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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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동물원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도 물론 좋아한다. 유희의 장소로서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지도 않고, 적당한 자연이 있고,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있다. 연인과 친구와 나는 정말 2년에 한번꼴은 서울대공원엘 갔었다. 어렸을 적 사진중에도 엄마와 동생과 함께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곳은 정말 넓었고 햇빛에 눈이 부셔 찡그린 반바지 차림에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기린 앞에서 찍은 사진은 내게 유년기에 동물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그 이미지를 결정해버린 결정적인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동물원의 역사는 참으로 비참하다. 보호, 교육, 계몽, 심지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동물들의 삶은 내 유년기 속의 추억의 그곳이 더 이상 아니다. 동물원은 철저한 경제주의의 이익 사업이었고 인간의 이기심의 산물인 것이다. 철창안에 갇힌 동물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 동물우리는 마치 그곳이 자연속인 것처럼 꾸며진다. 북극곰에게는 벽면에 얼음그림이 더럽지만 바다인 것 같은 물이 침팬지 고릴라같은 유인원에게는 정글같이 꾸며진 조악스런 우리들. 언젠가 동물들이 있는 우리안의 바닥이 시멘트여서 동물들의 발이 까지고 피가 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눈병이 심하게 걸린 물개와 힘없이 널부러져 있는 동물의 왕자 사자 호랑이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외친다. 야 쟤네들 팔자 늘어졌네 잠만 자는구나 야, 여기좀 쳐다봐 돌맹이나 과자들을 던진다. 그들의 관심을 유도해볼 셈으로..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인간이 아닌 생명을 가지고, 그 생명을 우리안에 가두고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를 바란다. 너희들은 우리 인간보다 열등한 종이니까,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고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황송한 것인가 라고.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이 애초에 있었던 것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기에도 너무 늦었다.
나는 다시 동물원에 갈 것이다. 봄빛같이 가벼운 옷을 입고서 기린을 보고 낙타를 보고 개미?기를 보고. 다만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 동물원에 대한 아련했던 추억이 빛이 바래고 그들의 슬픈 눈빛들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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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2-2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시체 위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냥꾼의 사진이 떠오릅니다 동물원이라는 근대적 유희 때문에 동물들이 오락의 객체로 전락한 슬픈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좀 지루했어요

스파피필름 2005-02-2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은근히 지루했어요. 이상하게 사진도 많고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는데 책장이 유난히 잘 안넘어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