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 씨의 어머니는 삼성에서 합의금을 받는 조건으로 산재 소송 포기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치료비로 큰 빚을 진 그는 소송을 포기하지만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 아이의 죽음을 땅에 묻고 진실을 숨기려는 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겨레21 819호 참조>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 물건 취급 받아서는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p.139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응시가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성취가 개인의 미덕을 실증하는 것 같은 환각에 너도나도 취해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를 분배하는 기준에 대하여 묻는 것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원론적인 문제로 회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방식이 곧 그래야만 하는 방식으로 오도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숨이 막힐 때마다 나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를 돌아보아야 함을 강요받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극장식 강의실에서 천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그도 사실은 이 사회에서는 혜택받은 소수에 해당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례적으로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사실 정의가 무엇인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하버드 대학의 뜨르르한 강의를 나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하나의 허영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그리고 내용이 명성보다 빈약할 거라 지레 짐작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가는 길은 칸트식으로 말하면 전혀 주체적이지 않은 욕망에 반응하는 행위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칸트,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들어도 버석거리고 하품부터 나오는 인물들의 사상에서 정의에 관련된 핵심만을 추출하여 착착 들러붙게 설명해 주는 그의 입담은 명불허전이다. 고등학생 때 이런 책을 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깊이 그 자체를 놓고 본다면 이론이 있을 테지만 이 책이 강의에 기반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질문을 던질 때 짚고 넘어가는 대목들에 대한 이정표다. 특히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정부의 윤리적 가치적 중립을 지지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의 정체성과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열린 토론에 대한 주목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흘려보낸 것들을 뒤늦게 챙겨 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요컨대 그는 정의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을 좋은 삶에 대한 논의를 간과하고는 거의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하여 그것에서 끝마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리주의 그것의 허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하는 공리주의의 약점은 알려진 바와 같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행복을 계량화했다는 점이다.  이 공리주의를 주창한 벤담의 죽음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교수가 강의 시간에 우스갯 소리를 해서 조는 학생들을 깨워주려는 시도처럼 마이클 센델의 얘기는 독자들을 유머로 오히려 바짝 조인다. 벤담은 자신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보존 전시하라고 유언했다. 그래서 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가면 그의 사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1980년 국제벤담학회 창설 모임에서는 이 방부 시신이 참석했다. 엽기적인 대목은 그의 두 발 사이에 놓여 있었던 진짜 머리를 학생들이 훔쳐 가 자신들의 요구 관철을 위해 이용했다는 점이다.  

 

인간 간에 사고 팔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다음으로 등장하는 자유지상주의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진행중이다. 이는 최소국가론을 지지하고 자유시장을 떠받든다.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둘다 자유시장의 홍위병들로 이용된다. 여기에서는 주목해야 할 사례가 제시된다. 미국의 군대가 경제적 교육적 혜택을 받기 위한 하류층 젊은이들로 채워진다는 대목이다. 시장을 이용하여 군 복무를 할당하게 되면 정책 입안자들의 자녀가 연결될 확률은 극히 미미해지고 점점 전쟁을 더 쉽게 일으키고 인명살상을 더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시민과 그들 이름으로 싸우게 되는 군인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지점에서는 평화 대신 호전적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예리한 지적이다. 자유로운 계약 관계에 의하여 돈이 오고 가는 관계가 그 자체로 정의로울 수는 없다는 방증 같다. 초입에 거론했던 삼성의 행태도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돈이 오고 가고 박씨의 죽음이 산업재해가 아닌 것으로 묻힌다는 가정은 그녀를 위시한 투병중인 나머지 직원들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거대기업의 대우가 정의롭지 못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자, 이제 우리는 주민들이 그가 산책나오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그 유명한 에피소드를 가진 칸트로 돌아가 볼 차례다. 그의 인간 존엄에 대한 통찰은 가슴벅차다. 칸트가 인간이 그 자체로 숭고하고 존중받을 귀중한 존재임을 역설한 대목도 보편적 인권 개념의 태동을 알리는 장중한 서막이지만 그보다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을 재정의한 부분은 꼭 유념해서 들어 둘 필요가 있다. 그가 얘기한 자유로운 인간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다. 욕구에 반응하여 행동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내가 오늘부터 믹스커피를 끊기로 했다면 그것을 안마시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지 욕구에 반응하여 벌써 두 잔째를 들이키고 있다면 지극히 타율적인 인간이란 얘기다.(내얘기다) 동정심에서 나온 선행도 그의 눈으로 보면 불순하다.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수단으로서의 행동과 다른 인간에 대한 특별한 애착, 공감에서 나오는 행동들도 칸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그는 특정하다,는 어휘를 경멸한다. 엄격한 도덕주의자가 지향하는 절대 보편의 세계는 불가능하고 이상적일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매혹적이다.   

