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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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 거북스럽다.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악질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다분히 위선적이고 사악하다. 그런데 그 위선과 사악함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평균적 사악함이다. 예전에는 사악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마음이 뛰었다. 한국은 모름지기 착함과 예절바름, 그 같은 모든 미덕을 숭앙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악한 인간들에 대해 읽으며 나는 글 속의 반동스런 기운이 불러오는 자유에 내 소심한 코를 벌름거리곤 햇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런 주인공들의 사악함의 얼마만큼이 과연 주인공 자신들의 본성에서 오는 것인지를. 이 책에 실린 박완서 단편들 속 주인공들의 사악함은 대부분 사회가 개인들에게 부과하는 외부적 규범에서 유래한다. 사악하려고 해서 사악해진 것도 아니고 사악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사악하다는 자의식이 대단한 것도 아닌 인물들의 그저 일반적 생활인의 처세에 걸맞을 만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사악함. 평균적이고 적당히 조절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딱 그만큼의 사악함. 책 말미에 김병익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노년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좀 못마땅했다. 이런 종류의 평균적 사악함은 어느 연령에서나 찾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처럼 나는 나 자신의 사악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때는 제법 독창적이 아닐까 혼자 착각도 했던 스스로의 사악함의 사회적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내 면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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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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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cing (Paperback)
Ryu Murakami / Bloomsbury Publishing PLC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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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 책 번역됐을 것 같은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도 안 나온다.그래서 그냥 영어본으로 올린다. 어짜피 그게 내가 읽은 거긴 하니까.... 정말 변역 안 되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절판인가... 


시애틀 헌책방에서 눈에 뜨이길래 집어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거였다. 읽히기는 죽죽 읽혔지만 사분의 삼까지는 별로 감동이 없었는데, 마지막 사분의 일 부분 때문에 이 소설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숨을 못 쉬었다.

그냥 그런 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면의 그 피어싱 이미지가 순식간에 소설 전체를 시로 돌변시켰다.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고 좀 놀랐다.


도입부와 소재가 식상하다고 생각되어도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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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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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 시집 '자서'에서 현실을 그대로 옯기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둔다고 썼다. 자서를 읽고 심드렁해져서 현실을 그냥 옮기면 그게 뭐 시냐, 그냥 넋두리지, 이렇게 시집을 읽기도 전에 푸념을 했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일이 뭐가 재미있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뭐 대단하냐, 이렇게 중얼거렸다.

모름지기 읽을 만한 시라면, 유하처럼 이렇게 멋지게 사랑을 호박꽃으로 꿀의 주막으로 환멸의 지옥으로 입이 딱 벌어지는 비유라도 보여주던가,

사랑의 지옥--서시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한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아니면 신경림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이렇게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아포리즘이라도  줄줄이 박아 주어야 읽고 나서 서운치 않은 시지.

가난한 사랑의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위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하품을 하면서 이승훈의 시집을 뒤적이며 읽는데, 정말로 현실이 한여름 수박에서 쪼개져나온 한 조각마냥 수박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나왔다. 내가 팔 년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온 세상이 이승훈의 시집 속에서 내게 예기치 않은 안부 인사를 건네왔다.

잡채밥 (이승훈)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빗물 묻은 우비를 걸치고 배달 온 청년이 묻는다 다른 건 잘 못 먹어요 청년이 나가면 연구실 낮은 탁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맛없는 잡채밥을 먹는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앉아 잡채밥 먹는 걸 보면 실망할지 몰라 문을 잠그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전 열한시 반 낡은 잠바 걸치고 앉아 고개 숙이고 잡채밥 먹는다 물론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그릇을 신문지에 싸서 연구실 문밖에 내놓는다



이십년 내내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 인생. 별로 맛있지도 않지만 다른 것은 또 먹히지 않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고개 숙이고 잡채밥을 먹는 인생. 특별히 서글플 것도 없고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인 구석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남루하고 먼지내 나는 일상이 서툰 사진사 손에서 찍혀 나온 사진처럼 빨랫줄에 널린 낡은 속옷처럼 시집 안에 걸려 있다.


화장실 문 (이승훈)

화장실 문이 잠겼네 화장실 문이 잠겼어! 난 화장실 앞에서 아내를 부르네 석준이 시키세요 아내는 말하지 그러나 거실에도 건넌방에도 석준이는 없고 그럼 송곳을 구멍에 대고 여세요! 그러나 아무리 손을 대도 문은 열리지 읺고 안 열려! 소리치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아내가 온다 이리 줘요! 아내는 쉽게 문을 연다



이승훈은 언어가 있으므로 시를 쓴다고, 할 일 없어 시를 쓰고 시 쓰는 데서 바라는 바가 없다고 ("언어가 있으므로 시를 쓴다") 한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이 아무 감상도 생각도 걸러내지 않는 매끈매끈하고 몰개성한 스케치북 같은 시를 쓰기는 얼마나 힘든가. 그의 많은 시의 마지막 구절은 종종  안타까운 사족이다.


