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초인간 :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 - KBS <북유럽> MC 김중혁 작가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 1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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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제목

더 난감한 표지, 1970년대 만화책같은 저 표지를 보라!

그래도 김중혁이다. 책을 읽다보면 저 표지가 이 책에 딱이라는걸 알아챌 수 있다.

 

어떤 한면만 특출하다는 걸 초능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특출함으로 인해 다른 모든 면이 퇴화한 무능력자로 볼 수도 있는 인간들, 그들이 초인간들이다.

그들이 모여서 뭘하냐고?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의 줄거리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건 초인간들이 만났다는 것이고,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도망치기 순서인 민시아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정인수에게 해주는 말이다.

 

"나도 너 좋아해..... 말해줘서 고마워. 네 감정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그 감정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할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내자. 지금 나는 상우가 너무 좋고, 함께 있는 순간이 적어서 아쉬워. 그렇지만 친구들이랑 다 같이 있는 시간도 좋고, 그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지금의 나를 흘려보내고 싶어, 나 지금말 너무 많이 하고 있지?"
- P205

 

다른 사람의 감정을 긍정해주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작가 김중혁이 하고싶은 말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상우의 긴팔, 오랑우탄이라고 놀림받고, 상우의 열등감의 근원이었던 그 긴 팔에 민시아는 "팔이 너무 길어서 포옹이 아니라 감금같아. 내 몸 두 바퀴 감아봐."라며 웃는다.

위로는 심각하게 폼잡고 하는게 아니다.

민시아처럼 저렇게 받아들이는 거다.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

 

안나 카레리나식으로 얘기하면 행복한 사람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모두가 같은 이유로 불행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진정돼가던 코로나는 다시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마음에 화가 쌓인다.

아니 왜 모이지 말라는데 꼭 모이는거야? 꼭 그날 집회를 해야 해? 왜 마스크를 안하냐고? 빨리 방역을 하려면 동선을 솔직하게 털어놔야지. 왜 피하냐고?

그동안 내가 참아왔던 모든 순간들, 계획들 이런 것들이 다 떠오르면서 뉴스를 보는 내내 욕이 튄다.

그래서 시원해지냐고?

아니 더더 숨이 막히고 더더 화가 난다.

 

그런 순간에  김중혁이 "피자 왔습니다"라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우리 모두 우울하니까.” 라고 피자 대신 이 책을 던졌다.

덕분에 웃는다.

그의 유머코드가 누군가를 억누르지 않아서 마음껏 웃을 수 있어 좋고, 그가 말하는 따뜻함이 좋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시속 2백 킬로미터의 시대에서 슬로비디오로 살고 있는 나무늘보 같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갑옷을 두르고 사는 사람들 사이를 발가벗고 다니는 부랑자들 같았고, 왕따들이고, 소외자들이고, 멍청한 인간들이며, 매번 당하고 사는 피해자들이며, 상처받고도 복수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들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 (p142)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이기에 그래서 유머가 필요하다.

유머가 필요한 오늘 내 옆의 누군가에게 이 책을 살며시 밀어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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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우는 경기장으로 걸어 나가면서 에밀 누군가의 말을 생각했다.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라고? 폭력을 잘 모르는 사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갇힌 사람에게 밖으로부터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에밀 누군가 하는 자식은 분명히 잘 모르고 있다. 사방이 폭력일 때, 도망갈 수 없을 때, 그게 아버지일 때, 차라리 안에서 생기는 폭력을 즐기게 된다.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몸속에서 터뜨려버리면 된다. 그러면 그게 에너지가 될 때도 있다. 에밀 누군가 그 자식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겠지 - P64

"굳이 종교를 만들어서 교리를 만들고, 리더가 되고, 나를 따르라고 소리 지르고, 그렇게 귀찮은 일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잖아."
"공상우, 너 은근 논리적이네. 책 많이 읽어?"
"아니, 책은 안 읽는데?"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 사이비 종교들은 여자들을성 노예로 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많아. 자신의 아이를 잉태하면 신의 자궁 역할을 하게 되는 거라고 수작을 부리지만, 그냥 교주들이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드는 거지. 저 영상을 봐, 그런 기운이 하나도 없잖아.
나하고 같이 가보자."
"마찬가지면 어떻게 해? 저 여자가 사이비 종교의교주이고, 네 말대로 성 노예를 원하는 거라면 나 같은 남자가 필요하겠지."
- P94

