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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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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 거북스럽다.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악질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다분히 위선적이고 사악하다. 그런데 그 위선과 사악함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평균적 사악함이다. 예전에는 사악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마음이 뛰었다. 한국은 모름지기 착함과 예절바름, 그 같은 모든 미덕을 숭앙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악한 인간들에 대해 읽으며 나는 글 속의 반동스런 기운이 불러오는 자유에 내 소심한 코를 벌름거리곤 햇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런 주인공들의 사악함의 얼마만큼이 과연 주인공 자신들의 본성에서 오는 것인지를. 이 책에 실린 박완서 단편들 속 주인공들의 사악함은 대부분 사회가 개인들에게 부과하는 외부적 규범에서 유래한다. 사악하려고 해서 사악해진 것도 아니고 사악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사악하다는 자의식이 대단한 것도 아닌 인물들의 그저 일반적 생활인의 처세에 걸맞을 만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사악함. 평균적이고 적당히 조절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딱 그만큼의 사악함. 책 말미에 김병익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노년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좀 못마땅했다. 이런 종류의 평균적 사악함은 어느 연령에서나 찾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처럼 나는 나 자신의 사악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때는 제법 독창적이 아닐까 혼자 착각도 했던 스스로의 사악함의 사회적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내 면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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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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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장을 넘기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씨네 집 아들 동구는 삼대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어여삐 여겼다가는 자칫 며느리와의 기세 싸움에서 열세에 몰릴 것을 두려워한 할머니에게 매일 구박을 받는다. 게다가 동구는 난독증이 있어서 잘 쓰고 읽지를 못하는데,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동구를 철퍼덕 철퍼덕 때린다. 할머니는 숨은 고기점을 꺼내려고 밥상의 김치찌게를 젓가락으로 엉망으로 헤집어놓는 충청도 과부 할마씨,  아버지는 자기 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말할 때마다 아내의 말을 들어주기는 고작하고 못배운 당신이 뭘 알아, 로 시작했다가 수가 틀리면 집안의 물건을 집어던지고 심지어 아내를 때리기까지 하는 외국계회사 직원이다. 어머니는 요리솜씨 하나로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를 부엌에서 당당히 몰아냈고 집에서도 제과점 것보다 더 맛있는 카스테라를 만들 줄 아는 요리의 대가다.  이런 혼란의 도가니에 영주가 태어난다. 동구의 여섯살 아래 동생인 영주는 식구들 모두에게 특별한 존재다.

동구 왈, "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먹통이고, 엄마나 아버지도 가끔 벽창호 같아 보일 만큼 고지식한 사람들이고, 할머니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도 너무 바쁜 사람이어서 영주가 존재하기 이전에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그런 우리 식구들 틈에서 영주같이 표현력이 풍부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누군가 허튼소리 잘하는 사람의 얼토당토않은 농담 같은 일이었다. 영주의 갑작스런 행동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 식구는 모두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곧 그 신기한 행동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었다." (23-24) 한 살 짜리 영주의 재주란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줄 때마다 손으로 업어준 사람의 어깨나 팔을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아선호사상에 깊숙이 물든 악다구니 욕쟁이 할머니마저도 영주를 사랑한다.

하지만 영주 덕택에 가정에 뭔가 화목 비슷한 것이라도 깃들이는가 싶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급작스럽게 끝이 나고 만다. 오히려 대사건 이후 엄마와 할머니 간의 골은 더이상 깊어질 수 없이 패여서 급기야 엄마는 병원으로 그 후엔 외가로 가버리고 만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며느리에게 한 치도 양보할 태세가 아니라, 아버지는 패잔병처럼 추레한 몰골이 된다. 동구는 자기 한 몸 던져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불로소득처럼 주어진 해결책을 무기력해진 아버지는 선뜻 받아들인다.

동구는 성장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저 너무 일찍 세상물정을 다 깨달은 그래서 아이답지 않게 시니컬한 태도를 지닌 조숙한 아이가 아니다. 동구는 어리숙하지만, 식구들에 대해서 알 건 다 알고, 문제의 핵심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고 마는, 순진한 소년이다. 세상에 이렇게 착하기만 한 아이가 어디 있어?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 속에는 동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가지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구가 존경하고 흠모해마지 않은 박선생님은 왜 대학 선배와 그 선배의 선배인 주리 삼촌을 만나는 토요일 저녁, 그 대포집에 동구를 데려갔을까? 대포집에서 일어난 동구의 주정은 가히 이 책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이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나는 내심 마음이 찜찜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박선생님은 이미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서울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자신의 애재자 동구를 보고 가기로 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 이걸로 다 설명이 된다.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선생님 울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바지를 다려 입은 것이 무슨 잘못이에요? 자기가 뭐라고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부른대요? 저 사람이 나쁜 거에요. 울지 마세요. 내가 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에요. 선생님, 울지 마세요!"