고향 가게 (이승훈)

해 지는 가을 저녁 가게에 들른다 가게 총각은 인사도 없고 말도 없고 난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묻는다 하나는 노란 포장 하나는 붉은 포장이다 이 둘은 뭐가 다릅니까? 총각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앉아 말한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자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럼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뭐야? 속으로 중얼대며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나온다 물론 악의는 없다 너무 선량해서 문제지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는 강원도의 가을 저녁



"물론 악의는 없다 너무 선량해서 문제지 안녕히 계세요 가게를 나오며 인사를 해도 대답이 없는 강원도의 가을 저녁," 이 한 줄만 삭제했다면 "고향 가게"는 "화장실 문"이나 "잡채밥"만큼이나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승훈의 시는 그 안에서 시인의 바람이며 감상이며 시인의 목소리 자체가 사라질 때 성공한다. 한 두 자만  토를 달아도 현실을 보여준다는 그의 전략은 쉽사리 무너진다.

해 지는 가을 저녁 가게에 들른다 가게 총각은 인사도 없고 말도 없고 난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묻는다 하나는 노란 포장 하나는 붉은 포장이다 이 둘은 뭐가 다릅니까? 총각은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이 의자에 앉아 말한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자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럼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뭐야? 속으로 중얼대며 감자튀김 두 봉지를 들고 나온다

마지막 줄을 잘라내면 이 시는 홍상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무덤덤하고 조금 지루하고 조금 안달이 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채 중요치 않은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는, 부인할 수 없게 현실적인 공중 화장실 같은 나만의 만인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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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9-01-1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올해 개봉할 홍상수 영화의 제목이래요. 히히~

검둥개 2009-01-13 09:20   좋아요 0 | URL
이야 멋진 제목이예요. ^^

치니 2009-01-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훈이 별로 안 땡기던 이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 되어 있는 리뷰입니다. 추천!

검둥개 2009-01-14 05:43   좋아요 0 | URL
이야, 추천 감사합니다. 치니님 ^^
몇몇은 좋았는데 몇몇은 그냥 그랬답니다.
자서와 책 뒷부분의 시론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시인의 일상은 하여튼 눈에 선하더라구요.
잡채밥과 화장실문은 꽤 파워풀하다고 생각했어요.

2009-01-13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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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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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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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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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서 클락의 1953년작 공상과학 소설 <유년기의 종말>은 흥미로운 소설이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어느 날 오버로드라 불리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하고 그들의 우세한 기술력과 군사력을 이용, 지구를 식민지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버로드가 지구를 점령한 이래로 국가간의 분쟁도 사라지고 지구는 모처럼 평화를 누리지만, 전쟁을 억제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는 오버로드의 동기는 수상쩍기 짝이 없다. 인간들을 평화롭게 살게 하려는 목적으로 먼 우주를 건너 지구까지 왔단 말인가? 오버로드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의심은 오직 부풀려지기만 할 뿐이다.

이 소설이 인상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아서 클락이 인류라는 종이 물리적 신체와 각 인간을 구별시키는 개인성을 상실하고 우주정신(!)이랄까 뭐 우주에 편재하는 정신력에 통합되는 방향으로 진화할 거라는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아주 공상과학스럽고 또 인류의 근본적 상상력에 부합하는 (불교나 힌두교를 생각해 볼 때) 줄거리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으면 추상주의자 몬드리안의 "바다"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그다지 이런 소설의 소재 설정에는 오히려 별로 관심이 가지 않고, 주인공 잰 로드릭의 흥미진진하다기 보다는 무용하고 서글프게 허무한 인생역정에 가슴이 찢어졌다. 잰 로드릭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고 무슨 기술력을 가졌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거의 전능해보이는 오버로드들의 정체를 알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오버로드들의 행성으로 발사되는 우주선 안에 몰래 숨어든다. 오버로드들의 행성에서 그는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는데, 그건 우주의 많은 종들이 저마다 결국엔 우주정신에 편입되는 진화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오버로드들은 전능하기는 커녕 사실은 이 우주정신에 복속되어 노예생활을 하는 슬픈 족속, 우주정신으로 진화하지 못한 채 도태된 열등한 종으로 우주정신의 뜻에 따라 다른 우주의 종들의 진화과정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신세일 뿐이다. 오버로드들은 로드릭에게 마침내 인간 종의 진화가 시작되었다며 이제 지구로 돌아갈 때라고 말한다. 로드릭에게는 오직 몇 달 걸린 여정이었지만 지구에서는 몇 백년이 흐른 후라 돌아온 고향 행성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벌거벗은 채 언어를 모르고 한 대륙에 뭉쳐 순수 정신이 되어가는, 신체를 지닌 인류의 마지막 후예인 아이들이다.

