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고 지낸다. 사람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구겨져 실린 버스 안에서 용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펼친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은 시집으로 구원받는다. 다 자란 삼십대는 여전이 아픈 사랑이 올 것을 믿으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