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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지음 / 모로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부터 제대로 읽으려던 건 아니었다. 법정에서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다룬 이야기라 생각해서 흥미로운 대목들만 골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 정도부터 읽다 결국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와서 에필로그까지 정독했다. 법조인들의 문장력이 대체로 좋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박주영 판사의 문장은 잘 쓰기 위해 멋을 부린 게 아니라 적확한 어휘를 제대로 포집하기 위한 노력과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사려깊음이 그대로 느껴져 특히 좋았다. 쉽게 쓱쓱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은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에너지의 밀도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촘촘하고 깊이 있고 사색적이지만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은 좋은 글이다.
업무로 법정을 드나들 때 법복을 입은 판사들은 나에게 엄청난 갑처럼 보였다. 그들의 넓고 긴 소매는 그들의 권력과 일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적어도 한 뼘쯤은 더 위에 있는 그들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내리는 선고 하나로 울고 웃는 민원인들의 모습 속에 삶과 유리되어 무언가를 심판할 수 있는 권력을 단지 시험 성적으로 특정 소수에게 준다는 데에 솔직히 회의가 들었다. 충분히 살고 겪어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저들은 대체 어떻게 판단하고 심판하나 나는 의심했다.
그 우려는 저자의 지난한 사실 증거들의 수집 과정과 합리적 의심이라는 '바'로 통제하는 심증에 대한 엄중한 숙고, 피해자와 피고인의 삶의 서사로 파고드는 공감력,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읽고 쓰려는 그 성실한 공부의 과정에서 불식됐다. 물론 모든 판사가 박주영 저자 같진 않을 것이고 말과 글로 보이는 모습이 그의 전부이거나 그와 반드시 일치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법정에서 만난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삶은 그들이 그런 상황으로 치달은 데에 대한 사회 공동의 책임의식의 환기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공모한 젊은이들이 끝내 공감한 유일한 대상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안면도 없이 만나 죽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낸 타인이라는 사실, 극한의 빈곤으로 내몰려 정당하거나 적법한 생계 수단을 찾아 헤매어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 최선을 다해 키워내려 했지만 결국 아이와 동반자살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아의 어머니. 우리는 범죄의 현장이라는 극단에 가서야 그 얼굴 없던 법정의 얼굴들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을까, 깊은 비애가 들었다.
저자의 글이 공감을 얻는 지대는 그가 그들의 바깥의 외부 관찰자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삶은 연약하여 어떤 운명의 비극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우리가 단지 이 법정의 얼굴들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어떤 범죄를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의 사적인 드라마로 머물고 단죄될 때 사회는 그것을 단지 선정적인 스토리로 소비하고 뒷짐을 질 수 있는 편리한 위치로 물러난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회와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는 공통된 안정감은 구성원의 결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든 힘든 일이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될 때 우리는 타인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기 힘들다. 결국 공익은 사익으로 확산된다.
"사법절차가 생각보다 무력하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저자의 건강문제로 인한 갑작스런 휴직으로 "후회는 없었지만 좋은 판사가 되지 못해 아쉽긴 하다"로 맺어 마음이 무겁다. 박주영 판사의 글로 인해 나의 좁은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얕은 넓이가 깊이로 확장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도록 글을 써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