 

노력하면 다 된다고?

 이제 존 롤스가 나온다. 평등한 출발선 그 자체마저도 불신하는 그는 재능있는 사람도 기실은 그것이 도덕적 우연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노력을 한다고? 그 노력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을 받아도 온당하는 말은 그에게 넌센스다. 저자는 한 몫 더 거든다. 성공을 우리 노력의 결실로 여길수록 뒤처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줄어든다,는 그의 지적.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현사회에서 능력위주 시스템이 가지는 맹점에 대하여 직시하게 만드는 그의 지적은 결국 인간의 존엄 그 자체에 대한 응시로 귀환한다. 그러니 칸트와 롤스는 만난다.   

 

자유로운 개인을 붙잡는 지점 

이제 결국 마이클이 강의실에서 천 명을 불러모은 위력을 실감해야 하는 대단원이 오른다. 다 좋다.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고 인간의 존엄을 응시하고 그런데 이게 과연 공동체의 선과 어떻게 연결된단 말인가? 상충하는 대목 아닌가?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누리게 해 줄 생각인가 우리는 궁금해진다. 답변은 몽환적이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고 물렁거리기도 한다. 

그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존재로서의 우리가 서사의 탐색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그 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먼저 답변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는 통찰은 역사 속 공통체의 일원으로서의 현재의 후손들이 과거의 잘못을 배상하고 사죄해야 하는 근거가 되어 준다. 연결된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개인의 절대적 자유만을 주창하다 보면 우리는 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하여 우리에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거를 찾아 낼 수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이기 위하여 우리가 우리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다.   

 

좋은 삶 그 막연하고 아리송한...그러나 의미있는...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 큰 삶의 일부로 이해하고 감당하는 기질이다.<중략>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다.
-p.330 

결국 마지막은 다시 처음과 맞물린다.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공론화해야 한다. 그 좋은 삶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삶의 일부로서이다.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결론일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다시 물음표를 찍으며 마친다. 수많은 질문들을 촉발하는 불온하고 혼란스러운 책으로서 이 책을 권할 수밖에 없다. 딛고 선 땅이 흔들리고 삶의 좌표가 요동치는 경험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일테니.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틀을 부수고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의 점화일테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0-07-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창 회자되는 책이라서 관심이 있었지만, 근거없는 편견때문에 미뤄두었던 책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기대하는 저로서는, 좋은 삶을 먼저 짚어야 한다는 말이 김빠진 맥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매우 현실적인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 어떤 것이냐?라는 물음으로 돌아오는데, 아마 개인의 문제가 공동체 안에서 고민되고 해결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비판> 서문에 쓰인 "인간은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스스로 부과한다..."라는 말이 그러하듯이, 좋은 삶이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뭔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anca 2010-07-21 21:39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저도 내용 완전 빈약할 거라 단정짓고 원래 안읽으려고 했는데 하도 난리들이라 궁금해서 읽어 봤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일단 재미있고 정치철학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쏙쏙 들어오게 해주더라구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례를 아주 적절하고 재미있게 들어주니 딱 강의실에 앉아 있는 느낌이더라구요. 결론은 질문을 던지다 김빠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저는 이 쪽 책을 많이 안읽어서 그런지 부담 안가지고 생각 안해 봤던 문제들을 한번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어 좋더라구요.

herenow 2010-07-22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책을 다시 집어들도록 자극하는 서평인데요.
도입부분 완전 공감했습니다.
평소엔 대충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책이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blanca 2010-07-22 21:13   좋아요 0 | URL
herenow님, 아, 네임이 너무 좋네요. 사진도. 반갑습니다. 소문 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무색해질 정도로 저한테는 참 괜찮게 느껴지더라구요.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대학생 때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에서 최악의 고비, 첫사랑의 단계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존재의 가장자리가
칼날 같아서 당신의 여린 생살을 베히고 마는, 그래서 결국 피를 내고야 마는 그런 상처의 시대에도 마침표는 있다고
얘기해 주기를 바라나요? 그 황홀한 고통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버석거리는 끝은
결국 오고야 만다고 얘기해 버리고 맙니다. 

