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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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살게 된 지 20년이 되어서야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임을 알았다. 25년이 되어서야 명암이 표리인 것처럼 해가 드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p.16

 

이런 이야기가 서두에 있었다. 줄을 긋는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깨달음은 반드시 시간과 함께 숙성되는 성질의 것인 것 같다. 스무 살 젊은 아이를 앞에 두고 이러한 이야기를 한들 가슴으로 받아들일 일이 없다. 설사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생동하는 나날에 그림자를 드리울 일이다. 감정의 격랑 속에서 애늙은이처럼 내일을 걱정한다면 결코 청춘이 아니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다!'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의 작품이 그렇듯 별 사건도 별 구실도 없는데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의 영롱한 구슬 같다. 온천장에 그림을 그리러 온 화공. 결국 그림은 한 장도 그리지 못하고 하이쿠만 잔뜩 읊다 가는 그 화공의 눈앞에 그려진 봄날의 숲, 바다,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 동자승, 러일전쟁 출정을 앞둔 젊은이. 그 화공의 시선은 거만하기도 하고 옹졸하기도 하고 편견 안에 갇히기도 하고 한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몽환적이기도 하고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그의 언어에는 어떻게도 건드릴 수 없는 울림이 있다. 화공의 입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의 붓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한장의 화첩을 적신다.

 

미지근한 해변에서 소금기가 있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이발소의 포렴을 졸린 듯이 펄럭인다. 몸을 비스듬히 하고 그 밑을 빠져나가는 제비의 모습이 날쌔게 거울 속으로 떨어진다. 건너편 집에서는 예순 살쯤 되어 보이는 할아범이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잠자코 조개를 까고 있다. 짤가닥 하고 작은 칼이 닿을 때마다 붉은 조갯살이 소쿠리 안으로 숨는다. 껍데기는 반짝하고 빛을 내며 60센티미터 남짓 되는 아지랑이를 가로질러 날아간다.-p.80

 

이러한 묘사는 이발소 주인과 '내'가 나누는 해학이 깃든 대화의 말미에 나온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재미는 이러한 명징하고 투명한 묘사에도 있지만 그 틈새마다 비어져 나오는 현실적인 즐거움에도 있다. 그러니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머리를 감겨주는 대신 비듬을 격력하게 털어주는, 소세키의 문장을 빌리자면, "지극히 값싼 기염을 토하는 이 주인"과의 이발소 풍경에는 생동하는 유머가 있다. 마침내 이러한 주인까지 즐거운 봄빛 속의 구성 요소로 끼워넣는 능력은 분명 나쓰메 소세키적인 것이다. 그이기에 가능한.

 

서양문명, 중국문명, 일본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이 중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그의 문명관에는 구구한 해석이 따른다고 한다. 결국 그가 지향했던 곳에는 자연과 예술, 심지어 인간까지도 그 자체의 날것으로 완상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동백꽃이 하나씩 연못에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그의 시선과 언어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또 뚝 떨어진다."이러한 문장의 반복은 마치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그 풍경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한 묘파의 일환이다.

 

내세에 환생하면 명자나무가 되고 싶다는 화공의 목소리는 사실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것같다. 온천장에 와서 한 장의 그림도 못 그려낸 화공.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반드시 그림이 아닐 것이다. 생의 한 단면, 사계절의 하나, 결혼에 실패한 여인, 이렇게 단편으로 전체를 조감할 수 있게 하는 능력. 그것의 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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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1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가 서두에 있었다. 줄을 긋는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깨달음은 반드시 시간과 함께 숙성되는 성질의 것인 것 같다. 스무 살 젊은 아이를 앞에 두고 이러한 이야기를 한들 가슴으로 받아들일 일이 없다. 설사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생동하는 나날에 그림자를 드리울 일이다. 감정의 격랑 속에서 애늙은이처럼 내일을 걱정한다면 결코 청춘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 급 동감하면서도 .. 그런 청춘들이 간혹, 그러니까 제게는 천재들 같은 이들이 있더라구요.
세월의 배움이 가르쳐 주기 전에 간파해버리는 청춘들..

blanca님의 비유법에 읽어보지 않은 글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

blanca 2014-01-18 12:31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제가 그렇게 현명하게 젊음을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도 같아요. 정말 그런 현명한 청춘들을 만나보셨다니 그 아해들도^^;; 새벽숲길님도 부러워집니다.

