성공단까지 폐쇄한다는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남북은 정부 접촉은 물론 민간접촉까지 차단된 상황이다. 남한은 공안검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둘째는 북한의 도발 등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권력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한반도는 적대적 상황을 이용해 극우정당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고이즈미, 아베 전 총리나 현 총리 역시 북핵이라는 국면 속에서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북한의 도발 등 불안정한 대외 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1968년 여성예비군 창설은 박정희의 정권 강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고, 학원에서 군사교육(약칭 교련)이 강제된 것도 이 즈음이다. 유신체제 내내 박정희는 북의 도발과 그에 대비한 안보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유지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셋째는 언론의 설레발이다. 위의 사진에서는 '승공의 아성되길'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북괘야욕을 분쇄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도 보인다. 이것이 1968년의 신문기사이다. 2009년의 기사는 어떨까?
향토방위 '아줌마'가 책임진다
"아줌마의 힘, 향토방위 거뜬해요"…女예비군 훈련 열기
듬직한 "향토방위대" 여성예비군
“시누이ㆍ올케 우리가족은 여성 예비군”
‘아줌마 부대’ 나라 지킴이 맹활약''
언론사에서 뽑은 제목들이다. 하나같이 예찬적이고 피상적이다. 이것은 신문을 읽는 소비자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씁쓸하다.
자주국방과 여권의 신장으로 인한 향토예비군 창설 취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지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역사상 향토예비군을 권력획득과 체제유지로 이용하지 않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현대사 1호인 서중석 선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참조했다. 여성예비군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중요한 맥락을 기사나 사진자료, 통계 등을 통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