당신은 이미 결혼이라는 사회적 의례를 통과하고 희미한 열정의 끝을 가만가만 더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정의 거스러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나요? 

이도 아니면 당신은 이 모든 애조띤 열정을 담담하게 쓰다듬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늙어버렸을 수도 있겠군요.
근사하게 행복한가요? 사랑이라는 것과 무관한 삶의 느낌, 그 어떤 애욕과 열정의 가능성의 심지마저 이지러져 버린
그 시점에 서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이 책은 자신이 사랑의 '경박함'을 체화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쉰 가까이 된 여자가 자신의 과거의 무모한 열정의
체현인 것 같은 젊은 남자 앞에서 뒷걸음질치고 그에게 맞춤한 또래의 젊은 여자에게 돌려 보내는 얘기입니다.
언뜻 들으면 통속적인 연애 소설 같나요? 하지만 이 책 속에는 삶과 어머니와 사랑에 대한 면밀하고 아름다운 통찰이
바람처럼 불어와 독자의 가슴 속에 스미게 만드는 마력이 있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신경숙 작가 덕택입니다. 그녀가 쓰고 싶었는데 왜 하필 콜레트라는 작가가 이 책을
썼을까, 했다지요. 이 책은 이백 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얇습니다. 저는 솔직히 소설에 흠뻑 빠지는 타입이
아닙니다만 이 책을 읽으며 태어나 난생 처음으로 소설 앞에서 설레었답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 책은 콜레트라는, 프랑스에서 국민들에게 '나의 콜레트'라고 불려질 만큼,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질 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여류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랍니다. 어떻게 시작하는 지 아세요? 바로 주인공이자
작가의 일흔다섯 살의 어머니가 딸의 두번째 남편의 초대를, 선인장 꽃의 개화 구실로 정중하고 귀염성 있게 거절하는
편지로 시작한답니다. 이 편지는 실제로 작가의 어머니가 사위에게 보낸 편지를 조금 개작한 것이랍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작의 시작을 붙잡기 위해 늙어갈수록 더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는 이 작품 전체에서
그녀에게 나이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부유해지지 않고는, 즉 재난도 상처도 다 그러모아 차곡차곡 쌓아가지 않고는
그리고 가끔씩 뒷걸음질쳐 그것을 완상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가르쳐 줍니다.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서 뒷걸음질치고
만 것도 결국은 죽은 어머니가 사랑이 지나가며 그린 그 언제나 꼭 같지 않은 아라베스크 문양이 주는 애조띤 아름다움의
허무함을 상징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사랑을 아는 자만이 사랑을 밀어낼 수도 있답니다. 거짓된 몸짓일지라도 우리는 그 사랑의 결 속에 일상이 스미면
그 황홀함이 어떻게 경박스러움과 무미건조함으로 변질되는 지 화석처럼 굳어버린 추억의 상흔만으로 유추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외쳐대는 그녀가 사랑을 거부만 한 것일까요?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p.19 

행복한 사랑에서 우리는 명징한 존재의 순간을 체험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절절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요? 

행복한 사랑이 참혹한 결말로 종지부를 찍고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수많은 유리조각들이 차 올라 나의 온 몸 속에 생채기를
그어대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을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지나가고 난 자리, 꾸덕꾸덕하게 상처가 말라갈 무렵, 우리는 또 돌연 행복해집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새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수많은 생명을 낳는 경계선일런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산고로 사랑의 완성을 낳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사랑이 남기는 가르침을 낳습니다. 

그것은 사랑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만이 더 깊이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아닐까요? 

당신에게 이 책을 강권합니다. 꼭 새벽에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녀가 진부하다고 외쳤던 사랑과 모성애가
가장 덜 진부한 생의 현현임을 절절히 느낄 수 있도록. 