시국에 분노하면서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심각한 선생님 앞에서, 빨대로 빨아 마신 술과 고등어 안주 냄새에 속이 울렁울렁하던 동구는, 대학시절 선배에게나 선전 문건이나 빨리 빨리 배달하지는 않고 집에 가서 그 시간에 면바지 따위를 다려입고 왔다고 힐난을 받았다는 선생님을 옹호하며, 이렇게 계획에 없이 그만 사랑고백을 하고 만다. 사대문 안으로는 탱크가 들고 장기집권한 독재자가 암살된 후 또다른 군부독재의 서막이 올라가기 직전 그 짤막하고도 긴장되던 시절, 동구에게 중요한 건 잘 이해되지 않는 정치가 아니라 글도 잘 읽고 쓰지 못하는 자신을 아껴준 사랑하는 자신의 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삶이 정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왜 박선생님은 동구를 술자리에 데려가셨나?
동구 같은 아이가 사는 사회엔 군부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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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6-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고 , 오랜만에 뜨거운 눈물 흘렸던 기억이 새삼.
달의제단도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소설에서 뭉클해지던 그 감각은 다시 나오지 않더군요.

검둥개 2006-06-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그러셨군요. ^^
전 동구 할머니가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인물이었어요.
어린 동구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니, 아이들이 너무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검둥개 2006-06-1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새벽별님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셨어요?
동구가 정말 참 귀여웠어요. ^^
 
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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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십여 페이지 가량 읽어가던 중 예전에 이미 읽었던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지만 소설 속에서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으므로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일단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기억이 회복되자,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그렇게 까맣게 잊혀졌는지, 왜 이 책을 처음 읽고 이렇다할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책이 나올 당시에 후일담 소설이 붐을 이루었던 만큼 다른 동종 소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을 테고, 게다가 도피중인 정치범과 그를 숨겨주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 라는 식의 이야기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이번엔 의외로 과거에 눈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 관심이 쏠렸다. 자연경관의 변화를 묘사한 무척이나 서정적인 문장들이라든가, 감옥에서의 생활처럼 소소하고도 구체적인 일들의 언급 (독방 창문으로 철사줄을 내어 비둘기를 잡아 뺑기통 위에서 삶아 먹는 일, 드나드는 쥐라도 애완동물로 만들려고 애를 쓰는 죄수들, 단식과정에서 변화하는 감각경험 등), 그리고 먹는 음식 이야기들. 디테일.

황석영이 이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의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완성도와 감동은 소재의 역사성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파리하고 몰개성적인 성격은 적이 실망스러웠다. 오현우, 한윤희, 송영태, 최미경. 그들은 모두 8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들이 아니고, 그냥 유신에 반대한 젊은 청년, 학생운동에 동조적이었던 빨치산의 딸, 부르조아 출신의 학생운동권,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젊은 여대생이었다.

역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운동 전략을 유창하게 토론하는 소설 속의 인물의 말빨에 반하지 않고, 광주사태 비디오를 보고 수배자를 도피시켜주다가 사랑하게 된 사연, 그 남자가 무기수로 징역을 가버리게 된 사연에 자동적으로 감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동하는 건 소설 속의 인물이 우리에게 사소하게 말 걸 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에서. 해방정국 좌익 지식인이었던 한윤희의 아버지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민청 소속의 젊은 여학생을 다음해 데모에서 다시 만나 스치며 이렇게 사과할 때: "지난번에 땡감 먹인 걸 사과하오. 난 정말 몰랐어요" (155) 새벽 세 시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서울이 온통 비상경계 상태여서 동이 틀 때까지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었고,  학생과 아버지는 어쩌다가 여인숙 방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불을 켜놓고 우두커니 마주 앉아 있다가 아버지는 학생에게 시장기나 떼우라고 인절미며 감을 내주었단다. 그런데 여학생이 감을 아주 조금씩만 떼어먹더라는 거였다. 아껴먹느라 저러나 해서 아버지는 감 하나를 더 내어주고는, 화롯가에서 그만 졸았는데 깨어보니 여학생은 이미 가고 없더란다. 나중에 집에 와서 감을 꺼내 먹어보니 떫기가 얼마나 떫은지 뱉아버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새댁이던 아내가 웃으면서 그건 땡감이라 햇빛에 익혀 먹거나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먹어야 하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고.