로드릭은 인류의 마지막 진화가 완성되는 시점에 홀로 남은 태고적 인간으로 누가 읽을지 모르는 인류 최후의 진화과정을 기록한다. 혼자서 아무도 없는 텅빈 지구에서. 내가 읽은 그 어떤 소설에도 이보다 더한 고독은 없었다. 아무리 사람 사이에서 경험하는 외로움이 혼자 있을 때의 고독보다 더하다 해도 인간 종 자체가 사라진 텅 빈 행성의 마지막 인간의 그것에 비할 바 있으랴.

고독의 최절정, 호기심에 가득차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행한 물리학자 로드릭을 기다린 운명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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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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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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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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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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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eway (Paperback)
Frederik Pohl / Del Rey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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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폴의 1977년작인 이 소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심란하다. 책 표지만 보면 인간들보다 훨씬 우월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룩한 외계인, 히치들의 유적에 남겨진 우주선을 타고 미답사된 우주를 모험한다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박진감이 넘친다 싶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기대는 금새 증발하고 만다.

연도가 딱히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히 미래로 설정된 소설 속의 인간들은 현재의 인간들만큼이나 고단하게 살아간다. 주인공 로비넷 브로드헤드는 별볼일 없는 식품광산 광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식품광산의 광부로 막장인생을 살아간다. 식품광산의 광부 일이란 뭔가 조금만 잘못 되어도 자칫 굴에 갇혀 죽기 십상인 위험천만한 직종. 월급도 쥐꼬리만해서 미래라곤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운좋게 복권에 당첨된 브로드헤드. 무난하게 살면 가족을 꾸리고 배곯지 않고 평생 살 수 있을 만한 돈이지만, 출구 없는 인생이 답답하기만 한 젊은이인 그는 즉시 당첨금을 탈탈 털어 게이트웨이로 가는 표를 산다. 게이트웨이는 히치들이 오십만 년 전에 남겨둔 유적으로 일종의 우주정거장. 우주정거장엔 수백척의 히치 우주선들이 남겨져 있다. 게이트웨이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히치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우주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히치 유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럴 듯 하지만 실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가 있다.

아무도 히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 나아가 아무도 히치 우주선의 작동원리를 모른다는 사실. 과학자들이 기껏 발견해낸 것이라고는 어떻게 히치 우주선에 전원을 넣고 끄는지 작동 버튼을 누르는 지가 고작이다. 우주선의 원료가 뭔지, 우주선의 항해 시스템이 무언지, 출발 버튼을 누르면 우주선은 어디로 가는지, 항해는 얼마나 걸릴지, 항해 중엔 어떻게 항로를 조정하는지 같은 것도 전부 그러니까 써프라이즈다.  서점에선 전체가 빈 종이로 채워진 <히치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라는 책이 판매대에 어엿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우주선이 도착한 곳에서 히치 유물이라도 하나 찾아서 돌아온다면 평생 편히 먹고 낡은 장기도 때 되면 갈 수 있는 총체적 의료보험도 구입해 150년쯤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가 전혀 계산불가능이라는 것이 문제다.

용감무쌍하게 목숨을 걸고 인생의 운을 시험하러 왔지만 러시아룰렛이나 다름없는 이 모험 앞에서 송장마냥 얼어붇는 브로드헤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는 5인용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간다. 우주선 안은 식량과 탐사장비와 사람으로 가득차서 발붙일 틈조차 없고 식량의 반쯤이 소모될 쯤까지도 우주선이 멈추지 않자 우주선 안은 긴장과 적의와 불안으로 가득 찬다. 항해 시간에 따라서 오 인 중의 한두명이 희생되어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건한 정체불명의 특수 금속으로 만들어진 히치 우주선은 행선지가 불타는 태양 위건 막 생성된 위험천만의 태양계건 폭발하거나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출발지인 게이트웨이로 돌아간다. 우주선 속의 인간들이야 살아 있건 말건 간에.

우주선이 드디어 행선지에 도착하고 남은 식량으로 볼 때 뽑기를 해서 누군가 자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브로드헤드와 동승한 다른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것도 잠시 뿐. 눈을 씻고 주변을 탐사해봐도 히치 유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 목숨을 내걸고 작동원리도 전혀 알 수 없는 외계인 우주선을 타고 몇 달을 고생하며 간신히 행선지에 도착했건만 보물이라곤 찾을 수 없다. 돌아가는 길은 살아서 도착하리라는 위안을 빼면 오던 길보다도 더 비참하고, 돌아가면 다시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을 떠나야 한다.