창백한 푸른빛이 방에 들어오는 그 순간, 이 책을 읽으며 마음껏 슬프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잃고 눈물을 흘리며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노고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 지도
아울러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6-2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문학동네에서 왜 그리 탐나는 책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 책 읽으면 이런 멋진 리뷰가 줄줄 나오려나요? ㅎㅎ
안 그래도 터져나가는 장바구니지만 한권 더 쏘옥 넣었습니다~

blanca 2010-06-20 22:05   좋아요 0 | URL
Manci님 안그래도 일본기행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다담주 쯤 아마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탐나는 책이 너무 많아요. 장바구니는 터지라고 있는 거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콜레트가 알려진 것은 영화 '지지'덕이지요.80년대에 그녀 작품 몇개가 한권으로 묶인 번역본이 주우출판사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신경숙 씨도...오...그렇군요.

blanca 2010-06-20 22:06   좋아요 0 | URL
노자님은 모르시는 게 없군요. 진짜. 안그래도 다른 책 읽어 보려 했는데 절판이랍니다.-..- 영어라면 우짜든동 시도라도 해보겠는데 불어 원서는 흑흑.... 영화 지지라구요?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프레이야 2010-06-20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매력적인 리뷰에 저도 장바구니행입니다.
보관함이 미어터지는데..ㅎㅎ
권유대로 새벽 창백한 푸른빛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에 꼭 읽어야겠네요.

blanca 2010-06-20 22:0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정말 번역도 너무 공들여 한 티가 나고 소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자기고백서처럼 읽히더라구요. 삶은 전연 다르지만 거의 문체는 최명희 수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근래들어 이렇게 놀라며 읽은 외국 소설은 정말 처음인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0-06-2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
입을 다물 수가 없어!
아~~~~

blanca 2010-06-20 22:08   좋아요 0 | URL
마기님! ㅋㅋㅋ 그저 감탄사로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네요.^^;;

마녀고양이 2010-06-2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장바구니에 넣어야게따.
그런데 어찌하면 블랑카님처럼 아름다운 리뷰를 쓸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합니다~ ^^

얼마 전 결혼한 사람들끼라 한 이야기,, 이제 남자 사냥 안 해도 되니 넘 편해.. ㅋㄷ

blanca 2010-06-21 12:30   좋아요 0 | URL
남자 사냥ㅋㅋㅋ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소개팅 해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되고 감정싸움 안해도 되고...벌써 주변에도 미스가 없어지네요...대신 화제가 너무 한정되서 아쉬워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 듣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데...다 가족 얘기만 하게 되요. 여기서 마녀고양이님랑 노는 게 참 좋아요.

穀雨(곡우) 2010-06-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잠이 많는 저에게는 무리군요...^^
블랑카님의 글은 금요일 밤마다 늦은 시각 방영하는 오늘의 영화같은 느낌입니다. 읽고 있다보면
"음...시간이 없더라도 이 책은 꼭 쟁여서 봐야겠군...근데 이 사람의 언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글에 무슨 유혹의 덫이라도 있는게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아무래도 이건 음모야 음모...^^)"
추천과 아울러 살포시 장바구니로...ㅋㅋ

blanca 2010-06-21 12:30   좋아요 0 | URL
곡우님, 댓글을 자꾸 다시 읽게 되네요....그저 고맙고 황송한 찬사입니다.^^;;

강래희 2010-06-2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감탄~~^^
저 책 지난주에 12권 들였는데요,, ㅡㅡ
지금 적잔데 ..ㅡㅡ
그래도 저도 장바구니에 살짝 넣어볼까요?? 오오오

blanca 2010-06-21 21:44   좋아요 0 | URL
arcia님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신경숙 작가의 감성과 통하는 지점에 있는 책입니다. 대문사진 보니 미인이시네요^^

후애(厚愛) 2010-06-22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보고싶지만 다음에 기회가 오면 꼭 봐야겠어요.^^

blanca 2010-06-22 21:05   좋아요 0 | URL
후애님, 한국에 오시면 제가 선물로 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2010-06-23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3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6-2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게 두 번 읽었어요.
블랑카님은 글은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에요.^^

blanca 2010-06-23 22:32   좋아요 0 | URL
두 번 읽으셨다니 긴장됩니다.^^;;

꿈꾸는섬 2010-06-2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저도 담아가요.^^

blanca 2010-06-25 20:34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이 댓글을 지금 봤네요. 책 분량도 얇아서 부담도 없답니다.^^ 전체가 시 같은 소설 이에요. 읽기에도 좋고...추천합니다.

