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인사 갈마들 총서 1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오두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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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다가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신게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니 중1때 였던거 같다. 다른 학교도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는 교내에 커피자판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판기가 없었던게 나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그 달달하면서 씁쓸하고 심지어 고소함(?)까지 느꼈던 밀크커피의 마약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급식우유로 커피우유도 못마시게 했던 엄마를 생각하면 흰우유를 마시고 따로 밀크커피를 마셨던 나는 참으로 영악했던 것일까.

이 책은 연대별로 우리나라의 커피역사에 대해서 가볍게 다루고 있다. 미군으로부터 커피란걸 처음 알게 되었을때 씁쓸한 그것이 뭔지 몰라서 냄비에 한가득 끓여 애들끼리 나눠마셨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때문에 병원에 실려간 이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고 웃음이 나왔다. 커피의 양을 늘이기 위해서 커피에 담배꽁초를 섞는가 하면 회충약으로 사용하기도 한 커피.. 

작년에 비싼 스***커피를 마시는 된장녀가 회자된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몇십년전에도 30원짜리 밥을 먹고 5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질타가 있었다고 하니 이런 사건(?)이 비단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커피 한잔 마시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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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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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내용이 궁금해서 읽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도 보여주듯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이 세상을 대하는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한 책이다. 대개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그럼에도 어떤 점은 처음 알게 되어 놀라운 것들도 있었다. 책의 구성은 대조의 방식으로 서술되어있다. 한가지 주제에 서양인은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동양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식으로 전체적인 구조가 잡혀있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동양인은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서양인보다 '덜 놀란 척'한다는 것이다.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세상이 매우 복잡하고 어떤 사건을 일어났을 때 그 요인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믿기 때문에 충격적인 사실이 일어났을 지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소 체념적인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것은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사람들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옳고 그름을 나눌 때 이분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보다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의 '중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중간중간에 그림이나 문장으로 간략한 테스트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고르는 것은 모두 동양인이 더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답안이었으니 나도 엄연한 동양인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_-;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본 시선을 읽으니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서양인의 입장에서 써서 그런지 동양인에 대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만 몰아간 점이 없지 않으나 이런 책을 읽고 동양인인 우리의 단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동양인이 본 생각의 지도를 써도 재밌을 것 같은데.. 이미 그런 책이 나와있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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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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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쥐고서는 한때 달리기에 버닝했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가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재작년 가을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마라톤이라는 것을 취미로 삼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시기에 마라톤이 유행했던 영향도 있었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웬지 멋져보이기도 하는 이유아닌 이유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어떻게 나의 열정(?)