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다보면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오래전에도 이런 주제를 다루었구나. 어쩌면 오늘날의 모든 주제들은 고전의 변주들이 아닐까하는 깨달음(?)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는 관념 속에 사는 사람이 나온다. 스스로를 지하에 산다고 칭하며 책으로 배운 세상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리창 밖 세상에서는 적응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며 지하에서의 생활을 안전하다고 느낀다. 지적 허영이 가득한 이 사람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 서글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또한 안전하고 싶고 밖에서는 상처받기 싫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주인공이 마지막에 말하듯 도대체 무엇이 실제하는 삶인지 누가 선뜻 정의내릴 수 있을까,도 싶다. 책이 없다면, 관념이란 것이 없다면, 실제라는 것 또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위로는 책읽기라는 행위자체가 나에겐 온전한 그 자체로의 기쁨이므로, 이 행위 자체가 실제이지 않을까라는 변명..

 유리창안에서 보는 바깥은 평화롭다. 그러나 때로는 문을 열고 나아가 신선한 바람도 쐬고 비바람도 맞고 해야 한다는 것. 세상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단지 내 인생에서 당신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도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의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신 자신을 속이면서, 그것에 위안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 비하면, 내가 당신보다 더욱더 <살아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 있는>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