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의 입장에서 사실을 진실로 만드는 건 쉽다.
8할의 사실만으로 그것의 성격과 맥락을 비틀면 100% 전혀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는 건 이젠 상식이다.
약간의 공감과 감정의 레시피만 얹어주면 익숙한 관점들을 이끌어 낼 수 있으니까..
특히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대선 정국에 보여지는 말 같지도 않은 억측과 비약이라던가,
전적으로 특정인의 입장만 드러나는 가정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_-;
여론과 평판의 힘을 빌어 우위에 점하려는 노력이 개인적 이익에 부합하더라도
대승적 차원의 사고와 행동이 있어야만이 진정한 문제해결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박근혜가 여성이면, 이명박은 녹색"
텍스트는 해석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이미지는 그것의 모형을 제공한다.
종합적 판단은 좀 더 입체적인 정보들로 재구성되어져야 한다.
저 문구는 그래서 코믹한 것이다.
가령, 여성과 남성의 차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평등이 시작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생활을 공유하는 한 남자의 예를 들자면... -_-;
'너는 힘이 쎄니까 일을 더 해야해'
'너는 많이 먹으니까 남은 것도 다 먹어'
'너는 위가 튼튼하니까 이거 상했나 확인해봐'
'너는 나보다 잠이 없으니까 잘때까지 애 봐'
위 전제는 얼핏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도
차별성을 빌미로 차별성을 유용하려는 것은 부당하다.
종, 노비를 대하는 억압적 태도에 저항이라도 할라치면,
배려와 이타심이 없는 몰인정한 인간의 이미지를 하사받게 된다
뒷통수 매질을 하는 만행을 여성성 뒤에서 합리화 하려면 안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성에 대한 담론이 빠져야 하는 이유다.
성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리모콘을 쥘 수 있는가, 누가 관리자 역할을 하는가,
누가 상대에게 상과 벌을 주는가이다.
명백하다!
얼마 전에 읽은 이 책의 문장으로 마무리 한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어찌 달리 할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