자하(紫霞) 2010-06-2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사랑은 철학만큼 어려운 것 같아요~
멋진 리뷰이십니다!!^^

blanca 2010-06-25 20:35   좋아요 0 | URL
베리베리님, 퍼스나콘이 너무 사랑스럽네요. 세상에서 젤 어려운 게 사랑인 것 같아요. 가장 아름다운 것도요. 늙어도 죽음을 앞두고도 결국은 사랑한다,는 말이 남는 것 같아요.

2010-08-15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illyours 2011-03-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아이엠러브>를 보고는 이 책이 생각나 바로 집어들었어요. 아, 이 근사한 책- 역자의 정성에도 감탄했답니다. 검색해보니 발자크 책도 번역하셨길래, 이제 그 책을 읽으려고요. 오래오래,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 같아요. 급히 페이퍼를 쓰고 블랑카님 리뷰를 읽으니 두근대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참 좋습니다. 언제나 좋은 리뷰, 감사히 읽고 있어요 :)

blanca 2011-03-03 21:02   좋아요 0 | URL
moon님! 이 책 읽으셨군요. 정말 역자후기가 참 감동적이더라구요. 진정성 있는 자기 고백은 언제나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발자크 책 어느 출판사 것을 번역하셨을까요? 민음사 것 저도 읽었는데 번역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못했네요. 읽어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stillyours 2011-03-04 08:14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 책이었어요 :) <루이 랑베르>
역자를 따라 다른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참 신나는 일입니다!

blanca 2011-03-04 23:31   좋아요 0 | URL
아, 찾아 봐야겠군요! 발자크를 좋아하는데 게다가 번역자까지! 감사합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천사가 있었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고통스러운 최후의 길목, 그 천사의 도움으로 노인이 본 풍경은 열일곱 첫사랑 소녀가 강가에 배를 대고 그를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십 대에 즐겨보던 미국드라마의 그 한 장면은 시리게 내 마음 한 켠에 박혀있다. 청춘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그런 순간, 눈을 비비고 있어도 빛이 나는 그런. 죽는 그 순간에도 가장 붙잡고 싶은 가장 떠나 보내기 힘든 그런. 

윤교수의 말처럼 공교롭게도 더이상 청춘이라고 일컫기 힘든, 이제는 죽어도 요절이라고 불러주기 뭣한 그런 나이 서른 셋을 통과하며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쓰고 읽고 걷고 울고 투쟁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떠나 보내는 스무 살을 읽었다. 

자꾸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에게도 오래전, 이라고 쓴 뒤에야 왜 그때 그러지 못했나, 싶은 일들. 살아가면서 아, 그때!라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던 자책들을 주워모아 뒤로 뒤로 가고야 마는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통과했던 시대적 질곡을 밟고서야 개인의 고뇌를 들이밀 수 있었던 80년대의 청춘과는 빛깔이 달랐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소소한 일들을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틀로 걸러 그럴듯한 것들로 만들고 싶어 더 불행했던 그 청춘의 기억들이 별처럼 하나씩 깜빡거렸다. 그때의 나는 지극히 과장적이었다. 모든 생것들이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들을 그때는 몰랐다. 소통이 실패해도 내가 쏘아올린 전파는 어디엔가 가 닿아 또다른 움틈을 만든다는 깨달음을 알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슬프고 무조건 기뻤다. 나는 이들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걸으면서 타인과 현상을 다시 들여다 본게 아니라 배경을 음악처럼 내 눈에 문지르며 주로 자책하고 자악했다. 아쉽게도 뭔가를 본 사람 같은 윤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선물받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엄마를 잃고 이 도시에 온 나 윤이, 열심히 투쟁하고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도 모른 채 새벽마다 윤이에게 전화를 걸게 된 명서, 사라져 버린 연인과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에 시위하듯 분신자살한 언니를 둔 미루,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사주고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던 단이. 이 넷은 젊음이 통과하는 상실의 길목의 체현 같았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운 그 골목 골목 사이마다 작가는 이런 날이 다시 올까?. 똑같은 날은 없어.라고 각인시키며 영롱하고 아름다운 구슬들을 굴려 넣는다.  

