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WBC 대회 정치적으로 보기
한국이 세계적인 강팀들을 누르고 WBC에서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한국의 야구 실력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일본의 이치로에게 한 방 맞은 것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9회말 동점타로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이 스포츠에서 기적 같은 활약을 벌이면서
국민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었고,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위로해줄 수 있었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다시 찾아온다.
매운 고추를 먹고 나서 얼음물을 삼켰을 때처럼 순간 매운 기운이 사라졌다가
다시 입가에 가득 침이 고인다.

▲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 이슈 때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경향신문의 만평
우석훈이 시사IN에 남긴 칼럼을 보면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가 한나라당 같은 수구보수의 텃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정치적으로 한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포츠 분야는 아무리 따져봐도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4년 주기의 월드컵과 한국의 지방선거는 주기가 딱 들어맞는다.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불행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한나라당에게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정치 성과를 안겨주었고, 이런 효과는 2006년에도 여전했다. 그러면 2010년 지방선거는? 지난 두 차례 월드컵은 지독할 정도의 쇼비니즘 월드컵인 데다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지역에 조직을 가지고 있는 토호 세력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객관적 정황을 따지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 축구에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예선 탈락해 한 번쯤 쉬어 갔으면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월드컵 주기를 피해서 지방선거 일정을 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본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지향하는 엘리트주의가 한나라당에 아주 잘 맞는 데다 지역 토호들, 이른바 지역 유지들과도 결합한 풀뿌리 조직까지 갖춘 한나라당에게는 특정 세력에 돈을 몰아주는 체육 정책도 잘 부합한다.
- 시사IN 78호, <진보 진영은 스포츠 정책이 있는가 >
나도 솔직히 우석훈과 같은 생각이다.
박찬호, 박세리라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고 하지만 실은 국민보다 실세 정치인들에게 더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3S의 본질이니까.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승전보를 올리고 나서 청와대가 했던 일을 기억하면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국민에게 자랑하고, 축하 행사를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귀국하지 못하게 한 '오버액션'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만약 역전 우승을 했더라면 이명박 대통령께서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며 성명을 밝힐 테고,
청와대로 초청해 일본을 세 번이나 이긴 자랑스런 한국 건아들이라며 치켜세울 것이다.
그리고 병역 면제 문제를 주된 이슈로 띄우며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나도 야구대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지만,
나에 비하면 이 '관록의 정치인'들이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 이번 WBC를 바라보는 속이 시커먼 사람들의 표정을 그린 경향신문의 만평
따지고 보면 스포츠 이슈에 묻혀 버린 정말 중요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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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은 이슈들이 묻혔다.
묵직한 스포츠 이슈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들이 겪는 정치적 손실이 너무나 크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또 월드컵을 치르겠다는 정부의 선언을 접하면서 참 씁쓸한 생각이 지나간다.
한국팀에게는 정말 아쉬운 순간이지만,
이제 WBC가 끝났으니 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치인들을 향한 감시의 눈을 다시금 떠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