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심보선)


오늘 나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

오늘 나는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 있다

태양이 오전의 다감함을 잃고

노을의 적자색 위엄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달이 저녁의 지위를 머리에 눌러쓰면 어느

행인의 애절한 표정으로부터 밤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내가 무관심했던 새들의 검은 주검

이마에 하나둘 그어지는 잿빛 선분들

이웃의 늦은 망치질 소리

그밖의 이런저런 것들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들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年度)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괜찮은 시인데, 마지막 여섯 줄은 신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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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이럴 때 재미있어요. 저도 얼마 전 이 시를 알라딘에 옮겨놓을까 싶다가, 마지막이 별로라서 그만두었거든요.

검둥개 2009-01-16 22:39   좋아요 0 | URL
히히 치니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찌찌뽕입니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읽어가는데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딸린단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