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 엄지발가락은 늘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최근 들어 그 튀어나온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덩달아 무릎이며 등까지 쑤시는 것 같고 해서 여섯달 일곱달 사라지갈 기다리다가 결국 백기를 들고 병원엘 갔다. 영어로는 버니언(bunion)이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대개 유전이라는데 영한 사전을 찾아보니 한국어로는 "건막류(腱膜瘤)《엄지발가락 안쪽의 염증》" 라고 번역된다고 한다. 말만 한국어지 한국사람인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른발 엄지발가락 엑스레이를 세 장이나 찍는 동안 예전에 캠브리지에 살 적에 이웃친구가 이 버니언 혹은 건막류로 인해 고생을 하다고 수술을 받고 몇 주 동안 목발을 집고 다녔다고 귀뜸을 해줬던 기억이 나서 부쩍 걱정을 했다. 미리부터 부쩍 겁을 집어먹은 내 얼굴 기색를 보고 젊은 의사는 친절하게 엑스레이를 가리키며 내 버니언은 어린 버니언이라서 아직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 않으니 수 년 동안 약물과 특수신발로 상태를 조정할 수 있을 거란다.
수술을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다 처방전을 받아 나오는데 귓가에 "어린 버니언"이라는 의사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귀찮은 병에 불과한 버니언이 의사에겐 소중한 묘목처럼 보이는 걸까? 건막류가 자라면 내 엄지 발가락은 더욱 더 안쪽으로 휠테고 내 무릎은 더욱더 아플텐데. 나는 갑자기 기생충에게 연민을 품게 된 숙주가 된 양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