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몬테, 그게 바로 권력일세. 노쇠하거나 시들해지기는커녕 권력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니까 말이야.」 - P50

에스피노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는 역사가 영원히 주지 않을 것 같던 즐거움을앞으로 누리게 될 거야, 동무, 우리는 역사에 종지부를찍게 될 테니까 말이야.」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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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이라는 이 낯선 작가의 글을 읽은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이라니! 너무 당연한것을 당연하지 않은 듯 붙인 제목은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발견한건 아 난 역시 이야기가 좋아라는 것. 사랑이라는 흔해빠진 주제를 이렇게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독서를 이끌어 간다. 아마도 나는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볼때가 있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나 보고싶은 것도 있고 이 작가가 내가 지켜보고싶은 젊은 신인작가이기에 그에 대한 다중의 평을 보고싶기고 해서인데 좀 거슬리는 면들이 있다.
왜 이 작가를 자꾸 테드창과 비교하는가이다. 단순히 SF소설 또는 과학 소설이라는 소재때문에 그러하다면 지나치게 부당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SF 과학 소설의 기준이 테드 창은 아니지 않는가? 나 역시 테드 창을 좋아하고 그의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었지만 테드 창은 테드창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될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나는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테드 창을 의식해서 쓴 부분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테드 창의 글들은 과학 또는 sf라는 소재를 통해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라든지 인간과 세계의 소통가능성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를 위해 문과생이라면 상당히 골치아픈 수학적 과학적 소재들을 끌어쓰는 방식으로 그 어려움을 표현한다.

김초엽 작가에게 sf 과학은 인간의 다양한 존재양상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활용된다. 현재의 사회적 차별에 의해 배제되는 다양한 존재들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존재형태로 순응하기 위한 장치로 미래 공간을 활용한다. 그속에서는 여성이나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들도 좀 더 자유롭다.

결론적으로 SF, 과학이라는 소재는 테드창에게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라면 김초엽에게는 인간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명확하게 다르다.


작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테드창에 못 미친다라는건 글쎄.... 어떤 이야기가 또는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취향이 아닐 수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넌 왜 테드창처럼 쓰지 않냐고라고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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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게 누구십니까!!! 넘 오랜만이에요!!!! (저 예전 나비;;)
잘 지내셨나요? 다시 돌아오셔서 넘 기뻐요!!ㅠㅠ(근데 왜 울;;;ㅎㅎㅎ)

바람돌이 2020-07-20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비님이시군요. 오랫만에 뵈서 저도 반가워요. ^^ 가끔 낙네임을 바꾼분이 계셔서 인사를 못하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리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다는 게 이상 - P115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 P126

한빛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규림은 자신의 해명이 힘도 없고중요하지도 않음을 이해했다.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 P173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실행이었다.
- P178

우리가 이천 년 가깝게 사랑해온 땅들은 플랜테이션 농장이 되었어요. 백인 선교사의 자식들이 그 농장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대거 바다를 건너왔고요. 농장주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합병을 한 겁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희석되는 걸 막기 위해 지극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말이 살아나고 훌라가 살아났지만 갈 길이 멀어요. 우리를 그저 관광상품으로 대상화하면 안됩니다. - P213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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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 그림에 반해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가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에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 P15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 P72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승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 첨예하게 반분되어 있던 한인 사회는 세대를 내려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끝내는 익숙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가 망명한 집에 밤에 몰래 가 유리창이라도 깼을까? 평행하는 세계에 대해 읽어보았지만 역시 그런 게 없었으면 한다.
- P93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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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에서 풀려날 때, 야백은 사람의 밥을 벌고, 사람이 걸어주는 장신구를 붙이고, 사람을 태우고 달린 생애의 시간이몸속에서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아서 이 빠진 자리는 빈 채 서늘했다 - P146

젊은 농부가 죽은 딸의 머리맡에 묻은 돌은 이 악기를 본떻것인데 어려서 죽은 월의 아이들은 모두 이 악기를 선물로 지니고 갔다. 사람들은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돌로 무덤을 덮어놓았는데 돌에 구멍을 뚫어서 무덤 속 아이와별이 서로 쳐다볼 수 있도록 했다.
- P178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 P191

초원의 봄은 땅속에서 번져 나왔다. 봄에 초원은 벌렁거렸다. 눈이 녹아서 부푼 흙 속에서 풀싹이 돋아나고 벌레들이깨어났다. 벌레들은 땅속에서 올라오고 숲에서 살아났다.
벌레들은 가을에 모두 죽어서 없어지고 봄이 오면 새로운벌레들이 초원에 나타나서, 모든 벌레는 작년에 죽은 벌레의자식이 아니며,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벌레이고, 벌레들이 다 죽어도 벌레들의 초원에는 죽음이 없다고 무녀는 연에게 말해주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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