현대건축가 미에즈 반 데어 로에는 신은 세부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디테일,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역사의 디테일이건, 사랑의 디테일이건, 배신의 디테일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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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12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맞지만 그 사소함에 또 너무
깊은 의미를 두면 안된다는 생각이.
의미를 두는 순간 추해지고 변질되는 게 많아서.^^


nada 2006-06-1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도 그러시는군요! 전 "좀 충격을 받"는 것을 넘어서, 심하게 자학합니다. 이 돌대가리!! 하면서요. ㅎㅎ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 이젠 그저 염정아, 지진희의 영화나 기다리려구요.

rainy 2006-06-1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다시 볼려구 벼르고 있는데 혹시 그러는 건 아닐지
이젠 확신 할수가 없어요 ^^;;
저에겐 이 책이 어쩌면 제목의 주술에 걸린 것처럼
먼 옛날 고요한 정원, 어떤 기원, 그렇게 마음에 남아 있어서
빨리 거기에 닿고 싶은 마음과 또 한편 내내 미뤄두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네요.
둘이 만났던 부분보다, 또 남자의 부분보다,
그녀가 홀로 떠난 곳에서 겪는 일들이 더 마음에 닿았던 듯..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다가 , 읽게 되겠죠. 검둥개님은 빨리 읽으셨네요^^

검둥개 2006-06-13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사소한 거만 나오면 또 피곤하죠 ^. ^ (갑자기 아무개 소설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옵니다.) 전 황석영의 팬이라서 이 소설 주인공들의 전형성이 못내 아쉬웠어요. 왜 분단문제에 대한 고민은 또 다들 베를린에 가서야만 할 수 있는 건지! 그런 통속적인 사고도 좀 극복이 됐으면 좋겠고 등등 ^^;;;

꽃양배추님. 전 이제 그것도 지쳐서 자학 같은 거 안 합니다. 몇 안 되는 리뷰도 돌아보면 벌써 아무 기억이 안 나는 게 많이 있다니깐요. 그래도 책 다 읽기 전에 옛날에 읽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만 해도 보람차게 생각하렵니다. 그런데 염정아는 좀 미스캐스팅인데요. 좀더 후덕하고 청순한 이미지여야 소설과 맞지 않을까요? ^^

rainy님 다시 읽어본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어요.
읽을 때마다 같은 책의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가요.
신기하죠? ^^

 
국자 이야기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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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안경원>을 읽은 후, 나는 조경란의 열혈팬이 되기로 했다. 단편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출렁이는 무거운 바께쓰를 이고지고 가 남의 집 대문 앞에 늘어선 푸른 화분에  김이 펄펄 끓는 물을 쏟아붓던 주인공. 터널처럼 어둡고 길고 음습하던 한 시절을 다시 보듯, 나는 오싹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삶이 끔찍한 것은 누구에게나 대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는 목을 매고, 누구는 케세라 케세라 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그 들여다보기 섬찟하고 또 지긋지긋한 끔찍함을 오랫동안 응시해온 작가가 있다.

조경란을 생각할 때면 이제는 중년이 된 작가 오정희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철저한 절망이라는 친연성이 그들의 소설 사이에 있다. 오정희도 조경란도 읽기에 쉬운 작가는 아니다. 그들의 문체가 아름답고, 그들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지만, 문장과 기교가 그들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조경란의 소설 대부분은 일인칭이며 그들의 경험은 쉽게 작가의 추체험으로 읽힌다. 소재의 새로움이란 루이제 린저에게처럼 조경란에게도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그들 소설의 가치는 진정성과 치열함에 있다. 진정성과 치열함은 상상력이나 쿨함처럼 지어낼 수 있거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의 권태를, 삶의 지리멸렬함을, 생존의 끔찍함을, 나와 타인이라는 지옥을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는 데서 얻어지는 단 한 줌의 성찰이다.

무엇에 대해 우리는 성찰하는가? 삶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가?
딱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 사랑과 증오다.

진부하다고?
인간의 진실이 거주하는 장소는 원래 그렇게 진부한 법이다. 지방소도시의 먼지 뒤집어쓴 여인숙처럼.

<국자 이야기> 속 단편들은 <불란서 안경원> 속의 단편들보다 구성이 느슨하고 문장의 무게와 밀도가 덜하다. 분노와 적의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뜨거운 백열전구 같던 주인공들은 여전히 '나'를 탐구한다. 그러나 그 탐구는 <국자 이야기> 속에서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비교의 대상이 남의 집 식물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죽이는 종류의 인물이던 것을 고려하면, 그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이라는 것은 여전히 이를 악물어야 간신히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고된 노동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조경란 소설의 원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과의 불화, 가족의 붕괴는 "잘 자요, 엄마"의 주인공에게서 제어할 수 없는 거미공포증에 비견된다. 그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은 행동치료를 시도한다.

