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도시가 가진 제왕다운 풍모에 감탄하고 말았다. 자신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확실히 장식하고 있다는 걸 아는 데서 비롯된 당당함과 도도함, 즐거움과 위대함이 있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로마처럼 나이를 먹고 싶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러나 다시 한 번 로마에서 살고 싶은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여행하러 오는 거라면 몰라도 사는 것은 이제 질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 먼 북소리>

 

 

 

 

 

 

 

 

이제 막 실패한 결혼과 길고 지독한 이혼 과정을 거친 후, 결국에는 가슴 아픈 실연으로 끝나버린 열정적인 연애 사건까지 겪은 삼십대 중반의 전문직 미국 여성은 로마를 찬미한다. 그녀에게 로마는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이탈리어를 가르쳐 주기 위해 공모하고 터무니없이 ,가슴아프게, 어리석을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들로 넘쳐나는 요정의 도시다.  

이질적인 문화에 둘러싸여 고립된 생활 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파내기 위해 로마로 들어선 일본인 작가는 차를 잠시 주차하면서도 카스테레오를 뜯어 들고다니며 어깨에 맨 가방까지 사수하며 주변의 모든 시선을 잠재적 사기꾼과 도난꾼의 그것으로 의식해야 함에 지치고 만다. 엉망진창인 공공서비스, 타인의 고난에 대한 무신경함, 날치기, 사기, 도난 등이 끈끈하게 엉겨 있는 그곳에서 하루키는 독자를 상대로 드잡이라도 할 태세다. 행간에 배어 있는 그의 분노, 억울함, 짜증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리즈가 아름다움의 창조와 감상에 스스로를 바치는 진지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상찬한 바로 그 로마인들을 향한 것이라니. 이건 마치 어느 한 사람을 두고 두 명이 번갈아 와서 쟤는 순 허풍만 떨고 불성실한데다 도벽까지 있대, 같이 놀지마! 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걔 정말 활달하고 재미있고 섹시하지 않냐, 고 추어주는 격이다. 

그렇담 빨라죠 아이스크림을 세상에서 가장 눈물나게 귀엽게 핥아 먹는 공주님이 거닐던 그 광장의 이미지 한 컷으로 로마를 기억했던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래, 너희들 얘기도 맞지만 내가 한 번 직접 만나 보고 판단할게, 라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조만간 가능할 것 같지는 않으니 계속 걔의 뒷담화를 좀 적나라하게 해보자, 라고 독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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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0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하 blanca님. 이렇게 콕 집어내시다니... 너무 재미있잖아요!! 못된 것들 같으니라구. 하핫.
음, 저는 하루키의 손을 들어주겠어요.

blanca 2010-11-04 12:3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그런 거예요? 이 둘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이지 직접 가보고 제가 판결을 내려주고 싶은 심정이라니까요. 한 명은 줄곧 욕을, 다른 한 명은 기가 막히게 칭찬을 해대니 직접 만나 보고 싶을 수밖에요^^;;

... 2010-11-04 13:42   좋아요 0 | URL
로마는 최고예요. 뭐라 말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 곳에서 산다고 가정하면..... 하루키의 말이 옳다고 느껴져요. 무엇보다 전 "로마처럼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네요. 로마대신 들어갈 수 있는 도시/장소가 얼마나 많은데... ^^ 아무튼 재미있었어요, blanca님.

하이드 2010-11-0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뜩 드는 생각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걸까요? 먼북소리를 그리스 로마 여행하면서 읽었어요. 엄살없는 하루키인데 이 책은 좀 어둡죠.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초긍정녀에요. 부러워요. 근데 이번 결혼해도 좋아에 앙코르 여행 나오거든요. 아주 힘든 상황에 여행하는 그녀는 제가.기억하는 앙코르와 다른 모습을 보고 오지요. 책만 독자와 작가가 함께.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 장소와 여행지가 함께 만들어나가나봐요. 제경우에는 무지.아팠을때 여행했던 터키에 대해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blanca 2010-11-04 12:37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아 남녀의 차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스 가셔서 그리스인 조르바 얘기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때 정말 나도 하이드님처럼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페이퍼 보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나 봐요. 결혼해도 좋아,도 읽어보고 싶어요. 터키. 그렇군요. 맞아요. 그 때 그 심정, 마음과 장소는 묘하게 결합하는 것 같아요. 먼 북소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하루키의 엄살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참 의외였어요...

sslmo 2010-11-0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귀여우세요,blanca님~^^
전 하루키는 읽었고,먹.기.사.는 못 읽은 고로...하루키 손을 들어주겠어요.
로마 여행이요?
전지금 에베레스트에 미쳐있어서 말이죠~^^

blanca 2010-11-04 12:37   좋아요 0 | URL
에베레스트라굽쇼?!! 우아. 저 귀여운 건 어떻게 아셨죠? ㅋㅋㅋ 양철나무꾼님의 다이나믹하고 다양한 관심사에 저까지 들썩입니다.

