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거울은 빛나건만 - 황인숙


문득 튀어 일어나

아무에게고 전화를 걸고 싶네.

아무 번호나 눌러

아아아아아 끔찍해요!

그 목소리 외침일지, 속삭임일지

입을 열기도 지긋지긋해

짐승 같은 흐느낌일지.


살아갈 날들이 두렵지도 않아.

오직 '살아 있음'이

나를 꽁꽁 염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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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gis Burdys의 짧은 1960년작 공상과학 소설 <악한 달 Rogue Moon> 을 드디어 다 읽었다. 재미가 별로 없는 책을 영어로 읽으면 영 주인공 이름도 헷갈리고 (과학자가 혹스던가 스포츠맨이 혹스던가?) 줄거리도 잘 요약이 안 될 뿐더러 과연 재미 없는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그만 용기 있게 포기하고 보다 읽는 보람이 있는 다른 책으로 건너뛰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의심과 회의에 책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위키피디아에서 책 제목을 검색해보니 히야, 내용이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위키피디아 한 페이지를 읽고 마는 것인데!

1960년의 공상과학 소설답게 이 소설의 배경은 달이며, 전제는 달에 설명이 불가해한 일종의 돔 같은 (책 표지를 참조하시라) 물체가 있으며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서는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천재 과학자 혹스는 이 물체를 연구하는 정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데 그의 연구에 따라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 미국 정부는 이미 일정 수의 해군 과학자들을 달에 보내놓은 상태다. 그 해군 과학자들이 달에 도착한 경로는 입자 전송기를 통해서인데 이 전송기가 지상의 인간을 그대로 카피해서 복제판을 달에서 새로 제조해낸다. 이런 이유로 일단 복제되면 지상의 엑스씨와 신체상태와 정신상태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제 2의 엑스씨가 탄생하는 것이다.

혹스가 부닥치는 곤란은 이 불가사의의 물체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 곧 몇 분 안에 즉사하고 (복제판) 지상에 남은 오리지널들은 그 죽음의 경험 때문에 (이 두 신체는 정신상태를 한 동안 공유한다) 실성하여 그나마 경험한 그 몇 분 동안 얻은 지식조차 혹스의 팀에게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스가 일하는 회사의 인사부장, 코닝턴의 아이디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그런 일종의 사이코를 찾아서 달에 보내보자는 것. 그런 사이코로 선정된 이가 바커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이코 바커는 무수한 죽음을 거쳐가면서 반복되는 전송을 통해 조금씩 달에 존재하는 이 불가사의한 물체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 간다.

문제는 바커가 드디어 이 도전에 성공하여 이 물체 안으로 진입했다가 살아서 온전히 빠져나오는 순간!
복제된 달 위의 바커가 살아 있으니 지상의 바커와 함께 이제 세계엔 두 바커가 존재한다.
(내가 그 전송기 어쩌고 하는 부분을 읽을 때부터 이 순간을 걱정했건만은, 아니나 다를까!)

버지스의 소설 막판 처리는 좀 실망스럽다.
마지막 전송에서 바커와 함께 달에 도착한 과학자 혹스는 설상가상으로 백퍼센트  personal identity를 보존한 채 달에 전송되어 오는 건 가능하지만 그 역 (지상에 돌아가는 것)은 달에 충분한 장비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불가능하다고 털어놓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던 혹스는 이 고백을 남기고 달에서 자살한다.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철학적 소재를 탐구하려는 시도는 가상하지만...

아, 썰렁하여라!

앞으로 삼돌이의 책 추천은 (특히나 사놓고 본인은 채 안 읽은 책들)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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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2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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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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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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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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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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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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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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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백악관 웹사이트의 헤드라인은 "미국에 변화가 왔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전 세계의 관심이 오바마의 취임식에 쏠렸다.  

자정인데도 초등학교 동창생의 취임식을 보겠다고 학교 교실에 모여 앉은 말레이지아 학동들의 모습이 뉴스 중에 비쳤다. 위싱턴 디시에 몰려든 인파의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취임연설은 시종일관 아주 심각하고 진지했는데, 미디어는 어려움 앞에서 정직한 모습을 보였다고 호의적인 평을 주었다.   

나로 말하자면, 백악관의 웹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고 상당히 흥분했다.  청와대에도 웹사이트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정말 있다. 블루 하우스.  음... 

그나저나, 나 같은 이방인 직장인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멋진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음...  쓰고 보니 역사적인 날에 걸맞는 소시민의 정말 상투적인 감상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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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리 2009-01-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나라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 듯. 좌간,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어 시원하긴 한데, 이 나라의 돌+아이는 언제 바뀔런지 암담하구나. ㅜ.ㅜ

검둥개 2009-01-22 02:14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바마가 멋지다고 하나, 역시 남의 나라 대통령이 아니겠어요. 북미관계에 진전이 나기만 우선 기원해봅니다.

유 세 연설에서 자꾸 "한국 차 수입에 빼앗긴 우리 노동자의 자리"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남한 노동자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음? 비슷하게 만들 능력도 없음서...)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우. 이상적인 바램인지는 모르지만, 오바마가 단지 미국 안의 다양성 뿐 아니라 세계 안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 좀더 키웠으면 싶어요.

