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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가 아니다 ㅣ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시인은 이 시집 '자서'에서 현실을 그대로 옯기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둔다고 썼다. 자서를 읽고 심드렁해져서 현실을 그냥 옮기면 그게 뭐 시냐, 그냥 넋두리지, 이렇게 시집을 읽기도 전에 푸념을 했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일이 뭐가 재미있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뭐 대단하냐, 이렇게 중얼거렸다.
모름지기 읽을 만한 시라면, 유하처럼 이렇게 멋지게 사랑을 호박꽃으로 꿀의 주막으로 환멸의 지옥으로 입이 딱 벌어지는 비유라도 보여주던가,
사랑의 지옥--서시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아니면 신경림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이렇게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아포리즘이라도 줄줄이 박아 주어야 읽고 나서 서운치 않은 시지.
가난한 사랑의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위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하품을 하면서 이승훈의 시집을 뒤적이며 읽는데, 정말로 현실이 한여름 수박에서 쪼개져나온 한 조각마냥 수박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나왔다. 내가 팔 년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온 세상이 이승훈의 시집 속에서 내게 예기치 않은 안부 인사를 건네왔다.
잡채밥 (이승훈)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빗물 묻은 우비를 걸치고 배달 온 청년이 묻는다 다른 건 잘 못 먹어요 청년이 나가면 연구실 낮은 탁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맛없는 잡채밥을 먹는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앉아 잡채밥 먹는 걸 보면 실망할지 몰라 문을 잠그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전 열한시 반 낡은 잠바 걸치고 앉아 고개 숙이고 잡채밥 먹는다 물론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그릇을 신문지에 싸서 연구실 문밖에 내놓는다
이십년 내내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 인생. 별로 맛있지도 않지만 다른 것은 또 먹히지 않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고개 숙이고 잡채밥을 먹는 인생. 특별히 서글플 것도 없고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인 구석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남루하고 먼지내 나는 일상이 서툰 사진사 손에서 찍혀 나온 사진처럼 빨랫줄에 널린 낡은 속옷처럼 시집 안에 걸려 있다.
화장실 문 (이승훈)
화장실 문이 잠겼네 화장실 문이 잠겼어! 난 화장실 앞에서 아내를 부르네 석준이 시키세요 아내는 말하지 그러나 거실에도 건넌방에도 석준이는 없고 그럼 송곳을 구멍에 대고 여세요! 그러나 아무리 손을 대도 문은 열리지 읺고 안 열려! 소리치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아내가 온다 이리 줘요! 아내는 쉽게 문을 연다
이승훈은 언어가 있으므로 시를 쓴다고, 할 일 없어 시를 쓰고 시 쓰는 데서 바라는 바가 없다고 ("언어가 있으므로 시를 쓴다") 한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이 아무 감상도 생각도 걸러내지 않는 매끈매끈하고 몰개성한 스케치북 같은 시를 쓰기는 얼마나 힘든가. 그의 많은 시의 마지막 구절은 종종 안타까운 사족이다.
고향 가게 (이승훈)
해 지는 가을 저녁 가게에 들른다 가게 총각은 인사도 없고 말도 없고 난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묻는다 하나는 노란 포장 하나는 붉은 포장이다 이 둘은 뭐가 다릅니까? 총각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앉아 말한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자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럼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뭐야? 속으로 중얼대며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나온다 물론 악의는 없다 너무 선량해서 문제지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는 강원도의 가을 저녁
"물론 악의는 없다 너무 선량해서 문제지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는 강원도의 가을 저녁," 이 한 줄만 삭제했다면 "고향 가게"는 "화장실 문"이나 "잡채밥"만큼이나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승훈의 시는 그 안에서 시인의 바람이며 감상이며 시인의 목소리 자체가 사라질 때 성공한다. 한 두 자만 토를 달아도 현실을 보여준다는 그의 전략은 쉽사리 무너진다.
해 지는 가을 저녁 가게에 들른다 가게 총각은 인사도 없고 말도 없고 난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묻는다 하나는 노란 포장 하나는 붉은 포장이다 이 둘은 뭐가 다릅니까? 총각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앉아 말한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자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럼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뭐야? 속으로 중얼대며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나온다
마지막 줄을 잘라내면 이 시는 홍상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무덤덤하고 조금 지루하고 조금 안달이 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채 중요치 않은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는, 부인할 수 없게 현실적인 공중 화장실 같은 나만의 만인의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