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밤의 공포와 분노와 어이없음과 감히 저것들이라는 마음을 기억한다. 앉은 순간에 그토록 격정적인 온갖 감정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경험을 다시 하고싶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함께 느꼈을 감정들을 세심하게 기록한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스 순간들을 다시 돌아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였다는 말에 들어있는 차별과 배제, 냉소를 살피는 것은 이 섬세한 작가의 몫이다. 그랬구나! 항상 대의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은 어쩔수 없지 않냐는 오래된 유교문화권의 역사와 군사문화의 그림자는 크고도 깊고도 넓다.
그래도 이렇게 그 순간을 포착하고 제발 조용히 하라고 말할 수 있는건 이렇게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 또 다른 예술을 통해 그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알려줘왔기 때문이리라.
좀 더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는 대를 위해서 소는 조용히 하라는 그 입에 제발 조용히가 아니라 큰 소리로 닥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세상에 희생되어도 되는, 묻혀도 되는 소는 없다.
그 무엇도 작지 않다.
그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샹명이 옶는것처럼.

황정은 작가가 말하는대로 우리는 희망보다는 가능성을 믿고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그러할것이다.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 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 P13

밀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 P43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바라며 앉아 있었다. - P85

읽을 책을 고르려고 책장을 넘기다가 우연히 본 문장.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 나도 이런 말을 쓰고 싶다. 이런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향해 돌돌 구부러드는 생각은 접어두고, 보고 듣는 것만을, 찰나의 생각만을 기록하며, 삶이 내게 주는 감각을편견 없이 흠뻑 음미하고, 그렇게 살고, 쓰고 싶다. 그런데자꾸 더러워진다. 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삶에서 내 삶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이런 오염은 싫다. - P114

그런 생각을 했다. 기쁘고 아깝고 슬프고. 독서가 어떻게 고요한 활동인가. 좋은 책을 만나면 너무나 난리다. - P136

록산 게이의 칼럼 모음집을 읽기 시작했다. 희망보다는 가능성을 믿는다는 이야기에 깊이 감응했다. 나도 그렇다. 진작 그래왔다고 중얼거리며 서문을 읽었다. 희망을 나는 믿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럼에도 세상을 보는 마음엔 늘모종의 믿음이 남아 있고 이것이 뭘까, 이것을 다른 이들은 뭐라고 부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가능성. 너무 평범한 말이라서 그 말을 발견하는 데 오래 걸렸다. 가능성을믿는 마음, 그걸 믿으려는 마음이 언제나 내게도 있다. 언제나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낡아빠진 세계인가.
세계.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다만 이어질 뿐인.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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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7-29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12월3일에 관한 에세이였군요.

바람돌이 2025-07-29 18:38   좋아요 1 | URL
네 12월 3일부터 탄핵되던 날까지의 작가 개인의 일기예요.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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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에서 나를 만나는 기분. 자괴감을 감추려 가까운 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의뭉스럽게 꺼내고, 나의 삶의 고달픔을 타인의 표면에 보이는 모습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하고,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베풀고 나의 선량함에 도취하지만 끝까지 정의롭지는 못한 그런 나. 그래서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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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7-26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니 단편들이 또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데 백수린 작가를 알게 된 책이 이 책이었어요. 바람돌이 님의 백자평을 읽으니 백수린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저도 이런 이유였던가? 생각하며 저 또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작가들이 쓴 한국 소설은 읽으면서 자괴감이 드는 게…읽을 땐 괴롭기도 한데 또 그 지점들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돌아서면 금방 까먹는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만^^
더운 날씨 속이지만 조리 잘하고 계신 거죠?^^

바람돌이 2025-07-26 11:51   좋아요 0 | URL
한국 작가의 소설은 지금의 나를 좀 더 명확하게 보게 해줘서 좋은거같아요. 백수린 작가 책들 참 좋네요. 나무님덕분에 좋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집에서 에어컨 켜놓고 가만히 있습니다. 더우면 기브스 한데가 너무 가려워서 그냥 에어컨 빵빵이네요. ㅎㅎ 할수 있는 일이라곤 책 보는거 밖에 없어서 진짜 책만 보네요. 남편도 방학이라 삼시세끼 챙겨줘서 평생 해준거 보답받는 느낌입니다. 나름 좋은 면입니다. ㅎㅎ

독서괭 2025-07-26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돌아서면 까먹어서 이미 많이 잊었지만, 이 소설집 참 좋았어요! 여름에 딱 좋은 책 읽으셨군요^^

바람돌이 2025-07-26 12:57   좋아요 1 | URL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그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ㅎㅎ 읽고나면 좋았던 느낌만 남는지라... ㅎㅎ
 

<제인 에어>의 미치광이 아내 버사에게 발언권을 돌려주면 <광막한 사르가소>바다가 나온다.