다크아이즈 2014-01-1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메 소세키처럼 묘사법을 구사할 수 있다면...
전 꿈에도 그리할 것 같지 않아 자꾸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구시대? 사람이지만 신세대 감각에 절대 뒤지지 않는 소세키...
블랑카님도 휴일 잘 보내시어요.^^*

blanca 2014-01-18 12:32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 사람은 정말 작가로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태생부터가 남다른. 물론 노력도 했겠지만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능력이 남달라요. 저는 모처럼 아이가 영화관 나들이를 가서 ㅋㅋ 좀 쉬고 있어요.
 
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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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참, 신산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그러한 풍경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속단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하필 읽은 이러한 이야기들은 위로가 된다기보다는 가슴 한켠을 묵직하게 누른다.

 

김숨의 소설집의 그녀, 그들은 늙었거나 가난하거나 배신당했다.

지금 이 순간 젊거나 행복하거나 부유한 자는 없다.

김숨의 그녀, 그들은 탐욕스럽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다.

추상적인 문제들이나 고차원적인 사고나 뜬 구름 잡는 식의 호사가 그네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잘 읽히나 그 읽힘이 편안하지 않고 뒷맛이 쌉사래하다.

그것은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시선에서 조망된 우리네 삶이 본래 그런 식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국수>

이미 읽었던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마지막 대목에서는 눈물이 또 툭 떨어진다. "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로 시작하여 국숫발을 뚝뚝 끊어 설암에 걸린 계모에게 먹여주는 마지막 장면까지 반죽을 치대고 밀고 썰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전처의 자식 넷을 거두었다 말년에 홀로 외롭게 암으로 투병하며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예전에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수를 만들어 주는 과정 하나 하나에 모녀의 관계를 투영한 이야기는 여자의 인생, 가족의 숙명, 삶의 지난함 등이 눈물겹게 형상화되어 있다. 소설이라는 것이 대단한 서사를 스펙터클하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 하나의 과정, 하나의 감정을 심도있게 묘파해 내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방증 같은 이야기다.

 

 

 

 

 

<옥천 가는 날>

옥천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열두어 살 무렵 할머니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가다 아버지는 접촉 사고를 내셨고 대부분 안 다친 상황에서 나는 이를 심하게 다쳤다. 가장 가까운 장소가 옥천이었고 아무데나 짚어 간 조그마한 치과에서 중년의 여의사는 응급 처치를 아주 정교하게 신속하게 잘 해치웠다. 사고수습으로 바쁜 아버지를 대신하여 동행한 나이 든 사촌 오빠를 아버지로 착각한 그녀는 어떻게 하다 아이 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심하게 야단을 쳤다. 여하튼 옆으로 넘어간 이를 지지대로 다 세우고 상처난 곳을 붕대로 덮어주는 등 그녀의 처치는 나중에 다른 치과 의사들한 테도 매우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래서 '옥천' 하면 아무 연고도 없이 기착지처럼 들른 그곳이 참 믿음직하고 따뜻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정숙과 애숙 두 자매가 옥천으로 가며 주고받는 이야기들로만 짐작할 수 있는 그녀들의 사연은 어둑시근하고 가슴아프다. 구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그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인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느라 노모를 돌보지 못하는 언니 정숙,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노모를 마지막까지 돌보았으나 요양급여를 타기 위해 노모의 온전한 정신을 치매로 위장해야 했던 동생 애숙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들은 그녀들의 팍팍하고 고생스런 생계와 노모와의 아픈 추억들을 외연으로 밀어낸다. 완전히 죽어 있다는 암시 대신 마치 지척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듯한 암시를 주는 노모와 그녀들의 자리는 마무리 즈음에 가서야 구급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좁은 구급차 안에서 생과 죽음이 속살거리는 풍경.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중풍에 걸린 홀시아버지를 모시는 첫애를 임신한 며느리의 마음 속은 무간지옥이다. 하루종일 오리 뼈를 고아 그 국물을 마시며 생에 대한 끈덕진 애착을 시위하듯 표현하는 노인은 어느 날 이웃집 여자에게 빌려 준 돈 삼십만원을 대신 며느리가 받아 쓰라는 이야기를 한다. 산책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노인, 약속한 귀가 시간을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시아버지에게 삼십 만원을 빌려 갔다는 이웃집 여자의 부재.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은 어쩌면 그 누구의 귀환도 바라지 않는 여자의 진심일런지도 모른다. 어떤 대답도 듣기 어려운 삶 그 자체일런지도 모른다.

