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 생이라 새해에 공으로 여덟 살을 먹어버린 꼬마가 요새 내가 읽는 책 제목을 유심히 본다.
며칠 새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자꾸 "왜 울지 않는 아이가 커서 왜 우는 어른이 됐어? 그러면 나는 우는 아이가 될래. 그럼 크면 울지 않는 어른이 되는 거야?" 라는궤변을 편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두 에세이집 다 참 좋았다. <우는 어른>을 먼저 읽고 뒤이어 <울지 않는 아이>를 읽었는데 둘 다 에쿠니 가오리의 서평이 부록이 더 좋은 잡지처럼 빛난다. 그녀가 같은 작가로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잘 쓴다는 팀 오브라이언도 세상에 구원 따위는 없다지만 그래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치버도 절로 궁금하게 만든다. 아, 그리고 그녀의 에세이 중 주머니에 넣어두고 싶었던 한 편. <달의 사막을 여행하는 버스> 달의 사막을 보러 튀니지에 간 짧은 이야기는 하나의 단편만한 응축력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노인 단체의 투어 버스에 동승하면서 그들에게 느꼈던 노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완강한 편견이 깨어지는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가 밤의 사막의 아름다움에 숨막혀하며 일찍 자니 이 아름다운 달의 사막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노인의 군단이 예상을 깨고 터번들까지 쓰고 달빛 속에서 와글와글 걸어오는 모습을 '귀엽고, 왠지 모르게 거룩하다'라고 표현한 그녀의 솔직함과 재기가 돋보인다. 그녀는 폭넓은 무게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가장 잘 버티는 지혜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아이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다가 문득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 세상에서 과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미덕을 가르치는 게 좋은 걸까, 싶었다.
안 그래도 딸아이는 퍼주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졸라서 어렵게 산 스티커도, 아끼던 머리띠도 친구가 달라고 하면 고민하다 곧 내어준다. 갑자기 나는 '관계'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아니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관계'가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 나는 관계는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무조건 주기만 하는 관계도 건강하지 못한 거라고 열을 올린다. 작가가 들었다면 몹시 서운해할 이야기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 텐데.
다음부터 아이는 내가 무언가를 빌리거나 달라고 하면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세상에서 중용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개념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