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보통 40분, 퇴근길은 55분에서 한 시간이 걸린다. 마이애미로 이사를 올 적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으니 운전을 해야만 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막상 삼돌이의 차를 빌려 통근을 시작하자 우아하게 드라이브해서 출근하는 (마을버스-지하철-시내버스 컴비네이션과 대조해 볼 때) 직장인이라는 환상엔 순식간에 금이 갔다. 길거리에 차는 왜 이렇게 많으며 정체는 왜 이렇게 심하며 왜 이렇게 집에 가는 길은 한도 끝도 없이 오래 걸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서울에서 통근할 때처럼 버스에서 내려 집에 걸어가는 길에 떡볶이/순대집에 들르는 기쁨 같은 것도 없는 이 썰렁하고 외로운 퇴근길. 구직의 기쁨도 출퇴근의 피로와 짜증에 묻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조금 다른 경로를 발견했는데, 이 경로를 따르면 출퇴근길이 종종 5-10분 정도 절약이 되는 것이었다. 첫 며칠은 히히낙낙했으나 곧 절약되는 그 5-10분을 당연하게 치기 시작했다. 출근길이 35분 이상 걸리면 열을 내고, 퇴근길이 45분 이상 걸리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로를 고수했더라면 겁나게 운이 좋았을 기록이건만은.  설상가상으로 절약되는 시간을 당연지사로 치면서 집을 떠나는 시간을 슬슬 늦추기 시작해서 일곱시 십분이면 부랴부랴 떠나던 것을 일곱시 이십분으로 이십오분으로 미루면서 게으름을 부린다. 이러니 차가 막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각, 눈치가 보이기도 하려니와 괜시리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고,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이죽이다.

아, 이 간사한 마음을 어찌할꼬.

어쩌다가 발견한 이 진주 목걸이, 걸고 보니 내 목이 돼지 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마음의 심판 (성미정)



내 마음엔 심판이 살고 있다 그는 꽤 까다로운 편이다
한 번의 반칙도 눈감아주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
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 얹혀사는 주제에 왜 내 편을 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판정을 무시한 채 경
기를 계속하면 야구가 잘되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이 왠지
찜찜하다 그렇다고 그가 엄격한 건만은 아니다 때론 경기
장의 심판들에게 승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 그
는 날 위로해준다 그는 칭찬엔 인색하지만 위로는 아끼지
않는다 나는 순식간에 판정을 뒤엎고 속보이게 편파 판정
을 하는 경기장의 심판들보단 그를 믿는다 그의 말에 귀
기울여서 손해본 적은 없다 이젠 그가 내 마음에 사는 게
든든하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내 편임을 믿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르마
(안상학)


단골집 이발사는 머리를 깎다 말고
가르마 쪽 머리가 잘 빠지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성긴 가르마를 비춰 보며 문득
가장 가까운 머리카락끼리 헤어진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필 빛바랜 금강산 사진이 걸려 있는 이발소에서
또 나는, 지금 이 나라도
그런 가르마를 곱게 빗어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누군가 빗겨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으며 자꾸만
허전한 가르마가 거슬려
차라리 빡빡 밀어버릴까
아니면 올백을 해버릴까 궁리 중인데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잡생각 말라는 듯 어느새
나를 누이고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이발사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있었다. 거울
에 거꾸로 박힌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평택 대추리에 미군 기지를 마련해 주겠
다고 이 나라  군인들이 철조망으로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순하디 순한 논바
닥에서는 가장 가까운 흙들끼리 헤어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퍼의 구조 (김지녀)


뜨거운 계단들이 열리고 있다
나의 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진흙처럼
계단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잡아당겨 놓았다
나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생각하는 자세로 오해받기 적당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어떠한 생각도 자세도 없다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
이것은 극단에 가깝지만
위에서 아래로
나를 힘껏 잡아당긴 것은 Y의 말대로, 나이다
그러고 보니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 또한 나이다
이쪽과 저쪽이 잘 맞물려 서 있는 자세에 대하여
틀어진 이를 가지런히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나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힘껏 당겨도 닫히지 않는 계단 앞에서
나는 기울어져 조용히 멈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백악관 웹사이트의 헤드라인은 "미국에 변화가 왔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전 세계의 관심이 오바마의 취임식에 쏠렸다.  

자정인데도 초등학교 동창생의 취임식을 보겠다고 학교 교실에 모여 앉은 말레이지아 학동들의 모습이 뉴스 중에 비쳤다. 위싱턴 디시에 몰려든 인파의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취임연설은 시종일관 아주 심각하고 진지했는데, 미디어는 어려움 앞에서 정직한 모습을 보였다고 호의적인 평을 주었다.   

나로 말하자면, 백악관의 웹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고 상당히 흥분했다.  청와대에도 웹사이트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정말 있다. 블루 하우스.  음... 

그나저나, 나 같은 이방인 직장인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멋진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음...  쓰고 보니 역사적인 날에 걸맞는 소시민의 정말 상투적인 감상이로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슈마리 2009-01-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나라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 듯. 좌간, 부시에서 오바마로 바뀌어 시원하긴 한데, 이 나라의 돌+아이는 언제 바뀔런지 암담하구나. ㅜ.ㅜ

검둥개 2009-01-22 02:14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바마가 멋지다고 하나, 역시 남의 나라 대통령이 아니겠어요. 북미관계에 진전이 나기만 우선 기원해봅니다.

유 세 연설에서 자꾸 "한국 차 수입에 빼앗긴 우리 노동자의 자리"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남한 노동자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음? 비슷하게 만들 능력도 없음서...)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우. 이상적인 바램인지는 모르지만, 오바마가 단지 미국 안의 다양성 뿐 아니라 세계 안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 좀더 키웠으면 싶어요.

라로 2009-01-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지켜볼 일이에요~~~.

검둥개 2009-01-22 02:13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