 

<명당을 찾아서>

홀린듯이 부동산의 사내의 '명당 운운'에 석모도라는 섬을 따라나선 부부의 이야기는 기막히게 괴괴하다. 김숨 작가의 서스펜스적인 문장들은 큰 사건 없이도 읽는 이의 간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신기루처럼 잡을 듯하면 사라지는 꿈꾸었던 집 대신 이 부부가 당도하게 되는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역시나 이야기는 흔쾌히 답을 주지 않아 김이 좀 빠지기도 한다.

 

<구덩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구제역으로 숱한 돼지들의 목숨줄을 끊어놓아야 했던 아픈 시간들을 우리는 금세 잊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돼지들을 살처분할 구덩이를 파는 사내의 던적스러운 삶의 행로와 인간들이 꾸역꾸역 살기 위해 그 구덩이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들의 풍경이 교차하면서 읽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게 한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아내와의 이혼을 종용받는 사내와 그 사내가 지금 하는 일에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 교통사고 휴유증을 앓는 주인집 아들의 대면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삶의 행로를 따라 비어져 나오는 숱한 지저분한 실수들과 악행들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삶과 나이듦과 죽음의 그 거칠고 적나라한 속살. 한결같은 그 천착이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자꾸 동심원을 맴도는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그렇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과 손길이 빚어낸 이야기들의 울림은 크고 깊다. 입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턱 언저리에 묻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는 국숫발을 반죽하는 시간이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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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 역시 대단하군요.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이 소설집을. 한달 뒤에나 가능한 얘기지만.. 여튼 블랑카님 글은 늘 균형있고도 설득력 있는 섬세함을 잃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전 단편 '국수'만 읽었거든요. 두번 읽어도 같은 부분에서 찡했어요.)

blanca 2014-01-08 16:29   좋아요 0 | URL
섬님도 국수 읽으셨군요! 어떤 대목에서 찡하셨는 지 궁금합니다. 저는 솔직히 읽으면서 어울리지 않게 국수가 자꾸 먹고 싶어져서 ㅋㅋ 혼났습니다.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손수 국수 반죽을 밀어 동네 아주머니들과 나누어 먹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요새는 참 보기 힘든 풍경이지요.

페크pek0501 2014-01-0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린 데도 읽을 것 다 읽으시는 님의 책에 대한 열정... 을 봅니다.
차라리 아이가 어릴 때 저도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젊었으니 눈이 피로하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책을 봐도 끄떡없던 시절이었어요.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좀 커서는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줄창 책을 봤어요.

김숨 작가의 글은 (이름은 들어 봤으나) 아직 읽어 보지 못했으니 제가 이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함은 확실한 것 같네요.
느릿느릿... 저는 고전에 묻혀 지낼 새해가 될 것 같아요.
대신 님의 리뷰 보면서 아, 이런 소설이 있구나, 하는 정도는 하고 살아야겠어요. ^^

blanca 2014-01-10 09:40   좋아요 0 | URL
아, 아이 안고 재우거나 수유할 때 책을 보게 되요. 그래야 즐겁게 견딜 수 있거든요^^;; pek0501님의 모옴 여정이 너무 기대됩니다. 페이퍼 열심히 찾아가서 볼게요.