민시아는 삶이 즐거울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공상우는 새로운 자극을 온몸으로받아들였다.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웃어보았다. 민시아를 만나면 먼저 꽉 껴안았다. "팔이 너무 길어서 포옹이 아니라 감금 같아. 내 몸 두 바퀴 감아봐" 라는시아의 농담에도 크게 웃었다. - P118

"세상에 괜히는 없어. 모든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렇게 된 거지."
"그러면 애초에 세상은 이렇게 되려고 다 그렇게 된거고, 우리도 다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된 거네?"
"가끔 보면 너는 도인 같은 말만 하더라."
"도인이 아니라 후회하는 걸 싫어해서 그래."
"후회하는 게 왜 싫어?"
"후회하면 반성해야 하잖아. 반성하는 게 세상에서제일 싫어."
- P119

초클에 둘러앉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헛웃음이 났다. 이런 바보들! 머저리들! 초인간은커녕 초바보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아무도 글을 읽지 않는 시대의 시인들 같았고,
시속 2백 킬로미터의 시대에서 슬로비디오로 살고 있는 나무늘보 같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갑옷을 두르고 사는 사람들 사이를 발가벗고 다니는 부랑자들 같았고, 왕따들이고, 소외자들이고, 멍청한 인간들이며, 매번 당하고 사는 피해자들이며, 상처받고도 복수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들이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어서 초능력자들 같았고, 세상 누구도 정식 종목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스포츠의 유일한 선수들이자 세계신기록 보유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42

를 데려와서는 겨우 한다는 소리가 과자를 주면은 코
"난 동물원이란 데가 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거기서 심지어 살육이 이뤄지고 있다니."
"그래도 동물원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코끼리도 봤지."
"그렇게 봐서 뭐해, 서로서로 보지 않는 사이가 좋을 수도 있지, 텔레비전 뒀다 뭐해, 그렇게 만나면 되는 거지. 둘이서 제대로 만나려면 코끼리도 우릴 볼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우리 좋자고 그 먼 데서 코끼리로 받지요‘ 이러고 있냐고."
- P202

"나도 너 좋아해. 근데 큼지막한 비밀은 아냐, 좋아하는 건 비밀이 될 수 없어. 그런 건 감출 수 있는 게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비밀이 될 수 없어. 이야기는 비밀이 될 수 있지만 감정은 비밀이 될 수 없어. 말해줘서 고마워. 네 감정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그 감정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할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내자. 지금 나는 상우가너무 좋고, 함께 있는 순간이 적어서 아쉬워. 그렇지만 친구들이랑 다 같이 있는 시간도 좋고, 그냥 자연스러운 상태로 지금의 나를 흘려보내고 싶어, 나 지금말 너무 많이 하고 있지?"
- P205

할수 있는걸 하는 사람도 있겠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하는 사람도 있어, 불가능한데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어. 할 수없는 일인데도 그걸 다 알고, 그냥 실패를 선택하는사람도 있어. 성공할지 말지 모른 채 그냥 해보는 사람도 있고, 꼭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고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우린 같이 있으니까 성공이란 게 어떤건지도 모르면서 해보는 거야. 실패해봤자 작은 실패니까, 커다랗고 화려하게 수익 만 퍼센트 보장해주는성공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기념사진 씨는 것처럼, 다 웃으면서, 우리 전부가 함께 들어있는 사진 한 장쯤 있으면 좋겠네,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어. 그래서 난 내 친구들이 멋지다고 생각해."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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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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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하다.

이 경이로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나는 저 "절박하다"라는 한 문장으로 대신하겠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감정은 바로 저 "절박하다"라는 것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고유명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도, 지역도, 살고 있는 동네도, 사람들의 이름도,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보통명사로 지칭된다.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은 그냥 가운데 딸이다.(그녀는 7딸 중에 딱 가운데 넷째다)

그녀와 썸을 타는 남자친구는 그녀를 부를 때 어쩌면-여자친구야라고 부른다.(요즘식 표현이면 썸타는 여자친구야정도?)

친구는 그녀를 부를 때 가장 오래된 친구야라고 부른다. 소설을 보다가 이런 장면에서는 살짝 키득거리게 되기도 한다.