"나의 가족은 이제 거미가 되었다. 작게 나와 있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 나는 내 왼팔에 아버지를 올려두고 동생은 오른팔에 조카는 어깨 위에 죽은 막내동생은 내 가슴 위에 올려두고 그리고 엄마는 내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그들이 내 몸 위를 걸어다니고 나를 만지고 핥고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나는 후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하곤 했다." ("잘 자요, 엄마" 135)

절망에서 치유로 행동과 깨달음으로 <국자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 작은 발걸음은 물론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좁은 문"에서의 금박의 메타포가 사용되는 방식엔 조금 작위적이란 느낌이 있고, "입술"의 구성은 독자에게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며, "돌의 꽃"의 박쥐남자라는 소재엔 확실히 어색한 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전진과정에서의 시행착오로 보인다. 나는 법을 배우려면 걷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조경란에겐 날고 싶은 욕망과 날아오르려는 의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 했구나, 내 얘기만 했네. 미 미안해. 하지만 이 이게 내 이야기의 끝 끝은 아 아니야. 난 한 번도 모 못 해본 마 말들이 너 너무나 많아. 이 이제 나는 인생이 너무나 노 놀랍고 신비로워서 입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 내 시 심장 소리는 내가 모 못 듣는 거잖아. 호 혹시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하 한 가지가 아닐까. 한 한 가지 비 빛깔처럼 말이야. 가 가까이 다가오는 사 사람한텐 자 자리는 내주는 거야. 내가 마 말을 하는 건 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말을 해. 말을 안 하면 귀 귀신도 모르는 거야. 말 말을 하지 못하면 살아도 주 죽은 거야. 말을 해, 사 사랑이 사라지거나 혹은 죽거나 아 아주 자 잠들지 않게끔. 나 나는 정말 마 말을 자 잘하는 사 사람이 되고 싶 싶었는데. 당신, 나 나를 좀 쳐 쳐다봐. 내게 마 말해줘, 다 당신에 과 관한 것. 자, 이 이젠 다 당신 차 차례야." ("입술" 223-224)
 
작가후기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장엄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될 때, 나는 나의 일부가 그 나무 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분리할 줄 아는 힘,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저항과 흥분과 체념과 냉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불완전하며 변덕스럽고 위협적인 세계를 만질 수도 입을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이 연약한 언어가 과연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 나를 표시해줄 수 있는 어떤 점 하나 같은 게 저 길 끝에 정말 있을지." (292)

이런 작가에게라면 좀더 많은 열혈팬들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내게 말해줘, 당신에 관한 것,
<국자이야기>는 드디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작가가 '나' 아닌 '너'에 대해 쓴 自敍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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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09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리뷰가 너무 좋아서 그에 걸맞는 댓글이 안나와 그냥 추천만하고 가나봅니다. 작가들이 검둥개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내는 렌즈가 되듯이, 검둥개님의 멋진 리뷰들도 제게 그렇답니다...

2006-06-0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6-1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ci님 우와 정말이요? ^_____^* 감사합니다. (_ _)
그런데 그 푸른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은 어디여요?
너무 멋있어서 한참 보고 오는 길이어요.

속삭이신 님, 그러시군요! ^^
환절기가 제게도 참 인상적인 단편이었어요.
불란서 안경원보다도요.
아가와 함께 늘 건강 조심하시고요. 멋진 여름 보내시기를.

nada 2006-06-1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조경란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요. 품위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긴 것도 참 단아한데 그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식빵 굽는 시간과 불란서 안경원, 요렇게 초기작 좋아해요. 조경란도 폴 오스터처럼 쓰는 얘기만 주야장천 쓰는지라 좀 지루해지는 듯...

플레져 2006-06-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경란 초기작은 읽지도 않고 이 책부터 덥석 읽어버렸네요, 저는...ㅎㅎ
참 꼼꼼한 소설, 한편으론 읽는 동안 작가의 숨결이 팍, 와닿는 조금 섬뜩하기도 한 느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시에 쓰고 읽는 느낌이랄까요... 검둥개님의 리뷰는 너무나 훈늉하십니다.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검둥개 2006-06-1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ㅎㅎ 쓰는 얘기만 주야장천 쓰는 거 맞죠. ^^;;
그래도 끈질기게 쓰면서 출구를 좀 찾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 작가도 한둘 있어야겠죠. 폴 오스터는 좀 심하다 싶기는 해요.