라로 2009-01-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지켜볼 일이에요~~~.

검둥개 2009-01-22 02:13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
 


판도라에 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놀다가 생각이 나서 사계를 찾아봤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돌아가네" 만 기억나는 아련한 노찾사.
세상에 이런 건망증도 따로 없건만,
정작 찾아낸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으니 화질의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kbs라는 화면 좌측 상단의 놀랍도록 선명한 글자에 당혹감을 금할 길이 없다.




비발디의 사계가 아무리 좋다 한들 노찾사의 사계에 비하면 악장 수만 많은 범작이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구름 솜 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 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 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이 돌듯 돌돌돌 도는 이런 노래. 나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미싱 제조업체 중엔 최고의 브랜드라는 발판이 커다랗고 귀여운 의자까지 딸린 멋지구리한 브라더스 미싱을 사서 집안에 앉혀 놓고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 나중에 커서 왜 버리지 않으시냐고 물었다가 이모가 시집 갈 때 선물로 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고 교사 노릇을 하다가 늦게 결혼을 한 이모는 십년도 더 먹은 미싱 같은 건 가져가지 않았다. 요즘은 퀼트 만드는 게 유행이라니 미싱 판매가 늘었는지 모르겠다. 미싱 같은 건 그 돌돌돌 돌아가는 페달의 (전기 미싱 이전 모델이었음) 리듬이  왠지 애달파서, 노찾사의 사계를 듣고 있으면 괜히 목이 메일 것만 같다. 마치 체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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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새 직장 때문에 보스턴에서 마이애미로 이사를 왔다. 길거리엔 열대의 야자수가 무성하고 한낮에 기온은 극성맞게 올라간다. 이사를 오면서 짐을 줄인다고 잔뜩 있던 펜이랑 포스트잇이랑 스카치 테입, 지우개 등속을 전부 버렸다. 담배도 서너 갑 있었는데 진짜로 끊는다고 하면서 라이터까지 다 싸서 버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담배와 커피가 주로 등장하는 친구 웹사이트의 포토 앨범을 들춰보고 있으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겠다. 어제는 이력서를 보내는데 스카치 테입이 없어서 쩔쩔맸다. 다시는 펜 등속이며 담배를 버리지 않을 테다.

동네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몰고 십분쯤 운전을 해야 해서 우리는 주로 집 안에서 소일을 하는데, 어제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에서 공작새를 봤다. 칠면조 크기의 엄마 공작새와 중닭 크기의 아기 공작새!

집에 돌아와서 해리를 데리고 삼돌이와 함께 동네의 공작새를 다시 보러 나갔는데 공작새는 온데 간데 없었다. 공작새를 한 번 더 보려고 동네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스우쉬쉬 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큰 나무 위에 거대한 공작새가 앉아 있다. 두 마리 저 가지에 세 마리 다른 가지에. 그리고 매우 경계하는 눈초리의 숫놈이 꼿꼿이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꽁지를 펴서 커다란 날개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작새가 날 수 있는 줄 난 전혀 몰랐다.
아래는 무시시해 보이는 동네 숫놈 공작새.


     



이것은 앞마당 코코넛 나무에서 잘라낸 코코넛. 저 거대한 코코넛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딱 즉사감이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맛이 수상쩍인 물 같은 쥬스만 안에 조금 있고 영 무용했다.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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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8-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뜸하셔서 궁금했었는데, 이사 하셨군요.
전 미국에서 담배 피우는 행위가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갈 때마다 느끼고 오는데...그렇지만도 않은가봐요? ^-^;;
아무튼 새 터전에서 자리 잘 잡고 공작새와도 사이좋게 지내실 수 있기를.

검둥개 2008-08-05 01:43   좋아요 0 | URL
담배 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
이사 너무 괴로웠어요.
담엔 절대로 담배 버리지 않을 테여요. ^^

perky 2008-08-0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마이애미!! 저도 데리고 가세요. ㅠㅠ

검둥개 2008-08-05 01:44   좋아요 0 | URL
공작새 보러 놀러오세요. 여름엔 너무 더우니 날씨 좋은 겨울철에 ^^

비로그인 2008-08-0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스턴에서 마이애미라니.. 이제 지긋지긋한 긴 겨울이여 눈이여 안녕이시겠군요!
앞마당에 코코넛과 동네의 공작새까지 앞으로의 검둥개님의 마이애미 생활이 기대가 됩니다. 오래간만에 님의 소식들으니 좋구만요.

검둥개 2008-08-05 01:45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눈 좋아하거든요. 여긴 여름에 너무 더워요. 사람들이 냉방시설이 잘 되어 괜찮다고 했는데 전기비가 장난이 아니게 나와요. 허거걱. 서울 생활 이제 많이 적응되셨어요? :-)

melory 2008-08-0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코코넛을 처음 먹어봤을 때 나도 딱 너처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시원한 무언가를 바랐는데 그건 뭐라는 맛인지... ㅡ,.ㅡ

여기에도 글을 쓰는 걸 보니 이제 정리가 꽤 된 모양이고나. 새로운 출발, 축하.

검둥개 2008-08-06 01:06   좋아요 0 | URL
신장에 좋데. 믿거나 말거나. ^^
고냥이들은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