세실 2014-01-1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 작가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되는, 외면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이군요.
읽어봐야 겠습니다.

blanca 2014-01-13 21:2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젊을 때부터 지금도 젊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내면을 그려내는 솜씨가 아주 비범한 작가예요. 주로 노인들의 고달픈 삶, 내면을 많이 그려서 사실 읽고 나면 한없이 다운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을 아주 노련하게 잘 그려내고 읽히는 재미도 있어서 추천드리고파요.
 

십이월 생이라 새해에 공으로 여덟 살을 먹어버린 꼬마가 요새 내가 읽는 책 제목을 유심히 본다.

 

 

 

 

 

 

 

 

 

 

 

 

 

 

 

 

며칠 새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자꾸 "왜 울지 않는 아이가 커서 왜 우는 어른이 됐어? 그러면 나는 우는 아이가 될래. 그럼 크면 울지 않는 어른이 되는 거야?" 라는궤변을 편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두 에세이집 다 참 좋았다. <우는 어른>을 먼저 읽고 뒤이어 <울지 않는 아이>를 읽었는데 둘 다 에쿠니 가오리의 서평이 부록이 더 좋은 잡지처럼 빛난다. 그녀가 같은 작가로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잘 쓴다는  팀 오브라이언도 세상에 구원 따위는 없다지만 그래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치버도 절로 궁금하게 만든다. 아, 그리고 그녀의 에세이 중 주머니에 넣어두고 싶었던 한 편. <달의 사막을 여행하는 버스> 달의 사막을 보러 튀니지에 간 짧은 이야기는 하나의 단편만한 응축력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노인 단체의 투어 버스에 동승하면서 그들에게 느꼈던 노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완강한 편견이 깨어지는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가 밤의 사막의 아름다움에 숨막혀하며 일찍 자니 이 아름다운 달의 사막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노인의 군단이 예상을 깨고 터번들까지 쓰고 달빛 속에서 와글와글 걸어오는 모습을 '귀엽고, 왠지 모르게 거룩하다'라고 표현한 그녀의 솔직함과 재기가 돋보인다. 그녀는 폭넓은 무게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가장 잘 버티는 지혜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아이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다가 문득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 세상에서 과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미덕을 가르치는 게 좋은 걸까, 싶었다.

 

 

 

안 그래도 딸아이는 퍼주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졸라서 어렵게 산 스티커도, 아끼던 머리띠도 친구가 달라고 하면 고민하다 곧 내어준다. 갑자기 나는 '관계'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아니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관계'가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 나는 관계는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무조건 주기만 하는 관계도 건강하지 못한 거라고 열을 올린다. 작가가 들었다면 몹시 서운해할 이야기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 텐데.

 

다음부터 아이는 내가 무언가를 빌리거나 달라고 하면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세상에서 중용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개념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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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1-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분홍공주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거에요?@@
동생을 보더니 성큼 커버린 듯... 아직 입학은 한두 해 더 남은 줄 알았어요.
드뎌 학부모가 되시는군요, 축하합니다!!

blanca 2014-01-07 10:06   좋아요 0 | URL
그 유명한 황금돼지띠의 막차를 타서 벌써 초등학교에 간답니다.^^ 상당히 긴장되네요. 게다가 젖먹이 동생도 있으니 여러모로 힘든 한 해가 될 듯해요.

2014-01-06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1-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었어요. 그만이 갖는 특이한 분위기가 있더군요.
괜찮았어요.
중용... 님의 글을 읽으니 세상엔 정답이 없는 게 많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blanca 2014-01-10 09:38   좋아요 0 | URL
아, 그 책을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 가장 좋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그게 저부터가 똑같은 상황이 와도 나이가 들면 또다른 대처 방법이 떠오르고 그렇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배워가는 게 아마 인생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중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저 내려오는 그런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스무 살 적 톨스토이의 사진. 미남은 아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던 증언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을 듯한 모습. 깊은 눈매는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이제 그는 열 번째 생일 이후부터 시작되는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언어는 레프 톨스토이 덕에 자기 자신이 이루어 놓을 수 있는 가장 명징한 구체성과 생생함을 마음껏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자전적인 연작 소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해도 된다면) 그의 처녀작이다. 어떤 서투름, 소박함 등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이 거장 앞에서 실패하는 언어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작가는 이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아픈 자각이 뒤따른다.