브로드헤드는 두번째 여행에서도 살아 돌아오지만 그건 어이없이 짧고 보물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종류였다. 게다가 성질머리 때문에 값을 따질 수 없는 일인용 히치 우주선마저 완전히 고장을 내버리는 바람에 그는 땡전 한푼 없는 신세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신세로 전락한다.

될대로 되라는 심사가 된 브로드헤드는 거액의 급료가 지급되는 위험천만한 과학답사여행에 자원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상당한 보상액을 받을 수 있는 여행이지만 도착한 행선지는 그 누구도 살아 나올 수 없는 블랙홀.

이 정도 되면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실망이라는 블랙홀이 가득찬 우주 같다. 위안이라고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떠나서 도착하는 곳은 또다른 실망이 기다리는 친숙한 절망의 나락 뿐이다.

과학답사여행에 파견된 우주선은 두 척. 승무원 중 과학에 빠삭한 한 이가 묘안을 낸다. 어짜피 살아 나가기는 틀렸으니 모험을 해보자는 것. 두 척 중의 한 척에 전부 올라타고 다른 한 척에 각 우주선에 한 대씩 붙은 착륙선을 둘 다 부착해 가속시키면 두 우주선 중 하나는 블랙홀을 향해 돌진하고 그 반사력으로 다른 우주선은 블랙홀을 탈출하기에 충분한 속력을 얻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다.

이론은 좋지만, 문제는 어느 우주선이 블랙홀로 떨어지고 어느 우주선이 블랙홀을 탈출할 것이냐는 걸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선택은 다시 한 번 눈먼 뽑기가 된다.

준비를 마치고 두 우주선에 타고온 승무원들이 전부 한 우주선으로 옮겨가는데, 인생이 지긋지긋한 브로드헤드는 혼자서 다른 우주선에 남는다. 우주선 중 하나에 함께 묶인 두 대의 착륙선에 가속도가 주어지고, 우주선 하나는 블랙홀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게이트웨이를 향해 되돌아간다. 브로드웨이가 몹시 사랑했다는 여자친구는 블랙홀로 한없이 천천히 떨어져간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에서는 시간이 거의 정지된 듯한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점점더 천천히 흐른다. 일 초가 일 년으로 다시 십 년으로 한없이 한없이 느려진다. 단신으로 답사여행에서 살아 돌아와 거액의 보상금을 홀로 움켜쥐고 안락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며 브로드헤드가 수 년의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에도 그래서 우주 저 끝 블랙홀에서는 그의 생존의 대가로 블랙홀에 남겨진 그의 여자친구와 동승했던 승무원들이 여전히 한없이 천천히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그들에게 시간은 아직도 그들이 블랙홀에 도착한 이래 겨우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

내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직도 나는 그들을 죽이고 있다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브로드헤드는 그의 정신분석 전문의 로봇, 지그프리드를 향해 외친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이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고통 같은 것을 로봇인 자신은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월등한 인공지능의 소유자, 로봇 지그프리드는 이렇게 답한다. 바로 그것이 삶이라고. 그리고 로봇인 자신은 결코 완전히 경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지그프리드 자신은 그 인생을 매우 부러워한다고.

어떻게 보면 일확천금이지만 사실은 복권 한 장으로 인생을 불살라버린 거나 마찬가지가 된 브로드헤드의 지루하고 서글픈 모험을 그린 이 작품은 단연 특별한 종류의 공상과학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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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03-0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검둥개님 ^^ 꾸벅... 그냥 눈에 띄어서 왔습니다. "무난하게 살면 가족을 꾸리고 배곯지 않고 평생 살 수 있을 만한 돈"이 있어도 제 삶이 크게 달리질지는 모르겠네요.............. 라고 썼다가, 정작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운을 누린다면 자기가 알건 모르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F란 다 그런 건가요? 다 자기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또 그것이 아닌 삶을 일굴 수는 없는... 이렇게 살건, 저렇게 살건, 저보다 잘 사는 사람은 있는 법이고.... 또 그들이 부럽고..... 혹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다행히 그들에게 뭔가 내가 해줄 게 있다는 것 아닐지.. 그래서 사는 게 조금은 낫고...

검둥개 2008-03-07 01: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에로이카님.
그러게 인생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분전환을 하려고 집어든 공상과학 소설마저도 기대를 배반하기도 하고요. ^^

2008-03-08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8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8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