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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완독하는 데 딱 두 시간이 걸렸다. 동네 커피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결국에는 책을 얼굴 높이에 들어올려 얼굴을 가려야 했다. 웃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시라. 오피스텔 소설에 질려 한국소설 읽기를 중단한 이래 실로 신선하고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굳이 옥에 티를 잡는다면 주인공이 대학시절 아르바이트 하는 부분과 그 때 짧게 만나서 헤어진 아름다운 여대생이 나오는 부분은 전체 소설의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가 모호하다는 정도. 주인공이 청춘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빼질 수 없다 해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전체 소설의 주제에는 별 기여를 하지 않는다. 반면 주인공의 중고시절, 즉 삼미가 대활약(!)하던 시절이 나오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다음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구절: (125-6페이지.)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 ...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스: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

*평범성에 경의를. 프로되기에 반강제로 끌려가는 평범인들에게도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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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7-08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피스텔 소설이 뭐여요?

검둥개 2005-07-1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백수이고 (직업은 없는데 굶어죽지는 않고) 소설 내용은 주로 오피스텔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사실 별 일 안 일어나는) 종류의 소설이요 ㅎㅎㅎ 제가 지어낸 말이었나요 ^^;;;

마냐 2005-07-1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것참..^^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장단점이 있는 풍속세태소설이자 (여성의 경험을 여성 스스로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의미에서) 페미니즘 소설이다. '그 남자'와의 연애담은 그 사건이 일으킨 주인공의 의식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어서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운 연애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징그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과 주변인들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여성 캐릭터이다. 박완서 소설에서 유사하게 반복되어 등장함에도, 이 캐릭터는 현재까지의 한국 소설에서는 여전히 주목되는 인물상이며, 박완서의 문장은 이 강력하고 복합적 주인공 캐릭터를 피와 살을 갖춘 인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반면 주변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일면적인 캐릭터로 남겨지며 그들간의 관계 역시 어긋나거나 부재하거나 한다. (e.g. 춘희와 주인공, 시어머니와 주인공) 그리고 이 어긋남과 부재는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주의소홀로 인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 소설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플롯과 의미적 상징구조에 있어서의 느슨함이 무엇보다 아쉽다. 그 남자가 실명을 하게 되는 기이한 사건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주제를 선명히 하나로 모으는 중심사건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주인공의 캐릭터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플롯의 느슨함과 다른 여성인물들 및 그 남자의 인물탐구가 소홀히 된 점은 안타까운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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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7-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서 박완서 선생의 중단편이 더 좋더라구요. 나이며 문단의 큰어른, 뭐 이런 것 버려버리면 선생의 단편은 정말 빛을 발할 텐데. 사명의식, 당대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겠다는 소명 같은 것이 선생을 통해 발화되었을 땐 꼭 힘이 딸린다는 생각이어요. 필요한 작업이지만 안타깝지요.

검둥개 2005-07-2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명의식 ^^ 참 떨치기 어려운 것이겠어요.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에게는요.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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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문에 서평이 난 것을 보고 결국 사서 읽고 말았다. 등장인물들은 인상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고 줄거리의 전개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확실히 시간 때우며 읽는 재미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루끼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다 읽고 난 이후에 남는 여운은 감상적 이미지 몇 가지뿐이어서 실망스럽다. 귀결도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그것과 마찬가지여서 맥빠지는 느낌이다. 플롯 자체가 여러 군데 열려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나름대로는 철학적 의도를 배경에 깔고 있었던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라는 느낌을 준다. 읽고 나서 줄거리를 꿰어맞추어보려고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도 하는데, 어떻게 꿰어맞추건 결국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관계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철학을 빙자한 대화는 상당히 거슬린다. (빼어난 미모의 철학 전공의 창녀는 솔직히 너무 진부한 캐릭터다; 혼시로의 캐릭터가 유일하게 좋은데 그 인물에게까지 어색한 철학용어를 덮어씌운 것이 특히 안타깝다. ) 

결론적으로,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결정적 흠들이 많고,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인물과 줄거리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 가장 큰 결점이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이 소설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시간 때우는 재미도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니까, 별은 3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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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공감입니다. 추천하고 갈께요~

지킬박사 2005-04-1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밌는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작가임엔 분명하지만 깊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부풀려져서 추앙받고있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검둥개 2005-04-18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도서관에서 <코끼리 사라지다>라는 하루끼의 초기 단편집 (그런가요?) 을 빌려와서 읽고 있습니다. 단편들이라 그런지 훨씬 마음에 드는군요. 한국작가들에게 하루끼가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더니 그게 뭔지도 조금 알 것 같고요. 초기가 이 작가에게는 전성기였나, 모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봄날의곰돌이 2006-09-0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거의 하권을 반쯤 읽었을때 이미 하루키가 벌려놓은 줄거리들이 귀결되지 않은채로 끝날것을 예상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의 다 읽어내려갔을때는 맥빠지는 기분이었구요. 님 말씀대로 저도 어떻게 끼워맞추건 결론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것들인것 같아서 생각하기를 관뒀습니다. 오컬트적 요소와 하루키적 문장력은 필시 매력적입니다만, 지나친 관념적 대화나 추상적 결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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