 

니콜렌카 앞에서 관찰되는 독일인 가정교사를 비롯한 집안의 일꾼들의 모습은 매우 적나라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아무리 늙고 비천한 신분이라도 이 소년 앞에서는 저마다의 미덕으로 존재 가치를 가진다. 물론 그의 시선은 어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의 시선은 아이의 그것으로 내려가 있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그 아련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안타까움으로 회상하는 애타는 마음이기도 하다. 신나게 뜀박질을 하고 와 시원하게 우유를 마시면서 꾸벅꾸벅 졸며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 어머니와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늙은 하녀의 죽음을 겪으며 마침내 유년기의 출구에 당도하는 모습에는 누구나 절절하게 겪고마는 성장통의 아픈 상흔이 드러난다.

 

마음에 드는 예쁜 소녀와 마주르카를 추지 못해 안달을 하다 가정교사를 폭행하기까지에 이르는 그의 서투르고 거친 모습은 누구나 가슴 한 곳에 숨겨두는 그 무모하고 서투른 젊음의 치기를 한번씩 꺼내보게 한다. 말년의 다듬어지고 닦인 그의 고결한 모습의 원형에는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들도 침잠해 있으리라. 이렇게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의 그 숱한 실수들과 실패들과 자학들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니콜렌카의 목소리를 빌려 고백하는 것들의 정밀성과 공감을 획득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매우 놀랍다. 니콜렌카의 모든 행동, 감정, 의지, 생각 들은 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부딪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또다른 복기다. 자신의 못남을 숨기려다 오히려 과장되게 행동하고 후회하는 모습, 간혹 솟아오르는 그 젊음 자체가 주는 놀라운 희열, 그럼에도 또 때로 곤두박칠치는 그곳의 비극성. 빛나는 시선으로 훑고 가는 그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물, 풍경에 대한 묘사들.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그 문화 특유의 공감대. 니콜렌카가 대학에 가서 동기들과 프록코트를 벗어 던지고 화주를 마시며 치기를 부리는 모습은 대학 신입생들의 환영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따금씩 느끼는 자신의 태생적 신분을 통해 누리는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죽음, 삶, 윤리에 대하여 고뇌하는 순간들은 오늘날의 톨스토이가 태어나는 데에 일종의 복선 역할을 한다. 그냥 그렇게 편하게 이기적으로 누리며 살 다 갈 수도 있었을 귀족의 자제가 수많은 삶의 편린들을 언어의 체로 걸러 내어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과 삶 자체를 분리할 수 없어 고뇌하다 마침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 분투했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 산화하는 그 과정의 산고의 시발점을 찾을 수 있는 작품. 아니, 이도 저도 다 차치하고 그저 우리 머리 위로 마구 내려왔던 그 투명한 시간들을 한없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 하나 응축하여 손 안에 가두어 놓으려 했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의 결정체가 바로 이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에게 이미 그의 이러한 과업들이 건너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무튼 다시 한번 권해 보고 싶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는 마침내 해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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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저 사진이 톨스토이의 젊은 시절 사진인가요?
만년의 사진만 보다가 젊은시절을 보니 좀 색달라 보이네요.
그나저나 늦었지만 블랑카님 서재이 달인을 축하드리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blanca 2014-01-07 10:11   좋아요 0 | URL
예, 외모 때문에 대단히 괴로워했다던 젊은 시절 모습이에요. 나이 든 모습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흑백 사진. 단발 머리의 젊은 엄마와 어깨까지 닿는 금발머리의 사랑스러운 사내 아이는 코를 맞대고 웃고 있다. 가스 렌지의 손잡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소는 부엌. 행복하고 안온하고 뭉클해 보이는 장면.