아.름.답.다. 그럼에도 진.지.하.다. 고 생각했다. 소설가들이 인간 자아의 실체를 뿌리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과거를 재생해 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테렌스 데 프레의 얘기는 신경숙에게 가 공명한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직간접으로 통과해 온 청춘을 형상화했지만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껍질을 뚫고 들어와 우리의 스무 살을 불러 낸다. 이 소설의 보너스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억들을 흘러가는 꽃잎처럼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을 넌지시 일깨우고 그 기억들이 박혀 있던 상흔들을 삶의 의미로 메워주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 살아있어서 그 눈부신 시절을 통과해오고 마침내 여기에 이르러서 다행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건 분명 신비의 묘약 같은 이 소설의 마력이다. 

우리말로 쓴 우리의 청춘소설을 들고 나온 작가는 작가로서의 진중한 고민들과 소망들을 슬며시 끼워넣는다. 독자는 예기치 않게 그녀의 속내를 엿보게 되는 은근한 즐거움에 취하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눈 내리는 새벽에 이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 가만히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싶다. 그게 지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한다. -p.26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된다.-p.89 

결국 하고 싶었던 그녀의 말. 그리고 남은 말은 우.리.다. 나와 너에 관한 얘기는 내가 그쪽으로 갈게,로 연결되고 만다. 모르는 백 명을 포옹해주는 모습을 촬영하는 프로젝트의 도정에서 다시 나타난 명서의 모습은 그런 얘기들이 모인 것이다. <어디엔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그래서 서로를 찾고 마침내 만나고야 마는 모습을 환기한다. 이별하지 않기 위해 약속을 남용했던 청춘은 그런 얘기들로 이루어진 한 장이다. 이런 깨달음들을 가지고 다시 그 시간들을 살고 싶다. 인생의 맨 끝에 청춘이 있어야 한다는 명서의 말을 울컥 삼킨다.

잃어버린 것들에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이다. 그게 삶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은 참 아름다워요^^

blanca 2010-05-31 13:53   좋아요 0 | URL
마기님 고마워요~ 아름답다니...과하지만 기분이 둥둥 뜨는 칭찬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이란 겪는 사람은 괴롭고, 훔쳐보는 사람은 부러운 그런거죠.
블랑카님... 진짜 20세로 돌아가고 싶으세여? 저는 절레절레... ^^
지금 하세요, 못한 것들. 문화센터의 수강생 언니들이 "저보고 내 나이 40만 되면 좋겠다" 그런답니다. 아하하.

blanca 2010-05-31 13: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안그래도 친정엄마가 야단치더라구요. 자기도 젊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면서요. 저도 원래 절레절레였는데요. 갑자기 올해부터 그러고 싶어졌어요. 참 이상하지요? 이것도 과정인가봐요. 다시 절레절레가 되겠지요?

비로그인 2010-06-0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눈물이 차오른다는 것. 그 느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기억, 잊지 못하는 장면들. 어쩌면 저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blanca 2010-06-01 17:3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결국 추억도 자기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죠. 정말~ 갑자기 한 장면이 생각나서^^

강래희 2010-06-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예뻐요
전 초등학생 같아 부끄럽네요 ^^

blanca 2010-06-05 22:14   좋아요 0 | URL
예쁘다니, 괜히 쑥쓰러워지는걸요^^;;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SS 대원들, 카포들, 정치범들, 범죄자들, 크고 작은 일을 맡은 특권층들,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노예와도 같은 해프틀링까지,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p.187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대신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작은 등롱을 발견한다. 같은 이탈리아 민간 노동자였던 로렌초는 아무 이해관계없는 그에게 여섯 달 동안 매일 빵 한 쪽과 먹다남은 배급을 제공해 준다. 로렌초는 인간이었다,고 회고하는 대목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회의적인 반문이 수용소의 경험 전체를 관통한다면 그가 인간이었다,는 깨달음은 미약하지만 그 기저에서 깜빡이는 하나의 전언 같다. 그럼에도 희망은 유효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그렇다,인가? 다 읽고 나서도 또 그의 삶 전체에 대한 간략한 얘기를 접하고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데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들을 통하여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에 대한 심리학적, 인문학적, 철학적 고찰은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그들의 증언을 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게 했다. 이 책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유대인으로 태어나 화학자이기도 했던 프레모 레비가 반파시즘 빨치산 부대에 가담했다 밀고를 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살아 나오기까지의 이야기의 장대한 증언록이다. 그의 얘기들은 후에 그 자신이 회고했듯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도 아니고, 복수심으로 날선 언어도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로 엮여 있다. 그는 단지 유대인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머리칼도 이름도 다 잃어버린 채 왼쪽 팔뚝에 수인번호를 새기고 강제노역수용소에서 부나(일종의 고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거기에서 목격하는  악에 타협하며 때로는 그것을 생존방식에 끼워 넣으며 살아나가는 수많은 사례들,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의 존재,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렌초 같은 어떤 가능성의 체현 같은 인간형의 목도와 이 참상을 증언하고자 하는 욕구 덕분이었다.  

