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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
모흐센 마흐말바프 지음, 정해경 엮고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평점 :
돌바람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모르고 지나갔을 책. 돌바람님 고마워요.
아프가니스탄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 나라가 지도상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한건 당연한거고,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던 시절, 아프간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처럼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 유명세는 이 나라에 전혀 행복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불행에 불을 붙인듯 불행에 가속도까지 붙기 시작한 유명세였다.
2001년 9.11테러로 지칭되는 사건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를 주범으로 지목했고,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 은거하고 있다는 심증만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 직후 이 지구상에서 잊혀졌던 나라에 대해 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한시간짜리 수업을 했었다. TV의 화면은 누군가가 하늘에 떠서 교신을 하고 있고 저 아래에는 뭔가 꾸물거리면서 마을길같아 보이는것들, 그리고 조그맣게 꼬물거리고 있는 것들, 사각형의 조그만 상자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교신들이 이어지다가 조준 폭격이 시작됐다. 조그많게 꼬물거리는 것들은 갑자기 우왕좌왕하면서 흩어지고 달리고 폭격을 통해 없어지고 그 조그만 상자들에서 또 조그만 꼬물거리는 것들이 뛰쳐나오고...... 몇몇 남학생들은 갑자기 신나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이거 컴퓨터 게임이예요?"라고물었다.
정말로 게임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화면을 중지시키고 이 화면이 뭔지를 얘기해줬다. 여기는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라고.... 그리고 저 아래 꼬물거리는 것들이 사람이고 마을이고 집들이라고... 지금 저곳에는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없어서 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저곳엔 지금 사람들이 공중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에 아무것도 모른채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면서 죽어가고 있는것이라고....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계속 이어진 화면을 보며 몇몇 여학생들은 울었고, 또 몇몇 아이들은 저 나라가 왜 미국에 폭격을 당해요? 라고 묻기도 했다.
미국에 의해 처참하게 국제사회에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이전부터 쭉 계속되어져 왔다는 걸 이 책에서 알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쭉 굶어죽고 부족간 전쟁에 휘말려 죽어왔다는 것을.... 한나라 인구의 10%가 죽고, 30%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자기의 터전을 떠나는 나라를 나 왜 몰랐을까? 내 입에 들어가는 세끼 밥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그 나라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배불리 먹고 놀고 편히 쉬고 있을때 나와 똑같은 사람들인 그들이 주리고 고통받고 희망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을 그냥 연민에나 차서 바라보면서 배부른 동정으로 나의 양심을 달랠까?
영화감독이자 이 책의 저자의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칸다하르>영화를 완성한 지금도 나는 내 직업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보고서나 영화가 불붙인 지식의 작은 등불이 인류의 무지라는 깊고 큰 바다를 비출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앞으로 50년간 대인 지뢰에 손과 다리를 잃게 될 사람들이 19세 영국 소녀에 의해 구원받으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나는 영화를 만들고 이 글을 쓰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파스칼이 이렇게 말했다. "이성이 모르는 이유를 마음이 알고 있다" 고 말한다.
그는 마음이 아는대로 영화를 만들고 인접국가로서 이란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의무를 일깨우며,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위해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문맹구제 프로젝트를 벌인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뭘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