LAYLA 2010-11-0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ㅋㅋㅋ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은 어디라도 피곤한 면이 있는거 같아요. ㅋㅋㅋ

blanca 2010-11-04 12:38   좋아요 0 | URL
라일라님, 하루키 손 들어주시면 저 이탈리아 안 가봐도 되는 거예요?^^;; 사실 아주 가보고 싶진 않아요. 저 같이 소심한 인간은 날치기 한 번 당하면 그 자리에서 엎어져서 울지도 몰라요--;;

oren 2010-11-0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로마'에 처음 닿던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 一人으로서 댓글 하나 남겨봅니다.
* * * * *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 괴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中에서

"어제 처음 로마에 도착한 사람도 하루만 지나면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로마에 살고 있었던 듯한 얼굴로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들을 맞는 로마 사람들도 그들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는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도 고대가 그림자를 떨구고는 있지만, 고대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다릅니다."
- 시오노 나나미,《황금빛 로마》 中에서

blanca 2010-11-04 12:40   좋아요 0 | URL
oren님 반갑습니다. 로마는 곳곳에 유적이 있어 건물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지도 못한다면서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꼬옥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서둘러야 겠습니다. 과거가 현재처럼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서 로마를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프레이야 2010-11-0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에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는, 그러나 즐거운 페이퍼에요.^^
리즈는 천품이 밝은 여성 같았어요. 때론 우울에 점령당하기도 하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책에서 참 인상적이더군요. 물론 타자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 크겠지요.
블랑카님 당장은 저도 어렵고 다음에 우리 가보고 얘기할까요? ㅎㅎ
가보기 전 상상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구요.
그래도 로마라면 오래전 첫사랑을 만나 실망할 일, 뭐 그 비슷한 일은 없을 거 같아요. 하하하.

blanca 2010-11-04 12:4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두요 ㅋㅋㅋ 맞아요. 리즈 참 낙천적이죠? 본인은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참 건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한 몇 년이 흐르고 정말 로마기행을 함께 하고 공동 페이퍼를 작성해 볼까요? 떨립니다...

다락방 2010-11-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로마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두 책을 다 읽어본 사람으로서 하루키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싫어하기 때문에 사실 하루키 손을 들긴 했지만, 뭐, 편파적 애정은 누가 어떻게 할 수 없는거니까요. 하핫;;
먼 북소리에서였나, 로마(였나 아니였나) 우체국 가서 우편물 붙이던 에피소드가 엄청 기억에 남아요. 하나의 소포가 무게를 잴때마다 요금이 달라져서 하루키도 신경질 내고, 직원도 결국 여러번 달라진 요금의 평군을 내어 하루키에게 돈을 달라고 했던 일이요. 그게 근데 로마가 맞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 하핫. 갑자기 그 에피소드 생각이. 훗

blanca 2010-11-04 12:4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번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인상적인 대목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시는 능력이 놀라워요. 맞아요. 우체국 ㅋㅋㅋ 로마 맞아요. 저는 리뷰를 작성하면서도 책 내용이 생각이 안 나는 수준이랍니다.--;;

비로그인 2010-11-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리즈의 편을 드는군요.
이혼하고, 정신이 너덜거리고, 열중할 뭔가가 필요하고, 그런 여자라면 로마가 아니라 대구라든지 부산, 서울에라도 빠질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결국 하루키 편이로군요.

blanca 2010-11-04 12:44   좋아요 0 | URL
쥬드님! 아아...그래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댓글을 자꾸 되뇌게 되네요. 결국 하루키 편이라는 얘기도.

마녀고양이 2010-11-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먹기사 영화가 워낙 마음에 안 들었기에 무조건 하루키 편.. 이라고 하고 싶다가도
로마의 휴일 오드리를 생각하면, 다시 한번 곰곰히................

이런거 저런거 다 떠나서, 물빛이 그리 이쁘다네요.
블랑카님, 우리 남편들 팽개치고 같이 놀러갈까요, 로마? 아하하.
위에 프레이야 언니두 간다 하시네... 큭

blanca 2010-11-04 12:45   좋아요 0 | URL
마고님, 그 영화는 워낙 지루하다는 평이 ㅋㅋㅋ 물빛이요? 그 단어도 참 이쁘네요. 진짜 로마 기행 뜹시다. 가기 전에 오드리 햅번처럼 머리 자르고 가서 꼭 빨라죠 아이스크림 먹을 거에요. 플레어 스커트 입고 ㅋㅋㅋ

마녀고양이 2010-11-04 21:05   좋아요 0 | URL
로마계 하나 만들까봐... 아하하.

꿈꾸는섬 2010-11-04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블랑카님 저는 로마에도 가보지 못했고 두 책 다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니 하루키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blanca 2010-11-04 12:4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근데 하루키랑 김영하랑 라이프스타일 완전 비슷한 것 같아요. 약간 작품도 그런 것 같고. 와이프들 성격도 그렇고. 신기했어요. 하루키도 좋아하시는군요. 전 담생에는 하루키 같이 살고 싶어요 ㅋㅋ

꿈꾸는섬 2010-11-05 10:12   좋아요 0 | URL
20대때 좋아하던 언니가 광팬이었어요. 저도 덩달아 좋아하게 되었죠.
ㅎㅎ김영하랑 하루키랑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군요. 둘 다 좋아하는 작가에요.
하루키 같이 살고 싶다...꼭 그리 되시길...

2010-11-04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4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11-06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둘 다 맞겠죠?^^
세상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엘리자베스 길버트처럼 믿고 싶은 마음.

blanca 2010-11-07 16:3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맞아요. 그 양면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것 같아요. 저도 엘리자베스처럼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고파요.

후애(厚愛) 2010-11-06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랜만에 놀러왔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lanca 2010-11-07 16:35   좋아요 0 | URL
후애님, 환영합니다.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신거죠? 검사를 이번 주말에 받으신다는 것 같았는데...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요...

알로하 2010-11-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북소리는 읽었는데 저는 그리스부분만 기억에 남네요. 먹고 기도하고~도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10-11-11 16:13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반갑습니다. 먹기사,도 꼬옥 한번 읽어 보세요. 같은 장소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재미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