화학자인 저자의 문체가 대단히 심미적이고 유려하여 놀랍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가는 대합실로 상상한 단테의 <신곡>이 군데군데 스며 들어오는 대목과 이 수용소가 단순히 우발적이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맹목적인 도그마의 귀결이자 나름 이방인에 대한 논리적인 존재방식의 구현이라는 그의 해석과 맞물려 우리가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례들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하여 미래를 설계해야 할 지에 대한 엄중한 성찰을 권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 수용소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한편 죽음으로 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준비하고 아이들을 씻겼다는 대목. 그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은 모습에 대한 회고. 그가 배급당번으로 지정되어 장이라는 젊은 청년과 유월의 맑은 하늘을 만끽하며 그 짧은 시간동안 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주려고 단테의 신곡의 구절들을 기억해 내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이 비애서린 증언록에 작고 아릿한 삽화를 그려준다.

이렇게 살아나온 그가 말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목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생존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훗날 그의 수용소에서의 고통의 기억들이 격렬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대신, 자신을 더 풍요롭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얘기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그 극단의 마지노선이 뚫리는 것을 체험하고 나왔음에도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얘기했다. 물론 엄중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그의 다음 얘기들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감동적인 전언이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은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에 만족하는 게 훨씬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5-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요즘 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저는 반성 중...
알라딘 블러그에 책 리뷰는 없고, 순 제 잡기만 올리고 있으니.. 아이고.
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려고 사놓고, 아직도 감감 무소식 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년에 생을 자살로 마무리 했다고 하던가요? 음.... 궁금해지네요.

blanca 2010-05-27 15:1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감기는 좀 괜찮으세요? 저는 죽음의 감기 속에 홀로코스트 관련 책을 읽는 실수를 범해서 너무 힘들어하다 오늘 급기야 병원까지 갔어요.--;; 대기실에서 아픈 사람들 보고 더 기분 우울해지고. 기침 심하게 하니 사람들 다 피하고---;; 그런데 집에 오니 갑자기 몸이 급 회복됐어요.

책은 비몽사몽 간에 너무 질러서 쌓여있구요 ㅋㅋㅋ 예, 나이 많이 들어서요. 대체 왜 그랬는지. 그런데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온 사람들이 많이들 그랬다고 하네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호텔의 뷔폐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하는 젊은 남녀의 시중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뭔가 모르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양 극단의 지점에 있었다. 하나는 과연 그들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들이 그에 합당할 만큼 보이는 그대로 양질의 서비스일까, 하는 일종의 의심이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인간들이 계층적 층위에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풍경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물론 그런 풍경이 그 두 집단의 전부를 표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순한 풍경에서 알레르기적 감상을 불러일으킨 나 자신이 감정적 프리즘을 들이대었을 여지도 있다. 여하튼 언제나 그런 풍경은 그 두 집단 어디에도 나를 제대로 놓아 볼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의 콕도르 거리에서 투숙한 여관에서의 생활과 고급호텔 접시닦이의 체험, 런던에서의 싸구려 간이 숙박소를 전전하는 부랑자 생활에 관한 소설이다. 그의 전매특허이다시피 한 르포르타주 형식을 띠고 있어 사실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가난의 체험에 대한 보고서다.  

