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토끼는 완벽하지 않아서 특별해..."

물개 같은 저것, 귀가 없는데 어떻게 토끼일까...
뭔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듯 한데...
너무나 특별하다...

바로 그 남자가 만들었으니까.

섹스만 아는 남자와의 사랑이란...
섹스가 끝난 후의 식어버린 감정을 추스리는 일들에 대한 도전과 응징의 연속이다.
다음 섹스를 기다릴까.. 아니.. 다음이 있을까.. 아니 다른 여자들은...
몸의 언어는 가능한데,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흩어지는 안개를 쫓는 것처럼 아득하다.

저 인간을 혐오해, 하지만 사랑하게 됐어...
저 껍데기를 벗겨 버리면, 그는 나의 남자가 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나..


독일 로맨스 코미디도 저렇구나... (전 세계적으로 비스무리 한듯.. 비슷해진건가...)
남녀의 로맨스에 코미디가 붙으면 음식 궁합이 있듯이 더 맛깔나게 되나 보다...

마지막 장면은 완전 웃긴다;;;;
그런 복수는 정말 정말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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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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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8-11-1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저꼬마 너무이뻐.
이거 어떻게 보셨어요? 상영관있어요?
유럽영화라 기대했는데 헐리우드랑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실망했어요.
그래두 재밌지 않아요? ^^

전 이 대사 기억에 나요.
꼬마가 엄만 배우야, 라고 말하고 아저씨가 그럼 아빠는? 이라고 했더니
엄마가 말하길 '아빤 개자식이래' 라고 말했던 부분. 크크.

라주님은 이 영화보면서 '나 저런이쁜딸 낳고싶다' 막 이 생각하셨죵?
안봐도 다 알아요.ㅋ


ps. 쉿 비밀.(이 영화보면서 든 다짐. 토끼인형을 만들줄 아는 남자를 사랑해야지.ㅎㅎ) 근데 알아요, 그런남자 없다는건. ㅎㅎ

라주미힌 2008-11-16 18: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재밌었던 장면이었죠... 보셨구낭...

2008-11-17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17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패 - "홈은 제대로네.
근데 폼은 카메라 앞에서 잡아야지.
어차피 연기는 다 가짜 아냐?"

수타 - "당신 연기가 뭔지나 아나?"

강패 - "별거 있나
인생 잘 만나서 편하게 흉내나 내면서 사는거지.."


세상은 리얼한가... 영화는 영화인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자와 흉내를 내는 것에 인생을 건 자,
두 세계는 충돌하고 서로의 세계를 의심한다. 

넌 가짜고, 난 진짜다.
하지만 난 쓰레기라 불려지고, 넌 그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아.
운좋게 살아가는 인생에 뭐 별거 있겠어.
나는 진짜 피를 흘리고 살아가는데 말야...
너의 피를 보며 사람들은 흥분하지... 넌 그것에 자신에 차있어.
어디 한번 날 이겨 봐...
내 피보다 진하다면 인정해 줄게...

연기가 좀 늘었군. 연기가 하고 싶었다고?
그렇지만 너야말로 쓰레기 아닌가.
그 짓으로 먹고 사는 인생..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강한 척을 해도 강한거야.
어차피 이 세상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긴 놈이야.
대본대로 해...
뭐 진짜로 해도 내가 이길 수 있으니까 별 상관없지만 말야...


강패의 불운은 이름처럼 살아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어진 이름으로 불려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부름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고, 결국엔 그 부름에 지워지고 만다.
수타는 보여지는 세계에서만이 그 존재를 확인받는, 늘 그 허상의 그림자로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의 노출만으로도 치명적인 죽음을 선고 받기에
자신에 대한 증명은 부담이고 죄악이 된다.

둘 다.. 맡겨진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갖는 공통점은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서로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둘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엿보기 시작했다.
서로의 세계에 자신을 맡겨봄으로써 또 다른 세상에서 스스로를 실험하는 것,
서로가 원하던 실체와 연기란 무엇인지 셋트장은 치열한 실험장이 된다.





피 흘리는 세계와 그 피를 보는 눈...
관객처럼 살아가는 이 세계에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마지막 씬에서 강패는 수타가 이기게 해줌으로써 연기의 세계를 돌려주었고,
강패는 수타에게 리얼한 세계를 보여주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온전했던 모습 그대로가 아닌, 헤지고 발기발기 찢긴 세계가 되어버린 그 곳으로...

강패 - 날 찍어. 넌 카메라야...

좀 더 리얼하게..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관객들이 사는 세계에서만이 가능한 일인 것이다.

강패는 깡패의 삶을 연기처럼 날려버리고 싶었을까.
이 모든 것은 영화 속의 연기였다고...
모든 것은 허상이었고 그런 삶을 리얼이라고 믿고 싶었다고...
수타의 놀란 눈동자는 그것을 보았다.
강패는 마지막 연기를 했지만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하는 참혹한 현장에 연기는 없었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강패와 수타가 깨달은 진실은 단 하나였다.
모든 것은 리얼이 아니다... 다만 우린 리얼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수 많은 연기자들 속에 살아가는 배우인 것이다.

