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책을 잘 안 읽어본 것 같다.
'불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밍밍한 책들을 추천도서로 올려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방부는 불온서적 선정과 차단 조처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다음 번에는 좀더 확실한 불온서적을 선정해줄 것을 바라며, 몇 권 추천해보려 한다.
<문학>
우선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불온서적으로 꼽은 데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 하고 많은 현기영 작품 중에서 가장 온건한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지상의..>이기 때문이다. 4.3을 제대로 파헤치고 비판한 책으로 손색이 없는 것은 단연 <순이삼촌>이다. 순이삼촌은 4.3을 겪고 살아남아 온갖 악몽에 시달리는 순이삼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국방부 불온서적 2차 목록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다.
불온하기로 따지면 문학가 중에서 김수영만한 사람이 없다. 최근에 발견된 미팔표작의 제목이 '金日成萬歲(김일성만세)'일 정도로 국방부로서는 1순위로 경계해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자가 이 책을 미처 읽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살아생전에 조선일보에 남긴 칼럼 <實驗的인 문학과 政治的 自由>에서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거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이 책 안에는 "<不穩>性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이라는 작품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불온도서의 표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
우석훈의 책들은 대체로 '불온'한데 국방부가 너무 봐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블로그에는 반성문까지 올라왔다.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이 아닌가" 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불온할 뿐만 아니라 일정 정도 수입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이민갈 것을 진지하게 제안하고 있다.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심각한 발언까지도 담고 있는 책인데 국방부가 이를 용인하다니 안타깝다. 안 그래도 녹색평론사가 어렵다고 하는데, 재판을 찍을 수 있도록 국방부가 좀 힘써주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우석훈의 책을 꼭 하나 넣었으면 좋겠다.
국방부는 국방의 의무에만 힘쓸 게 아니라 교육에 관해서도 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페다고지는 이명박의 교육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책이다. 페다고지의 저자는 입시 위주의 교육, 순응주의 교육을 '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하고, 이런 오도된 제도에서는 누구나 창조성, 변화, 지식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한 강의 청취자가 아니라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비판적인 공동 탐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철저한 복종과 순응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군대에서 상관에 대한 비판적 인식만큼 위험한 사상이 또 있을까.
얼핏 보면 <맹자>는 동양고전이니 양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에 대해서 상당히 극단적인 생각을 전파하는 불온서적이다. 맹자는 왕이 실정을 거듭했을 때는 죽여도 좋다고 가르쳤다. 이명박이 여기서 잘못을 더 하면 내쫓으라는 말과 같다. 뿐만 아니라 촛불에 대한 강경한 진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말을 남겼다. "힘으로 누르면 한때는 누그러질지 모르지만, 힘이 떨어졌을 때는 여지없이 뒤집어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누르려면 마음으로 복종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인터넷이나 촛불,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벌이고 있는 정부 여당에 대한 심각한 반항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온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중국에서도 한동안 금서였으니 금서로 지정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제목만 봐도 이 책은 이명박의 <영어 몰입교육>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을 포착하면서 언어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세계관과 지혜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어가 줄어드는 만큼 인간이 멍청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어 몰입 교육>에 전 국민이 열광한다면 전 국민에게는 영어라는 한 가지 언어밖에 없을 테니 그만큼 집단 무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비록 중국어에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세계어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어에 대해서 이만한 모욕이 있을 수 있을까? 국방부는 영어몰입교육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당장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
국방부가 군인들의 정신과 문화를 검열하기로 했다면, 응당 이것을 정부 차원으로 확대해서 전 국민의 뇌를 검열하는 것은 어떤가 제안해 본다. 군인들은 군생활이 끝나면 사회인이 되고, 사회에서 군대로 들어오는 데, 군대에서만 도서를 검열하면 검열 효는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안 그래도 정부가 인터넷이아, 언론, 심지어 사람들을 잡고 있는데 강력하게 요청하면 '금서'가 다시 등장하는 모습도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국방부의 2차 <불온도서 목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