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고 지낸다. 사람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구겨져 실린 버스 안에서 용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펼친다.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은 시집으로 구원받는다. 다 자란 삼십대는 여전이 아픈 사랑이 올 것을 믿으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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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9-03-3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며칠 전에 이 시 일기에 적었었는데 깜놀햇네요ㅎㅎ 몸으로는 아직 4,5년 남았으나 이미 마음은ㅠ

이리스 2009-03-30 15: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몸도 마음도 ㅎㅎㅎ
깜놀할 일이 의외로 종종 있는 세상이더라구요~ ^^;

마늘빵 2009-03-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대는 제2의 사춘기... -_ㅠ

이리스 2009-03-30 15:3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럴지도 몰겠수.

무해한모리군 2009-04-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한달에 한권을 읽어내는 시집
이번달은 이녀석입니다.

이리스 2009-04-12 19:38   좋아요 0 | URL
한달에 한권이면 일년에 열두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