을 불살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모 기업에서 주최하는 10km구간 마라톤 대회를 덜컥 신청해 놓고 만다. 그리고 3개월 헬스까지 끊어놓고 러닝머신을 하면서 기본기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3개월중 한달은 일주일에 세번정도는 갔고 갈때마다 5km씩은 뛰었던것 같다. 헬스장가서 다른 기구들은 하나도 안하고 러닝머신만 했는데 그 의지가 한달을 못하고 나머지 두달은 거의 가지 않았으니 대회날은 다가오는데 연습은 거의 안한 상태로 대회날을 맞게 되었다. 미리 받은 유니폼을 입고 가슴엔 번호까지 달고 초등학교 달리기 이후로 총소리전의 설레임까지 느끼면서 나는 연습도 없이 10km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두둥. 결과는 1시간 13분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평소 약골이라 회사사람들이 모두 그런데를 왜 나가냐고 다들 황당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그런 기우를 뒤로하고, 또  연습량이 없는 걸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성과인것 같은데 문제는 뛴 다음날 부터 일주일정도였다. 뛸때는 오기 비슷한 것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갑작스런 과도한 운동에 엄청난 근육통으로 일주일을 고생했다. 같이 나갔던 회사의 과장님은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신 분이라 다음날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때 깨달은 것이 연습이 없이 하는 마라톤은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속도가 평소에 운동을 했던 사람과 현저히 비교가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참가 메달을 받아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총총 인파를 뒤로 한채 집으로 왔다. 그 이후로 이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해봐야겠다 연습도 없이 이 정도 실력(?)인데 연습을 하면 괜찮은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라톤 동호회 사이트에 가서 기초 지식도 모으고 마치 몰랐던 신세계를 발견한 양 그렇게 나의 의지는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이 대회를 참가했던게 가을이었는데 곧 겨울이 왔고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그 의지는 어디론가 쏙 사라진것이 지금도 의아한 일이지만 어쨌건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느끼는데 도움을 준 것 만은 확실하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제목과 표지만 봤을때 단지 한사람의 취미로서의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좀 읽다가 보니 인간이 어떻게 달리기를 하게 되었으며 다른 동물들의 예를 들면서 동물에게 달리기가 갖는 의미, 달리기에 적합한 신체적 구조와 인문학적 배경등이 나와 있어서 생각했던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가 동물학자라는 것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호흡이 달리기에 미치는 영향 장거리 구간을 뛸 때 연료소모는 어떻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좀더 나은 효율을 내는가 등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그런 동물을 보고 자신을 대상으로 그런 방법들을 어떻게 적용해 볼수 있을까 생각했다는게 놀라웠다. 그 만큼 그는 이미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활동중에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단 하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목표하나로 순수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달리기는 그래서 축구나 농구와 달리 어떤 (영악한)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함 그 자체에 대한 고행,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팀원과의 협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치밀한 전략이나 상대팀을 (물론 규칙을 준수하는) 속이는 행위 등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숨소리, 흔들리는 근육, 흐르는 땀이고 반복되는 행위속에 잡념이 사라질 것도 같은 어딘지 모르게 고행, 수행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가장 동물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달리기는 바로 그런 운동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분명히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에게는 목표를 향한 확실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던 저자의 인용을 보는 순간 놀랐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다반사에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왜? 그러나 답은 없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신념을 필요로 한다. 무시와 고의적 외면, 희망과 낙천주의가 결합된 그런 종류의 신념 말이다. 신념은 논리에 도전하면서 우리가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신념이 아마도 마음과 계산기를 구분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p. 302)