플레져님. 넵, 섬뜩하다는 게 맞죠.
그렇게 손톱날이 확 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것도 재능이어요. 훈늉하긴 뭘요 ^^;;;
조경란이 다루는 소재가 제게 공감이 많이 되는 거여서 열혈팬이 되는 겁니다. 나의 비열한 고민을 작가가 이렇게 승화시켜서 멋드러지게 표현해주다니, 하구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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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재빨리 넘기다가, 십 년 전, 친구네 하숙방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을 읽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그 때 내 심기에 그토록 거슬렸던 한 가지 사실도. 주인공의 이름이 미미가 뭐냐! 그러나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잘 읽혔다. 잘 읽었다. 십 년 전의 실망은 없었다.

십 년 전이면 한창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였다. 그 때만 해도 김영하 역시 젊디 젊은 작가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오렌지족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의 정체성은 어쩌면 양아치 쪽에 가까웠던 걸까?

"죽어라고 학교 다녀봐야 대학 갈 팔자도 아니고, 국으로 있는 놈만 병신이다. 선생들은 패지, 애들은 쪼지, 주먹으로 못 잡을 바에야 뜨는 게 장땡이다. 대학 못 샀다고 어이고 불쌍한 내 새끼 하면서 카페 차려줄 재산이 있기를 하나, 그저 밖에서 구르는 게 집도 좋고 지도 좋은 거지. 부모들만 애들이 돌빡인 줄 안다. 우리도 눈치로 다 때려잡는다. 다 지 갈 곳을 알고 그쪽으로 흘러가면서 구겨지는 거다." ("비상구", 167-168)

이건 안목 있는 시대 통찰도 아니고, 삶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도 아닌, 동네 양아치, 삐끼, 날라리들의 평균적 상황인식에 불과하다.

"너무 늦었다. ...  앞만 보고 달렸다. 발 밑으로 기왓장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두두두둑.  ... 왜 이렇게 죽어라고 쫓아와? ... 다행히 타넘을 지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니미 씨팔이다." ("비상구", 187)

이걸 멋지다거나 깊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건 현실에 아주 유연하게 밀착된 사실이다.
너와 내가 다 아는 사실, 너와 내겐 책임이 없는 사실, 너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하!", 하고 오 분간 입을 벌리고 감탄한다.

나는 오늘 도서관 서가 앞에 서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나 <무기의 그늘>을 들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김영하의 이 소설집 한 권만을 빼들고 나왔다. 황석영을 읽으려면 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넘기기 전에 심호흡을 해야 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엔 그런 부담이 없다. 그의 소설은 술 마시고 밤중에 들어와서 잠들기 전에 혼자 보는 심야의 티비 단막극 같고, 삐까뻔쩍해서 밤에 들어서면 눈이 시리는 LG24에서 사 피우는 처음 보는 상표의 외제담배 같다. 적당히 흥미진진하고 적당히 통속적인, 바로 그래서 중독적인 단막극, 한 번 피우고 나면 그걸로 끝인 담배 한 대의 찰나적 위안.

티비 단막극은 티비 단막극일 따름이고, 담배 한 대는 담배 한 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밤 티비를 들여다보다 잠이 들고, 담배연기를 뿜어올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우리 대중을 위안하는 소설가다. 그의 소설은 저 위 별표들의 이름처럼 "상품만족도"가 높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는 걱정한다. 하지만 버스와 트럭이 부닥치는 와중에, 전화카드가 없어서, 보고를 독촉하는 상관 때문에, 자칫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타인에 대한 관심 같은 건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발이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대롱대롱 끼여서 시야를 가득 채울지라도! 정말이지 그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집에 온수가 끊어지기라도 한다면야 더더욱!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 이제 편한 잠옷으로 갈아 입고 리모컨으로 티비를 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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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6-06-0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안녕하세요?
몇몇 자주 들르는 서재를 통해 님을 알게 되어 인사를 드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끼듯 조금씩 찬찬히 둘러봐야지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은
깊은 심호흡, 마음의 준비(저도 꽤나 따지는 편인데)없이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책이라 서두르는 마음이 되어 글을 남깁니다^^
오래전에 동아일보에 연재될 때 매일 매일 따라적고 싶을만큼 인상적이었고
요즘들어 그 책이 괜히 자꾸 생각나 그 책 달랑 두권들고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요. 기회 닿으면 읽으셔요.. 그럼 또 뵙지요..

검둥개 2006-06-1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님 안녕하세요? ^^
님의 말을 들으니 더욱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오래된 정원>을 빌려오고 말았네요. 심호흡을 하고, 주말에 찬찬히 읽어볼 참이어요. 기대가 됩니다. 사실은 함께 빌려온 황석영의 음식책만 또 먼저 읽어치우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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