 

 

아이는 열여덟 살에 이러한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밖에 내어 말한다. 이십오년여 동안 이 지극히 엄마다워보이는 엄마는 정신이 병들어 아들에게 엄마다운 엄마로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아들은 그러한 엄마가 죽어도 괜찮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 앞에서 전혀 괜찮지 않음을, 주먹으로 한 대 가격당한 듯한 아픔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들은 건강할 때에 부엌에서 아이들에게 엄마표 돼지갈비와 딸기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며 행복해했던 엄마의 모습을 찾아 직접 그 요리들을 재연한다.

 

아들은 이라크 침공현장, 예루살램 등의 그 살육의  현장에 직접 있었던 종군기자다. 그와 엄마와의 관계는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했다. 엄마는 술을 마셨고 환청을 들었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엘리자베스 데이비드의 요리책을 교본으로 부지런히 주방에서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했던 그 건강하고 활기찬 엄마의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그 찰나 같았던 순간들 속에서 모자는 특별한 유대와 공고한 관계를 형성한다. 나머지의 그 파괴되어 가는 모습들이 엄마의 전체를 규정지을 수는 없었다. 애도의 길은 처음에는 곧고 평탄하다 이윽고 생의 가혹한 우연의 요철에 걸려 넘어진 엄마가 어떻게 가족에게서 멀어져 가는지를 더듬고 기억해 내야 하는 곳으로 닿아 있다.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사진이 너.무.나. 눈물겹도록 예쁘다. 일부러 포즈를 취한 듯한 작위성은 걸어나가고 그냥 그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었다. 광고 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뷰파인더에 담아 응고시킨 순간들은 그 자체로 이 슬픈 가족의 예쁜 일대기다.

 

 

 

 

아무리 해도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여전히 거기 있을 것 같다. 인위적인 구획으로 나이와 시간을 재단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부모님은 늙어 있고 병들고 떠나고 나의 아이들은 어깨 높이만큼 자라 더이상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에 당도한다. 더 나아가면 내 옆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들, 모든 것은 꿈만 같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생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깨달음에 자꾸 우울해진다. 아들은 엄마의 행복하지 못했던, 그래서 그 자신도 괴롭고 아팠던 반생을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아픔에서 조용히 걸어나간다.

 

오늘 엄마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지하철을 한 시간 가까이 타고 집에 왔다. 엄마가 이렇게 내 옆에 있어 주어 너무 좋다,는 말을 하지는 못하고 "친정 엄마가 반찬해 주니 좋다"고 표현했다. 엄마가 엄마다운 채로 그렇게 나도 엄마의 딸다운 대로 아주 아주 나중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나도 나다운 대로 그렇게 내 딸과도 떠올려도 괜찮을 정도의 작별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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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3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도의 길이군요,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애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많은 면에서요.

blanca 2013-12-31 15: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살면서 아직도 항상 배울 것들이 있다는 게 참 좋으면서도 지나고 나면 또 했던 실수들이 너무 부끄러워져서. 적어도 가족이든 타인이든 상처는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고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고님, 벌써 올해도 다 저물어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프레이야 2013-12-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엄마가 계시니 블랑카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저도 김치 담가주신 엄마가 건강히 계세요. 전 제 딸에게 가져갈 멸치볶음을 방금 만들었구요. ^^ 눈물나게 빛나는 책이군요. 한가족의 역사이기도 한 사진들까지.

blanca 2013-12-31 15:0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 참 큰 힘인 것 같아요. 이사벨 아옌데는 어머니가 구순인데 정정하셔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힘이 되준다는 글을 읽고 너무 부러웠어요. 김치, 저는 언젠가는 제가 김치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렇게 받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좋기도 해서 미루나 봐요. 멸치볶음은 언제나 스테디셀러죠 ㅋㅋㅋ 프레이야님, 오늘 한 해 마무리 따뜻하게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4-01-0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존재죠. 이제 나이 27인데도 엄마가 좋아요... 그렇다고 제가 마마보이 인증하는 건 아니랍니다.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세요.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기도 함께... ^_^

blanca 2014-01-02 19:44   좋아요 0 | URL
cyrus님, 감사합니다. 님도 올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 잘 성취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심지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도 언제나 좋고 보고싶은 그리운 존재이지요. 벌써 1월하고도 2일이 저물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