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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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 거북스럽다.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악질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다분히 위선적이고 사악하다. 그런데 그 위선과 사악함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평균적 사악함이다. 예전에는 사악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마음이 뛰었다. 한국은 모름지기 착함과 예절바름, 그 같은 모든 미덕을 숭앙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악한 인간들에 대해 읽으며 나는 글 속의 반동스런 기운이 불러오는 자유에 내 소심한 코를 벌름거리곤 햇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런 주인공들의 사악함의 얼마만큼이 과연 주인공 자신들의 본성에서 오는 것인지를. 이 책에 실린 박완서 단편들 속 주인공들의 사악함은 대부분 사회가 개인들에게 부과하는 외부적 규범에서 유래한다. 사악하려고 해서 사악해진 것도 아니고 사악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사악하다는 자의식이 대단한 것도 아닌 인물들의 그저 일반적 생활인의 처세에 걸맞을 만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사악함. 평균적이고 적당히 조절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딱 그만큼의 사악함. 책 말미에 김병익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노년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좀 못마땅했다. 이런 종류의 평균적 사악함은 어느 연령에서나 찾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처럼 나는 나 자신의 사악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때는 제법 독창적이 아닐까 혼자 착각도 했던 스스로의 사악함의 사회적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내 면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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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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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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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행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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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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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훈련 - 황인숙


남들은 잠도 잘 못 잔다는데
나의 '과거집착 후회원망
좌절감 염세비관 의욕상실
열등감 대인공포 호흡곤란
우울 예기불안 악성피로
성급한 행동 긴장 강박관념
망상 집념 권태
브리핑공포 회의공포
자기집착 게으른 성격'은
잘 먹고 때 되면
잠도 잘 자
건강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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