날 찍어.. 넌 카메라야...
그 둘은 이제 하나의 세계를 보고 있다. 

ps. 강패와 수타의 화면 구도를 유심히 봐도 재미있다...
(수타가 겉으로는 버럭버럭 개기지만,... 그는 위치상으로 낮다.. )
힘의 우열, 심리 상태를 은연히 드러내고 있으니까..
둘을 평행하게 비추는 장면이 많지만,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
앞 뒤 등 불균형적인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른 인물들도 다 그런 식...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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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노조는 이랜드+홈에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홈에버쪽의 분규가 잠정합의 되었습니다.
- 지도부 해고 수용 및 이를 명예퇴직 형태로 해서 임금 및 보상금(위로금) 지급
- 이랜드그룹이 악의적으로 걸어놓은 조합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철회
- 2010까지 무분규 선언
- 이랜드 지부와 홈에버 지부의 분리 수용

이런 정도네요.

일단 이랜드그룹과 같은 악의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가 될만합니다.
하지만 지도부가 다 명예퇴직하기 때문에 향후 노동조합은 유명무실해질 듯 하네요.

진짜 문제는 남아있는 이랜드지부 조합원들입니다.

이랜드측은 홈플러스측과 달라서 명예퇴직형태도 아니고 손배가압류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랜드는 노조억제가 목적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가정파탄을 목적으로 하고 있죠.

진짜 악덕기업과 싸우고 있는 핵심문제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뉴코아 잠정합의, 홈플러스 잠정 합의.
그런데 정작 본사쪽인 이랜드 자체는 합의는 고사하고 임금동결, 해고왕창, 손배가압류, 교섭해태....
그대롭니다.

저는 이랜드본사쪽인데 1일에 복귀해도 갑갑한 형국 그대로일 듯 하네요.

 

http://www.npp.or.kr/bbs_main.php?pid=read&bid=free&view=2228&pstar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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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시작돼 510일 동안 이어져온 '이랜드 사태'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위원장 김경욱)은 11일 오전 마지막 교섭에서 노조 지도부 해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얻어내는 조건으로 파업 종결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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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반의 성공이라고 위안해야 할까요?
그들의 이번 합의를 비난하기에는 너무나도 도와준게 없어서 감히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네요. 이놈의 비정규직이 정말 없어져야 하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 왕의 귀환 -

"모든 정체성이 관계적이라는 것, 또 각각의 모든 정체성의 실존 조건이 어떤 차이의 긍정,
즉 '구성적 외부' 역할을 할 하나의 '타자'를 결정하는 것임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적대가 일어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경계를 설정해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관건인 집단 정체성 형성의 영역에서는,
우리와 그들의 관계가 친구와 적 유형의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달리 말해 슈미트의 용어 이해에 따르면 이런 관계는 항상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비극의 리어왕이 정치적으로 귀환하였다.
운명의 비극에 피눈물을 흘리던 리어왕이 관계의 폭력성에 피눈물을 흘린다.
적을 규정하고 성벽을 쌓고 결국엔 그 모든 것들로 무너져 내린다.
계급과 권력, 욕망과 폭력의 얽힌 실타래는 푸는 자의 몫이 아니었다.
잘라내고 제멋대로 이어붙이기만 한다면 그 누구의 것이라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똘똘 뭉친 무지로, 몰이해를 품고, 일방적으로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방식이었다.

혈관에 꽂는 주사기처럼,
너와 나를 가르는 결계처럼,
구분된 인간 계급처럼,
태어날 때부터 자식과 부모로 규정된 혈육처럼,
선택할 수 없는, 선택되어진 이름 없는 모든 것들에게 폭력이라는 이름을 새긴다.

그러나 폭력의 명암은 좀 더 면밀하게 그려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다양한 성질의 것을 동질의 것으로 묶기엔 그 방식 자체조차도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권력 본연의 얼굴은 과연 피칠을 한 유령의 모습이었을까..
절뚝거리는 인간의 역사에 절망과 허무만이 가득하다면,
이 연극은 무엇을 말했어야 하는가...
고전의 재해석은 새로움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각성을 던져줄 뿐이었다.

연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깜짝놀래키려는 음향과 시각효과로
관객에게 폭력성 그 자체를 노출시키고 있다.
극의 몰입과 장악력을 확대하려 한거 같은데, 세련된 방식은 아닌지라 투박함만 더했고,
3시간동안 중견 연기자의 열연이 없었더라면, 그 공허의 무게는 엉덩이에 더 심한 피로감을 누적시킬 뻔 했다. 

 

   
  나의 삶을 보노라,
물가의 검은 나무 한 그루의 나무.
가지들은 눈물로 덮여 있다.
눈물이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바람은 눈물을 하늘로 날린다.
그리고 나의 눈물이 내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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