가끔 이름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은 그야말로 이름 자체가 아무 의미없는 스쳐가는 인물이다.

중요 인물 중 유일하게 고유명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이건 스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넘어가자.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책을 보시는 분이 계시면 한번 맞춰보시라 하고싶다. 나는 못맞췄다.)

 

한 번도 이렇게 보통명사로만 이루어진 책을 본 적이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다.

따라서 이것이 어떤 효과를 줄 지 알 수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것의 효과에 전율하게 된다.

고유명사가 없다는 것은 이 소설의 장소들이 어디나 될 수 있다는 말이고, 소설 속 인물이 바로 나 자신이 되거나 또는 나의 주변인물이 될 수도 있다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주인공 가운데 딸에게 감정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게 너무 어려웠다. 그야말로 꾸역꾸역 읽었다.

어려운 말 하나 없고 어려운 내용도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건 주인공 소녀가 느끼는 그 감정들이 모두 나에게로 휘몰아쳐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되어 불안에 떨며 거리를 걷고, 사람들의 폭력적인 뒷말과 소문에 휘둘리고 있었다.

이런 정도의 몰입감을 주는 소설이 또 있었던가?

 

그래도 이 시기 북아일랜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지 않으면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어리둥절해질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북아일랜드의 역사는 워낙에 복잡해서 내 나름대로 북아일랜드의 그 암울한 상황을 각색해보았다.

 

이건 정말 그냥 예다.(영국에 일본을, 한국에 아일랜드를 대비시켜 얘기하면 북아일랜드인들이 느끼는 그 절박한 상황이 좀 더 잘 와닿지 않을까 싶어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통치한게 35년이 아니라 700년이라고 하자.

그 무자비한 통치를 700년이나 받았고, 우리는 그 기간동안 엄청나게 싸우고 독립운동을 했다.

왜? 당연히 일본의 통치하에 사는게 너무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으니까.

오랜 독립투쟁 끝에 드디어 독립의 순간, 해방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한국의 한귀퉁이 경상남도의 주민들이 독립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한 300년전부터 일본에서 이주해와 정착하고 대대로 뿌리를 박은 일본인들이 전체 주민의 50%에 달한다.

이 일본인들은 경상도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 지주로 이 지역에서 아주 떵떵거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부를 그 토지를 다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리고 경상도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이 일본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나 혼인관계 등으로 얽혀있는 이들이 많다.

물론 친일파도 많을 거고.....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결사반대한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독립을 위해 경상도를 버리기로 결정한다. 일본과 더 싸울 힘이 모자라니 그냥 경상도만 일본 식민지로 두고 나머지 지역만 독립하기로 하는 것이다.

자 이제 경상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50%의 일본인들은 나머지 50%의 한국인들이 다시 독립운동을 벌일까봐 전전긍긍하며 그들을 무력으로 짓누르고 감시하고 억압한다. 그들은 지역의 모든 군대와 경찰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본국의 군사적 지원까지 받는다.

조국이 독립했는데 버림받고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는 경상도 지역의 한국인들은 이후 50년간 여전히 독립을 위해 싸운다. 이 50년간 경상도 지역은 일본인 거주지역과 한국인 거주 지역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러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생활공간은 또 겹친다. 이제 이 곳 한국인들의 거주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피폐해져 갈까? 도로 하나의 거리인 만큼 언제나 밀고자는 넘쳐나고, 정체성을 위협받는 상황은 수시로 일어난다. (실제로 북아일랜드의 상황은 여기에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과 개신교를 믿는 영국인들 사이의 대립까지 겹쳐있어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바로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여성들의 이야기가 소설 <밀크맨>이다.

 

 

반대자가 만행을 저지르면 ‘아, 하느님 맙소사, 나와 같은 관점에속한다는 이유로 내가 이런 행위를 지지한 꼴인가?‘ 하며 충격에빠지게 되지만, 다른 쪽에서 또 끔찍한 일을 저지르면 그런생각을 했던 것도 잊게 됐다. 또다시 충격을 받고 또 생각이 바뀌었다. 복수에 복수가 거듭됐다.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공동체 간의 대화를 추진하고, 다 함께 행진을 하고, 선하고 진정한 시민의식을 북돋고 하다가, 평화운동과 선하고 진정한 시민의식에 어떤 분파가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운동을 접고 희망도 버리고 잠정적 해결책도 팽개치고 익숙하고 믿을 수 있고 필연적인 원래의 관점으로 돌아갔다. 그 시대에는 어디든 다 닫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공동체도, 저쪽 공동체도....- P168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 P285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 말하기를 잊어버린다는게 더 적당한 표현일거다. 주인공 소녀도 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한다. 꽁꽁 숨긴다.