그의 글이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체험적 진술이 과장 확대되지 않고 건조하지만 성실하고 재기어린 문장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삶의 복판에 흠뻑 빠져든 저자의 목소리는 작위성과 허술한 틈새대신 통절한 고백과 통렬한 비판으로 사무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급 호텔의 그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나비 같은 드레스와 어린 아이 눈망울 만한 다이아몬드 반지에 휘감긴 금발 미녀가 마시는 칵테일과 그 건너에서 그녀를 위하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써는 연미복차림의 신사 뒤에 43도 이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후텁지근하고 불결한 지하실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만이라도 자보는 것이 소원인 접시닦이들이 미친듯이 설겆이를 해대고 서로 악다구니를 해대고 울부짖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도 하나의 계층의 층위가 형성된다. 가장 덜 노예적인 노동자 같은 계층인 요리사와 고용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병리적 환상에서 자신의 노예적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웨이터들, 그리고 미래의 전망이라곤 없고 강력한 피로에 굴복하여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것으로 삶을 밀고 나가는 접시닦이들. 이들이 바로 불충분한 인원으로(자본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그 거대하고 복잡한 서비스 체계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주역들이다. 복잡한 서비스를 단순하게 완성시키는 비결은 바로 불결의 비밀스러운 혈관이다. 이들이 낳는 서비스는 보여지는 서비스이고 우리는 보여지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더럽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했다,고 '나'는 고백한다. 호텔과 큰 음식점에서 100명이 200명에게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을 제공하기  위하여 악마처럼 고생한다는 대목은 우리가 흔히 누린다고 생각하는 서비스의 생득적 해악을 암시한다. 물론 1933년과 2010년의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사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용역을(물론 물질적 대가가 수반되지만)제공하고 제공받는 이 시스템의 순환에서 정작 잘려나가는 것들에 대한 응시가 절실하다.  

그는 돈이 미덕인 시대(이것은 현대에도 유효하다.)에서도 유일한 가난의 미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바닥까지 가 보는 그 절망의 심연이 주는 일종의 담담한 안도와 앞선 미래를 떠올리지 않고 그저 닥치는 대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의외의 일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가난은 미래를 전멸시킨다. 가난이 가장 슬픈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고 외부를 인식할 기회를 박탈당하다 보면 먼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능으로 다가온다. 가난의 표피적 이해의 껍질을 벗고 나온 저자의 진솔한 고백은 우리가 복지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는 얘기는 자선의 과시적 풍모의 속물적 더께를 과감히 벗겨내야 함을 강변한다. 복지라는 것이 황공한 자선의 형태로 광고될 때 수혜자들이 정작 받게 되는 것은 하나의 온정적 혜택이 아니라 비열한 권력의 또다른 횡포와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고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의당 당연한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기대에 섞인 불순한 구석을 자각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이해는 요원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p.284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5-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 전 이 글귀가 현대 사회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넘치는 상품들. 옷, 가방, 가구, 신발, 심지어 책까지.

저 요즘 책 거의 못 읽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놨나봐여.. 미치겠어염. ^^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진짜 고개가 끄덕끄덕해지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전 벌여 놓은 일도 없는데 책 읽는 시간을 시간이 참 없네요^^;; 요새는 왜이리 게을러지는지. 글자를 읽는 것도 귀찮을 정도랍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저 밑바닥 생활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전 조지오웰의 산문은 다 좋아요. 그처럼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딱 부러지게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순식간에 읽어 치웠던 거 같아요. 그의 글이 님 말씀대로 과장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일까요?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분도 저의 완소가 될 듯^^;;해요. 진짜 간명하면서도 또 재미있게 쓰는 그 능력이라니. 재간둥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5-1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일부가 예전에 고급영어독해집에 실렸는데 제목 번역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었어요.덕분에 따라지의 뜻을 알게 되었지요.

blanca 2010-05-19 13:48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알고 보면 옛날 영어 독해할때 명문들이 참 많았던것 같아요. 따라지 인생ㅋㅋㅋ 어감으로만 느끼지 말고 정확한 뜻을 한 번 찾아 봐야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9 19:06   좋아요 0 | URL
이호철 씨 소설에 월남한 따라지 인생 운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이 분이 월남자라서 그런 이야기는 실감나게 잘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5-1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다. 인간의 역사는 동서고금만 다를뿐 대동소이 하다는걸 느낍니다.

blanca 2010-05-20 13:43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저는 이것 읽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비슷한가봐요. 현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정말 신기했답니다.

순오기 2010-05-2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작이네요.^^
블랑카님은 리뷰나 페이퍼 썼다 하면 당선작이군요. 축하해요!

blanca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헤헤.그건 아니에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시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달팽이 2010-06-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충격이네요
책읽는 것도 재밌지만 독후감 읽는 재미도 쏠쏠하네요ㅋ

blanca 2010-06-04 10:02   좋아요 0 | URL
그게 자선을 베푼 사람은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금 저자세에서 감격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심리까지 다 간파하나봐요. 그런 자선은 위선인가 봅니다. 야망의25시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