책의 말미에 저자가 100km 마라톤을 6시간이 넘은 시간에 완주하면서 그 희열을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살면서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도전할 때 사람이 가장 순수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가지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우고 힘을 하나로 모으고 준비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어떤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전체 인생이 몇 시간 동안의 이 짧은 삶으로 응축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타는 듯한 매듭으로 녹아든다. 그곳에서 몸은 뒷걸음질치고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난다. 한계가 사라진다. 나는 점점 더 냉혹하게 고통을 즐기고 있다.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나무를 응시한다. 저 나무까지만 페이스를 유지하라. 거기까지 달려가서는 나 자신을 위로한다. 해냈다. 이제 저기 저 나무까지다. 그렇게 한번에 조금씩 더 나아간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결코 다시는, 다시는 달릴 필요가 없는 거리이다.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일 뿐이다. 지금,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p. 306)

이 책에서 이 문장을 읽은 것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실험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것, 살면서 삶의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잊지 않겠노라고 내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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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기술 -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
프랑코 라 세클라 지음, 임왕준 옮김, 조영 그림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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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사랑이나 이별을 논하는 것 자체가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언제 부터인가 나는 사랑을 다룬 소설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유치하고 진부하다고 까지 생각했던 것의 이면에는 사실은 그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애가 잘 되고 있을 때는 그 사랑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 같았기에 사랑을 다룬 책들에 관심이 없었고 연애가 실패하고 그 사람이 현재 내곁에 없을 때는 가슴이 아파서 그런 책들을 외면한 것 같다. 저자가 말하고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이별이란 것은 정말로 말해지기를 꺼려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많은 이별의 상황중 이 책에서는 주로 남녀간의 이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콕 찍어 말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웃게도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결론은 이별도 사랑의 한 과정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사랑에 빠지면 객관적으로 되기가 힘들다. 사랑이란 것처럼 애매모호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는 사실 명확하지도 않고 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조차도 나의 어떤 부분인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모호함들, 특성 같은 것들을 이해하면 이별의 과정이 좀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증오하기 위해선 그가 아주 평범함 사람들이란 것을,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인간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p164)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주는 공허함은 어쩌면 그 사람 자체라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가 습관처럼 되어 그것이 사라짐으로 발생하는 허전함일지도 모른다. 더이상 너는 내곁에 없고 너도 어딘가에서 잘 살겠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그 고통이 너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습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상황에 초연해지려고 노력했던 지난 경험이 떠올라 혼자 웃었더랬다.

이별할 때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 대상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상실이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 놓은 것들이다.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생각, 대상이 없어도 사랑이 존속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영원히 기다려야 할 대상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어리석은 확신을 우리는 장사지내야 한다. (p 173)

이별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랑이 달콤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도 왜 사랑에 빠지고 또 다시 괴로워하는 것일까. 이별을 하고 때로는 상대를 증오하지만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이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이제 마음속에서 영영 떠나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관심 결국 그 사람을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버린 다는 뜻이다. 이별을 사랑의 한 단계라고 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별의 기술인 것 같다. 그리하여 주변에 실연을 한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기를 과감히 말씀드린다. 그리하면 친구의 마음이 정말 편해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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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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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원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도 물론 좋아한다. 유희의 장소로서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지도 않고, 적당한 자연이 있고,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있다. 연인과 친구와 나는 정말 2년에 한번꼴은 서울대공원엘 갔었다. 어렸을 적 사진중에도 엄마와 동생과 함께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곳은 정말 넓었고 햇빛에 눈이 부셔 찡그린 반바지 차림에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기린 앞에서 찍은 사진은 내게 유년기에 동물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그 이미지를 결정해버린 결정적인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동물원의 역사는 참으로 비참하다. 보호, 교육, 계몽, 심지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동물들의 삶은 내 유년기 속의 추억의 그곳이 더 이상 아니다. 동물원은 철저한 경제주의의 이익 사업이었고 인간의 이기심의 산물인 것이다. 철창안에 갇힌 동물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 동물우리는 마치 그곳이 자연속인 것처럼 꾸며진다. 북극곰에게는 벽면에 얼음그림이 더럽지만 바다인 것 같은 물이 침팬지 고릴라같은 유인원에게는 정글같이 꾸며진 조악스런 우리들. 언젠가 동물들이 있는 우리안의 바닥이 시멘트여서 동물들의 발이 까지고 피가 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눈병이 심하게 걸린 물개와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동물의 왕자 사자 호랑이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외친다. 야 쟤네들 팔자 늘어졌네 잠만 자는구나 야, 여기좀 쳐다봐 돌맹이나 과자들을 던진다. 그들의 관심을 유도해볼 셈으로..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인간이 아닌 생명을 가지고, 그 생명을 우리안에 가두고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를 바란다. 너희들은 우리 인간보다 열등한 종이니까,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고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황송한 것인가 라고.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이 애초에 있었던 것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기에도 너무 늦었다.
나는 다시 동물원에 갈 것이다. 봄빛같이 가벼운 옷을 입고서 기린을 보고 낙타를 보고 개미?기를 보고. 다만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 동물원에 대한 아련했던 추억이 빛이 바래고 그들의 슬픈 눈빛들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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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2-2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시체 위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냥꾼의 사진이 떠오릅니다 동물원이라는 근대적 유희 때문에 동물들이 오락의 객체로 전락한 슬픈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좀 지루했어요

스파피필름 2005-02-2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은근히 지루했어요. 이상하게 사진도 많고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는데 책장이 유난히 잘 안넘어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