그래서 소설은 철저하게 감정을 누르고 누른 건조한 문장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하고싶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고싶은 말이 넘치고 넘쳐서 문장은 끝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상황이든 마음이든 무언가를 말하고자 할 때 상황에 맞은 또는 적당할 것 같은 모든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도 감정은 누르고 눌러진 상태가 어떻게 가능할 까 싶은데 이 소설이 바로 그 모순적 상황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펼쳐놓는다.

소설의 서술 기법은 너무나도 새롭고 경이롭다.

그러나 더 경이로운 것은 그런 모든 형식과 모든 문장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독자의 몰입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소설의 뒷날개에는 이 책에 대한 각종 매체들의 소개글이 실려있다.

이 소설을 혹시 발견한다면 꼭 소개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폭력에 대한 보편적 저항,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다룬 정치소설, 현대사회의 불안을 다룬 소설, 페미니즘 소설, 성장소설 등등.... 이 모두가 맞는 표현이다.

여기에 나의 평가를 덧붙이자면 니체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을 넘어서> 중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되고 일상화된 곳에서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소당하고, 똑같이 폭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게 되는지를 이토록 잘 보여줄 수가 없다.

또한 그럼에도 빛이 존재한다라는 말은 꼭 하고 싶다.

설사 그 빛이 희미하더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프랑스어 선생님, 진짜 밀크맨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그리고 소녀들의 이야기만 보면 이 소설은 휴머니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되겠다.

하나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롭지 않은가?

그 경이로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책을 들고 가 꼭 좀 읽어달라고 하고 싶은 글을 참으로 오랫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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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3-08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고 여겼는데, 바람돌이님이 어떻게 독특한지 잘 써주셔서 저도 조금 더 새롭게 소설이 보이네요! 경상도 예는 ㅋㅋㅋ 북아일랜드 이해 확되브렀러요!! 잘 읽었습니다 😎

바람돌이 2021-03-08 19:20   좋아요 1 | URL
오우 칭찬 감사합니다. ^^
 

이렇게 타인에 대한 공포가 밝음과 선함을 압도하고 흩어놓고 결국 사살해버렸다. 밝음과 선함은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났다. 일체성, 반짝임, 동생, 동생의 모습으로도 왔다.
그러니까 동생이 자기 안에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그러면말이 된다. 알약소녀는 동생이 자기 안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동생은 죽어야 했다.  - P378

바닥을 밟고 있는데도 떠다니는 기분인 한편으로 내가 달리 행동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니 나에게는 분노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러이러하는 대신 저러저러했다면, 거기 가는 대신 저기 갔다면, 이렇게 말하지 말고 저렇게 말했다면, 다르게 생겼다면, 그날 『아이반호」를들고 길에 나다니지 않았다면, 그날밤에도 그주에도 지난두달 동안 어느 날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그가 나를 보고 욕망할일도 없었을텐데.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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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책. 절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어려운 문장 하나 없으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소설속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하나 하나를 내가 직접 느끼는듯 나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면 고전의 반열에 오르리라!








먼저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리가 처음에는 "좋아, 잘했어. 사람들을 잘 속여서 내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게 만들었어"라고 칭찬을해주던 머리가 이제는 내가 거기에 있기는 한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우리 반응은 어떻게 된 거야? 속으로 표현하던 감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어디 갔지?" 감정이 표출되기를 멈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사라져버렸다. 무감함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지역 사람들만내 속을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내 속을 알 수가없었다. 내면세계가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 P253

만약에 단 한 사람만 정상이고 나머지사람 전부가 정상이 아니라면, 집단의식에서는 그 한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겠지. 그렇다고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니? ‘응" 친구가 말했다.  - P285

평범한 살인은 섬뜩하고 불가해한 것이고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살인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살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분류하고 토론해야 할지 몰랐다. 이곳에서는 정치적 살인만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란 당연하지만 국경과 관련된 모든 것에 얽힌 살인이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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