사르가소 바다는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의 바다로 그 거리만큼 두 세계는 멀고 먼 세계다.
물리적인 거리도 거리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심리적 거리가 멀고도 깊다.
그 거리는 누가 만들었나?

제국주의와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억압의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기제를 탁월하게 파악한 이 소설은 양 세계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상황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앙뜨와네뜨가 이름을 뺏기고 버사가 되는 과정은 제국주의자 백인 남성이 식민지를 자기들의 이름으로 멋대로 명명하며 자신의 하위세계에 편입시키는 과정의 은유다.

문학은 이론서의 장황한 설명과 설득을 하나의 이야기로 압축해 명징한 이미지로 나를 이해시켜버린다.
역시 문학을 사랑할수밖에 없구나.

새로 나온 이 판본에는 번역자의 작품해설이 있는데 일독을 권한다. 작품해설이 이렇게 좋은 경우도 참 오랫만에 봤다.

아 그런데 <제인에어>의 제인의 팬으로서 한 마디 안할 수 없다.
˝제인! 제발 로체스터 그 새끼랑 결혼하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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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5-07-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강렬한 마지막!!!

바람돌이 2025-07-25 17:31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마지막도 강렬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5-07-25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인 에어랑 같이 읽고 있어요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5-07-25 21:47   좋아요 1 | URL
무조건 제인에어 먼저 읽어야해요. 이 책 보고 나면 로체스터 분통터져서 못볼지도 몰라요. 정말 다른 작가의 다른 얘기인데 왜 이렇게 싱크로율이 높은것처럼 읽히는지.... ㅎㅎ

독서괭 2025-07-26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진짜.. 왜 그런 놈ㅇ을 만났어.. ㅠㅠ
광막한 사르가소 이책 참 좋다 얘기 많이 들었는데 아직 못 읽어봤네요.

바람돌이 2025-07-26 12:55   좋아요 1 | URL
광막한 사르가소는 제인에어의 스핀오프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좀 기대가 적었는데 완전 반전입니다. 훨씬 더 좋아요. 여러분들이 좋다고 하는 책은 역시 다 이유가 있네요. ㅎㅎ

독서괭 2025-07-26 12:57   좋아요 1 | URL
엇 저도 그런 이유로 손이 안 갔는데.. 그렇다면 더욱 읽어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5-07-26 12:57   좋아요 1 | URL
넵 강추합니다

단발머리 2025-07-29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에어를 너무 사랑해서, 아니 로체스터를 미워하게 될까봐 아직도 이 책을 미루고 있는 1인입니다.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어요. 이 좋은 책을, 왜 미룬겁니까....

바람돌이 2025-07-29 10:20   좋아요 1 | URL
저는 제인에어 읽으면서 로체스터는 찜찜하더라구요. 그래거 우리 제인이 결혼 안했으면 했는데 이 책읽으면 확실히 개자식으로 등극합니다. ㅎㅎ 좀 희안해요. 작가도 다르고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왜 자꾸 제인에어로 돌아가지는지 말이죠. 아 이거 혹시 제인을 너무 사랑해서일까요?
어쨌든 너무 너무 훌륭한 소설입니다
 
경성 주택 탐구생활 - 백 년 전 주택문화부터 방 치장의 내력까지
최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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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하고, 당대 인물들의 생각과 주장을 연결한 기획이 돋보인다. 다만 당대의 사회상과 좀더 밀착한 전개를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달랐다. 근대시기 주택을 주택 자체만으로 면밀히 살피고 자료로 이용하고자하는 이에게는 딱 맞을 책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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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의 조선일보 만평

모던걸의 다리에 써진 글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비하를 보여준다.

피아노 한채만 사주면
나는 문화주택을 지어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찮아요
나는 아직 독신입니다
나는 외국 유학생하고 결혼하고저 합니다
나는 집세를 못냈습니다. 구원해주세요
나는 처녀입니다. 돈만 많으면 누구에게라도
나는 신경질있니다. 이것을 이해해주어야해요.

이렇게 노골적인 말을 여성의 드러난 다리에 전시하는 끔찍함이라니.....
책 읽다가 너무 끔찍해서 일단 기록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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